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고유경 사무국장입니다. 고유경 사무국장은 1972년생으로 미군기지반환운동연대 총무,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한국여성평화네트워크 등에서 활동하며 미군범죄피해자지원상담과 불평등한 소파개정을 위한 정책마련 반환기지환경정화연대 활동 등을 해왔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10일 도쿄에서 여성인권활동장려상을 받으셨습니다. 우선 수상을 축하드리구요, 흔히 하는 거지만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고유경 : 제 개인적으로는 과분한 상이라고 생각하구요, 야요리씨가 살아왔던 삶을 봤을 때 과연 내가 그 상을 받을 만큼 열심히 살아왔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 상은 제 개인보다는 14년 동안 저희 단체에서 미군 주둔에 따른 피해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특히나 피해자들을 지원해 올 수 있었던가. 특히 한미동맹이라는 틀 안에서 미군에 의한 피해를 얘기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그런 것들을 많이 격려하고 평가하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쁘게 받았습니다.
박인규 : 상 이름이 여성인권활동장려상인데, 보통 상을 보면 본상, 대상, 감투상, 장려상 그렇잖아요, 그런 장려상은 아니죠?
고유경 : 예. 장려한다는 건 독려한다는 의미가 있고, 여성활동가들이 사실 활동하는 데 많은 어려움들이 있는데 여성들이 여성들을 독려하는 거죠. 서로 힘을 주기 위한
박인규 : 여성의 인권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상이다. 좀 전에 야요리씨 말씀을 하셨어요. 일명 마쓰이 야요리상이라고 하는데 그 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소개 좀 해주시죠.
고유경 : 야요리씨는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면서 동시에 일본의 유명한 여성평화운동가셨습니다. 많은 아시아 지역, 특히 빈곤과 개발에 따른 폐해들을 많이 봐 왔고 기자활동을 하면서 여성들의 활동을 보면서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의 문제로 여성들의 활동들을 좀 더 높여가야겠다, 이런 활동들을 많이 하셨고. 그 분이 2002년도에 병을 가지셔서 투병생활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당시 유언을 남기시길, 당신의 재산을 기부할 테니 여성들의 활동을 장려할 수 있는 기금을 만들고 그들의 활동을 알릴 수 있는 전시관을 만들어서 알려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차원에서 같이 활동하셨던 분들이 뜻을 모아 기금을 만들게 됐고 전시관을 만들어서 한국 같은 경우 학살문제나 전쟁피해자 문제 등을 많이 전시하고 있죠.
박인규 : 올해가 두 번째라고 들었습니다. 올해 같은 경우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6명의 여성 분들이 경합을 벌였다던데 고유경 국장이 수상자가 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고유경 : 저도 사실 그 질문을 많이 드렸습니다. 왜 저를 뽑으셨냐고 질문을 들렸는데, 일단 심사위원들이 말씀하시기를 내용성 부분, 특히 외국군의 문제 그리고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문제가 쉽지 않은데 그런 활동들을 하고 있다는 게 가장 첫 번째로 평가됐습니다. 두 번째는 긴박성. 현재 한국에서 미군 문제가 상당히 큰 이슈 중 하나고, 특히 미군 재배치 문제로 평택 주민들이 싸우고 있는데 그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상당히 의미있다는 판단으로 한국활동가에게 주기로 로 결정했다고 의견을 주셨습니다.
박인규 : 이 상을 제정한 마쓰이 야요리라는 분이 기자이자 활동가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의 수상자가 두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한 분은 기자라고 들었는데..
고유경 : 활동가에게 주는 상도 있고, 활동하는 언론인에게 주는 저널리스트상이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상을 받고 1년 동안... 저널리스트 상을 받으신 분은 야마모토 준코씨라고 아사히신문에서 일하시는 분인데 그 분이 앞으로 1년 동안 저를 취재하십니다. 활동을 잘 하는지 어떤 내용으로 활동하는지 취재하시고, 다음해 시상식 때 전시관에서 그 활동내용을 취재한 것을 전시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어떤 형식으로 전시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년 같은 경우 네팔 여성이 이 상을 수상했고 저널리스트 상을 받으신 분은 사진을 찍으시는 분이셔서 사진을 전시했더라구요. 이번에는 취재하고 글을 쓰시는 분이라 어떤 방식으로 알려질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저도 수상한 후에 1년 동안 열심히 활동해야 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박인규 : 꼭 언론보도, 전시만 의식해서는 아니겠지만 하여간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겠군요.
