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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력 만능시대', 종언을 고하다

<해외 시각> 이라크ㆍ레바논전쟁의 교훈

다음은 현대 전쟁학의 대가인 미국의 역사학자 가브리엘 콜코의 '위대한 평균조성자: 이라크·레바논전쟁의 교훈(The Great Equalizer: The Lessons of Iraq and Lebanon)'의 전문이다.

콜코는 이 글에서 "핵무기 확보가 보다 손쉬워지고, 미사일은 값이 싸진 반면 이동성과 정확도는 높아지고 있으며, 모든 미사일방어시스템은 근원적 한계를 안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첨단 군사력을 앞세워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 강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지적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해 '적들'과 공존하기 위한 정치적 지혜를 개발하는 데 힘쓰라고 충고하고 있다.

군사력 측면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의 지원을 받은 중동 최강의 이스라엘군이 34일간의 전투에도 불구하고 수천명에 불과한 헤즈볼라 전사들을 굴복시키지 못한 것은 바로 이같은 파괴력의 '민주화' 때문이며, 이라크와 레바논사태에서 드러나듯 앞으로 어떤 전쟁이든 단기간의 결정적 승리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콜코의 지적이다.

콜코는 특히 각각 무승부와 미국의 패배로 끝난 6.25전쟁 및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군사력이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만능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교훈을 배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첨단무기를 맹신하고 이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어 지금 인류는 군사기술은 21세기 수준이지만 공존을 위한 정치적 지혜라는 측면에서는 원시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개탄하면서, 군사력의 대등화라는 시대적 추세를 인정하고 이에 대비하지 않는 한 인류에게는 전쟁과 절멸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글은 동아시아 전문 웹사이트인 '재팬포커스(www.japanfocus.org)' 25일자에 실린 것으로 원문은 http://www.japanfocus.org/products/details/2203
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군사력만능 시대의 종언 : 이라크·레바논전쟁의 교훈

미국이 핵무기 독점을 누린 것은 불과 몇 년에 불과했지만 (소련의 핵무기 개발로 미국의 핵 독점이 무너진) 1949년 이후에도 대략 1990년대까지는 억지이론이 현실적으로 작동했다. 즉, 핵 보유국가들은 자신이 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먼저 사용했다간 상대방의 핵반격에 의해 초토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따라서 핵무기 사용을 극력 자제했다는 의미 : 역자). 쿠바미사일 위기와 같은 벼랑끝 대치나 비핵보유국에 대한 핵공격 위협 등의 예외적 사례들이 있긴 했지만, (당시까지) 핵무기를 보유한 극소수 국가들은 그 무시무시한 결과를 감안한다면 핵전쟁은 할 만한 게 아니라는 결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수십 개 국가들이 대량살상무기 또는 정밀도와 파괴력을 갖춘 무기들을 직접 생산하거나 구매할 능력을 갖게 됐다. 이처럼 대량살상무기 등을 쉽사리 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억지이론은 갈수록 현실적 유용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2차대전 이후 한동안 존재했던 (각 국가간) 군사력의 방정식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 남 레바논의 한 건물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 도중 폭격으로 파괴된 채 남아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과정은 1950년 이후 한반도에서 시작됐다. 명목상 미 군사력의 막강한 우위에도 불구하고 6.25전쟁은 교착상태에서 끝난 것이다. 그 이후 베트남에서 미국의 군사전략가들은 광대한 지역을 배경으로 한 게릴라전쟁에 미군이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이 전쟁에서 미국은 패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군사 및 안보전략가들로 하여금 (미국의 주특기인) 첨단무기전쟁의 한계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 뒤 한동안 미국은 좋은 교훈을 배웠고, 이에 따라 엄청난 대가를 치를 실수를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들 전쟁에서 미국이 배웠어야 할 교훈은 미국의 군사력 및 정치력에는 결정적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미국은 이러한 한계에 걸맞게 대외정책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하고 나아가 미국이 원하는 지역 어느 곳이든 개입하던 과거의 관행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이 원하는 곳으로 세계를 인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러나 그 동안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충분히 입증된 이같은 결론은 미국의 양대 정당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급진적인 것이었다. 또 미국의 방위산업체들은 '이 무기라면 적들을 끝장낼 수 있다'며 끊임없이 첨단무기 개발을 유도해 왔다. 9.11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의 정치가 및 군부지도자들은 첨단군사기술로 미국의 더 이상의 정치적 실패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은 - 미국문명의 특징이기도 한 기술적 물신주의에 의해 더욱 강화된 - 이라크에서의 파탄으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군사기술의 질적인 도약에 의해 과거의 전통적 지혜라든가, 정책도구로서의 전쟁의 유용성이 전혀 쓸모없게 됐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무력을 문제해결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모든 국가들에 적용된다.

