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도 미끄럼틀도 장난감도 없는 그곳이 무에 그리 신날까 싶지만, 매연으로 가득한 도심지와 수백만 평의 너른 논밭으로 둘러싸인 대추리의 공기의 차이를 꼬마의 몸이 본능적으로 알아챘을 것이다. 포크레인과 군홧발에 유린당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자연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땅,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존재들 사이의 내밀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그 꼬마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에서 느낀다. 그 웃음소리만으로도 대추리가 지켜질 것처럼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서로가 함부로 발설하지 않으려는 불안과 공포와 패배 따위의 언어들이 그 웃음을 일거에 뚝 그치게 만들 것임을 안다. 그리고 다시는 웃지 못하게 만들 것임을 안다. 그래서 그 천진무구한 웃음이 나는 때때로 무섭다. 네 몸이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을 그 땅의 숨통을 틀어막는 콘크리트와 기름과 총탄이 어디에서 오는지, 네 머리를 쓰다듬고 네게 사탕을 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지, 나는 이해시킬 자신이 없다.
그것이 대통령 할아버지가 시킨 일이라고 한 마디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세고 잘 사는 나라 미국이 시킨 일이라고 한 마디 더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때 아이는 불가사의한 피라미드 앞에 선 기분일 것이다. 대추리를 다녀간 아이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야만의 시대를 깨우칠 것이다. 그것이 아이의 웃음을 앗아간, 아이의 몸속에서 땅의 숨결을 빼앗아간 이유랍시고 말해야 하는 일이 나는 무섭다. 화산이 폭발해서, 지진이 나서 그랬다고 할 수 있다면 훨씬 편할 것이다.
70~80년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이 바랐던 것은 별 게 아니다. 그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랐다. 누가 누구를 해코지하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고, 목숨 있는 것들 숨쉬게 하는, 고작 그 정도였다. 아이에게 우리가 입이 닳도록 가르치는 그 정도의 일이었다. 대추리도,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는 그 시절 하고도 이십 년이 지난 지금, 고작 그 정도의 상식도 통하지 않는다.
침략전쟁을 지원하며 미국과 같은 전범의 대열에 합류한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상생을 외치며 천성산과 새만금을 죽이고, '사업'을 위해서는 국가폭력를 한 점 부끄럼도 없이 휘두르는 야만만이 날뛰고 있을 뿐이다. 야만을 더욱 야만스럽게 만드는 것은 정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비열하게도,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고 따뜻하다고 가르친다.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은 권력과 자본이 가는 길 위에만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자유와 인권과 생명이 가는 길은 가시밭이고 피투성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대추리는 또다시 국가폭력의 광기와 맞서야 한다. 빈집을 철거하겠단다. 그 다음에는 사람 사는 집도 철거하겠단다. 그러니 국가사업에 거치적거리는 것들은 모두 다 사라져 버리란다. 청와대가 모든 것을 책임질 테니 차질 없이 집행하란다. 그 이름도 아름다운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 이제는 '여명의 대추리'쯤으로 둔갑해서 들이닥칠 것이다. 공권력의 막강한 물리력을 누가 당해내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예술인들은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미술인들은 그림을 그리고 설치작품을 세우고, 가수들은 노래를 하고, 문인들은 글을 쓸 것이다. 대추리는 더욱 아름답게 가꿔질 것이고, 더욱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대추리 병'에 걸리게 만들 것이다. 서울에서도 대추리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고, 더욱 강렬하게 더욱 끈질기게 전파될 것이다. 예술은 폭력 앞에 무릎 꿇지 않는다. 그것이 야만의 시대를 살아내는 우리의 몫이고 힘이다.
근 두 달 동안 글을 써 보내준 스물한 분의 시인과 소설가와 평론가에게 감사드린다. 5월 4일 현장에서 싸우다 병원 신세를 진 작가들, 함께하지 못함을 미안해하며 고통 어린 음성으로 수없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던 작가들, 촛불집회와 범국민대회 참석해 분노와 안타까움을 곱씹었던 작가들, '평택 들이 운다' 문화제에서 사인회를 통해 독자들에게 동참과 도움을 호소한 작가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우리는 이 땅의 평화와 인간의 존엄을 위해 몸으로 글로 함께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난번 박일환 시인의 글을 마지막으로 릴레이 기고를 마치며, 이 글들이 대추리의 진실을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6월 7일 '평택 들이 운다' 문화제에서 작가 다섯 명이 함께 낭송했던 시 한 편을 옮기며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이 시는 문정현 신부님이 군인들이 점령한 들녘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고 쓰기 시작한 것이다. 포크레인이 구덩이를 파면서 거의 강둑 수준으로 쌓아놓은 흙무더기 위를 대추리 할머니 한 분이 위태위태하게 걸어가셨다. 철조망 너머에 있는 보리밭에 가시는 길이었다. 할머니는 결국 철조망에 가로막혀 보리밭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고, 얼마 전 겨우 거둔 보리는 수확 시기를 한참 놓쳐 쭉정이가 태반이었다고 한다.
