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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술, 기교보다는 생각이 더 중요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12/27]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2007 올해의 작가' 정연두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올해 국내 미술계는 지난 1월29일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타계소식으로 한 해의 문을 열었습니다.이후, 조각가 유영교, 사진작가 김수남, 도예가 한익환, 서예가 김충현 등 미술계의 원로 대가들이 잇따라 타계했는데요, 원로들이 타계한 자리를 20대에서 40대까지 젊은 작가들이 채우면서 각종 국제 비엔날레와 유명 아트페어와 등에서 주목받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올해의 작가 선정 최초로 30대 작가인 정연두씨를 2007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해서 화제를 모았는데요 연말을 맞아 올해 문화 예술계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인물들을 초대하고 있는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2006 문화예술계 인물토크 3인 3색>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국립현대미술관 2007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정연두씨를 초대해서 30대의 나이에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소감과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무엇인지 얘기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미술작가 정연두씹니다

정연두 작가는 1969년 경남 진주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골드스미스대학교에서 순수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2002년 이후 광주와 부산, 상하이 비엔날레, 후쿠오카 트리엔날레를 비롯해서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 타이페이 비엔날레 등에 참가했습니다. 서울과 뉴욕, 스페인, 홍콩, 일본 등 세계무대에서 활발한 개인전을 열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우선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아마 지난 11월에 통보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12월 들어서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지금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정한 올해의 작가 중에서 30대는 처음이라고 굉장히 큰 의미를 뒀는데 본인은 어떠세요?

정연두 : 저같이 젊은 작가를 선정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에서 제가 젊기 때문에 선정하셨다거나 경륜이 많아서 선정한 건 더더군다나 아닐 것 같고. 일단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고 그 작업에 대해 공감하셔서 뽑아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 ⓒ프레시안

박인규 :
이런 말을 본인이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본인이 올해의 작가에 선정된 이유는 뭐라고 짐작하세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어떤 이유로 선정했다고 말을 합니까?

정연두 : 그런 말씀은 없으셨고 일단은 여러 분들의 추천이 있었다고 얘기는 들었구요. 제 개인적으로는 일단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또 한편으로는 활동을 크게 활발하게 하는 작가로서 많이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계속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새로운 비전을 보이려고 노력하는데,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큰 규모의 전시관에서 그동안 많은 분들이 회고전 형식으로, 70년대에는 어떤 작품을 하셨고 80년대에는 어떤 작품을 하셨고, 그런 긴 전시를 많이 하신 데 비해서 저같이 젊은 작가가 이렇게 회고전 형식의 전시를 한다는 것도 사실 문맥에 맞지 않는 것 같고. 그리고 제가 나눠 봤자 90년대, 2000년대.. 그렇게 얘기하긴 어려운 것 같고. 새로운 작업들을 보이고 싶은 게 제 욕심인데 사실 그런 부분들이 조금 쉽지 않죠.

박인규 : 보니까 올해의 작가라는 게 2006년 올해의 작가가 아니라 2007년 올해의 작가에요. 올해의 작품활동을 보기보다는 내년에 가서 정연두라는 작가의 작품을 보자. 아마 내년에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시는 거죠?

정연두 : 그렇습니다. 내년 5월에 전시하는 것으로 압니다.

박인규 : 제가 미술작가 정연두씨라고 소개했는데, 전통적인 우리들의 관념은 미술 하면 회화, 조각 서예, 이런 식으로 장르를 나눕니다. 아마 정연두씨가 하시는 작품활동은 장르를 나누기 어려워서 그런가 보죠?

