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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핵실험 이후,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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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北핵실험 이후,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한반도 브리핑 <26> 핵실험 4題…소통과 토론이 절실하다

변화는 낡은 사물이나 속성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라짐과 나타남이라는 두 현상이 동시에 변화를 구성하지만, 때로는 사라짐만이, 때로는 나타남만이, 때로는 양 측면이 비슷하게 우리의 주목을 받는다. 최근 우리 사회의 쟁점이 되고 있는 여러 사안들 중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우리에게 익숙한 제도의 '사라짐'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변화라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나타남'이 아직 완전하지 않아서 충분히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변화다. 실질적 문제와 심리적 문제가 얽혀 있는 '변화에 대한 대응'에서, 사회는 발전적이고 역동적일수록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에서는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변화가 마무리되는 지점에서는 오히려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더 이상의 복잡한 논의에 들어가지 말고,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북한의 핵실험은 어떤 변화를 한반도에 가져다주는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현재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어떠한 성격을 띠고 있으며, 북한의 핵실험은 변화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 글이 한반도 정세에 대해 지나치게 추상적인 (게다가 이미 필자 자신이 여기저기서 여러 번 반복한 주장들로 짜여진) 거대담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당연히 필자의 역량 부족을 감추는 변명의 역할도 하는) 독자들과의 대화를 위해, 필자는 다소 거친 형태의 글쓰기에 의존하고자 한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제기되는 네 가지 질문에 대해 두서없이 답하는 형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1. 북한 핵실험 이후 한반도는 더 안전해졌나?

북한이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에 대응해 핵실험을 한 후, 아마도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 환경의 변화일 것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안보와 관련하여 공황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일시적으로 긴장은 야기되었다. 긴장이 가라앉은 뒤에는 불안감이 마치 표현되지 못한 불만처럼 조금씩 우리의 신경을 갉아먹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2차 핵실험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처럼 우리의 의식을 짓누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 논리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다소 어처구니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일부 인사들에게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북한 핵무기가 북한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안정을 지켜준다는 북한 당국의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매우 합리적이라고 평가되고 있는, 미국의 강화된 핵우산 보장, 심지어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실전배치가 남한 사회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주장이다.

이 두 주장은 전혀 다른 집단에 의해 제시되었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사고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안보는 군비증강에 의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는 군사전략적 사고방식을 전혀 다른 두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 지도부와 미국 부시 행정부가 공유하고 있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사실 현재 한반도에 떨어진 핵무기를 통한 공포의 균형은 절대적 안보관이라고 부를 만한 이러한 사유체계를 지닌 두 집단이 각각 자신들이 상대방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신과 적개심을 말과 행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현한 결과물이 아닌가.

한반도는 이처럼 주고받기식 행위의 결과로 만들어진 공포의 균형을 버티어낼 수 있는가? 더욱이 동북아에서 상대적 약소국의 입장에 놓여 있는 남북한이 군비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면, 한반도 전체의 지속적인 경제발전 구상은 재고되지 않을 수 없다.
▲ 또 다시 고난의 행군을 앞두고 북한 주민들은 핵실험 성공과 핵무기 보유를 기뻐할 여유가 있을까. 사진은 2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핵실험 성공 환영 평양시 군민대회에 참가한 군인들의 모습. ⓒ연합뉴스

문제를 좁혀 북한 내부의 상황을 검토해 보자.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핵실험의 성공을 보여주는 것은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는 행동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자신들이 보여주는 '역량'의 성격은 무엇인가? 군사적 역량을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일은 역으로 그동안 정권이 감출 수 없었던 경제적 무능력을 내부적으로 더욱 드러나게 할 것이다. 고난의 행군을 다시 앞에 두고 주민들은 핵실험 성공과 핵무기 보유를 기뻐할 여유가 있을까. 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직접 참가하거나 아니면 박수를 보내는 시간이 끝나고 나면, 굶주린 가족들이 모여앉아 춥고 어두운 겨울 동안 어떤 시간을 보낼 것인가?

