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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현희의 입을 누가 막고 있나"

[기자의 눈] 국정원은 김현희 직접조사에 적극성 보여야

1987년 11월말 추락한 KAL858기 사건 재조사에 나선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진실위)는 1일 발표에 이르기까지 지난 1년 여 동안 방대한 자료 검증 및 실사 작업을 벌였다. 여러 유가족회, 시민단체들이 각종 의혹을 제기해 온 7400쪽 분량의 책자와 자료, 신문과 잡지 500여 쪽, 유사 항공사고 조사보고서 300여 쪽, 한국과 일본에서 전파를 탄 의혹 제기 방송물 9편 등을 샅샅이 뒤졌다. 수차례의 출장 끝에 미얀마 인근 해저에서 KAL858기의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도 찾았다.

당시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던 자료만도 12만8000쪽이었고, 그밖에 증거물 144건, 사진 2000여 장, 비디오테이프도 73개나 됐다. 기타 정부기관과 대한항공 측의 자료문건도 1만3900쪽이 이르렀다.

진실위 측은 당시 사건 조사와 김현희 호송을 맡았던 안기부 직원 4명을 비롯해 외무부, 교통부, 대한항공 직원 등을 만났고, '파괴공작'이라는 저서를 쓴 일본인 노다 미네오 씨를 비롯해 유가족과 기자, 미얀마 군부까지 이 사람 저 사람 안 가리고 만났다. 그렇게 해서 추려낸 KAL858기 사건 관련 의혹은 모두 320건.

이런 내용들을 검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항공기, 폭발물과 같은 전문적 지식이 필요했고, 북한의 공작 방식, 김현희ㆍ김승일의 행적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KAL기가 추락한 지점이 미얀마여서 잔해를 수색하는 일도 더디고 힘든 일이었다. 바다에서 잔해를 수색하던 국정원 직원은 '쓰나미'를 만나 구사일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 끝에 마침내 1일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폭파사건 자체가 북풍을 노린 안기부의 자작극이다', '김현희는 이중간첩으로 안기부 공작원이다', 'KAL858기는 기체 결함으로 추락했는데 안기부가 이를 폭파사건으로 뒤집어 씌웠다'는 등의 의혹들이 결국 사실무근인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특히 바다에 묻힌 KAL858기 동체에 대한 정밀수색이 이뤄진다면 '과연 폭파해 추락했느냐'는 의혹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발표는 무엇인가 미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뭔가 꼭 필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얘기다. 요샛말로 "2%가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로 사건 당사자인 김현희의 진술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2%'라기보다는 사실 '98%'에 해당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당장 'KAL858기 가족회'는 "김현희에 대해 단 한 차례의 조사도 하지 못한 채 발표되는 이 중간발표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국정원과 국정원 진실위에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발표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 국정원과 국정원 진실위 모두가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김현희의 진술이 없는 조사 결과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이 대목에 관한 한, 국정원 진실위 측도 불만이긴 마찬가지다. 진실위 측은 1일 이례적으로 별도의 '김현희 면담 추진 경과 설명문'을 내고 "2005년 10월부터 국정원을 통해 10여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을 통한 면담 요청이 번번이 거부되자 직접 접촉을 시도했으나, 국정원 측은 '개인 정보보호와 신변 안전'을 이유로 거주지는 물론 전화번호조차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히려 국정원을 통해 "김현희 부부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국정원 진실위 관계자는 김현희의 '배신감' 발언에 대해 "국정원이 진실위를 꾸려 KAL기 사건을 재조사한다는 것 자체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 동안 김현희와 국정원 사이에 어떤 대화와 약속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스스로의 입으로 얘기한 바와 같이 115명의 목숨을 앗아간 '죄인'이다. 그가 입에 발린 사죄가 아니라 마음 깊이 그 죄과를 반추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한번이라도 그런 노력을 해보기라도 했던 것인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KAL858기 사건 의혹이 19년 동안 눈덩이처럼 부풀려져 온 과정에는 김현희 본인의 책임도 크다. 사진 속의 엉뚱한 인물을 자신이라고 지목했고, 기내에 반입한 폭탄도 라디오와 술병이라고 진술했으나 술병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아버지가 존재하지도 않는 북한의 앙골라 대표부 주재원이라고 진술해 여러 차례 혼선을 빚었다. 그런가 하면, '특수공작원'이 범행 직후 왜 바레인에 가서 머물다 체포됐는지, 바레인에서는 무엇을 했는지, 체포된 직후 그녀가 씹은 캡슐이 청산가리인지 아닌지 등 여전히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의혹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처럼 김현희의 태도도 문제이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이와 관련된 국정원의 처신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은 월남한 이한영 씨가 남파 공작원에 의해 피살된 점,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등의 이유를 대며 김현희와 접촉할 수 있는 방식을 진실위 측에 알려주지 않고 있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참다못한 진실위 측이 경찰을 통해 김현희의 주소를 알아냈지만, 실거주지는 주소지와 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도 김현희의 면담을 위해 수차례 설득을 시도했다고는 하지만, '안되면 말고'라는 식은 곤란하다.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는 허술하게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해 의혹 제기의 원인을 제공했고, 나아가 이 사건을 당시 대선 전략에 이용하는 최선봉에 있었던 당사자다. 바로 이런 안기부 덕분에 유가족들이 스스로 사건의 진상규명에 나서는 등 19년간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KAL858기 유가족 중 한 사람은 한동안 '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내 남편 같아서' 비행기를 타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항공기 추락ㆍ테러와 같은 재난 영화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이다. 시신은커녕 소지품 하나 받아 보질 못해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 있는 것 아니냐"는 환상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김현희와 국정원은 이런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외면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우선 김현희는 그 자신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을 경우 남은 의혹이 또 다시 꼬리에 꼬리를 물 것임을 알아야 한다. 현 상황에서 그가 입을 닫고 있는 한 KAL858기 추락의 원인은 가설에 가설이 덧붙어지며 확대재생산 될 것이며, 그 자신의 '이중간첩설' 등과 같은 의혹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의혹이 남아 있는 한 유가족들의 원(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국정원 진실위가 사라져도 그는 다음 정권, 그리고 또 그 다음 정권 기간에 어딘가로 불려 다니게 될 것이며, 그것이 싫으면 평생 숨어 살아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영화 한 편 제대로 못 봤다는 한 유가족은 "자식들에게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면 자신의 고통이 자식들에게도 유전될까봐 남편이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병원을 찾아다니며 장애를 극복했다"고 한다. 두 자녀의 어머니가 된 김현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아가 어머니로서 그 자신의 몫이 무엇인지 직시해야 한다.

나아가 국정원도 의혹의 확대재생산자 위치에서 내려와야 한다.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김현희와 진실위 측의 대면을 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스스로 풀어야 한다. 김현희가 그 대면을 꺼리더라도 인륜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들어 그를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의혹의 악순환의 주요 고리였던 국정원 측이 그 고리를 끊는 역할을 스스로 맡아야 한다. 그것은 이 진실위를 설치한 김승규 국정원장의 의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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