정연두 : 참 어려운 질문인 것 같은데요, 사람들한테 무슨 일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사진가라고 얘기하기에는 어려운 게 사진 공부를 해본 적이 없고. 그렇다고 조각가라고 하기에는 지금 만드는 작품들이 조금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작가라고 하기엔 작가에는 종류가 굉장히 많잖아요. 예술가, 아티스트라고 얘기를 하려면 또 뭔가 특별해야 될 것 같고. 가장 쉬운 것은 구체적으로 명칭을 딱딱 나눠서 제 자신을 그룹짓기보다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시각언어라는 걸 사용해서 시각적인 것을 표현해내는 시각예술가.. 아티스트라고 얘기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일단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굉장히 총체적이고 광범위하고 가급적이면 자유로운 생각과 태도를 갖고 접근하기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자신의 창작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진이나 회화, 조각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이용해서 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되겠군요. 정연두씨가 말하자면 미술작가로 이름을 알린 게 2000년도에 발표하신 보라매댄스홀이라고 들었습니다. 시실 TV라면 작품을 보여드리면서 말하면 이해가 쉬울 텐데 라디오니까 할 수 없구요. 작품을 소개해 주시면서 본인의 작품세계 같은 걸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연두 : 보라매댄스홀은 보라매공원 내에 있는 한국체육진흥원소속의 댄스홀이고, 옛날 커다란 체육관.. 비행기 격납고 같이 생긴 체육관 안에 있는데, 대방동이나 구로동 근방 지역의 주민들이 오셔서 춤을 추고. 특히 서양에서 가장 고급 사교문화라고 얘기할 수 있는 볼륨댄스 등을 배우러 오시는 분들을 제가 사진으로 찍어서 그걸 벽지로 환원해서 전시장에 벽지패턴화시켜서 전시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면 마치 댄스홀에 들어간 듯한 느낌과, 수백 명의 춤추는 사람들이 음악 속에서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마치 이웃 주변의 중년 남녀들이, 배나오고 약간은 머리가 벗겨지셔도 눈만 감으면 댄스화를 신고 파트너와 손잡고 세상에서 제일 로맨틱한 사람으로 바뀌는, 그런 가장 낭만적인 상황 자체가 우리가 시각적으로 바라본 할리우드식의 선남선녀, 굉장히 멋진 백그라운드 이런 것이 아니라 주변의 중년 아저씨들한테서 찾아서 전시장에 보여드리는. 한 편으로 제가 거기 썼던 기법이 콜라주라는 기법인데요, 벽지패턴 위에 사진들을 패턴화시키는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한 프레임 안에 중년남녀분이 춤추시는 사진을 찍어서 넣으면 우습겠죠. 하지만 이게 패턴화되고 나서 음악과 함께 큰 공간에 꽉 차게 되면 환경화 되기 때문에 그걸 보러 들어온 사람들은 패턴 하나하나의 이미지는 어떨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느낌에서 그분들이 빠져들어가는 환상에 가장 유사한 경험을 전시장에서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고자, 그렇게 만들었던 작업입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춤추는 동네 아저씨와 아줌마들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서 액자에 넣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의 모습을 천장과 벽 전체에다가 해서 진짜 우리가 댄스홀에 들어온 기분을 나게 만들었다. 그것에 콜라주기법을 썼다. 실제로 보라매댄스홀이라는 전시를 하시면서 댄스 강습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연두 : 제가 강습을 한 건 아니구요, 광주 비엔날레 때는 제가 만든 작품 속에 광주 지역주민 여러분 중에서 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직접 자원봉사로 춤강습을 하겠다고 나서셨고, 굉장히 재밌는 장소에서 춤을 추고 싶다는 얘기가 광주 측에서 있어서 그 지역주민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오셔서 댄스강습을 하셨어요.

박인규 : 보래매댄스홀이라는 작품을 전시하면서 그 안에서 춤강습을 한 거군요.

정연두 : 예. 쉬운 예로 2000년에는 7호선 지하철 개통열차에 작품이 설치됐었는데, 지하철 한 량에 댄스플로어 마루를 깔고 벽지를 발라서 음악을 틀었는데, 서울의 춤 동호회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 지하철역 끝에서부터 반대편까지 달리는 기차 속에서 춤파티를 연다든지, 그런 이벤트들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런 주변 전체를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해놓는 것이 여러 가지 다른 상황을 만들기도 하는 거군요.

