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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미사일 게임', 한국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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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미사일 게임', 한국의 선택은?

한반도 브리핑 <11> 양측의 딜레마 속에서 역할 확장해야

북·미 갈등이 한반도 외교·안보 정세의 전면에 등장할 때 한국 정부의 정책선택은 폭이 좁아진다. 기본적으로 분단과 냉전이라는 한반도의 안보 구조는 한국의 행위 범위를 제한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제약은 군사·안보적 긴장이나 위기 하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5월 하순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로 야기된 현재의 긴장 국면은 한국 정부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정책적 한계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전개되어 온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발전을 되돌아보면, 한국 정부가 처한 구조적 제약은 결코 불변의 조건이거나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가 아니다. 흔히 언론에서 논란이 되었던,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나 남북한 당사자원칙은 많은 비판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정 정도' 실현되었다.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남북한의 자율적 행위공간을 보여주었으며, 그 뒤 전개된 남북관계 발전은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남북관계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어하는 이들은 1991년 말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서 이미 이러한 가능성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2005년 6월부터 9월에 이르는 6자회담의 재개 및 합의 과정도 이런 관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 여지가 있다.
▲ 북한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한 대포동 1호 미사일이 1998년 8월 발사되는 장면 ⓒ연합뉴스

물론 정책선택에서 나타난 가능성의 확장이 구조적 제약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체제생존을 추구하는 북한과 세계전략 차원에서 북한을 통제하려는 미국 사이에는 갈등 관계가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외교·안보·통일정책에 제약요소로 작용한다. 2001년 초 부시 정부의 등장 이후 재개된 북·미 갈등은 남북관계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남북관계 발전은 우여곡절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남북한 정부와 민간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대한 만큼의 남북관계 진전은 이뤄지지 않고, 일정 기간 관계가 단절되기도 했다. 여전히 북·미 사이의 냉전적 대결구도가 구조적 제약요소로 작동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제약 때문에 한국 정부는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위해 미국에 '필요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기도 했으며,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하는 태도를 보여야만 했다.

정보 역량은 한국 독자적 역할의 기반

구조적 제약과 정책선택의 자율성이라는 관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2차 북한 미사일 위기'를 바라보면 어떤 분석이 가능할까? 현 단계에서 한국 정부가 국면의 전환를 위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현상적으로 거의 보이지 않지만, 관점을 바꾸어보면 한국 정부의 정책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도, 또는 이미 알려진 사실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정보수집원에 노출된 채로 진행되는 '미사일 발사 준비'가 군사적 행동이라기보다 정치적 행동에 가깝다는 해석이 유력하다면, 정보의 수집과 해석은 정책적 역량의 기본 요소다. 특히 '미사일 발사 준비'가 북·미 사이에 협상/압박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심리전의 일부라면, 구체적인 정보의 획득과 수집된 정보의 정확한 해석은 심리전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정보 역량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미사일 발사 임박'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나오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발사체에 탑재할 물체의 성격이 미사일인지 인공위성인지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견해와 '미사일에 연료 주입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라는 견해를 밝혔다.(6월 20일) 이러한 한국 정부의 입장 표명은 국내에서 보수 언론과 여·야당으로부터 '한미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태도'이자 '안보위기에 대한 안이한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두 가지 효과는 분명하게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안보 문제에 예민한 일반 국민들의 여론이 과잉 점화되는 상황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국제사회의 여론에서도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군사적으로 위험한 미사일 발사 임박'이라는 주장과 함께 대두된 과잉 대응의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뜨렸다.

한편 북한에서 발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인공위성이냐 미사일이냐는 문제와 상관없이 발사체 기술 자체가 이중용도라는 점에서 미국 내부에서는 대북한 대응책을 놓고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핵 제와 관련해 북한의 핵보유 선언으로 '협상 없는 압박 또는 무시' 전략이 실질적으로 실패에 부딪쳤던 경험에 비춰볼 때, 이번 미사일 제의 경우에는 발사 이전에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에서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만일 미국 내부에서 협상을 요구하는 주장이 광범위한 지지를 얻게 된다면, 그동안 대북포용정책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해 왔던 한국 정부로서는 정책적 차원에서 국내외적으로 설득력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북정책 추진에서의 주도권 내지는 자율권도 상당 정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논리' 작동…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 필요

현재의 시점에서 '제2차 북한 미사일 위기'는 단기간에 해결될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미국을 양자협상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행동이라면, '미사일 발사 준비'를 보여줌으로써 북한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에 머문다면, 이는 곧 절반의 실패를 의미한다. 결국 북한은 나머지 절반을 메우기 위해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미사일 발사'가 가져올 파장, 특히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악화의 정도에 대한 정확한 전망이 서지 않는다면, 자신이 내건 '협상카드'인 미사일 발사가 자신의 전략적 목표의 달성에 장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일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중대한 기술적 문제라도 발생한다면, 이미 확보한 절반의 성공조차 내놓아야 지 모른다. 아마 이런 점에서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 경우 북한은 공개된 발사 준비에도 불구하고 검증될 수 없는 형태의 발사(그러나 이는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사실'의 영역에서 '해석'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미국의 대응도 그다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선제공격은 체니 부통령의 발언에 비추어볼 때, 일단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미사일 방어체계를 통한 미사일 요격 역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국제법적으로 발사체를 격추시킬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기술 상태에서 미사일 요격이 성공할지는 자신할 수 없다. 만일 요격이 성공한다면, 나중에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보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현 시점에서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시작할 수도 없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미사일 발사 준비'만으로 북한과 협상을 시작한다면, 이는 그동안 부시 행정부가 유지해 온 무시·압박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일이다. 결국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시작한다면, 그때는 '미사일 발사 이후'가 될 것이다.

이처럼 북한과 미국의 정책을 추론해 보면, '미사일 발사'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소위 '게임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추론이 맞다면, '게임의 논리'는 역설적으로 '미사일 발사' 이전이나 이후 어느 경우든 제3자의 개입을 요구한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이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상황에 대한 명확한 분석에 기초해서 행동한다면, 의외로 이번 '제2차 북한 미사일 위기'는 한국 정부가 '필요 이상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자신의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회로 바뀔지도 모른다. 다만 북한과 미국이 심리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내부의 여론이 얼마나 잘 관리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대중사회에서 심리전은 곧 여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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