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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시대 북한 보건의료 체제의 삼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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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정일시대 북한 보건의료 체제의 삼중주

'2006년 북한은 어디로?' 사회문화편 <3>

무상치료제는 자타가 인식하고 있는 북한의 공식적이고, 대표적인 보건의료제도이다. 또한 김일성시대와 김정일시대를 통털어서 북한이 가장 뽐내는 사회제도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무상치료제는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내부균열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균열은 맨 처음에는 부분적 마비로, 부분적 마비는 경제난, 식량난, 외화난, 에너지난이라는 악재와 겹치게 되었고, 이러한 고난이 장기화되어 종국에는 의료붕괴로 이어졌다. 때문에 김정일시대 북한의 보건의료체제는 제 기능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며, 단기간에 회복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시기 북한의 보건의료제도는 한마디로 극소수의 지도층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의료보호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해 북한은 국가가 국민의 의료보장을 수행할 능력을 상실하였다. 이 시기 북한은 식량난까지 겹쳐 '먹는 문제'로 인한 주민들의 영양상태, 아동과 청소년의 성장과 발육, 노인들의 영양보충 또한 위기를 맞이하였다. 때문에 이때는 산모의 임신·출산 전후의 건강문제, 저체중 영아, 유아의 성장장애, 발육부진 아동, 노인과 청소년의 영양부족 문제가 실로 심각하였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2004년 북한의 병원에 환자가 대폭 감소하였다. 왜냐하면 약품이 없기 때문에 병원에 와도 치료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입원환자의 경우 가족들이 음식을 구해주지 않으면 장기적인 입원이 불가능하다. 또한 전력사정이 여의치 않아 야간응급 치료시에는 환자가 손전등을 준비한다. 결국 거의 모든 보건의료서비스를 국가가 아닌 환자가 부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김정일시대 북한보건의료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북한 스스로 이를 해결할 능력이 예나 지금이나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더욱이 과거 구사회주의국가로부터 저가로 수입되었던 의약품과 장비, 무상의 식량지원이 1990년대 중반 끊겨버리자 안밖으로 처한 보건의료의 위기는 그야말로 붕괴 그 자체였다. 병원이 있고, 의사가 있어 본들 약이 없는데 제대로 치료할 수 있었겠는가. 또 기본적인 예방접종조차 보급되지 못한 가운데에 연이은 식량부족은 그야말로 '의료빈곤의 나락'이다.

北 보건의료, 무늬만 무상 치료
보건의료의 기본은 '자급자족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사진은 북한의 한 식품 공장에서 World Food Programme을 통해 지원받은 밀가루를 사용하는 모습 ▲ ⓒEPA

보건의료체제 붕괴이후 열악해진 북한 보건의료의 실태에 대해 2001년 5월 북경에서 개최된 제5차 아동보호 아·태 각료급회의에서 당시 북한대표였던 최수헌 외무성 부상은 1993년 대비 1999년의 지표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평균수명은 73.2세에서 66.8세로 6.4세 감소했고, 신생아 사망률은 1,000명당 14명에서 22.5명으로 8.4명 증가하였고, 5세 이하 영유아 사망률은 1,000명당 27명에서 48명으로 21명 증가하였다고 했다. 당시 이 같은 내용은 매우 솔직했지만 마냥 웃어넘길 만한 계제는 아니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국제사회에 긴급구호의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건강권이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라고 할 때, 이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 이에 정부, 국내외 민간단체, 국제기구 등이 북한에 지원하고 있는 의료구호활동의 규모는 2006년 현재 약 2천억원(한화)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지원으로 인해 북한의 보건의료가 정상가동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북한 보건의료체제를 회복하는 것은 보다 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북한 스스로가 자생 능력-일정선상의 보건의료의 자급자족능력-을 갖추어야만 가능하고 이러한 능력은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김정일시대 북한의 보건의료 '현실'은 한마디로 고난의 행군 시기와 크게 다를 바 없으며, 무늬만 무상치료일 뿐, 외부로부터의 지원으로 인해 근근히 연명하는 '보건의료구호·지원체제'이다.

먹는 문제와 영양상태가 건강과 직결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고난의 행군시기 제대로 먹지 못한 세대가 얼마나 성장했겠는가? 이는 북한 인민군의 징집대상 최소 신장이 146㎝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병원 문이 거의 닫혀있던 지난 10년 동안 수술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의료인력의 기술수준은 짐작하지 않아도 안다. 또 현대화된 의료장비나 기구를 일절 사용해 본적이 없는 의료인력들은 어떠한가.

이래저래 북한의 보건의료체제는 인력, 인프라, 의약품, 의료기술 모두가 엇박자를 내면서 무상치료제, 예방의학, 의사담당구역제인 자신들의 제도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최근 북한 보건의료 현실을 살펴보면 자못 심각하다 못해 대단히 위험한 수준이다. 영아사망률의 경우 세계보건기구(WHO)보고서에 의하면 출생 영아 천명당 1995-96년 18.6명, 1999-02년 23.5명이다. 또 유엔인구활동기금(UNFPA)보고서에 따르면 출생 영아 천명당 2002년 21명, 2004년 45명으로 조사됐다.