많은 전문가들이 강조하고 있듯이, 우리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이 작동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작동할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핵무기가 갖는 위력도 인정하려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려고 했던 이유가 남북 사이의 재래식 무기의 불균형, 한반도 내외의 세력불균형에 대한 대비책이었다고 한다면, 북한이 마침내 핵무기를 가졌다는 것은 핵무기를 제외했을 때 한반도의 세력불균형이 너무나도 명백해졌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을 뿐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북한 체제의 한계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불균형과 한계를 북한 지도부가 더 이상 견디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은 북한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 지도부가 처한 곤란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상관없이 고스란히 우리 사회로 넘어온다. 이미 우리 사회는 1차 북핵위기가 시작된 이후 10년 넘게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북한 위기'가 본격화된다면 현재보다 더 큰 어려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반도 전쟁의 위험, 북한의 내전 가능성, 국제적 분쟁지역화의 가능성, 혼란 이후의 안정화 문제 등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형태와 내용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할 것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북한 위기'가 표면화되기 시작할 때, 한국 경제는 얼마나 버티어낼 수 있을까?

2. 미국은 군사적 행동을 취할 수 없는가?

북한 핵실험 이후 한반도가 더 안전해진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관적 전망만 할 정도는 아니다. 미국은 수차례에 걸쳐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천명했다. 전쟁이 다른 수단에 의한 외교라고 한다면, 미국이 외교적 해결을 이야기할 때 군사적 수단은 제외되었다고 믿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군사적 행동이 야기할지도 모르는 한반도의 전면전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면서, 지역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다. 군사적 행동이 가져올 엄청난 결과를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미 행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믿음을 가지는 것도 전혀 터무니없지는 않다.

외교적 언급 이외에도 미국이 현실적으로 봉착해 있는 군사전략 차원의 한계와 군사력 운용 차원의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상황의 악화는 미 군사력 운용의 단기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두 곳 모두에서 전쟁 승리의 천명 이후 국가 재건과 안정적 사회질서 구축에 실패함으로써, 군사적 개입의 정당성이 국제적으로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전에서 베트남전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심리적 위축도 언급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적 행동은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군사적 행동이 영원히 배제되었는가. "현재 북한은 2차 핵실험 진행을 고려하거나 계획하고 있지 않다"는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정리(10월 24일)는 군사적 행동과 관련한 미국의 입장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제재가 실패할 경우와 관련해서 "우리는 어떠한 선택방안도 탁자 위에서 치우지 않았다"는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의 발언(10월 18일)은 북한과 미국의 지도부 사이에 존재하는 역설적인 공감대를 발견하게 만든다. 양국 사이에는 군사전략에 바탕을 둔 힘겨루기가 작동하고 있다. 물론 전쟁은 우연적 사건만으로는 일어나지 않지만, 전쟁을 할 몸과 마음의 준비가 끝났을 때에는 사소한 우연적 사건만으로도 전쟁은 촉발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미국 네오콘의 창의력이다. 위폐문제와 관련한 대북금융조치가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한 성과를 가져왔다는 네오콘의 놀람은 앞으로 북한과 관련해 얼마나 많은 창의적인 조치가 내려질지 쉽게 예상할 수 없도록 한다. 특히 그들의 창의력에는 한계가 없다. 정보 수집과 해석, 안보 위협의 규정, 상황 전개의 조절력 등에서 그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쉽게 넘어버릴 것이다. 그들이 군사전환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이미 보여준 사고의 자유로움은 실질적 효율성과는 무관하게, 말 그대로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현재 자신들이 처한 군사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장담할 수 없다.