고유경 : 그렇죠. 책임을 가져야죠.
박인규 : 상을 받게 되신 게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서의 활동 때문인데, 이 단체는 어떤 단체인지 소개해 주시죠.
고유경 : 저희 단체는 1992년 주한미군에 의해 참혹하게 돌아가신 윤금이씨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1년 활동을 결산하면서 앞으로 어떤 식으로 우리가 이 문제, 특히 미군범죄나 미군피해 문제를 어떻게 할거냐, 그냥 흩어질 거냐. 너무 많은 미군범죄들이 벌어지고 있고 특히나 소파의 문제가 처벌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런 것을 개선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단체가 필요하다. 그런 취지로 93년도에 만들어졌습니다. 주되게는 미군범죄 사실들을 알리고, 미군이 주둔하면서 발생하는 피해, 범죄 뿐 아니라 환경오염, 훈련피해, 기지로 인한 재산권피해 문제 등에 대해서 사실들을 알리고, 소파가 어떤 문제점이 있냐. 소파가 문제다 이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에 대해 대안을 내놓고 정책들을 마련하는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주한미군 개인의 범죄뿐 아니라 주한미군 자체에서 오는 피해까지도 포함해서 그런 것을 수정하기 위한 단체다. 그 계기가 92년도에 무참하게 돌아가신 윤금이씨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가해자인 미군 병사가 최근에 석방됐다고 해요.
고유경 : 케네스 리 마클 이병이..... 당시에 사진을 보신 분들이나 글을 읽으신 분들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살인사건으로 기억하실 텐데, 원래는 무기징역을 1심에서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15년형으로 감형받아서 천안 외국인사병, 미군을 위한 시설에 수감돼 있었습니다. 올해 10월에 언론보도를 통해서 8.15특사로 가석방 됐다는 게 알려졌고, 8월 14일에 가석방 된 후 그 다음날 출국했다고 법무부에서 발표했습니다.
박인규 : 8월에 석방됐는데 언론보도는 10월에 나오고, 아주 조용히 석방시켰군요.
고유경 : 그래서 법무부가 그런 문제들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사실 가석방 사유가 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회적 이슈가 됐던 이런 사건에 대해서... 그런 부분이 아쉬움이 남죠.
박인규 : 사실 활동가들이 윤금이씨 살해사건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범죄나 피해문제를 개선해 보자고 한 게 93년이지만, 실제로 주한미군의 피해를 온 국민이 느끼게 된 건 2002년 월드컵 당시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 그야말로 거국적인 각성 같은 게 있었는데, 효순이 미선이에 대한 피해보상은 제대로 이뤄졌나요?
고유경 : 사실 두 부모님에게 자식의 죽음을 어떤 걸로 보상할 수 있겠는가 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미군 당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최선을 다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하겠다고 했고 국가배상이라는 틀 안에서 심의해서 배상금이 지급됐습니다. 현재도 부모님들 가슴 속에는 아픔으로 남아있고, 많은 국민들도 이 사건에 대해서 상당히 가슴아파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혹시 그 뒤에 부모님들을 만나보시거나 한 적은 있으십니까?
고유경 : 저희 단체가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자체적인 한계라고 보이는데... 피해자들 같은 경우 사건이 정리되면 사실 다시 보기를 어려워하세요. 왜냐면 좋은 일이 아니었고, 그런 것을 통해서 또 기억하는 게 너무 가슴아프다. 그래서 저희도 직접 찾아뵙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월드컵 당시에는, 이건 꼭 범죄라고 말할 순 없지만 미군부대에서 건설공사 하시다가 고압선에 감전돼서 돌아가신 분 사건도 있었는데 전동록씨인가요? 이 분 같은 경우, 이미 목숨은 잃으셨지만 그나마 피해보상을 제대로 받으셨는지 모르겠네요?
