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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탈냉전질서 흔들기와 한국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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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탈냉전질서 흔들기와 한국의 선택

한반도 브리핑 <16> 北·美, 고유한 사고방식에 충실한 시점

북·미 대결국면과 우리들의 고단한 시간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2006년 7월 5일) 이후 한반도 정세는 본격적인 북·미 대결국면으로 들어갔다('일본의 역할'은 여기에서 논외로 하자). 작년 9월 불가능해 보였던 6자회담 공동성명의 채택 직후부터 다시 시작된 북·미 사이의 신경전과 미국의 변함없는, 그리고 새로이 추가된 대북압박정책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예상을 아주 벗어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조성렬, "위기의 한반도, 어디로 갈 것인가 - 9.19공동성명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까지", Le Monde Diplomatique 한국판, 2006. 7. 20; 리언 시걸, "미국은 또 다시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2006. 8. 1 참조). 오히려 대결국면은, 정해진 목표와 가능한 수단을 놓고 전략적 사고를 하는 북·미 양국의 태도를 고려했을 때, 지금부터 더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 미국이 당분간 강도를 높여가면서 힘겨루기를 계속하리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대결 국면이 당장 파국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레바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침략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미국 외교정책은 상당 정도 정당성 측면에서나 영향력 차원에서 손실을 입었다. 군사력에 기반을 두고, 때로는 무력 사용을 서슴지 않으며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이지만,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미국의 외부와 내부에서 점점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비판과 비난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더욱이 미국이 가지고 있는 군사력은 무한하지 않으며, 대북 경제제재수단 역시 실효성에서 한계가 있다. 오히려 미국과 일본은 국제사회의 여론을 고려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압박의 수위를 지속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택할 것이다(한겨레신문, 2006. 7. 31, "대북 추가제재 명분 축적 - 시기 저울질" 참조).
▲ 압박이 해소되지 않고 위기가 다시 다가오고 있다고 느낄 때, 북한 지도부가 의지할 것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사유체계와 체제강화전략뿐이었다. 사진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백남순 북한 외무상 ⓒEPA

북한 지도부도 미사일 시험발사가 야기한 국제사회의 대응이나 국내·외 정세를 무시할 수는 없다. 북한 지도부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미사일 시험발사가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던' 효과가 나타나기를 시간을 두고 기다려볼 것이다.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미국과 일본이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지만, 상황은 아직 유동적이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일본에서 선거가 예정되어 있고, 중동지역의 정세는 매우 불안정하다. 그동안 유지·발전되었던 남한 및 중국과의 관계와 중국과 한국 정부의 중재 노력, 최근 북한 내부의 경제적 곤란도 주요한 변수다. 결국, 미사일 시험발사라는 '비합리적'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상태에서, 북한 지도부는 미사일 시험발사보다 더 극단적인 행동(의 가능성)까지도 협상도구로 활용하는 전형적인 '전략적 행위자'의 길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미국의 최종 반응을 기다릴 것이다.

파국에 이르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대결 국면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불신('악의 축'인 북한과 '악의 본산'인 미국 사이)과 공포(북한의 '테러확산'과 미국의 '선제공격')에 사로잡혀 있는 북한과 미국의 지도부는 '선군정치'(북한의 '벼랑끝 전술'과 미국의 '악의적 무시')를 통해 딜레마적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려고 한다. 게다가 이러한 홉스적 상황은 양측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 사고의 한계 때문에 심화된다(북한에 대해서는 정희진, "치킨게임", 씨네21, 2006. 7. 28,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참조; 미국에 대해서는 임원혁, "악의적 무시와 벼랑끝 전술", 프레시안, 2006. 7. 5, <한반도 브리핑 12> 참조). 만일 양측이 자신들의 고유한 '목적-수단 추론'에 충실할 때, 자칫 사태의 악화는 압축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반복적인 북·미 대결국면에 휩쓸려야만 하는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고단한 시간이다.