할머니 철조망 넘어 보리밭 가신다 1 할머니 철조망 너머 보리밭 가신다 황금빛으로 물든 보리밭 가신다 저 너른 들판에 난데없이 산이 솟고 강이 흐르고 할머니 철조망 너머 산을 넘고 넘어 보리밭 가신다 2 내 팔십 평생 땅 한 뙈기 갖는 게 소원이었소 미군들은 불도저로 집을 부수고 총질을 해대며 이곳에 왔소 새끼들 들쳐 업고 솥단지 끌어안고 쫓겨났소 개흙과 씨름하며 허리 한번 펴지 못했소 억만 번의 가래질로 바닷물을 막았소 그러나 행복했소 넉넉한 날갯짓으로 날아오는 황새가 있었소 땀방울 마를 날 없던 이 보잘것없는 육신을 씻어주던 바람이 있었소 내 한숨과 시름을, 웃음과 울음을 굽어 살피던 하늘이 있었소 평생 땅이나 파고 살았지만 나 그 말씀 다 알아들었소 3 땅에 무엇 하나 심어본 사람은 안다 써레질 마친 무논 깊이 발을 담그고 부드러운 땅의 속살에 발 담가본 사람은 안다 거친 발바닥을 부드럽게 받아주시던 그 마음 욕심 없이 살라며 비워두고 황새 몇 마리 날려주시던 그 마음 안다 그러나 땅의 말씀, 하늘의 말씀 한 마디 듣지 못하는 저들은 땅을 가르고 하늘을 가르고 사람을 가른다 철조망에 갇힌 저 낱알들의 통곡 소리 들리지 않는가 철조망에 갇힌 저 어린 자식들의 비명 소리 들리지 않는가 4 땅은 질었고 학교는 멀었소 황새울을 가로질러 도두리를 지나 꽃산을 넘어 학교에 갔소 보릿고개였소 배고픈 시절이었소 그러나 아름다웠소 쌀 한 되 두 되 모아 땅을 사고 맨손으로 학교를 지었소 아이들이 철조망을 따라 학교를 다녔소 헬기가 창문과 책상을 흔들고 지나가도 낙하산이 운동장에 떨어져도 누구 하나 미군을 원망하지 않았소 저 높이 솟은 물탱크와 레이돔도 이웃처럼 정겨웠소 5 할머니 담벼락을 치며 통곡하신다 길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치신다 임종조차 가까이서 지켜보지 못해 천 갈래 만 갈래 가슴 찢어지신다 다 부서지기 전에 한번만 더 보게 해달라며 애원하던 할머니 시커먼 방패 앞에 학교보다 먼저 무너지신다 6 그날의 작전명이 '여명의 황새울'이라 했소 떼강도처럼 들이닥쳐 땅을 짓밟고 생명을 죽이고 거룩한 새벽빛을 낭자한 피로 물들인 그것을 '여명의 황새울'이라 했소 정녕 황새울의 새벽빛이 무엇인지 아시오 동해를 넘어 태백산맥을 넘어 한반도 곳곳을 비추며 소리 없이 건너와 순하디순한 소 잔등을 쓰다듬듯 황새울에 내리신 그 새벽빛을 아시오 아이가 젖을 찾아 입술을 오물거리듯 천천히 새벽잠을 깨며 여명을 맞이하는 이 땅의 작고 여린 몸짓을 아시오 발소리조차 죽이며 논물을 보러 가는 우리네 마음을 아시오 7 밭이든 논이든 마을이든 사람이든 그들에겐 모두 밟아야 하는 것들이다 군홧발에 짓밟힌 땅은 더 이상 땅이 아니다 철조망 쏟아지는 하늘은 더 이상 하늘이 아니다 전쟁과 살육과 멸망을 부르는 자들이여! 우리는 이 땅에 평화를 심고 싶다 우리는 이 땅의 자식으로 살고 싶다 8 할머니 철조망 넘어 보리밭 가신다 황금빛으로 물든 보리밭 가신다 철조망 아무리 쌓고 쌓아도 할머니 철조망 넘고 넘어 보리밭 가신다 9 땅이여! 어머니여! 아버지여! 참혹한 폐허여! 살아서 견디는 샛푸른 보리밭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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