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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멋을 록으로 표현했다는 데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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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멋을 록으로 표현했다는 데 자부심"

박인규의 집중인터뷰[11/27] 한국 록음악의 대부 신중현씨 <상>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1960년대와 70년대 <커피한잔> <미인> <님은 먼 곳에> 등 한국적 록음악으로 대중의 인기를 누려왔던 음악가 신중현씨.. 데뷔 45주년을 맞은 그는 지는 여름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은퇴공연인 <신중현,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를 펼치고 있습니다. 조용히 사라질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산 사람으로 공식 은퇴인사를 드리기 위해 라스트 콘서트를 마련하게 됐다는 신중현씨 그러나 다음달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는 진정한 음악이 사라진 요즘의 가요계 풍토가 아쉽다라는 쓴소리도 남겼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한국 록 음악의 대부인 신중현씨를 초대해서 은퇴를 선언한 배경과 그가 바라보는 요즘의 가요계, 그리고 지난 45년간 한국적 록음악을 펼쳐오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한국 록 음악의 대부 신중현씹니다. 신중현씨는 1940년 서울출생으로 16살때부터 독학으로 기타를 공부하던 중 1957년 미8군 쇼단에 입단, 대중예술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1963년 한국최초의 로큰롤 밴드라고 할 수 있는 애드포(ADD4) 1집 앨범 <빗속의 여인>으로 가수로 데뷔했고 이후, 그룹 '더 맨' '신중현과 엽전들' '신중현과 뮤직파워' '신중현과 세 나그네' 등 그룹활동을 해오면서 한국 락의 대부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지난 여름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자서전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를 출간했고, 대표적인 곡으로는 <커피 한잔> <미인>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봄비> <님은 먼곳에> <아름다운 강산> 등이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지난 16일에 은퇴선언을 하셨죠. 은퇴선언을 하시면서 더 바빠지신 것 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신중현 : 은퇴공연 때문에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 가지 분들을 만나게 되구요, 또 준비과정이 겹치다 보니까 굉장히 바쁜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은퇴를 선언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신중현 : 저의 진로가 다 온 거고, 음악생활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우리 실정에서는 얼굴 위주로 많이 하다보니까 노인네는 화면에도 낄 수 없는 상태가 되다 보니까 은퇴하고 난 다음에 저의 제2세계를 마련해야 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박인규 : 지난 여름 7월 15일에 인천 송도유원지에서 콘서트를 시작하시면서 지금 전국을 돌고 계신데 팬들이 많이 오시던가요?

신중현 : 예.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의외로 제가 용기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은퇴하시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는 팬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신중현 : 주위에서는 그런 말을 많이 하고 있죠. 그런데 지금 나이로서 뭘 하겠다는 것도 좀 우습고 일단 은퇴하는 것이 결정됐으니까 가는 대로 가야겠죠.

박인규 : 콘서트에 오시는 팬들 연배가 어떻습니까? 젊은 분들도 많이 오십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신중현 : 나이 드신 분도 계시고, 또 나이 드신 분이 자녀를 데리고 오시기도 하고. 굉장히 다양한 것 같아요.

박인규 : 얼마 전인가 미국의 최고 권위있다는 뉴욕타임즈에서 신중현씨 특집기사를 냈어요. 한국 락큰롤의 대부 컴백하다. 비틀즈 같기도 하고 지미 핸드릭스 같기도 하다는 평가를 했는데 기사 보시니까 어떻습니까?

신중현 : 한 마디로 갑작스러운 취재를 당하니까 당황하기도 했고, 한 편 저는 마지막 공연에서 그런 기사가 오른 것에 대해서는 영광이죠. 사실 힘든 기사인데 뉴욕타임즈까지 다룬다는 건 저는 더 이상 음악인으로서 바랄 게 없다는 생각까지도 했었어요.

박인규 : 미국이라면 사실 로큰롤의 본바닥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거기 기자들이 와서 신중현씨 음악하시는걸 듣고 뭐라고 평가하던가요?

신중현 : 물론 한국적인 록큰롤을 제가 하니까, 한국 록큰롤을 자기네 나라가 원조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한국적으로 하느냐. 제가 8군계 시절부터 얘길 많이 하고,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고 또 그럼으로써 제가 세계적인 음악으로 뻗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길렀던 거니까 그것을 한국적으로도, 세계적인 음악으로 만들어야 되는 의무성이 있었다. 여러 가지 공감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박인규 : 최근에 잘 나가는 남자가수 있죠. 비라는 친구가 뉴욕에 가서 공연을 해서 상당히 화제가 됐고 타임지에서도 꼽혔는데 그런 거 보시면서 내가 좀 젊었으면 지금이라도 한 번 미국에 진출해볼 걸 하는 욕심 같은 건 드시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신중현 : 그런 거야 많죠. 50년도 중반에 데뷔하고 미8군에서 미국 공연을 의뢰받았었는데 제 사정이 여러 가지 겹치고 또 전달이 늦어지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었어요. 저는 일생동안 세계무대에 한 번 섰어야 되는데.. 지금까지도 그런 생각은 갖고 있죠.

