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룰라의 일방적인 승리를 점쳤던 남미 현지언론들과 정치평론가들은 룰라가 근소한 차이로 과반수 득표에 실패한 원인으로 반(反)룰라계인 보수언론들의 집요한 공격을 지목하고 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 주말 브라질 현지언론들은 일제히 '야당후보들의 비리 문건이라는 조작된 증거를 구입하기 위해 준비한 노동자당의 돈다발'이라는 거액의 돈뭉치 사진을 대서특필했다.
브라질 보수언론들이 룰라를 향해 일으킨 '쿠데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보도는 브라질 최대의 도시인 상파울루 지역 유권자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룰라는 상파울루 주에서 35%라는 저조한 득표율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알키민 후보는 55% 득표에 성공해 룰라의 일방적인 승리를 저지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선투표 2주일 전에 터진 야당후보들의 비리조작 문건 사건은 초기에는 유권자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다. 그러나 이 문건을 구입하기 위해 노동당이 준비한 돈뭉치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자 룰라의 지지자들인 서민유권자들까지 상당수가 룰라와 노동당을 부패한 집단으로 평가, 정치권의 부정부패추방을 외치는 야권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노동자당 지도부는 보수언론들과 야권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상파울루 주에서 룰라가 여유 있게 야당후보들을 누를 것이라고 판단했으며 최악의 경우 50% 정도의 득표만 획득해도 1차 투표에서 무난하게 승리를 확정지을 수 있다며 안이하게 대처했다.
하지만 상파울루주의 룰라 지지층들인 극빈자들도 언론에 보도된 돈다발의 위력에 눌려 집권 노동자당과 룰라에게 등을 돌리고 엘리트층을 대표한다는 알키민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결과를 낳은 것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브라질 정치권의 부정부패 문제가 엘리트층들이나 부유층만이 아닌 극빈층들까지 정치개혁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룰라가 결선투표에서도 확실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승리를 장담하던 룰라 대통령은 "승리의 기쁨을 잠시 미룬 것일 뿐 대선에서 패한 것은 아니다"라고 짐짓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또 노동자당의 '도시어 스캔들(escandalo del "dossier")로 인해 감표 요인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중남미 기자단의 질문에 대해 오히려 야당들의 근거 없는 의혹제기 수준의 정치적인 사건으로 몰고 갔다.
그는 "신이 노동당에 제기된 모든 의혹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때가지 살 수 있도록 허락해주기를 빈다"는 말로 노동지당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룰라는 이번 선거 사기사건도 야당과 언론들이 노동당과 자신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기 위한 정치공세 수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 언론들이 보도한 이 돈다발 사진은 연방경찰이 공개한 것이라는 사실로 볼 때 룰라가 아직까지도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다.
룰라는 "약간의 시간을 지체한 것일 뿐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여유를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룰라의 대선 본부도 1.4%라는 경미한 차이로 승리를 잠시 미루었을 뿐이라며 2차투표에서의 승리를 장담했다. 이들은 결선투표의 캐스팅보트를 쥔 엘로이사 엘레나 상원의원(6,85% 득표)이 노동자당 출신이었던 것을 예로 들면서 엘레나 의원의 표는 결선투표에서 자동적으로 룰라 지지로 돌아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엘레나 의원은 이에 대해 자신은 "여야를 떠나 누구도 지지할 의향이 없다"며 자신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개별적인 선택에 맡기겠다 고 선언한 상태다.
2002년과는 다른 상황
한편 그동안 대선후보들의 TV 공개토론에 거부반응을 보여 왔던 룰라가 결선투표에서는 공개토론에 나서겠다고 선언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룰라는 일방적인 대중연설에는 이력이 나 있으나 상대를 압도하는 논리와 해박한 일반상식이 요구되는 공개 TV토론은 어설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대선 유세는 지금과 상황이 많이 달랐다는 게 현지평론가들의 한결 같은 평가다. 당시 브라질 유권자들은 가난의 상징이자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룰라가 정장을 하고 대권후보로써 TV에 출연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서민들의 희망으로 비쳐졌었다.
더욱이 빈민층의 상징이던 룰라가 엘리트 계층 후보를 압도하는 농담과 연설을 하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서민들 모두가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즐거워 했고 모두가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브라질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 유권자들이 각종 부정부패로 얼룩진 집권 노동자당과 룰라를 보면서 그때 느꼈던 희망과 대리만족보다는 오히려 배신감을 느끼지 않겠느냐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룰라가 남은 4주 남짓한 기간 동안 등을 돌리기 시작한 극빈층들의 표심을 잡을 수 있는 묘수가 무엇인지에 남미언론들은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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