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6월28일 비는 계속 주룩주룩 내립니다. 비킨강 오롤 마을은 촉촉하게 젖은 숲에 폭삭 안겨 있습니다. 마을 주변에 숲이 있는 것과 숲 안에 마을이 있는 것은 다릅니다.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새 마을을 만든 오롤이지만 그래도 숲에 안긴 마을입니다. 거대한 시우테 알렌 산맥에 에워싸인 숲 마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문명보다 자연이 가깝습니다. 오늘은 마을에 사는 우데게이 사람들을 만나는 날입니다. 마을 박물관을 준비하며 유물을 수집했다는 사람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유물은 비킨강 하류 도시 루첸고르스크 박물관에 맡겨 놓았답니다. 유물 관람을 포기하고 이 마을 역사학자라는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이 마을 중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다가 은퇴한 교사였습니다. 물론 우데게이인입니다. 우데게이족의 역사를 물으니 뜻밖에 옛날 전설을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사진1. 우데게이 이주전설을 들려준 오롤마을 역사학자 칸주가
"기원전 1만5000년 전 갤룬 왕이 있었습니다. 극악하고 영리한 이 왕은 거대한 기마제국을 가졌습니다. 그 위세가 서쪽으로는 두나이 강(오스트리아 국경과 헝가리 국경에는 우리가 다뉴브라고 알고 있는 두나 강이 흐르는데 이 두나 강은 발칸반도를 거쳐 흑해로 이어집니다)까지 미쳤다고 합니다. 그는 기마제국을 이끄는 애꾸눈 왕이었습니다. 하루는 강을 따라 말을 달리고 있는데 7미터나 되는 긴 머리카락이 강물에 떠내려 왔습니다. 왕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 그 사연을 알아보라 지시하니 오브라는 사람의 집이 있었습니다. 오브의 딸 욜로도의 머리카락이었던 것입니다. 갤룬은 오브에게 딸을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왕은 오브를 죽이고 딸을 빼앗아 왕비로 삼았습니다. 왕비가 된 욜로도는 몇 년 후 길은 떠났으며 100년 후에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바다 건너 일본 섬으로 갔다고 합니다. 왕은 그 후 병에 걸렸습니다. 왕에게는 조카 종노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유능한 약사가 있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왕은 그를 데려오라 하였습니다. 이름은 지가였습니다. 지가는 정성스레 치료를 하여 왕은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자 왕은 욕심이 나서 지가를 자기 부하로 삼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큰일입니다. 지가는 남장으로 여자인 것을 감추고 있었고 게다가 종노의 신부인 것입니다. 조카인 종노가 이 청을 거절하자 왕은 그를 죽이고 지가를 아내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가도 거절을 하니 지가에게 벌을 주어 말을 보살피게 명령하였습니다. 졸지에 마구간 마부 신세가 된 약사 지가는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꼭 알려야 했습니다. 지가의 아버지는 다른 부족의 왕이었습니다. 자기가 타던 말에 편지를 써서 말꼬리에 달아매고는 아버지가 사는 곳으로 달리게 하였습니다. 영리한 말은 이 사실을 지가의 아버지에게 알렸습니다. 분노한 지가 아버지는 정벌에 나섰습니다. 갤룬왕은 졸지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갤룬 왕은 쫓겨 도망가면서도 잘 따라오지 못하는 부하들과 그 식솔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바다를 만났습니다. 바다가 얼 때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갤룬 왕은 얼음이 언제 어는지 부하들 보고 가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다가 얼지 않았다고 보고하는 부하마다 죽였습니다. 이를 걱정하던 부족장들이 회의 끝에 앨라 장군을 보냈습니다. 영리하고 용기가 있던 앨라 장군은 가서 바다를 보고 와서는 바다가 얼었다고 거짓보고를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모든 부대를 이끌고 바닷가에 당도하였는데 갑자기 바다가 얼어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어제까지만 해도 얼지 않았던 바다가 오늘 아침에 빙판으로 변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갤룬의 부족은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지가 아버지 부족왕도 갤룬 왕과의 27년의 싸움을 멈추고 화해를 요청하였답니다. 한편 마굿간에서 마부일 하며 갇혀 지내던 지가도 아버지가 화해를 한다고 하니 갤룬의 왕비가 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갤룬 왕은 이때 자기가 다스리던 종족들을 보고 이제는 평화가 왔으니 내게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나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떠나고 싶은 종족은 뿔뿔이 흩어졌답니다. 이렇게 해서 만주리, 에벤키, 퉁구스, 나나이, 고리, 우데게이 등지로 흩어져 살게 되었답니다."