둘째는 북한이 미국의 군사적 한계를 '잘 알고'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된 금지선(레드라인)을 놓고 벌이는 북한과 미국의 신경전은 현상적으로는 미국이 밀리는 양상이지만, 미국의 대북압박은 훨씬 체계적으로 구축되고 있다. 미국의 체계적 대북압박이 강화될수록 북한은 대응의 강도와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겁쟁이게임은 이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현재 직면해 있는 군사적 한계가 북한이 예상하듯이 미국에게 실질적인 정책선택의 한계로 작동할 것이라고 판단을 내려도 좋을 것인가. 우리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만일 미국에게 군사적 한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한다면, 미국은 북한의 강경대응에 맞추어 어쩔 수 없이 협상에 나올 것인가. 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국이 오히려 두 가지 어려운 질문을 북한에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이 주도하는 체계적인 대북경제제재를 북한은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아니면, 이미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 적국의 지도부를 대상으로 한 매수와 암살 공작을 북한은 극복할 수 있는가? 이미 떠돌기 시작한 쿠데타설은 고도의 심리전이 아닌가. 북한 지도부는 이미 답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제재는 전쟁선포로 간주하겠다고. 그런데 정말 북한은 전쟁을 할 수 있는가?

3. 한국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가?

외교의 세계에는 냉정한 힘의 법칙이 작동한다. 지금 와서 우리가 북한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렛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반성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미국 조야를 움직일 네트워크와 상호신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도 무기력해 보인다. 그래도 반성과 자각은 유용하다. 북한에 대해서는 지렛대를, 미국에 대해서는 신뢰와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물자교역, 인도적 지원은 우리가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렛대다. 남북 사이의 민간교류도 좋은 지렛대다. 이 지렛대를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사용해야 한다. 어쩌면 지렛대를 사용하지 않고 인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궁극적으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렛대는 영원히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가 북한을 움직이기 위해 취한 조치(식량·비료 지원 유보)가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지렛대는 그냥 가지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남북 사이에서 관계와 신뢰가 더 중요하다면, 지렛대는 사용하는 순간 이미 가치를 잃어버리고 만다.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안 1718호 채택 이후 중국보다 한국이 대북제재에 대해 미온적이라는 미국의 평가는 한국 정부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현 정권이 출범한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미국 정부의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을 직접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 정부가 처한 상황과 행동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논리와 논거를 발견해 낸다면, 이러한 평가는 어느 정도 풀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설득논리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만으로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판단되지는 않는다. 사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외교적 협상'을 벌여야 한다. 비록 비대칭적 동맹 내부의 강자-약자 관계라고 하더라도, 협상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재로 존재한다. 동맹은 강자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놓고 한국이 미국과 협상을 벌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한미FTA 체결을 놓고도 협상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지금 이런저런 말들을 하고 있지만, 다시 한번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답할 말이 있을까. '과연 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군사주의적 전략을 최대한 활용하는 북한과 미국의 겁쟁이게임에서 '현재' 제3자의 자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4.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이 그어 놓은 최후의 금지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진정 금지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금지선을 둘러싼 국제정치가 작동하고 있다. 유엔의 대북제재결의안이 통과되었고, 미국은 대북제재의 망을 촘촘히 짜고 있다. 우리는 아직 사태가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판단을 성급하게 내릴 필요가 없지만, 마음을 놓을 수도 없다. 이제 북한 핵문제의 본질이 드러났고, 어느 누구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북한과 미국은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벌어야만 한다.

비록 한국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현재'는 없지만, 미묘한 상황의 변화가 오면 긴장의 끈이 늦추어지고 삼자가 개입할 틈이 생길 것이다. 당장 11월이 되면 미국의 중간선거(7일)와 대북제재의 실질적 작동이 미국과 북한 지도부 모두에게 일정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할 일이 없을 때에는 기다려야만 한다. 그러나 때가 왔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작업은 지금 해야만 한다.
▲ 북한 핵실험 이후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현상들은 오히려 우리 자신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사진은 21일 저녁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북핵반대·한미연합사해체반대 천만인 서명 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북핵규탄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강재섭 대표와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과연 우리 사회는 변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순간 사회구성원들의 중지를 모으고 상황에 맞추어 예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발전적이고 역동적인 사회인가. 북한 핵실험 이후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현상들은 오히려 우리 자신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의 안이한 상황 판단과 무책임한 발언들은 국민들을 절망 속으로 빠뜨린다. 북한과 미국에게 진지한 협상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 사회 정치인들과 관료, 전문가, 언론인들 사이의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소통과 토론을 요구하고 싶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 현재의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하나의 큰 흐름이 형성된다면, 기회가 왔을 때 분명 우리 사회는 고난을 극복해 내는 힘을 다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순간에도 우리가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이다.

