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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식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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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식탁을 위해"

김민웅의 세상읽기 〈244〉

러드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시에 <거대한 증기선(Big Steamers)>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우린 그대들에게 빵과 버터와 고기와 계란과 사과와 치즈를 가져다 줄 거란다. 멜버른에서, 퀘벡에서, 홍콩과 봄베이에서 말이지. (...) 거대한 함선을 보내다오. 그래야 저 거대한 바다를 지켜낼 수 있어. 아무도 우리를 막지 못하도록."
  
  키플링은 밀림에서 자라난 소년 등 여러 이야기를 묶은 <정글북>이나 첩보소설 <킴>이라는 책으로 문학사적 위치를 차지한 영국 작가입니다.
  
  특히 <킴>은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벌어지는 국제적 경쟁이 만들어내는 첩보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킴"이라는 인도출신 고아입니다. 모두 사이드가 말했던 아시아에 대한 모멸에서 나온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입니다.
  
  인도라는 무대를 통해 펼쳐지는 영국의 거대한 제국주의 체제를 소설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러드야드 키플링의 작품 세계는, 당대의 거대한 제국이 어떤 방식으로 제국의 풍요를 구가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키플링의 작품은 읽기에 따라, 영국 제국주의를 고발하는 문서가 됩니다.
  
  키플링의 <거대한 증기선>이라는 시도 사실, 증기선으로 만들어진 함선을 앞세워 식민지를 약탈하고 있는 영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의 해역과 일본에 나타난 서양의 전함, 또는 흑선(黑船)은 바로 그것입니다.
  
  영국을 비롯한 서양인들이 먹는 고기와 빵과 버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거대한 증기선의 출현은 아시아를 비롯한 비서구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충격과 경이로움이었습니다. 바람에 의지하지 않고 내부에 동력을 갖추고 대포로 무장한 채 무수한 수병을 싣고 먼 거리를 항해하는 힘은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위용을 자랑하면서 지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땅과 바다를 자신의 것으로 삼았던 영국도 2차대전 뒤 이전의 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영국의 사학자 팜 덧(Palme Dutt)은 <영국과 영국 제국의 위기(The Crisis of Britain and the British Empire)>라는 책에서 그 몰락의 과정을 그려냈습니다.
  
  팜 덧의 골자는, 1950년대 영국의 위기는 제국의 붕괴로 인한 것이며 이런 현실을 깨닫고 새로운 진로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책은 오늘날 미국의 현실을 계속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위기는 제국의 해체과정을 무리하게 저지하려는 데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19세기 거대한 증기선의 힘은 오늘날 함대와 전투기로 이어지고 있지만, 봄베이로 대표되는 과거의 식민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편, FTA는 오늘의 거대한 흑선이 되어 우리의 바다를 점령할 수 있습니다. 제국의 식탁을 위해서 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바다는 누가 지켜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정글북과 킴에 나오는 가난하고 헐벗은 인도의 소년이 더 이상 아닙니다. 19세기 인도의 봄베이 또한 아닙니다.
  
  이걸 모르는 이들이 태평양 함대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흑선에 탄 수병들을 위한 식단을 짜는 일에 열중합니다. 노쇠해가는 제국의 노을에 아직도 눈이 부신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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