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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8%'짜리 집권여당의 '문 닫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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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지율 8%'짜리 집권여당의 '문 닫는 법'

[기자의 눈]헌정사상 초유의 설문조사 논란을 보며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소속 의원들만을 대상으로 금주 중 당의 진로를 묻는 설문조사를 하기로 했다. 친노그룹 의원들은 "모종의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혹은 "비대위에 당의 진로를 결정할만한 정당성이 있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도부는 예정된 계획을 진행하겠다는 의지에 변함이 없다.
  
  이해관계의 대척점에 있는 친노그룹의 반발은 논외로 치더라도 당의 진로를 소속의원 상대의 설문조사에 붙인다는 발상 자체가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심각한 무능과 무기력을 드러내는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설문조사밖에 방법이 없었을까?
  
  설문조사가 얼마나 정상적으로 진행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 친노계 의원들의 응답 거부는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소속의원 139명 전원의 성실한 답변을 얻어낸다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미 많은 언론이 정계개편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조사를 수행해 발표했다.
  
  게다가 설문조사가 139명 '금배지 정서'와는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당원들의 '밑바닥 정서'를 반영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에 대해 우 대변인은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제 민주주의인 이상 의원들의 의견부터 수렴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며 "더욱이 앞으로 대의원대회와 전당대회가 예정되어 있다"고 항변했다.
  
  설문조사의 효용성은 그나마 부차적 문제다. 중요한 건 설문조사를 실시한다는 사실 자체가 여당이 이미 일상적인 논의구조를 통해서는 합의를 이뤄내지 못할 만큼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게다가 당의 존폐가 걸린 사안을 두고 설문조사라는 '산술적인' 합산에 기대지 않고서는 당 지도부가 어떠한 논의도 진전시키지 못할 만큼 무력하다는 자기고백에 다름 아니라는 얘기다.
  
  우 대변인은 지난 2004년 4월 17대 국회 출범 직후 열린우리당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의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 대변인이 예로 든 설문조사는 당선자들의 이념적 성향과 경제, 외교 등 정책방향에 대한 의견을 구했던 것으로, 당의 기본적인 진로를 두고 정치적인 판단을 묻는 이번 설문조사와는 기본적으로 성격 자체가 다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디오피니언'의 안부근 소장은 "설문조사에 응하는 의원들은 아무래도 자신의 최대 관심사인 재선 가능성을 가장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당 진로에 관한 중의를 모아보자'는 설문조사의 취지 자체가 달성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안 소장은 또한 "이 시점에서 당 지도부가 설문조사를 한다는 것은 A, B 두 대안 중 어느 하나를 선택했을 때 이를 지지할 의원이 어느 정도이고 또 반발이 어느 정도인지 재보고 싶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당 지도부가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원래 합의이혼을 할 때는 사무적으로 처리해야 할 서류작업이 많은 것 아니겠느냐"고 그 효과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국 '지지율 8%대 집권여당'의 의원들이 헤어지는 절차로 이런 통과의례를 만든 모양이라는 게 이날의 논란을 지켜본 당 주변 사람들의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기자의 머리 속에도 한 가지 생각이 뚜렷이 자리 잡았다. '당이 죽고 사는 기로에서 어느 길로 갈지를 '토의'와 '상의'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조사'로 결정하겠다는 걸 보면 그런 기로에 서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구나'하는.
  
  이어서 드는 생각 또 한 가지. '이렇게 지도력이 작동하지 않는 정당이면 그 조사인들 제대로 할 수 있겠으며, 설사 뭔가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이를 관철해낼 수 있을까?' 지켜보는 사람조차 무기력하게 만드는 하루였다.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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