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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선포 40주년, 그리고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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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신 선포 40주년, 그리고 박근혜

[창비주간논평] 박근혜의 가족주의적 국가관, 충효(忠孝)의 위험한 논리

40년 전의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갑자기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유신체제를 수립했다. 공교롭게도 유신선포 40주년이 되는 올해 박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그가 5.16 쿠데타를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 하고,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의 재심 판결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비판여론이 급등했다. 마침내 박근혜 후보는 최근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박근혜 후보의 공식 성명을 두고 이것이 진정한 사과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튼 박근혜 후보가 공식적으로 이러한 입장을 공표한 것,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된 것 자체는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커다란 성취라고 생각한다. 이 일이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형성해가는 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과거사 사과성명과 '새마음운동'의 기억

박근혜 후보가 이야기했듯이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은 그 누구의 입장에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 후보라는 정치인으로서 또한 공인(公人)으로서의 책임감이 사적인 감정과 입장을 넘어설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여전히 남는 질문이 있다. 과연 박근혜 후보에게 유신체제는 아버지의 일이고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었을까? 그와 새누리당, 나아가 한국사회 구성원 모두가 과연 유신체제기의 의식과 정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일까?

최근 이정환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수록된 연재기사를 통해 유신체제기 박근혜가 주도했던 '새마음운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유신체제기 박근혜는 단지 각종 행사에 대통령과 함께 배석하는 등의 퍼스트레이디 역할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새마을운동에 비견되는 새마음운동이라는 캠페인을 주도했다. 필자는 유신체제기 초·중등학교를 다녔기에 이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체육관에서 새마음운동 궐기대회가 개최되면 고등학생 누나들은 박근혜 총재가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나올지, 아니면 베이지색 옷을 입을지 궁금해하며 쑥덕이고는 했다.

이제는 인터넷으로 아주 쉽게 과거 신문기사를 검색해볼 수 있다. 새마음운동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읽다보면 독특한 문화체험과 정서체험을 할 수 있다. 새마음갖기 궐기대회는 주로 체육관에서 장관 또는 도지사 등 고위 관리들의 참석하에, 여러 관변단체 또는 민간단체, 학생들의 대대적인 동원으로 치러졌다. 당시 사진을 보면 체육관에 운집한 군중의 규모도 놀랍지만, 플로어와 관중석에서 일사분란하게 가로, 세로, 대각선 줄을 맞추어 있는 참여자의 모습이 유신시대의 분위기를 잘 전해준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연합뉴스

'정치인' 박근혜는 어디서 시작되었나

1977년 새마음 궐기대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박근혜는 공식 직함 없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다. 1978년 2월 그는 새마음운동을 주도하던 사단법인 '구국여성봉사단'의 총재로 정식 취임했고, 이 해부터 궐기대회는 중·고등학생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하며 진행되었다. 1979년 5월 구국여성봉사단은 남녀노소, 온 국민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기구로 확대하기 위해 '새마음봉사단'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조직 확대에 나섰다. 같은 달 25일 박근혜 새마음봉사단 총재는 서울시내 언론사 회장 및 사장 23명을 불러 자문위원 위촉장을 수여하고 다과회를 베풀었다. 바로 이 자리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나타나 이들을 격려했다. 새마음운동 관련 행사에 박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것은 아마도 이것이 처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 이날 모임에 참여한 새마음봉사단의 한 간부는 대통령 앞에서 "새마음 결의 실천대회를 가진 교도소 수감자들이 큰 영애(令愛)가 보내준 비누로 몸도 마음도 씻었다면서 새마음운동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고 했다. 약간 종교적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1979년부터 새마음운동은 기업들의 협조하에 각급 산업현장으로 파급되었다. 이정환이 지적한 바대로 과거 신문기사를 보면 새마음운동이 어떻게 관(官)과 언론, 그리고 기업의 유착 속에서 전개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 총재가 새마음 궐기대회에서 했던 연설문을 모아 1979년에 발행한 <새마음의 길>이라는 책자가 있다. 이 책에 수록된 박근혜의 연설문에는 정치적인 구호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유신'이라는 단어 역시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당시 국내외적으로 정치, 사회, 외교적 쟁점이 여럿 있었지만, 이러한 것들이 직접 거론되는 일은 없다. 가끔 "내부의 적이 더 위험하다"고 경계하는 것과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강조되는 것만이 눈길을 끈다. '국가' '희생' '도덕' '신의'라는 추상적이고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단어들이 명확한 개념 설명이나 구체적인 사례 제시 없이 반복된다. 다소 의외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시 박근혜는 고도 경제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물질만능주의에 대해 경계하고, 놀랍게도 이때부터 구체적으로 그 내용이 제시된 것은 없지만 "복지사회의 건설"을 강조했다. 현재 박근혜 후보가 정치지도자로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 젊은 시절 새마음운동을 할 때의 모습은 머리와 의상 스타일은 물론이고, 화법과 내용까지 닮아 있다.

충효, 가족주의적 국가관과 '100%의 대한민국'

당시 박근혜 총재는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면서 참다운 정신세계(새마음)를 구축해야 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주로 강조되는 것이 충효(忠孝)이다. 그는 충효를 "우리의 뿌리 깊은 민족문화의 정수"라고 했다. 과연 한국 민족문화의 정수를 충효로 단순화 할 수 있을지, 나아가 민족문화의 정수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또한 여기서 말하는 충효가 원래 유교적 관념의 충효와 같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근대사회에서 '충'이, 특히 '효'와 결부되어 시민의 덕목으로 강조될 때, 이는 가부장적이고 가족주의적인 국가관을 강조하는 논리, 그러한 관념하에서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헌신을 강조하는 논리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후 일본 자유주의 정치학을 이끌었던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1947년에 일본 파시즘의 특성을 분석하는 글을 남겼다. 그는 이 글에서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의 첫번째 특징으로 가족주의적 국가관을 들었다. 즉 국가를 가족의 연장체로 보는, 가족의 구성원리와 국가의 구성원리를 일치시켜보는 것이 일본 군국주의의 특징이라 했다. 마루야마는 이 글에서 "충효일치의 사상은 일찍이 메이지 이후의 절대국가의 공권적 이데올로기였다"고 지적하였다. 놀랍게도 <새마음의 길>에서도 "조국의 은혜"와, "부모의 사랑"이 대비되며, 명시적으로 "충효일본(忠孝一本)"이라는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박근혜가 당시부터 강조했던 '복지'라는 것도 이와 같은 가족주의적 국가관과 결부되어 나오는 것이라면 이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연대, 시민의 연대감을 통한 복지가 아니라 가부장적 국가가 국민에게 시혜(施惠)를 베푸는 복지, 당시 공장 새마을운동의 구호처럼 "종업원을 내 가족같이, 공장을 내 집같이"하는 차원의 복지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후보는 대선 구호로 '100%의 대한민국'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재 새누리당 대선후보 홈페이지 인물 소개란에는 여전히 <새마음의 길> 국문판과 영문판이 모두 후보의 저작으로 소개되고 있다. 다원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는 내부의 다양한 계급, 계층, 성, 인종의 차이를 인정한다. 이처럼 그 내부의 다양한 견해와 정체성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국가를 이야기하면서 100%를 운운하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일까? 이러한 구호가 유신체제기에 강조되었던 '국민총화(國民總和)'와 어떠한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다. 또한 박근혜 후보가 강조하는 복지와 경제 민주화라는 것도 유신체제기의 가족주의적 국가관 및 기업관에 입각한 국가와 기업의 시혜 개념에서 얼마나 벗어나는 것인지 향후 주목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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