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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위기 해결의 새로운 기회는 오는가

한반도 브리핑 <31> 다시 한번 6자회담에 거는 기대

복잡하지 않고 쉬운 북핵문제

벌써 햇수로 15년째에 접어드는 북핵문제를 두고 외교적으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한다면, 아마 매우 비현실적인 판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이가 키신저라면, 사정은 좀 다르다. 실무에서나 이론에서나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키신저는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말하는가. 무슨 대단한 근거가 있는가.

키신저의 논지는 간단해 보인다(연합뉴스, "정동영-키신저 대화록" 2006년 11월 28일). '북한 체제의 변화 문제와 핵폐기 문제를 분리하고, 핵폐기에 대한 대가로 체제 인정과 경제적 지원을 하라. 북한과 같이 힘없고 약한 나라는 외교력의 발휘만으로도 설득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도 많이 도와주고 있지 않은가. 워싱턴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생기고 있다.'

현실주의자 키신저의 낙관적 전망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까. 한국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우리의 소설가'의 지혜를 빌려오지 않을 수 없다(조정래, "진정성은 핵보다 강하다", <한겨레>, 2006. 12. 5). "인간사가 능란한 술수 가지고 얼마나 풀리던가. 인간사를 쉽게 풀어가는 열쇠는 불신을 넘어서는 상호신뢰였다. 서로 믿으면서 그 모든 것을 일괄타결해야 한다."

쉬운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불신은 과연 이번에 풀릴 수 있을 것인가. 예상되는 6자회담을 앞두고 북한핵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네오콘의 패배, 선군사상의 승리?

중국의 중재로 10월말, 11월말 두 차례에 걸쳐 열린 미-북-중 3자회동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6자회담을 고집하면서 양자회담을 거부하는 미국의 태도와 양자회담을 요구하는 북한의 태도를 동시에 고려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2차 북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중국의 중재는 이번에도 큰 힘을 발휘하였다.

아마도 이번 회담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미국의 6자회담 대표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안이 '부시 대통령의 뜻'이라고 강조한 점인 것 같다. 북·미 사이에 '실질적인 양자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실질적 대화'는 북·미 사이에 상호신뢰를 회복시켜 주는 주요한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갈 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북핵실험 이후 북·미 사이에 이루어진 실질적인 양자대화가 미국 부시 행정부의 패배로 비추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핵실험이라는 북한의 도발적이고 모험주의적인 벼랑끝전술,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에 대한 중국·러시아·한국의 소극적 태도, 공화당의 중간선거 패배 이후 나타나고 있는 네오콘의 퇴조, 중국의 적극적인 중재 또는 대북·대미 설득 등이 결합되어 6자회담 재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미국의 제안이 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북한 지도부는 자칫 '자만'에 빠질 수 있다. 아울러 부시 행정부 또한 협상과정에서 지나친 양보를 함으로써 패배를 자인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미-북-중 3자 회동에서 미국은 북·미 사이의 상호조치로서, 한편으로는 핵시설 동결, 핵관련 프로그램 신고 및 IAEA 사찰관 수용 등으로 요약되는 북한의 핵폐기 의지 실천을, 다른 한편으로는 종전선언, 체제보장을 포함한 관계정상화, 중유 제공 등 에너지 지원, 안보리 결의안 해제 등의 미국측 대응조치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제안은 9·19합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시 행정부의 '진정성'을 보여줄 정도로 기존의 제안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제안이 한·미 간에 논의되고 있던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현재 북한 지도부는 미국의 제안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무엇보다도 미국의 제안이 중국과 한국의 동의를 받고 있으며 또한 현 시점에서 북한이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경수로 지원이 9·19합의에서 쟁점이 되었다면, 미국은 경수로 문제에 대해 에너지 지원이라는 표현으로 수용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BDA 문제를 포함한 대북경제제재에 대해서도 안보리 결의안 해제라는 표현으로 해제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부시 대통령 자신이 종전선언을 언급했다는 사실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 체제의 변화를 더 이상 정책목표로 삼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제 북한 지도부로서는 그동안 자신들이 해 왔던 주장을 번복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지도부로서는 미국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부시 행정부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핵무기 포기라는 사활적 이해가 걸린 정책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국가전략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국가전략을 재검토할 물리적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미국 이외의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중국과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검토가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현재의 상황이 북한에게 불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는 점도 정책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 6자회담의 '애매성'에 기대어서, 북한과 미국이 다시 한번 지난 9·19합의처럼 새로운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로이터=뉴시스

다시 한번 6자회담의 '애매성'에 거는 기대


그러나 북한 지도부의 고민은 오래 계속될 수는 없다. 미국의 대북정책조정관 임명이 다음 주로 다가온 상태에서, 북한 역시 미국의 제안에 가능한 한 빨리 답을 해야만 한다. 또한 북핵실험 이후 중국과 한국에서 나타난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쟁도 북한 지도부가 미국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데에 일정한 배경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의 제안이 동시행동의 구체적 내용까지 담고 있지 않다면, 북한은 미국의 제안에 대한 '원칙적 동의'에 기초해서 미국과의 협상을 벌여야만 할 것이다. 특히 이미 '실질적 양자대화'가 두 차례나 이루어진 상태에서, 6자회담과 별도로 미국의 대북정책조정관과 직접 협상을 지속적으로 벌일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만일 현재 알려진 바와 같이 대북협상파라고 할 수 있는 힐 대표가 공식적으로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된다면, 북한으로서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일단 '핵폐기 대 체제보장·경제지원'이라는 원칙적 합의에 기초하여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간 합의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2008년 말 대선을 앞두고, 북한 체제의 변화를 포기한 상태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지연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많지 않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국 상·하 양원의 지도부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미 행정부는 대북정책을 대중정책이나 대한정책과 분리시켜서 순수하게 비확산의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북한 지도부로서도 공화당 정부와 합의를 이룬다면 체제안전과 관련하여 더 확실한 보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함으로써, 공화당 정부의 임기말 상황을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의 북·미협상의 경험도 북한 지도부에게는 반면교사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 6자회담은 큰 이변이 없다면 빠르면 이번 달 안으로, 늦어도 내년 초에는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6자회담의 재개는 북핵실험으로 국제적 문제로 비화되었던 북핵문제가 다시 한반도의 문제로, 더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의도대로 북·미 양자간의 문제로 되돌아왔음을 의미한다. 잘 알다시피 6자회담의 장점은 한편으로는 (북한이 원하는 대로) 북·미 사이의 실질적인 양자대화를 보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원하는 대로) 다자간협상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런 6자회담의 '애매성'에 기대어서, 북한과 미국이 다시 한번 지난 9·19합의처럼 새로운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어쩌면 공화당 정부가 이번에 시도하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의 시도는 '실질적 양자대화를 통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공화당 정부의 마지막 시도를 넘어 미 행정부의 마지막 시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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