정연두 :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주변에 있는 듯한 중년 남녀의 로맨틱함을 여러 사람들이 제 시각언어를 통해서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제일 큰 부분인 것 같아요.

박인규 : 정연두씨 홈페이지에 가보면 dreams come true almost. 꿈이 거의 이루어진다는 의미 같은데, 이런 프로젝트로 또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연두 : 제 작품 중에 '내사랑 지니'라는 작품이 있구요. 그게 영어제목으로는 bewitched라고 해서 60년대 미국의 bewitched라는 드라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만든 작품입니다. 그 작품 같은 경우에는 사만사라는 주인공이 좌우로 코를 흔들면 마치 마술이 일어난 것처럼, 아내는 마술쟁이.... 그런 제목의. 그때 사용됐던 기법이 참 재밌는데, 카메라가 정지돼 있고 마술이 일어나면 컴퓨터그래픽이 아니라 카메라를 정지시키고 배우가 가서 옷 갈아입고 다시 같은 포즈에서 카메라를 돌리는. 저는 굉장히 인간적인 기법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치 제 주변에서 만났던 평소에 흔히 그냥 지나쳐갈 만한 사람들. 예를 들면 주유소에서 기름 넣고 돈 주고 그냥 안녕 하고 가버리면 그만인 주유소 기름 넣는 소년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에게 어느날 창문을 내리고 "너 꿈이 뭐니?" 하고 묻는 것이 일단 나름대로의 일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친구에게 꿈이라는 걸 물어서 그 꿈을 현실에서 사진을 찍고, 똑같은 포즈에서 마치 꿈이 실현된 것처럼 그 친구의 꿈 얘기를 듣고서 가장 유사하게 다시 세팅해서 연출해서 촬영하는 작업을..

박인규 : 그 사람의 실제 모습과 그 사람이 되고 싶은 모습을 찍어주고. 주유소 소년의 현재를 찍어주고, 그 소년이 카레이서가 되고 싶다면 그걸 찍어서 보여준다는 말씀이신 거죠?

정연두 : 그렇습니다. 일단 재밌는 건 제가 꿈을 실현시켜 주고 안 시켜주고의 부분이 아니라, 사실 그 작품을 제가 전시했을 때 많은 분들이 남의 꿈을 실현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게 너무 밝고 행복한 것 같다고 얘기하신 분도 있었고. 그에 비해서 제 작품을 통해서 현실에서는 도저히 꿈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명백하게 보여주는, 그래서 마치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뤄질 수 없는 꿈, 판타지를 갖고 산다는 냉철한 사회에 대해서 보여준다는 부정적 의미를 포착해서 얘기하시는 분도 계셨기 때문에, 그래서 almost라는 말을 썼어요. 실제로 꿈의 실현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제게서 중요한 부분은 평소에 그냥 지나쳐갈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얘기를 직접 듣고 알게 됨으로 인해서 제 나름대로 제가 평소 지나쳐 가는 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앎과 동시에 제가 거기서 많은 걸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박인규 : dreams come true almost라는 걸 연작으로 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서 당신은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는 취재랄까, 그 사연을 아는 과정을 거쳐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정연두 : 굉장히 우스워요. 남들한테 접근해서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자기 꿈 얘기를 하게 한다는 건 흔치 않은 얘기에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미술을 한다고 하면, 예술작품을 만든다고 하면 사람들이 굉장히 너그러워져요. 그래서 예술 프로젝트를 한다는 미명하에 남들에게 접근하면 굉장히 쉽게 할 수 있고, 그것이 저한테는 굉장히 재밌는 부분인 것 같아요