고유경 : 이 사건 같은 경우 상당히 안타까운 사건에 속하는데, 2001년 7월에 기지 밖에서 공사하시던 중에 미군시설도 들어가는 전선에 감전돼서 화상을 입으시고, 팔다리를 다 잘라야 했던 과정에서 투병생활을 하셨습니다. 미군들은 자신들의 시설에는 문제가 없고 그 과정에서 조심하지 않은 피해자 책임이라고 얘기하는데, 실제 공사하기 전에 미군 당국에게 그 전선을 치워달라고 요청했었고, 고압선 같은 경우 한국에서는 안전을 위해 피복을 씌우게 됩니다. 그래도 위험하긴 하지만. 하지만 미군전선은 피복을 씌우지 않은 나선이었고, 그런 소홀한 부분들에 대해서 충분히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된다고 주장했지만 미군 당국은 그럴 수 없다고 해서 실제로는 청구한 전체 배상액의 30% 정도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박인규 : 본인이 소속된 회사가 있을 거 아닙니까?
고유경 : 일용직 노동자였죠.
박인규 : 말하자면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이 없었던 건가요?
고유경 : 그래서 저희들도 이 사건이 상당히 가슴 아팠던 건, 사건 초기에 언론보도에 잠깐 나왔고 저희도 그 당시 신경을 잘 못 썼어요. 3개월 지난 후에 미군 고압선 문제로 다른 사건 상담이 들어오면서 그때 그 사건 어떻게 됐을까 한 번 알아보자고 연락을 했는데, 전혀 미군측이나 회사 측의 지원이 없어서 가족들이 빚을 내고 카드대출을 해서 병원비를 내고 있더라구요. 집안의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어서 그때 저희들도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인식하고 대응을 해왔는데, 사실 이 분이 성격적으로... 사실 팔다리가 잘린 상태로 투병생활을 하는 게 엄청 괴로운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변 가족들과 돕는 사람들을 위로했어요. 자기 때문에 너무 가슴아파하지 마라. 병세도 상당히 좋아지는 상황에서 갑자기 합병증으로 6월 6일에 악화돼서 돌아가시게 됐고, 이 분 장례식을 치르는 날이 6월 10일이었는데 그 날 아이러니하게도 한미간 축구가 벌어지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참 이런 아이러니도 있을 수 있는가 생각했었죠.
박인규 : 현재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서 하는 일을 질문하고 싶은데요, 일단 본부로 미군의 범죄 혹은 미군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들어오는 상담 건수가 얼마나 되나요?
고유경 : 저희가 1년에 한 30건 정도 처리합니다. 그 안에는 피해를 입은 분들이 직접 전화하시거나 인터넷으로 접수하시는 분도 계시고 저희들이 언론보도를 보고 찾아뵙는 경우도 있습니다. 통상 사건 초기에 저희와 상담하시는 분들은 주로 배상문제에 대해 전혀 갑갑한 상황,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배상받을 수 있느냐. 한국인들끼리라면 합의를 보거나 할 수 있는데 미군은 가해자를 만날 수도 없다 보니 답답함에 많이 연락을 하시죠.
