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가 벌이고 있는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시리아, 이란, 그리고 미국이 국지적인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빈 라덴, 이슬람, 그리고 미국의 새로운 '대 테러 전쟁'> <사우디 아라비아를 위한 전투 : 충성, 근본주의, 그리고 세계권력> 등의 저자인 아사드 아부할릴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레바논 사태를 국제적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증거로 보고 있다.
그 음모는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 1559호를 실행에 옮기려는 것이라는 얘기다.
알 자지라 방송은 18일 최근 레바논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온 아부할릴 캘리포니아 주립대 정치학 교수와 레바논 사태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웹사이트에 게재했다.(원문보기)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 묻어둔 40만 개의 지뢰
-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공격하는 명분으로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에 대한 자기 방어와 헤즈볼라에 납치된 2명의 자국 병사 구출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이후 오랫동안 분쟁 지역이 된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아간 사람들을 빼내기 위해 간접적인 방식의 협상을 원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처럼 급속히 그리고 폭력적으로 악화된 이유는 뭔가.
"이번 분쟁과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즉흥적으로 행동한 게 아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했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놀란 건 아니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포로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협상을 위해 이스라엘 병사들을 납치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해 왔다.
이스라엘도 2000년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한 이후 손 놓고 지낸 게 아니다. 레바논 남부 일부 지역을 여전히 점령해 왔으며, 육.해.공 전 영역에 걸쳐 레바논의 주권을 침범해 왔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무고한 레바논 주민들을 납치해 왔다. 납치된 주민들 중에는 어부도 있고, 양치기도 있다. 내 고향이기도 한 티레에 사는 한 어부는 지금도 행방불명이며, 양치기 한 명은 지난해 살해됐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에 설치한 40만 개에 달하는 지뢰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레바논에 넘겨주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해 왔다. 지금도 레바논 어린이들이 이 지역에서 지뢰를 밟아 사망하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로빈 라이트가 17일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이번 위기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1559호를 이행하려는 국제적/지역적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공격의 출발점은 2005년 2월 암살당한 라피크 알-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가 2004년에 진행했던 일과 연관돼 있다. 그는 미국 및 프랑스와 공조해 1599호 결의안을 관철시켰다.
이 결의안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등 아랍 정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이행되지 못할 것이며, 헤즈볼라는 무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를 설득해 무장해제를 시키고, 레바논 정부군이 레바논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 이스라엘의 목표와 헤즈볼라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행위는 종종 복수심을 동반한다. 시온주의는 복수심이 가득한 운동이다. 항상 그래 왔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무장해제 하려는 결의안 1559호가 실행되기를 원할 뿐 아니라, 1982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레바논에 미국의 조종을 받는 괴뢰정권을 세우길 원하고 있다.
이같은 계획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레바논에 대한 모든 거창한 계획들은 여러 종파로 갈라진 이 나라를 뿌리 채 흔드는 것이다.
헤즈볼라의 경우는 이스라엘과 포로 교환을 하고 나아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을 저지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이번 일을 시작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은 무력을 유지하는 것이며, 레바논 최대 종파인 시아파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강점도 있다."
이스라엘-레바논 분쟁의 양측은 결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주민 수십 명이 이번 공격으로 사망했는데도 국제사회에서 별 움직임이 없다. 휴전을 위해 중재하려는 노력이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보기 때문인가.
"소위 '국제사회'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정부의 통제를 받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 왔다. 그들의 침묵은 레바논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지난 2년간 국제사회는 레바논과 그 주민들의 안위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말들이 거짓임을 이제는 사람들이 알게 됐다.
또한 국제사회의 침묵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목숨이 아랍 사람들의 목숨보다 가치가 있다는 인종차별적인 동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아랍인들의 생명이 이 지역에 사는 제국의 후손들의 목숨보다 귀중하게 취급된 적은 결코 없었다.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가 대등한 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려고 선전하고 있지만,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번 분쟁에서 양측은 결코 대등하지 않다.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도 우세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무고한 시민들을 대량 살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 레바논 국민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어느 쪽을 탓하고 있나.