박인규 : 그렇게 취재해서 작품화 된 모델이라고 할까요? 그런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꿈을 이룬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정연두 : 제가 이스탄불에서 전시할 때 이스탄불 측에서는 제 작품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제가 오기 전에 아크뱅크라는 은행에서 스폰서를 얻었어요. 그래서 제가 누군가의 꿈을 사진으로 실현시켜 주면 자기네들이 돈으로 그걸 진짜 실현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해서, 제 작품이야 기껏해야 사진 한 장이잖아요. 그거 연출해서 찍는 것 자체가 예술작품이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현실과는 가깝지만 괴리돼 있는 상태인데, 제 작품을 통해서 누군가의 꿈을 현실적으로 더 가까이 실현시킬 수 있다면 제 작품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구요. 그래서 정말로... 길거리에서 홍차를 나르는 친구가 있는데요, 터키에서는 주로 아버지가 홍차장사를 하면 그 아들들은 중학교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전부 대를 이어서 홍차를 나르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가 수학선생이 되고 싶다고 해서, 아무래도 다른 꿈들... 예를 들면 부유한 연예인과 함께, 아니면 갑부가 돼서 뭘 한다는 꿈보다 수학선생이 되고 싶다는 교육적인 목표가 저한테는 더 커 보였고, 그래서 그 친구의 꿈을 사진으로 실현시켜 줬고 실제로 제가 은행과 계약을 맺어서 그 친구가 대학에 들어가서 수학선생님이 실제로 될 때까지 재정적 지원과 학비를 다 은행에서 지원해 주기로 한 일이 있었습니다.

박인규 : 말씀 듣고 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미술가랑 많이 다르네요. 뭔가 고고한 세상에 갇혀서 세상을 관조할 줄 알았더니 취재도 많이 하시고 사회사업 같은 것도 하시고, 하여튼 신선합니다.

정연두 : 보따리장사 같습니다 미술 하는 게.

박인규 : 지금부터는 정연두씨의 과거를 좀 캐보도록 하겠습니다. 약간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이름이 연두씨라서.. 그럼 이 집안에는 노랑도 있고 파랑도 있나, 원래부터 미술을 할 운명인가보다... 그런 생각을 해봤는데요. 일단 대학을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나오셨으니까 일찍부터 미술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정연두 : 아니요. 오히려 저는 고등학교 때 이과를 다녔고, 그랬기 때문에 뒤늦게 고3이 돼서야 미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인규 : 고3 때 갑자기 그런 거예요.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습니까?

정연두 : 젊을 때, 청소년시기에 무엇이 되고 싶을까 가장 고민을 하게 되는데 저는 뒤늦게 그런 고민을 했고,

박인규 : 예를 들면 자기에게 영향을 준 그림이라든가 이런 걸 보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 없이 갑자기 되고 싶다?

▲ ⓒ프레시안

정연두 :
제가 수업시간에 앉아서 공부는 안하고, 앉아서 분필로 조각을 만든다든지.... 제가 어느 날 조각을 만들었는데 너무나 완벽한 토르소를 제가 분필에서 깎아냈어요. 그걸 보고선 고민하다가 미술선생님을 찾아가서 제가 이런 걸 만들었는데 조각이란 걸 해보면 참 저한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고, 선생님도 굉장히 재능이 있어 보인다고 한 번 해봐라. 일단 저희 아버님이 한약방을 하셨는데 그런 약에 대해서 굉장히 공부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저도 그런 쪽으로 했으면 하셨어요. 그런데 전혀 엉뚱하게 갑자기 미술을 한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굉장히 불편해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박인규 : 고3 말에..

정연두 : 아니요, 고3 초였죠.

박인규 : 내가 조각을 잘 하는구나 생각하고 조소과에 들어가셨는데 또 대학 가서는 조소를 별로 안 하시고 산에만 다니셨다고 해요.

정연두 : 청개구리 심리가 있나 봐요. 제가 학교를 막상 들어가고 나서는 등산에 푹 빠져서 1년에 100일 정도 산에 가서 살게 되고. 등산을 하면서 자연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배우는 것들이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젊을 때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갖고 굉장히 열심히 다녔고 도 많은 걸 배웠던 것 같아요.

박인규 : 궁금한 것은, 2000년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하신 걸로 돼 있는데, 대개 자기가 주어진 장르에서 열심히 하는 걸 우리가 미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당히 자유스럽다면 자유스럽고 여러 가지를 활용하시는 것 같아요. 퓨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작품활동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지 궁금해요.