박인규 : 30건이라면 많다면 많네요. 한 달에 두세 건인데,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출범한 93년과 비교해서 지난 14년간의 추이를 보면 감소나 증가.. 어떤 추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고유경 : 전체적인 미군범죄는 상당히 많이 줄었다고 봐야 되죠. 92,93년 당시만 해도 1년에 보통 천 건을 법무부에서 통계로 잡았는데 지금은 400~500건으로, 이렇게 통계수치로는 줄어든 상황이고. 물론 그 사이에 객관적으로 미군이 감축하고 있는 상황이나 대물피해의 경우는 넣지 말자고 한미간 합의하면서 200건 정도 빠진 게 있긴 하지만 어쨌든 미군 당국이 여중생 사건 등을 통해서 한국인들이 더 이상 미군범죄 관련해서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를 많이 조심하는 것도 있고. 그리고 과거보다는 한국 사법부에서 처벌하는 비율이 높아지다 보니 많이 줄어들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일단은 줄어들고 있다, 좋은 소식이네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윤금이씨 살해사건이 계기가 돼서 만들어졌는데, 그 사건은 분명 주한미군병사의 범죄죠. 그런데 말씀하신 걸 보면 전동록씨 사건도 그렇고 상담 들어오는 것도 배상문제... 오히려 그렇다면 주한미군피해상담 쪽의 성격이 더 강한 것 같은데.. 왜냐하면 국내의 많은 분들은 주한미군이 우리를 지켜주는 게 아니냐는 생각들을 하시고 계셔서 주한미군범죄라는 말을 쓰는 게 너무 강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데 어떻습니까?
고유경 : 저희 단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이제 고민해야 될 때라고 보는데, 사실 이 단체를 처음 만들었을 때 미군범죄라는 게 꼭 들어가야 된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미군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범죄들을 사람들이 몰랐고,
박인규 : 많은데도 알려지지 않고 하소연할 데도 없고..
고유경 : 그렇죠. 그러니까 미군범죄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목적으로 단체 이름에 그것을 명기했고. 지금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10년이란 세월 동안 아주 크게 영향을 행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단체의 이름으로 인해서 미군범죄 사실들이 알려지고, 소파같은 경우도 지금은 그게 뭔지 다들 알잖아요. 10년 전에는 소파 하면 앉는 소파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박인규 : 그렇죠. 정확하게는 주한미군의 지휘에 관한 한미행정협정이죠. 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질문과 함께, 앞으로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될지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우선 고유경 사무국장은 2000년부터 사무국장을 맡으신 걸로 아는데 이 일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고유경 : 제가 대학 다닐 때 이 운동본부가, 지금은 하고 있지 않지만 1994년부터 2003년까지 미군기지 앞에서 매주 금요일에 집회를 했습니다. 일종의 캠페인이라고 봐야 되죠. 그 집회에 참석을 했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이 금요집회가 미군피해들을 많이 알리고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서 정말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때, 아 이런 일들도 있구나... 이렇게 억울한 일들이 있구나, 이런 것들을 돕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사회단체 쪽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박인규 : 한 7년 동안 해오셨는데 여러 가지 애환이나 보람도 있으실 거고 힘드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고유경 : 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 아프고 억울했던 부분이 아까 말씀드린 전동록씨 사건. 그날 장례 치르고 서울로 돌아올 때 엄청 폭우가 내렸거든요. 그때 사람들이 길거리에 아무도 없는데 알고 보니 한미전 구경을 다 건물 안에서 하고 있었던 그런 아픔들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미군범죄 관련해서 사회가 변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 건, 재판과정에서 검사가 구형할 때, 미군이 한국에 존재하는 이유는 한국인들의 안전을 위해서 있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범죄를 저지르면 안전을 위협하는, 거꾸로 된 일이기 때문에 엄하게 다스려야 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1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죠. 오히려 거꾸로 안전을 위해서 왔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서 처벌을 약하게 한다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임무를 갖고 온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인식이 많이 있어서 뿌듯함을 느끼죠.
박인규 : 주한미군의 잘못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운동본부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신다.
고유경 : 그렇죠. 미군 주둔에 따른 피해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단체가 저희가 유일하다고 생각하고, 물론 분야적으로 환경문제 등이 있긴 하지만, 14년 동안 활동해온 단체로서는 변화의 부분에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당초 시발은 미군의 흉악범이랄까 거기에 대한 대응이었지만 지금은 문제의 본질 같은 게 약간 달라진 것 같아요. 좀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미군이 떠나는 기지의 환경오염 등이 상당히 중요한 이슈인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운동본부가 대응하고 있나요?