"레바논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살육과 공격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레바논의 친 사우디아리비아 인사들은 이번 사태를 헤즈볼라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는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레바논에서는 어떤 현안에 대해서건 통일된 여론이 형성된 적이 없다. 헤즈볼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헤즈볼라가 추구하는 이념을 지지하지 않는 레바논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공격에 대항하는 유일한 세력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 미국의 유엔대사인 존 볼튼은 이란과 시리아가 헤즈볼라를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비난받을 대상이라는 점을 시사했는데….
"존 볼튼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는 불과 몇 개월 전에 레바논 내각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헤즈볼라가 이란과 시리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레바논 내각이 미국, 프랑스,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의 지원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스라엘도 간접적으로 레바논 현 내각을 지원하고 있을 것이다."
이란·시리아와 미국의 '적대적 공생관계'
- 이스라엘의 다음 공격 대상이 시리아나 이란이 될 것인가. 그렇게 되면 전면적인 지역 전쟁이 벌어지고, 미국이 개입하게 될 것인가.
"현단계에서는 이스라엘이 이란과 시리아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 상황도 호전되지 않았는데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미국/유럽연합/유엔이 이번 사태를 이스라엘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압력과 제재수단을 동원해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와 이란이 공격을 받게 되면 이 지역에 대한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계획도 더 많은 도전과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이란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미국이 점령하는 작전을 간접적으로 도왔다. 시리아도 최근 미군의 이라크 점령에 협조하고 있다.
이란과 시리아가 공격을 받는다면 이들은 쉽사리 미국에게 손실을 안겨줄 수 있다. 미국이 이란이나 시리아에 대한 공격 승인을 꺼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이라크에서는 내전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레바논 사태가 이라크에도 영향을 미칠까.
"전개되는 상황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계속하도록 허용된다면 시리아와 이란은 위협을 느끼게 되어 이라크에 주둔시킨 그들의 병력이 미국에 적대적으로 바뀌게 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이라크에서 더욱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번 대학살극은 중동 전체에 걸쳐 영향을 미칠 껏이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이 지역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포함한 무장세력이 태동하게 됐다.
사태가 진정되면 모든 것이 정상을 되찾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중동의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역사에서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은 하나의 분수령을 이룰 것이다. 향후 양측의 분쟁의 진로에 영향이 미칠 뿐 아니라 미국이 돈과 무기를 쏟아부어 지탱해 온 정권들의 안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이 이번 사태를 끝내길 원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
- 중동의 최대 막후 세력인 미국이 이번 사태를 종식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미국이 이번 사태를 끝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식하거나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하도록 승인한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아랍인들을 어떻게 죽이든, 얼마나 많은 아랍인들을 죽이길 원하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 일부 아랍국가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헤즈볼라와 헤즈볼라 지원세력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과 이라크 내 일부 무장세력은 헤즈볼라를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아랍-이스라엘 분쟁이 시아파-수니파 갈등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는가.
"그렇다. 사우디 정부는 중동에서 시아파-수니파 분쟁을 공식적 인정하고 있다. 이같은 방침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정책은 일부 아랍국가들의 안정성을 흔들기 쉽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예외가 아니다.
이 때문에 수니파-시아파 분열 정책은 불장난처럼 위험한 것이다. 미국의 분열 정책이 이라크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 레바논 정부가 이번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번 사태로 레바논의 집권연립에서 하리리 파벌은 더욱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무능하거나, 미국/이스라엘/사우디의 대 레바논 정책에 은밀히 협조한 집단으로 인식될 것이다.
인도주의적 측면에서조차 레바논 정부는 난민들의 기본적인 요구조차 해결해주지 못할 정도다."
- 최근 몇 달간 레바논은 경기부양과 관광경기 호조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는 관측이 일반적이었다. 레바논 국민들은 자신들이 애써 재건한 기반시설들이 여기저기 파괴되고 있는 현상황에서 어떤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있나.
"레바논 국민들, 특히 남부 지역 주민들은 이스라엘로부터 수십 차례의 습격과 공격을 당해 왔다. 그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으로 잘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재건과 복구로 최대한 정상적인 생활을 재개하는 능력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복구작업에 필요한 자금에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하리리 정부 시절에도 외채 때문에 레바논의 독립과 주권이 상당히 훼손된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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