정연두 : 어떤 사람이 뭔가를 할 때는 그게 순식간에 결과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제가 골드스미스라는 학교를 다닐 때도 학과 자체가 순수미술과였고, 순수미술과라는 건 회화 하는 사람 조금, 조각하는 사람 조금, 또 비디오 조금. 이렇게 여러 장르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다른 분야를 비평한다든지 하는 교육과정을 거쳤는데요. 그런 부분에서도 좀 영향을 받은 것 같고. 그리고 일단 지나다 보면 어떤 매체나 기술은 배우면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에 비해서 어떤 사람의 철학이나 생각은 배움으로써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경험하고 느끼고 깊은 사고를 통해서 나오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구요. 사실 우스운 건 제 작품을 보면 달랑 사진 한 장 같지만 그 속에는 소품을 만드는 것에서 되게 조각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고, 어떤 때에는 드로잉을 해서 사진을 찍는 듯한 회화적 요소도 들어가 있고. 여러 가지 총체적인 경험들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박인규 : 제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기법보다는 인문학적 사유, 인간에 대한 관심 등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거라고 해석해도 됩니까?

정연두 : 무엇이 중요하냐를 따지는 거지만, 사실은 사람들은 시각적인 언어를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를 보고 그것을 감상하게 되는 거죠. 기법이 안 좋아서는 안 되겠죠. 그런데 반드시 기법만 가지고 스스로가 한계에 부닥치는 작가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의 대안이 그것입니다.

박인규 :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정한 올해의 작가 중에서 정연두씨처럼 말하자면 특정 장르를 고집하지 않고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하는 작가가 된 경우는 처음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것이 새로운 추세라고 봐야 됩니까, 어떻습니까?

정연두 : 추세기도 하고, 일단은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만약에 예를 들어서 정말 훌륭한 풍경, 정말 신기한 것을 봤을 때 주머니에서 드로잉북을 꺼내서 그리는 사람은 보시기 힘드실 거예요. 하지만 길거리에서 정말 신기한 걸 봤을 때 디카와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많이 보실 거예요. 그게 당연한 풍경이 된 시점에서, 현재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카메라라는 것이 너무나 생활화 돼 있고. 이처럼 사진이라는 매체가 대중화 된 적은 21세기를 통틀어서 한 번도 없었구요. 그리고 지금 사진처럼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매체는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그런 시점에서 제가 과연 어떤 사진을 셔터를 어떻게 눌러서 어떤 식으로 찍어서 제가 그 수백만 수천만의 사진들과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는 굉장히 의문이 생기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미술가가 어떤 기술이나 테크닉에 의지하다 보면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생각을 갖고 사진을 찍느냐가 더 중요하게 된 게 현실인 것 같은데요, 이것이 특별히 대세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취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어요.

박인규 : 내년 5월이면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몫을 해야 되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이 상당히 넓고 전시관을 채우기도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좀 성급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내년에 올해의 작가로서의 전시회를 어떻게 하겠다는 구상이 있으십니까?

정연두 : 아직 구상이 없습니다. 일단은 태도는 조금 달리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시공간을 채워 넣는다는 표현보다는 제가 거기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제 태도가 되게 중요할 것 같구요. 그리고 그동안 많은 분들이 회고전시를 하셨는데, 가급적이면 젊은 작가로서 회고전시로 있는 작품을 다 보이기보다는 제 나름대로 큰 공간을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비전 같은 걸 만들어서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박인규 : 저희가 최근에 공공미술 하시는 경원대 김용익 교수를 만난 적이 있는데, 말씀 들어보니까 미술이 상당히 우리네 삶에 가까이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드네요. 내년에 우리가 삶을 좀 더 실감있게 느낄 수 있는 전시를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2006년 문화예술계 인물토크 3인3색.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국립현대미술관 2007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미술작가 정연두씨와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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