또 5세 미만 유아사망률의 경우 세계보건기구(WHO)보고서에 의하면 출생 유아 천명당 1993년 27명, 1995-96년 39.3명, 1999-2002년 48.8명이고, 유엔인구활동기금(UNFPA)보고서에 따르면 출생 유아 천명당 2002년 32명, 2004년 58명으로 점차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모성사망비율의 경우 출생 10만명당 1995-96년 105명, 1999년-02년 103명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는 결국 후진국보다 더욱 열악한 수준으로 북한 보건의료의 현주소를 반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김정일시대 북한 보건의료 체제가 회복하기는커녕 날로 악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여전히 무상치료제를 대내외적으로 공식적인 보건의료제도로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가? 이는 북한이 무상치료제 도입 초기부터 무상치료제에 대한 김일성의 은혜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무상치료제를 포기한다면 김일성의 업적을 북한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 되고, 이는 성역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의 후진성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따라서 무상치료제는 북한사회를 뒤흔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공식적으로는 절대로 폐기되지 않을 것이다.

99년 '인민보건법' 수정, 김일성과 김정일 등치 전략

한편 김정일시대인 2002년 북한이 신의주특구를 선언했을 무렵에는 신의주특구에 한해서만 무상치료제가 아닌 의료보험제를 도입하고자 했다. 이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되는데, 하나는 신의주특구가 사회주의 내에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일종의 '섬'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기존과 같은 무상치료제를 실시한 능력과 의지가 부족한 자신들의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의료보험제를 시도하고자 했다는 자체는 꽤나 놀랄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부분적이나마 김일성의 업적인 무상치료제를 회피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러한 열악한 북한 보건의료의 현실과 달리 김정일시대의 보건의료 제도의 특징과 변화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1980년에 제정하여 북한 보건의료의 실천지침이라 할 수 있는 '인민보건법'이 1999년에 수정되었다. 기존의 법령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의미하는 바는 크다.

왜냐하면 북한이 김정일시대를 맞이하여 보건의료제도의 상징성을 가진 인민보건법을 손질한 것은 김정일과 김일성의 인민보건에 대한 관심과 은혜를 등치시키고자 하는 전략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김정일체제하에서 인민보건법을 부분적으로 교정함으로써 인민보건에 관한한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에게 다가가거나 동일한 존재가 되게 된다.

둘째, 보건의료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공중위생, 검역, 전염, 의약품관리, 수의방역, 식료품과 관련한 법령 10여개가 1996-1998년 사이에 새롭게 제정하였다. 이는 사스파동과 구제역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에 북한이 동참하겠다는 대내외적인 의지의 소산이다.

즉 김정일시대의 북한 보건의료는 김일성시대처럼 외부세계와 단절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와 스텝을 같이 하겠다는 의미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중국과 국경이 인접한 북한 역시 사스파동과 구제역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시행령이나, 시행세칙 수준의 구체적인 후속법령이 제정되지는 않았다. 물론 이미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법령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법령들이 북한정권 초기에 제정되었기 때문에 한번쯤 손질을 해야 할 시점인데도 말이다.

셋째, 2003년에 '마약관리법'을 제정하였는데, 이는 북한이 1949년에 제정한 '마약에 관한 규정'을 제정한지 근 54년 만에 대폭 수정한 것이다. 이 또한 북한이 국제범죄로 지목되는 마약에 대한 법적 대응을 의미한다. 아울러 북한 역시 마약으로부터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시사한다.

넷째,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특구에 남한의 보건인력들이 개성공단근로자과 금강산관광객들을 위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개성공단의 경우 북한 노동자들은 남한 보건인력들의 진단과 치료를 받는다. 또한 만약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회복일까지 남한지역의 병원에서 입원·통원치료를 받게 된다.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나 일단 북한이 개성공단노동자들의 보건의료에 대한 책임을 남한에 전가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북한이 '의료빈곤'에서 탈출하는 길은?
▲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구호와 지원이 없다면 북한의 '의료빈곤'은 해결될 수 없다. 사진은 외부에서 지원받은 '영양죽'을 먹고 있는 3살 난 북한 아동▲ ⓒEPA

이와 같은 김정일시대의 북한보건의료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제도적 측면으로 김정일시대 북한 보건의료가 법적인 정비를 통해 국제사회와의 의사소통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법적인 노력과 수고에 반해 북한의 보건의료 현실은 여전히 '의료빈곤' 상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난의 행군시기 붕괴된 보건의료체제가 여전히 깊은 골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개성과 금강산이라는 특정지역에 한해 남한의 보건의료서비스를 허용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속성과 변화의 측면에서 접근해보면, 김정일시대 북한 보건의료체제의 지속성은 더욱 악화된 보건의료 현실이며, 변화는 일정한 수준의 제도적 정비와 특정지역에 한해 남한의 보건의료서비스를 허용한 것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가장 중요한 김정일시대의 북한 보건의료체제의 정상적인 가동은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구호와 지원, 북한의 괄목할만한 경제성장, 제도적인 내부개혁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단언하건대, 만약 이중 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북한은 '의료빈곤'에서 영원히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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