박인규 : 해외 공연은 한 번도 못 해보신 건가요?

신중현 : 해외공연은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전부 교포를 상대로 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세계무대는 못 한거죠.

박인규 : 또 한 번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은퇴콘서트를 하시면서 요즘 가요계에 대해서 좀 쓴소리를 하셨어요. 진정한 뮤지션이 설 자리가 없다. 음악을 할 수 있는 능력있는 친구가 음악을 못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신중현 : 지금 시대가 영상시대다 보니까 얼굴 위주로 많이 픽업이 되고, 또 음악 자체는 내적인 음악이 아니라 외적인 음악으로 변하고 있다 보니까 진정한 음악인이 설 자리가 없어졌죠. 제가 생각할 때도 젊은 친구들 보면 처음 시작할 땐 굉장히 음악성이 있었는데 나중에 보면 얼굴 위주의 음악을 하고 있고 이런 것이 저는 사실 음악인 원로로서는 굉장히 가슴이 아팠어요. 물론 상업적인 음악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음악을 위한 음악이 한 귀퉁이에는 이어나가야 되지 않느냐. 이런 음악인으로서 굉장히 바라는 것이 있죠.

박인규 : 말씀하신 중에 처음 데뷔할 때는 신중현씨가 보기에 상당히 음악성 있는 친구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없어지고 보여지는 음악만 한다. 왜 그럴까요? 그건 그 가수의 책임만은 아니란 생각이 드는데..

신중현 : 무대에 서고 싶고 자기가 음악을 하려면 사회에 적응을 해야 되는데 사회의 틀이라는 자체가 그런 무대밖에 없다 보니까 거기에 맞춰야 되겠죠.

박인규 : 말하자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대중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신중현 선생님께선 일찍부터 한국적 록음악을 했고 그룹 이름도 '엽전들'로 짓고 그러셨는데 그것이 계속 이어졌으면 참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요즘 보면 한국적 특색이랄까 개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는 것 같은데 동의하십니까?

신중현 : 그렇죠. 외래음악에 모든 것이 치우치다 보니 국적을 잃어버리고 한국적 음악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저희들이 한창 할 때는 제가 일반 무대에 데뷔하면서의 의도는 한국적인 대중음악상을 추구하겠다 하고 미8군에서 뛰쳐나왔는데, 그 과정에서 70년대 중반까지는 잘 나오다가 그것이 차단되고 이러다 보니까 맥이 끊겼죠. 그러다 보니까 그 당시는 굉장히 세계적으로도 우리가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이웃나라 일본이나 중국 같은 데서는 굉장히 저의 음악을 부러워했었어요. 저는 그 맥이 지금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졌으면 젊은이들이 좋은 음악을 바탕으로 해서 더 좋은 음악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것이 음악인으로서 저는 굉장히 아쉽죠.

박인규 : 일단 2,30년 전에 전성기를 맞았던 뮤지션으로서 요즘 음악계를 보시면 아쉬운 점이 많으시겠지만, 혹시 그래도 후배들 보면서 이건 내가 예전에 안 했던 것이고 참 바람직하다는 부분은 혹시 없나요?

신중현 : 저는 잘하고 있는 걸 알고 있어요. 음악도 열심히들 하고.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네들의 죄는 아니고 단지 사회적인 문화풍토가 그런 쪽으로만 추구하다 보니까 좀 아까운 것이 계속 있고. 그러다 보니까 또 선배로서는 너네들이 더 정신차려서 그쪽으로 끌고 나가는 힘을 길러라. 어차피 사회란 그런 거니까, 국적 있는 음악을 하라고 저는 채찍을 많이 들어요. 그런데 듣기 싫은 후배들이 많겠죠.

박인규 : 신중현씨께서 은퇴기자회견을 하시면서 리얼뮤직이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우리 식으로 하면 참노래, 참음악일 것 같은데 신중현씨가 생각하시는 리얼뮤직이란 건 어떤 겁니까?

신중현 : 사실 음악은 정신적인 세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육체적으로 들고 뛰고 춤추는 것도 하나의 음악성이지만. 정서적으로 음악을 들음으로써 자기를 찾을 수 있는, 인간의 미를 알려줄 수 있는, 또 창출해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게 사실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음감이라든가 이런 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느낄 수 없던 감정을 되살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를 찾는. 그런 것이 음악이 할 일인데 그런 게 전연 없고. 저는 사람들이 무뎌진 걸 느껴요 예민하다 보니까. 무뎌지지 않느냐. 인간이라는 게 돈이나 명예에 너무 치우치다 보면 인간성이 상실되고 감각이 없어지다 보니까 좀 살벌한 사회가 이뤄지지 않느냐. 저 혼자의 생각인데요, 어쨌든 음악의 중요성이라는 건 음악을 들음으로써 우리의 외로움이나 잃었던 것을 찾을 수 있는 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음악이 존재해야 되지 않느냐. 저는 그런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기교나 화려함보다는 진정 자기를 표출하고 그걸 통해서 자기를 찾을 수 있는 게 진짜 음악이다. 다음달 17일에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하는 공연이 마지막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아쉬운 마음은 없으세요?