5. 정치인과 정치가

아래 글은 존 롤스의 <만민법>(장동진 외 번역, 서울: 이끌리오, 2000, 156-164쪽 여기저기)에서 가져왔다.

"정치인(the politician)은 다음 선거를 바라보지만 정치가(the statesman)는 다음 세대를 바라본다. (…)

정치가들은 공직에 있을 때 자기 자신의 이익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 사회의 근본적인 이익에 대한 판단과 평가에 있어서 이기적이지 않을 필요가 있으며, 특히 전쟁 중에 복수의 격정으로 동요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정치가들은 정당한 평화를 획득할 수 있는 목적을 확고히 견지해야 하며 그리고 그러한 평화를 성취하는 것을 좀 더 어렵게 만드는 일들을 피해야만 한다. (…)

최고 비상 상황시의 면제(supreme emergency exemption)는 미국이 일본과 전쟁하던 동안에는 어느 때에도 결코 주장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미국이 일본 도시들을 폭격한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사용하기 바로 전, 1945년 6월과 7월 동맹국 지도자들간의 논의 기간 중에 실제적인 수단-목적 추론의 중요성이 논의를 압도하였다. (…)

전쟁 행위의 원칙들을 위반한 것을 정당화하려는 모든 이러한 논거들의 실패는 명백하다. 무엇이 동맹국 지도자들의 측면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정치가 정신의 실패를 유발했는가? 트루먼은 한때 일본을 짐승으로 표현했으며 그들은 짐승처럼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 독일인과 일본인들 전체를 야만인과 짐승들로 부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게 들리는가? (…)

아마도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그러한 감정들이 하나의 질서정연한 국가가 평화를 얻기 위해 애쓰며 따라야 하는 경로를 변경시키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정치가의 의무다. (…)

정치가 정신의 또 다른 실패는 1945년 봄 일본 도시들에 대한 폭격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같은 어떤 극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에, 일본과의 협상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나는 이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었고 더욱이 사상자들을 피할 수도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적인 전쟁이 거의 끝났을 때인 8월 6일의 침략은 불가피한 것은 아니었다. (…)

입헌민주주의의 근거와 그것의 권리와 의무의 기초는 정치적 생활에 참여하기 이전 시민들의 지성과 교육의 한 부분으로서 모든 수많은 시민사회의 협회들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정치문화의 일부분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보통정치운동(ordinary politics)의 일상적인 내용을 지배해서는 안 되지만 배경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폭격이 이루어질 당시 정의전쟁 원칙의 중요성에 대한 충분한 사전적 이해가 없었다. 만약 정의전쟁 원칙이 표명되었더라면 실질적인 수단-목적의 추론에 호소하는 것과 같은 임의적인 행위는 봉쇄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수단-목적의 추론은 역시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정당화하고 정부 내의 지배적인 힘이 귀찮은 도덕관념들을 잠재울 방법을 제공한다. 만약 전쟁의 원칙들이 그 시기 이전에 제시되지 않았다면 그 원칙들은 단순히 더 주저하게 만드는 고려사항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원칙들은 전쟁 이전에 적절하게 잘 확립되어야 하며 일반적으로 시민들에 의해 폭넓게 이해되어야 한다. 정치가 정신의 실패는 정당한 전쟁의 원칙들을 존중하는 공공정치문화―그것의 군사문화와 정쟁 교리들을 포함하여―의 실패에 부분적으로 달려 있으며 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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