오늘날 (군사)기술은 너무도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서 전통적인 전략이론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군사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들은 통제하려는 외교·정치적 수단이나 의지로도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날 헤즈볼라는 수 년 전에 비해 훨씬 성능이 좋고 훨씬 더 치명적인 로켓들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이란이 헤즈볼라에 현재 보유하고 있는 무기보다 훨씬 강력하며 사정거리가 긴 크루즈미사일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란 자신도 엄청난 수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이란이 이들 미사일로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을 충분히 파괴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아무리 초보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이들 로켓의 공격에 대해 방어망을 구축하겠다는 모든 시도들은 값비싼 대가만을 치른 채 실패로 돌아갔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미사일 방어기술에 수십억 달러를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은 여전히 신뢰할 수 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욱더 불길한 것은, 최근 미 육군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전에는 핵물질 추출이 어렵다고 알려졌던) 경수로에서도 값싸고 손쉽게 무기급에 가까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경수로는 스페인, 아르메니아, 슬로베니아 등 25개 국이 보유하고 있으며 기존의 어떤 군축관련 조약에서도 경수로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핵무기 보유국은 10개 정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수 년내에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핵무기, 또는 보다 파괴력이 강하고 정밀한 미사일과 로켓 등을 보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 육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맹방인) 사우디와 이집트도 이 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첨단무기에 굶주려 왔던 전사들이 보다 치명적인 군사장비을 확보하는 것과 함께 보다 정교한 게릴라전술을 터득하게 됨에 따라 첨단 군사장비로 막강한 화력을 뽐냈던 국가들의 강점은 사라져버렸다. 아프간 및 이라크 전쟁이 이를 잘 말해준다.

나아가 불과 수천 명의 헤즈볼라 전사들과, 엄청난 양의 초현대 무기들로 무장하고 미국의 정치·재정적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군 간의 이번 전쟁이 이를 증명해 준다. 특히 이번 레바논전쟁은 미래 전쟁의 양상을 보여주는 창문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쟁의 결과는 이스라엘이 지금까지의 파괴와 협박 전술을 포기하고 아랍세계와의 공존을 위한 정치적 전제조건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기존의 전략을 고집하면서 결국은 이스라엘 자신도 아랍인들이 갖고 있는 핵무기(이란과 최소한 2개 아랍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와 보다 값싸고 정교해진 미사일 등에 의해 멸망하든가, 양자택일의 길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중동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지금 동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제들이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핵무기 확보가 보다 손쉬워지고, 미사일은 값이 싸진 반면 이동성과 정확도는 높아지고 있으며, 모든 미사일방어시스템은 근원적 한계를 안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앞으로 북한, 이란, 대만, 나아가 베네수엘라 등 지구촌 어느 곳에서 발생하는 위기든 그 위기의 전개양상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전쟁에서 (군사)기술이 갖는 한계가 점점 커져가는 현재의 추세는 국가간의 관계뿐 아니라, 소규모의 음모적 집단에서 대규모의 게릴라반군에 이르기까지 한 국가 내 각종 집단 간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중동지역에서의 일련의 사태는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 전쟁의 양상이 극적으로 변화됐으며, 나아가 미국의 헤게모니도 지구촌 곳곳에서 도전받을 것이고 결국 미국이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입증해주고 있다.

