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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또 다시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

<해외시각>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미국의 자기충족적 예언

다음은 미국 사회과학연구원의 리언 시걸 박사가 북한 미사일 발사의 원인과 전망,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향후 대북 정책을 분석한 글이다.

<뉴욕타임스> 논설위원 출신으로 <미국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Disarming Stranger)>(사회평론 간)라는 저서를 통해 제1차 북핵위기가 1994년 제네바합의로 해결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던 시걸은 이 글에서 제네바합의에서부터 최근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에 이르는 12년간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최근 조성된 한반도 위기의 근원을 밝혀냈다. 그것은 북한과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고 직접 대화마저 거부한 미국의 태도다.

'미국 내에서 한반도를 제대로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히고 있는 시걸 박사는 6자회담을 미국에 대한 북한의 '항복 메커니즘'으로 여기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으로 북한은 더 위험한 나라가 됐고 따라서 그 책임은 부시 행정부에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정당한 무역 거래에 따라 발생한 현금까지 막고 있는 미국의 금융제재는 무리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시걸은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의 '자기충족적인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객관적 현실에 바탕을 둔 판단이 아니라, 자신의 일방적 예측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결국은 그 예측이 현실화되도록 하는 것을 말함)'이 계속되는 한 한반도의 위기는 쉽게 해소될 수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6자회담과 북미 양자접촉은 물론 남북대화까지 막힌 현 시점에서 위기의 근원을 따져보는 일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글은 지난달 27일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의 포럼에서 발표됐으며, 동아시아 전문 사이트인 재팬포커스(www.japanfocus.org)에도 실려 있다. <편집자>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의미하는 것

만장일치로 통과된,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시험발사를 비난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은 북한과 조지 부시 미 행정부에게 협상을 거부하는 핑계거리를 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결의안은 핵심을 빗겨난 것이다.

대포동 2호 미사일 시험발사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한 북한의 돌발행동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미 10개월 전 6자회담에서 마련된 돌파구의 발목을 잡았던 미국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9월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라는 일본과 한국의 압력에 떠밀려 중국이 초안을 만든 공동성명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 성명에는 북한의 전략적 결정에 따라 부시 행정부가 추구해 왔던 핵심 목표인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폐기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이 과연 그 성명을 실천에 옮길 생각이 있는가? 김정일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외교적인 주고받기(give and take)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북한이 공동성명에서 합의했듯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면 미국이 북한과의 화해-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단계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들은 바로 그런 조치들을 거부했다. 제2차 6자회담이 열리기 전인 2004년 2월 중국이 9.19공동성명의 효시가 됐던 초안을 회람했을 때 딕 체니 부통령은 그것을 거부했다. "우리는 악(惡)의 무리와는 협상하지 않는다. 그들을 패배시킬 뿐이다." 그는 최고위 관리들과의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경파들은 외교적인 주고받기를 악행(惡行)에 대한 보상이라고 규정한다. 강경파들의 입장은 김정일이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중단한 대신 비밀리에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우라늄 농축을 시작함으로써 클린턴 대통령을 속였다는 허구적인 상상(fiction) 위에 서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 전임자인 클린턴은 성실한 자세로 제네바합의를 이행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합의 상대방을 존중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러지 않았다. 그 합의가 이행되고 있다고 여기는 동안 북한은 우라늄을 농축하고 있었다."

제네바합의와 9.19공동성명 파기는 미국이 먼저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의 선행(善行)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음으로써 1994년 제네바합의를 먼저 깼다는 데에 있다. 미국은 자신들이 그토록 원했던 플루토늄 프로그램 동결을 얻어냈다. 북한은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동결하지 않았다면 그 프로그램을 통해 2002년까지 최소 50개의 핵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제네바합의가 체결된 지 며칠 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40여 년만에) 의회를 장악한 미 공화당은 그 합의를 '유화책'이라고 비난했다. 클린턴은 그들과의 말다툼을 피하기 위해 합의 이행을 후퇴시켰다. 그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2000년이 되도록 거의 풀지 않았다. 미국은 "2003년까지" 2기의 경수로를 지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2002년 8월까지 기반 공사를 위한 콘크리트 타설도 하지 않았다. 단지 중유만은 약속대로 공급하긴 했지만 가끔 시한을 어기기도 했다. 미국이 "양국의 정치·경제적 관계를 전면적으로 정상화"해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제재를 해소하겠다는 기본합의서 2항의 선언을 지키지 않은 것은 더 큰 문제였다.
▲미국은 1994년 체결된 제네바합의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의 반발을 샀다. 사진은 제네바합의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와 강석주. ⓒ연합뉴스

미국의 합의 이행이 늦어지자 북한은 1997년,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위협했다. 그 직후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를 파키스탄으로부터 획득했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그 원심분리가가 본격적인 우라늄 농축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은 실험실 수준의 기초 프로그램(pilot program)에 불과했다. 물론 북한은 2001년부터 본격적인 우라늄농축을 위한 준비에 나섰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를 빌미로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북한의 핵시설들을 선제 핵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2002년 11월 부시 행정부는 제네바합의에 따른 중유 공급을 중단시키는 보복 조취를 취했고, 그에 따라 북한은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재개했다.

9.19공동성명 이후 강경파들은 또다시 일어났다. 체니와 강경파들은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약속을 어기고 미국측 협상가들을 바보로 만들면서 공격을 가했다.