고유경 : 환경문제 관련해서는 환경단체와 미군 관련단체들이 지금 연대해서 대응하고 있는데, 2000년 당시 포르말린을 방류한 맥팔랜드 사건 때문에 2001년도에 환경조항이 만들어졌는데, 그 당시는 다들 환경문제는 미군이 책임지는구나 하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책임 다 못 지겠다는 태도로 나오고 있는 거죠. 환경부에서는 당연히 미군이 책임져야 한다, 국내법에 맞춰서 해야 한다고 얘길 하는데 어떤 정치적인 힘관계... 이런 부분으로 지금 19개 기지를 정화를 다 마치지 않고 반환기지를 넘긴 상태입니다. 그 부분은 결국 다시 국민부담으로 오거든요. 오염된 것을 공원을 만들든지 학교나 공장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치유를 하고 세워야 됩니다. 그 치유과정에 드는 비용은 국방부나 지자체가 내야 되는데 역시 그건 국민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박인규 : 일부에서는 외국군 기지니까 특별히 엄하게 하는 거 아니냐, 우리나라 군부대 환경오염에 대해서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고유경 : 당연하죠. 외국군이라서 특별하게, 한국군이라서 덜하고 이런 건 없습니다. 한국군에게도 국내법에 맞춰서 정화해야 될 의무가 당연히 있고 그와 관련해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한국군 같은 경우는 어쨌든 한국법이 적용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외국군은 소파라는 특수한 법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한국법으로 강제할 수 없는 상황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죠.
박인규 : 사실 주한미군이 주둔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있지만 미군이 감축해서 고민이 있는 지역도 있는 것 같아요. 동두천 등의 군대는, 기지촌여성을 비롯해서 상권 자체가 많이 무너지는 부분들. 주한미군이 감축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서도 이 운동본부에서 나름대로 대응을 하고 있나요?
고유경 : 기지촌지역 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들하고, 반환된 후에 기지를 활용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실제로 그 지역에서 쭉 살아왔던 사람들이 어떻게 활용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고 계속 살 수 있을까. 현재 당장 드러나는 문제는, 반환된다고 하니까 지역개발 붐이 일면서 땅값이 올라요. 기지촌 여성들은 방 한 칸 빌려서 월세로 살고 있는데 땅값이 오르니까 월세가 같이 오르고 거기서 살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이런 현상들이, 사실 반환 후 활용되는 건 좋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안 좋은 상태로 빠지고 있는 거죠. 그리고 직장 같은 경우도 미군 상대로 영업을 해오다가 다음 개발되는 과정에서 이 직종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자신들이 해왔던 직종. 식당, 술집 아니면 옷가게를 하는 사람. 그런 것들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많이 내십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국내나 해외사례로 지역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활용안을 어떻게 지자체와 함께 낼 수 있는지 조사와 연구를 하고 있구요. 그런 활동 속에서 지자체에 의견도 내고 정부에도 의견을 내서 활용이 우리에게는 상당히 좋은 계기인데 그 계기를 지역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국가나 정부가 나서서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한 해도 빠짐없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언젠가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그때는 주한미군이 나가겠죠. 하지만 일단은 외국군과 같이 살아야 되는데, 외국군의 존재를 불가피하게 인정하면서도 마찰 없이 살아가기 위한 우리 나름대로의 자세는 어떻게 돼야 할지, 그런 생각이 있으시면 마지막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유경 : 한미간 당국자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소파정신이라고 하는데 서로 존중의 정신이죠. 특수한 지위에 있는 미군과, 어쨌든 영토적으로 한국에 있기 때문에 한국의 법률과 이런 부분을 서로 존중하면서 마찰 없이 쌍방이 의견들을 만들어 가야 된다 이런 것들이 있는데. 대부분 미국이라는 존재가 워낙 강대한 나라라는 것이 있고,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인식 자체가 강한 나라한테 어떻게 우리가 덤빌 수 있겠냐. 그런데 피해들을 개선해 가는 과정에서는 저는 그런 개념은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있는 이상 한국법을 존중하고, 다른 특별한 게 아니라 한국법과 한국문화를 존중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부분들을 보여준다면 저는 이런 폐해들도 큰 문제없이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한국을 지켜주니까 고맙긴 하지만 잘못했으면 할 말은 하고 살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고유경 사무국장과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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