동북아 탈냉전질서 흔들기

해는 기울고 몸은 고달플 때, 우리는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을 따져보아야 한다. 가야할 길이 갈라져 있고 짐승들의 소리가 소란스럽다면,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1990년대 초반 이루어진 한·소(러) 국교정상화(1990. 9. 30), 남북한 유엔동시가입(1991. 9. 17),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991. 12. 13), 한·중 수교(1992. 8. 24)는 동북아지역에서 냉전질서가 사라지고 탈냉전질서가 탄생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 시기 전후에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외교채널을 통한 비공식접촉들이 있었으며, 북한과 일본 사이에는 국교정상화를 위한 공식회담들이 열렸다.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된 동북아 탈냉전질서의 형성과정은 1993년 초 시작된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갈등으로 위기를 맞았으나,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통해 궤도 이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후반 북·미 관계 정상화 과정은 한편으로는 북한의 경제위기와 수세적인 생존전략,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내 보수진영의 견제로 진전을 보지 못하였고, 오히려 한반도에서는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동북아 탈냉전질서 형성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북한과 미국은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발표하였다. 북·미 관계 정상화(전면적 또는 근본적 개선) 노력, 한반도 평화보장체제 모색, 한반도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안전 강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중지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북·미 공동코뮈니케'는 북·미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는 듯했으나, 부시 정부의 등장으로 북·미 관계 정상화는 더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진전과 북한의 개혁·개방정책은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졌으며, 북한과 일본은 국교정상화와 경제협력을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 동북아 탈냉전질서의 형성이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국들 사이의 교차승인 또는 국교정상화를 기반으로 한다면, 2002년 9월 말은 미국 부시 행정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평화가 공고해질 수 있는 주요한 시점이었다.

문제는 새로이 형성되기 시작한 동북아 탈냉전질서가 탈냉전 이후 유일 세계패권국가인 미국의 이익에 대해, 특히 미국 네오콘 세력의 세계전략에 대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것이었다. 중국 경제의 부상과 한·중 경제관계의 심화, 남북관계의 발전과 남한 사회의 '동북아 지향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탈냉전질서 형성을 위한 한·중의 외교적 협력 강화는 '제국'을 꿈꾸는 미국 네오콘 세력에게는 악몽이 아닐 수 없었다. 부시 행정부는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하는 동북아 탈냉전질서의 약한 고리인 일본과 북한을 상대로 패권전략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점 하나는 네오콘 세력의 패권전략이 미국 내 전통적 보수진영의 대한반도 전략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대국의 세계적 세력균형전략'을 강조하던, 1976년 7월 당시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의 4자회담 제의를 읽어보면, 미국은 남북한에 대한 교차승인을 통한 한반도 및 동북아 질서 변화를 구상하였다. 다소 길지만 미국의 제안은 함께 읽어볼 만하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명백하다. 첫째, 북한의 동맹국이 한국과의 개선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때 가서야 미국도 북한에 대해 상응한 태도를 취할 것이다. 둘째, 우리는 한국의 궁극적인 통일에 대한 선입견 없이 유엔이 남북한에게 정회원 가입의 문호를 개방한다는 제의를 계속 지지한다. 셋째, 우리는 현재의 휴전협정을 쌍방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형태의 보다 항구적인 조치로 대체하거나 휴전협정의 새로운 근거에 대해 협상할 용의가 있다(박건영 외, 한반도평화보고서 - 한반도 위기극복과 평화정착의 방법론, 2002, 225쪽에서 재인용)."

1970년대 미국 공화당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에서 나타난 구상은 앞에서 우리가 살펴보았던 동북아 탈냉전질서 형성의 실제적 과정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다만 미국의 태도만이 바뀌었다.

다시 되돌아와서, 미국의 동북아 패권전략이 일본과 북한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자. 2002년 10월 이후 일본 고이즈미 정부의 대북정책을 포함한 대한반도정책이 어떠한 이유 때문에 그리고 어떠한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식 네오콘 전략으로 변질되었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지만, 일본 신보수집단의 '한반도 이슈화'는 분명 동북아에서 새로운 세력균형정치를 추구하던 미국 네오콘 세력과의 전략적 제휴를 보여준다.

한편 미국의 동북아 패권전략에 기초한 대북압박정책은 경제체제의 개혁·개방 및 한·중과의 경제협력 강화를 통해 경제발전과 체제안정을 모색하던 북한 지도부에게도 중대한 도전이었다. 압박이 해소되지 않고 위기가 다시 다가오고 있다고 느낄 때, 북한 지도부가 의지할 것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사유체계와 체제강화 전략뿐이었다.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는 북한 지도부에게 출구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두려움을 잊게 해주는 강력한 자기암시 기제다(위에 소개된 정희진의 글 참조).

한국의 선택

미국 네오콘 세력의 동북아 탈냉전질서 흔들기는 한국 내부에서 냉전적 사고방식 또는 전략과 공명하고 있다(김연철, "대북 포용정책을 다시 생각한다", 한겨레신문, 2006. 7. 19 참조). 아마도 더 심각한 사실은 대북포용정책의 발전적 계승을 선언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여론에 휘둘려 방향성을 잃어버렸으며(프레시안, "위기의 남북관계 상/하", 2006. 7. 21-23 참조), 이와 함께 남북관계 개선·발전과 함께 남한 사회 내부에서 형성되었던 '평화의 지배블록'이 깨어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하겠다(서동만, "'평화의 지배블록' 깨뜨린 참여정부의 과오", 프레시안, 2006. 6. 7., <한반도 브리핑 8> 참조). 바로 이런 측면에서 현 단계 북·미 대결국면은 단기적 관점을 넘어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검토를 요구한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의 한반도 정세를 탈냉전 이후 동북아 질서의 장기적 변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대응을 포함한 현재의 상황 전개는 주목할 점이 매우 많다.