신중현 : 음악인으로서는 아쉽죠. 저는 좀 더 좋은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역부족이다 보니까 떠나게 되고. 어떻든 제가 이제는 뒷자리에 앉아서 방향제시를 하기 위한 위치라도 하고서 일생을 마쳐야 되지 않나, 이런 욕심도 있습니다.

박인규 : 일생을 마친다는 말씀을 하시기는 아직 젊으시구요. 어쨌든 마지막 공연이기 때문에 신중현의 모든 것을 보여주셔야겠다는 생각이 있을 것 같아요. 혹시 특별한 뭐가 준비돼 있는지 소개해 주시죠.

신중현 : 마지막이니까 저의 모든 것을 보여드리는데 단지 죄송한 건 늙은 모습으로 보여드린다는 자체가 죄스럽고. 좀 젊었을 때 했으면 좀 좋은 모습을 남겨드릴 텐데 그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박인규 : 아름답게 늙어갈 수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전국을 순회하며 은퇴공연을 펼치고 있는 한국 록음악의 대부 신중현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방금 펄시스터즈의 '커피한잔'을 들었습니다. 이 노래가 제가 중학교 2학년때 나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개 신중현씨의 히트곡이 6,70년대인데 가끔 옛날 노래를 들을 기회가 있으신가요?

신중현 : 들려오면 듣지만 일부러 듣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박인규 : 지금 들으시면 아직도 만족하십니까 노래에 대해서?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신중현 : 만족은 안 하는데 그 당시의 상황을 봤을 때는 그렇게 밖에 못 했었구나 하는 거죠. 어떻든 그것은 가치있었다고 생각하는 게, 지금 그렇게 똑같이 하라면 못 하니까 그때 나름대로 열심히 했었구나 하는 것은 저 자신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박인규 : 본인께서는 가수 겸 기타연주자 겸 작곡가 겸, 말하자면 1인 3역을 하셨는데 그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역할이 있다면...

신중현 : 다 애착이 가죠. 저는 연주도 제일 좋아하고.

박인규 : 요즘 가수들은 가수 하나가 아니라 기업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수입을 올립니다. 신중현 선생님이 활동하실 땐 그렇지 않았는데, 속된 질문입니다만 돈은 좀 모으셨습니까?

신중현 : 돈은 못 모았죠. 돈이 모이겠습니까?

박인규 : 어쨌든 신중현 하면 한국 록에서는 거의 하나의 산봉우리로 솟아 있는데, 이런 평가를 본인한테 자평하라는 건 적당치는 않지만 본인이 한국대중음악, 특히 로큰롤에서 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고 자평하고 계십니까?

신중현 : 한국만이 갖는 가락과 장단과 멋.. 이런 것들, 한국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음악성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제 나름대로 찾아내서 대중음악으로 표현한다는 자체가, 저는 당연히 해야 됐었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하여튼 그거야 3자가 평가해야지 제가 하겠습니까..

박인규 : 일부에서는 신중현씨를 두고 불운한 아티스트라는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중현 :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요.

박인규 : 스스로 뭔가 더 가능성을 펼칠 수도 있었는데 안 됐다. 그 부분은 내일 한 번 다시 여쭤보기로 하구요. 일단 은퇴를 하신다고 하십니다만 그래도 작곡은 계속 하시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신중현 : 작곡을 해도 제가 발표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제가 일단 떠난다는 자체는 대중을 의식 안 하고 그냥 제 맘대로 제가 좋아했던 음악을 저 혼자 하고 싶어서 그런 면도 있고. 요즘은 하나의 탈출구가 생긴 게 인터넷이라든가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들어오실 수가 있으니까 제가 떠난다고 하더라도 저의 생활 같은 건 노출을 해서, 저의 음악성에 대한 자유스러운 음악, 억압되지 않고 하고 싶은, 또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늘어놓을 겁니다. 그것이 저의 하나의 탈출구고 위안이겠죠.

박인규 : 대중을 의식하기보다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인터넷을 통해서 해보겠다. 앞으로 기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중현씨와의 만남 오늘은 여기서 그치구요, 내일은 다시 만나서 신중현씨의 가수 데뷔로부터 지금까지의 음악인생에 대해서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하구요, 끝으로 신중현씨의 또 다른 히트곡인 '님은 먼곳에'를 들으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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