사진2. 우데게이족의 화려한 민속의상은 과거 문명국의 전통을 짐작하게 한다.
욜로도 왕비는 100년 후에 돌아온다며 하인들과 일본 열도까지 갔다가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지가도 갤룬 왕이 130세가 다 되어 이가 다 빠질 때까지 같이 살았다고 합니다. 젊은 궁녀들은 곡식을 씹어서 갤룬 왕의 입에 넣어 먹여 오래오래 살게 했다고 합니다. 갤룬 왕은 죽을 때까지 지가를 사랑했으며 죽을 때는 자신의 일가를 갤룬지가라고 명명하라고 유언을 하였답니다.
우데게이 이름풀이를 물으니 '바다를 건너 숲에 온 사람들'이란 뜻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우데게이 노인들도 같은 말을 합니다. 마을에는 갤룬지가라는 성을 가진 우데게이 사람이 많습니다. 이 전설은 기원전 1500년 트로이시대의 것이라고 마을 역사학자는 말합니다. 이 전설대로라면 우데게이는 어느 바다를 건너서 이곳에 왔는지가 궁금합니다. 두 가지 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캄차카 앞바다 후쿠오카 지역 동해바다를 건너 숲으로 왔을 거라고 주장하는 하바롭스크 소수민족자치회장 같은 사람의 주장이 있는 가하면 우리의 통역을 맡은 사할린 출신 고려인 테민 씨는 그 바다가 바이칼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전자의 이유로는 우데게이가 일본의 아이누족과 문화적으로 비슷함을 듭니다. 후자의 이유는 바이칼을 넘었다는 여러 숙신족들의 동진을 근거로 듭니다.
나도 의견을 말하자면 갤룬이 건너온 바다는 바이칼인 것 같습니다. 바이칼은 현지의 브리야트 족들의 이름으로도 '샤만의 바다'라고 부릅니다. 청동기 문화에 주목하는 이들은 기마부족 국가들이 주로 알타이의 청동기문화와 연관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르쿠츠크대학 의 한 인류학 교수가 제시한 '아시아족의 이동 경로론'도 암각화와 토기와 청동기와 적석묘의 분포로 아시아족의 동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갤룬 왕 전설에서 바다가 얼 때를 기다려 도주하였다는 데에 착안하면 일본 후쿠오카나 캄차카 앞바다일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한 추정일 수는 있겠으나 섬에서 대륙으로 서진해 온 청동기문화는 없다고 봅니다. 반대로 극동해안에서 겨울철 언바다를 건너 후쿠호카 지역으로 건너간 것이 아이누족일 것입니다. 아이누족이 우데게이와 비슷한 점도 그래서 일 것입니다. 100년 후에 돌아온다며 일본 열도로 떠났다는 욜로도 전설이 이를 뒷받침 합니다. 그 이전부터 살던 고아시아족들은 동북의 극지방까지 밀린 것이 아닌가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데게이는 고대에 다른 곳에서 이주하여 동북아의 숲에서 살게 된 종족임은 확실 해졌습니다. 이 전설이 맞다면 연해주에 최근까지 사는 나나이족, 에벵키족, 고리족, 조선족, 만주족들도 숙신족 계열의 유목족으로 기원전 1만5000년 전후에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숲 속이나 강가에서 살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신석기문화를 가진 이주민이고 언어까지 가졌던 종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조선의 이동시기와도 비슷합니다. 고조선은 파미르고원과 바이칼에서 아무르강을 타고 가다 내몽골을 거쳐 동남진하여 기원전 1만 년에서 반만 년 전 쯤 고조선을 세우고 다시 부여와 고구려로 이어진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초기 고조선은 신석기 후기에서 청동기 시대로 주무대는 홍산문화권- 내몽고 동남지역과 요녕성 서부지역-으로 추정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갑자기 부여 고구려의 본격적인 왕국이 건설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합니다. 이병도 사학파에 뿌리를 둔 주류학계의 학설로는 고대사 찾기에 희망이 없습니다. 그들은 현지답사도 없이 강단에서 실증사관만 내세웁니다. 북방 대륙의 고구려 이전 역사를 신화로 간주하고 말갈 여진 에벤키 몽골 만주 숙신 등 부족의 역사를 우리와 무관한 오랑캐의 역사로 봅니다.