첫째, 한국 정부나 시민사회는 9·19공동성명에 대한 과소/과잉 해석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9·19공동성명이 북·미 갈등을 넘어 동북아 탈냉전질서의 형성·공고화와 관련하여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충분히 지적되지 못하고 있다. 9·19공동성명은 6자회담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미국 부시 행정부의 동북아 탈냉전질서 흔들기와 북한 지도부의 '어긋나기'에 대한 동북아 국가들의 '평화주의적 대응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를 장기적인 동북아 질서 변화 과정에서 파악하지 않음으로써, 대부분의 여론은 북한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편협한 관점을 보이고 있다. 사실 북한 미사일 시험발사는 '부정적 방식'이지만, 좁게는 북·미 갈등의 교착된 구조에 대해, 넓게는 아직 정착되지 못한 동북아 탈냉전질서의 한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한 북한 지도부의 인식과 관련해서는 정창현, "최근 한반도 정세와 북한의 동향 - 제2회 코리아포럼(2006. 6. 2)" 발표문 참조). 북한은 동북아 지역국가들에게 미국이 주도하면서 북한을 배제하는 동북아 패권질서를 조건없이 수용할 것인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셋째,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는 현재의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장기적 방안과 관련하여 정책기조나 행동원칙에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 점과 관련해서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예정되어 있던 8·15 평양 통일대축전이 북한 지역의 수해로 취소된 상황에서, 한국 정부나 시민사회가 북한 지도부에게 남북관계에 대한 일관된 원칙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이미 미사일 시험발사와 연계하여 인도주의적 식량·비료 지원을 중단한 상태에서, 남한 정부가 북한 지도부로부터 신뢰를 다시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003년 초 대북송금 특검과 관련한 경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 정부는 '자신도 모르게' 인도도주의적 지원과 군사·안보 문제를 연결시켜 버리며 기껏해야 언행일치가 되지 않은 '홍보'나 듣기 좋은 원칙의 나열만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19일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 ⓒ연합뉴스

우리의 추론 능력은 '제2차 북한 미사일 위기' 앞에서 잠시 멈추어 있다. '자신도 모르게' 인도주의적 지원과 군사·안보 문제를 연결시켜 버린 정부 당국자나 미국 네오콘 세력의 동북아 탈냉전질서 흔들기에 동참한 보수진영이나, 모두 한반도 위기 상황의 탈출과 관련해서 납득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언행일치가 되지 않은 '홍보'나 듣기 좋은 원칙의 나열만이 나돌고 있다. '아쉽게도' 여론에 휩쓸려 '북한식 추론'은 자취를 감추었다.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들끓던 국내 여론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 이후 잠잠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여론전이 끝났기 때문인가, 아니면 현재의 상황이 만족스럽기 때문인가.

거칠지만 두 개의 지적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자. 먼저, 한국 사회는 '지금'부터 '위기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자신들에게 고유한 사고·행동방식에 충실할 때, 한국 사회도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관련한 자신만의 '고유한' 사유체계와 정책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한국이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고유한 역할과 지위를 잃어버린다면, 위기 이후에 형성될 동북아 질서─탈냉전이든 신냉전이든─에서 한국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국 정부의 행보와 비교되고 있는 중국 정부의 행보에 대해 조심스러운 평가가 필요하다. 한반도의 안정화와 비핵화를 위해 중국이 이미 몇 년 전부터,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보여주고 있는 외교적 노력은 동북아 탈냉전질서의 형성과 관련하여 중국이 가지게 될 '미래의 자산'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와 관련해서는 김종오, "미군이 압록·두만강까지 밀려오는데 - 중국, 정말 미워도 북한 포기 못할 것", 오마이뉴스, 2006. 7. 30 인터뷰 기사 참조).

다음으로, 현 단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 시민사회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백낙청, "시민참여형 통일과 민간통일운동", 창비주간논평, 2006. 7. 25). 북한 수재민을 돕기 위한 인도주의적 운동은 현 상황의 흐름과 분위기를 바꾸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한국제이티에스(JTS),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북한 수재민 돕기 운동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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