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계화 운동의 지도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월든 벨로 필리핀대학 교수(사회학)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과 이 은행의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된 후 마이크로크레딧 ('무담보, 무보증 소액대출'을 기본으로 하는 빈민금융)이 마치 '빈곤퇴치의 열쇠'인 양 여겨지는 분위기에 대해 "과장이 많다"고 잘라 말했다.
마이크로크레딧이 "빈곤과 싸우는 많은 여성들을 도왔다"는 면에선 높이 평가받을 만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는' 근본적인 사회구조에 접근하기 보다는 "그 구조와 공존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한계를 노정했기에 빈곤 자체를 퇴치하기 위한 도구로는 적합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벨로 교수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에 돈을 빌려주고 상환의 책임도 공동체에 지우는 대출구조는 '아주 가난한 사람'이 아닌 '적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돌아갈 수 있도록 했고 △가난한 여성들에게 빌려준 돈의 대부분이 사업에 투자되기 보다는 당장의 식료품을 사는 데 충당됐으며 △소액대출로는 근근이 살아갈 수 있는 '생존의 길'을 틀 수 있겠으나 사업의 종자돈이 돼 빈곤층을 중산층으로까지 개선시키기는 힘들다는 등의 실증적인 예들을 제시했다.
벨로 교수는 "마이크로크레딧이 절실한 사람들은 대출을 받아도 생산적인 결과를 낼 수 없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은 마이크로크레딧이 절실하지 않은 사람"이란 모순점을 짚으며 "유누스란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는 수백만 빈곤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킬 만한 아이디어를 고안해 냈다는 점만 들어도 노벨상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이번 노벨평화상의 의미를 한정했다.
다음은 미국 주간지 <더 네이션> 14일자에 실린 벨로 교수의 글을 번역한 것이다.
마이크로크레딧의 큰 문제 (Microcredit, Macro Problem)
마이크로크레딧의 아버지 무하마드 유누스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됨으로써 마이크로크레딧은 수많은 권력자, 부자, 유명인들의 '종교'가 될 전기를 맞았다.
힐러리 클린턴은 유누스의 교향인 방글라데시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빈민층 여성들에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해서 그 가족과 공동체를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일으켜 세우는 이 대출제도의 힘에 감명 받았다"고 발언해 왔다.
네오콘인 폴 울프위츠 세계은행 총재 역시 최근 인도의 안드라 프라데시 지역을 방문하고 와선 민주당 인사인 힐러리와 '같은 종교'를 갖게 됐다. 그는 "소액금융이 상황을 변화시키는 힘"에 감동해 이 '종교'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엔 그저 한 동네에서 성공한 프로젝트이거니 했다. 그러나 다음 동네에 가도 같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 결국 100명에 가까운 자립그룹의 여성 지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인구 7500만인 이 지역 내의 빈곤 여성과 그 가족들에게 기회를 줬다는 점을 알게 됐다."
유누스란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는 수백만 빈곤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킬 만한 아이디어를 고안해 냈다는 점만 들어도 노벨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유누스는, 적어도 세계 기구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초창기 젊은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 이후 세계은행이나 유엔과 같은 외부 단체가 그라민 은행의 위상을 높였고 이들 덕에 유누스도 그라민 은행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여기도록 설득된 것 같다. 그 결과 현재의 마이크로크레딧은 '삶의 개선'이란 개념에 대해 무반성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이크로크레딧은 대출을 받은 여성들 그룹에 상환의 책임을 집단적으로 부가하는 구조를 통해 많은 빈곤 여성들의 생활 깊이 스며든 빈곤을 물리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주로 아주 가난한 사람보다는 '적당히 가난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도록 돼 있다. 게다가 혜택을 받은 사람들 중 빈곤의 불안에서 영구적으로 벗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대출을 통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을 만한 자급자족이 가능하지만 그들의 삶의 수준이 중산층으로 올라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 많다.
이에 경제 저널리스트인 지나 네프는 "그라민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지 8년이 지난 사람들 중 55%가 기본적인 의식주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많은 여성들이 빌린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지 않고 음식을 사는 데 써버렸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소액대출과 관련된 연구를 해 온 토마스 디처 씨는 "소액 대출이 빈민층 사람들을 기업가로 만들어 준다는 생각은 과장된 측면이 많다"고 주장했다. 디처 씨는 "마이크로크레딧은 경험이 많은 고객들에게 그들 스스로의 자원을 사용토록 하면서 급부상했다"며 "시장이 매우 제한돼 있어 그들이 그렇게 많이 번창하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그들은 물건을 사고팔기에 충분한 자금 회전이 가능했고 마이크로크레딧의 지원이 있었거나 없었거나 상황은 비슷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신봉자 다수가 주장하듯이 마이크로크레딧의 대출이 경영활동상 수익을 늘려나갈 종자돈으로만 기능한 것이 아닌 것도 분명해 보였다. 대출한 돈이 소비로만 지출되는 경우도 꽤 있다는 것이다.
디치 씨는 '마이크로크레딧의 역설'을 이렇게 설명했다.
"너무 가난한 사람은 대출을 받아도 생산적인 결과를 낼 수 없었고 최대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사람은 대출이 그렇게 절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단기, 소액 대출이 아닌 장기, 거액 대출을 받았다면 더 많은 성과를 올렸을지도 모른다."
다른 말로 하자면 마이크로크레딧이 괜찮은 생존수단일 수 있지만 '삶을 개선하는 열쇠'는 아니라는 말이다.
일단 개인이 빈곤에서 탈출해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집약된 자본이나 정부의 직접 투자와 경쟁해야 하고 구조적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빈곤 탈출의 기반을 빼앗으려드는 토지의 집중 같은 불평등 구조의 공격을 견뎌내야 한다. 그런데 마이크로크레딧은 이러한 강고한 구조와 '공존'하면서 이 구조에서 추방당하거나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망' 역할을 할 뿐이지 그들의 삶의 수준을 변화시키는 역할은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마이크로크레딧이 안드라 프라데시 인구 7500만 명의 빈곤을 종결할 열쇠라던 폴 울포위츠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 마이크로크레딧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시장 기반의 프로그램이 실패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리라. 무역의 자유화, 규제의 자유화, 민영화 등을 촉진시킨 시장 중심 구조는 지난 25년 동안 개발도상국의 빈곤을 확대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불경기를 영구화해 왔다. 이 때문에 세계은행의 <빈곤감축전략보고서>와 같은 거시적 프로그램이 실패했고, 이는 마이크로크레딧 프로그램 같은 제도를 촉진시키는 기능을 했다. 마이크로크레딧은 구조의 위협으로 대형 거시정책마저 실패하면서 약체화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거둘 안전망이 된 셈이다.
그러므로 마하마드 유누스가 '노벨상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말 할 때 근거로 댈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이유는 '빈곤과 싸우는 많은 여성들을 도왔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의 추종자들은 그가 '사회적 기업주의'라는 특별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고안해 마치 발전을 촉진하고 빈곤을 끝낼 '마법의 탄환'을 고안해 낸 양 과장하고 싶어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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