고조선은 이들이 1만~2만 년 전에서 반만 년 전 동북아시아로 동진하여 세운 나라일 겁니다. 발굴 유물을 볼 때 고구려 문화의 특징과 유사하고 비파형 동검이 쏟아져 나오는 곳입니다. 비파형 동검이 고조선 고유의 것이라는 학설은 이미 중국에서 나온 학설입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학계에서는 홍산문화를 북방민족 고조선문화로 인식해 왔으나 최근에 와서는 중국사의 기원, 즉 상나라의 역사로 간주하고 있답니다. 단대공정(斷代工程)도 그런 맥락 속에 있습니다.
어째든 우데게이가 기원전에 어디서 왔든지 고구려 발해를 건국한 부족 중 하나가 우데게이-말갈족입니다. 일부 학자에 의하면 말갈족을 조선족과 같은 종족이라는 학설도 내놓고 있습니다. 우데게이와 나나이족 에벤키족 간의 차이처럼 우리와도 대동소이한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금나라 요나라 청나라에 흡수되며 중국변방의 소수민족으로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조선이 건국 후 중국 명나라를 섬기며 북방 동족을 오랑캐로 간주하고 국경을 반도 이남으로 분리하면서부터 우리는 그들과 전혀 다른 종족인 양 처신하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뒤 일제 식민지가 되면서 단군계 조선을 가상의 신화로 분리하며 일본 역사보다 오래된 조선의 역사를 서둘러 축소시켰고 해방후 식민사관은 이를 그대로 이어받아 이병도 사학계가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식민성 사대주의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셈입니다.
다시 얘기를 본론으로 돌리자면, 연해주 일대 속의 자연에 흩어져 살다가 20세기 초 러시아 인류학자 아르세니에프가 만나게 된 사람이 바로 데르수 우잘라였습니다. 데르수 우잘라는 우데게이가 아니고 나나이족 사람입니다. 동아시아 종족들의 문화원형이 아르세니에프의 인류학자 시선에 포착 된 것입니다. 데르수 우잘라는 나나이족이고 그가 이웃하던 족은 우데게이족인데 그들은 언어와 풍속이 거의 같으나 생활 습속과 말이 조금 다르답니다. 나나이는 강가에서 낚시를 주로 하며 사는 정착민이고 우데게이는 사냥을 하며 숲에서 유목을 한답니다. 나나이는 물고기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옷 문양도 섬세합니다. 그래서 일명 어피족이라고 부릅니다.
사진3. 우데게이 할아버지가 신바람 나게 북을 친다. 북을 치며 하는 굿을 웡뚜시라고 한다.
이 지역 출신으로 하바롭스크에서 의사이자 극동 토호민족연합회 회장을 하고 있는 파시꾼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오롤 마을이 고향이라 휴가차 어머니를 만나러 왔답니다. 그녀에 의하면 나나이는 울치족과 더 가깝고 에벤키, 니기다이는 우데게이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니피킨은 바닷가에서 살며 극동 대륙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사납답니다. 바다표범과 고래를 사냥하며 사는 축치족(울치족)이 가장 용맹하고 사나운 종족이라고 합니다.
우데게이 오롤 마을에 묵은 지 이틀째, 그들의 삶 가운데 연면히 숨 쉬고 있는 의례와 전설에서 우데게이족 문화원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데게이의 고수레문화와 '바다에서 건너와 숲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우데게이 문화원형들 같습니다. 웡뚜-북을 치면서 신명에 겨워 있는 저 사진 속 할아버지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네 법 고치는 할아버지와 진배없습니다. 비킨강 하류도시 루첸고르스크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제 깊은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듭니다. 소변을 보러 밖에 나와 처다 본 깊은 밤,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밝습니다. 눈을 감으며 내일 만날 예술인들은 또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습니다. 오롤 마을의 화가, 조각가, 민속무용가, 샤만을 다음 회에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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