미국의 힘은 상당 부분 고도의 기동성을 가진 해군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전함들은 갈수록 미사일 공격에 취약해지고 있으며 또한 전술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전략적으로도 그 능력이 제한받고 있다. 다시 말해 군사적 측면에서의 세력균형이 강화되고 있으며 일종의 억지력이 다시 등장하면서 미래의 모든 전쟁은 장기전, 그리고 엄청난 비용이 드는 전쟁이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결국 단기에 결정적 승리를 확보할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 속에 전쟁에 뛰어드는 실책을 저지르는 정치지도자들은 엄청나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스라엘의) 올메르트 총리와 페레츠 국방장관은 권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스라엘의 레바논 파괴가 그들의 정치생명을 구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제 정신을 가진 정치가라면 이 교훈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양상을 '적(敵)들 간의 관계가 보다 대등해진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모든 종류의 무기에 대해 누구에게나 똑같은 군비축소를 요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편적인 군축이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로 보이는 지금, 적대세력 간의 군사력 평준화라는 새로운 양상은 이들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로 몰고 가기보다는 아마도 (전쟁을 일으키는 데) 보다 신중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러한 자제는 전쟁을 줄이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21세기 군사기술과 원시적인 정치적 태도가 공존하며, 온갖 종류의 민족주의, 그리고 좌우는 물론이고 권력자나 평민 할 것 없이 영웅주의 숭배와 비합리성이 판을 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새로운 군사기술의 방정식을 똑바로 직시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스스로를 파괴하고야 말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일 이스라엘이 진지한 타협을 위한 정치적 수완을 개발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적들을 향해 대량살상무기를 빗발처럼 쏟아붓는다 해도 새로운 군사기술의 방정식에 의해 그 자신도 멸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가자지구, 서안지구, 그리고 레바논에서의 군사갈등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보안장벽을 아무리 높게 쌓는다 해도 이스라엘인들을 보호할 수는 없다. 적들은 그 장벽 위에 올라가 총을 쏠 테니까. 이스라엘이 그토록 자랑했던 메르카바(Merkava) 탱크도 신무기 앞에는 한없이 취약하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게다가 이 신무기들은 갈수록 흔해지고 있어서 (헤즈볼라에 이어) 곧 팔레스타인인들도 손에 넣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레바논전쟁에서) 최소한 20대의 메르카바 탱크가 (헤즈볼라의 대전차지뢰에 의해) 파괴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미국의 이라크전쟁은 한마디로 정치적 재앙이었다. 이라크와 아프간의 게릴라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무력 5000억 달러를 퍼붓고도 미국은 두 곳 모두에서 패배 일보 직전에 있다. 이른바 '충격과 경악'이라는 미국의 군사전략은 방산업체를 살찌운 것 외에는 완벽한 실패였다. 나아가 미국의 막대한 군비 지출은 미국경제의 사실상 파탄에 중대한 기여를 했다.

부시행정부는 미 현대 역사상 그 어떤 정부보다도 미국의 우방국들을 심각하게 소외시켰다. 이라크전쟁과 뒤이은 레바논분쟁은 미국의 중동정책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이란의 전략적 우위를 더욱 강화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이미 이라크 침공 이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미국의 대외동맹은 토마스 릭스(Thomas Ficks)의, 말은 좀 많지만 대단히 설득력 있고 비판적인 최신 저서 <대실패(Fiasco: The American Military Adventure in Iraq)>에서 보여준 것처럼, 끝장 났다.

미국이 이처럼 대실패로 끝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그 무시무시한 무기들의 힘에 대한 터무니없는 과신과 의존이었다. 물론 선제공격을 가하겠다는 오만함과 민족주의적 근시안도 원인들로 지적돼야 할 것이다. 1950년대 이래 엄청난 대가를 치른 정치·군사적 모험이 모두 실패로 끝난 지금, 미국은 미국의 힘에 대적하기 위한 군사기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며 비용마저 매우 저렴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이 군사기술들은 이제 국가뿐만 아니라 비교적 소규모의 집단들도 쉽사리 확보할 수 있다. 이제 파괴력은 사실상 '민주화'된 것이다.

군사기술의 혁신이 제기하는 위험성과 한계에 직면한 세계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하는 한, 또한 오늘날 군사력의 대등화 경향이 시대적 추세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전쟁과 인류의 절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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