미국은 한국, 일본, 중국에 떠밀려 북한이 핵 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존중"하고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데에 동의했다. 경수로는 1994년에도 약속했지만 주지 않았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공동성명 서명 직후 있었던 종결발언에서 경수로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국제 컨소시엄인 "케도(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종료"하겠다고, 강경파들이 지시한 대로 발표했다. 그날 저녁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경수로 제공을 논의할 "적절한 시기"는 북한의 핵폐기가 완료된 뒤에나 올 것이라고 속내를 내비쳤다. "북한이 핵무기와 여타의 핵 프로그램들을 검증가능하게 폐기하고 진정한 비핵국이 됐을 때, 우리는 무엇이건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은 강력 반발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북미간의 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지난 시기 형성된 양국간의 불신을 제거하는 게 기본이고, 상호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물적 토대는 바로 미국의 경수로 제공"이라며 "미국은 신뢰 조성의 물리적 담보인 경수로 제공이 없이는 우리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 억제력을 포기하는 문제에 대해 꿈도 꾸지 말라"고 말했다. "신뢰 구축을 위한 물적 토대" 혹은 "신뢰 조성의 물적 담보"로서의 경수로를 대체할 만한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핵을 폐기하기 전에 미국이 경수로를 제공해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이 계속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 북한은 한국이 경수로 2기에 해당하는 전력을 제공하는 데에 미국이 관여하지 않는다면 그런 주장을 계속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는 9.19공동성명에서 "미국은 핵무기 혹은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면서 군사 공격과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시도하지 않고 "북한의 주권을 존중한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뒷걸음질 쳤다. 강경파들의 압력에 또한번 떠밀린 힐 차관보는 그 후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 "테이블 위에는 모든 옵션이 놓여 있다"는 낡은 노래가사를 읊어 9.19공동성명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켰다.

과도한 금융제재…6자회담은 '항복 메커니즘'

부시 행정부는 또 불법행위방지구상(Illicit Activities Initiative)에 따른 대북 제재를 시작해 상황을 최악으로 만들었다. 미국이 북한에 의한 자국 화폐의 위조와 여타의 불법 행위들로 얻은 이득을 봉쇄함으로써 그같은 행위들을 막으려 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합법적인 경제활동에 따른 현금 계좌마저 동결하고, 정당한 무역 활동을 방해하는 것은 북한의 경제 개혁을 촉구하기 위한 방법 치고는 기이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북한은 계좌 동결 해제를 공개적으로 요구해 왔다. 그 후 북한은 지난 3월 7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제안을 내놨지만 미국은 즉각 거절했다. 첫번째 제안은 미국 은행을 통해 현금거래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정당한 무역을 통해 번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두번째는 북미 양국이 돈세탁과 위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상임 협의체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북한이 그처럼 북미 직접대화를 중시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미국이 일대일 만남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거나 주권을 존중해 주겠는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한사코 거부하는 미국과 '금융제재 해제 없이 6자회담 복귀 불가'를 고수하는 북한 사이의 접점은 없는가. 사진은 지난달 28일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퍼럼(ARF)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백남순 북한 외상을 외면한 채 돌아서는 모습 ⓒEPA

부시 행정부 내에는 두 가지 상충된 시각이 존재한다. 북한이 붕괴하기를 기다리면서도, 대북 제재를 외교적인 주고받기를 봉쇄하는 방법으로 여기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불법적인 무역과 상관없는 북한 계좌에 대한 동결을 푸는 대신 정당한 무역에 필요한 여타의 북한 계좌를 폐쇄하도록 은행들을 압박하고 있다.

한 고위 관리는 부시 행정부가 "더 대결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국무부의 로버트 조지프 차관은 "그같은 조치들은 6자회담의 성공 전망을 밝게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성공이란 무엇인가? 국무부의 다른 고위급 관리에 따르면 그것은 6자회담을 "(미국에 대한) 항복의 메커니즘"으로 만드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니다.

힐 차관보는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에 가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지만 북한이 영변 원자로를 폐쇄하지 않을 경우 어떤 접촉도 있을 수 없다며 저지당했다. 힐 차관보는 4월 11~12일 도쿄(동북아시아협력대화 NEACD)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접촉하는 것도 저지당했다. 그러자 김계관 부상은 "이제 우리는 미국의 입장이 무엇인지 알았다"며 "6자회담 재개가 늦어진다고 해도 우리가 아쉬울 것은 없다. 그동안 우리는 더 많은 억지력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 강경파들의 '자기충족적인 예언'

북한은 핵 재처리와 미사일 발사를 위협하는 한편으로 일본에 손을 내밀었다. 김계관 부상의 그같은 언급이 있던 날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담당대사는 일본이 납치 문제에 대해 한국을 끌어들이려 한다고 비난하면서도 "우리는 양국간의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 방법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지속할 용의가 있다. 우리는 언제라도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4월 14일) 북한의 2인자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납치 문제와 관련해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평양선언 이행에 나서면 해결하지 못할 현안이 없다"고 말하며 일본에 유화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같은 발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두번째 정상회담에서 "북미 양국의 관계 개선은 일본의 동맹국들이 취할 태도와 입장에 달려 있다"고 말한 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협상을 계속하는 대신 대북 제재 내용을 답은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 후 북한은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를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밝혀왔듯이 미국이 적대관계를 종식시킨다면 북한은 무장을 해제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적국을 다루듯이 북한을 대한다면 북한은 위협을 느낄 것이고, 미사일이 제대로 작동될 때까지 시험발사를 계속할 것이며,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도 있다.

북한은 1998년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중단했고 2000년에는 장거리 미사일의 시험발사와 배치,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2001년부터 북한과의 대화를 중지시켰다. 북한은 과거 1,2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했고 그 핵 프로그램은 검증가능한 상태로 동결됐다. 엄포와 위협으로 점철된 부시 행정부 6년이 경과하면서 북한은 8~10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하게 됐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들은 북한이 핵무장을 결정했고 그 무기들을 결코 (협상에 의해)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의 이같은 생각은 단순한 신념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충족적인 예언이다. 북한과 협상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없다면 그들은 예언은 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번역=황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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