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치체제는 당국가체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북한 헌법 11조는 국가기관에 대한 당의 영도를 천명하고 있고, 당규약 46조는 인민군대에 대한 당적 지도를 명문화하고 있다. 과거 북한은 실제로 당 중앙위원회와 중앙인민위원회를 통해 당적 영도를 체계적으로 가동시켰다. 시스템으로서의 당적 영도를 통해 국가기관과 인민군대를 통제한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시대에 들어 10여 년간 당적 영도의 핵심 기제인 당중앙위원회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 당규약에 따르면,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6개월에 1회 이상 소집되어 북한 체제의 발전노선과 정책을 수립하고 당면한 중요문제를 토의·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과거 북한은 역사적 격변기마다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여 주요 지침을 마련하였고 이를 전사회적으로 실행시켰다. '중공업 우선 발전 및 경공업·농업 동시발전노선'을 제시한 1953년 8월 6차 전원회의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는 계기였던 1967년 4기 15차 전원회의가 대표적 예다.
그런데 북한 정치체제의 '최고지도기관'인 당 중앙위원회는 1993년 12월 6기 21차 전원회의가 열린 이후 지금까지 개최되지 않고 있다. 당 중앙위원회가 김일성 사후 한 번도 소집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입법·행정·사법 등 3권뿐만 아니라 군권까지 장악하고 있었던 중앙인민위원회가 1998년 헌법개정으로 폐지되었다. 당의 노선과 정책을 국가기관과 인민군대에 관철시켰던 반정반당(半政半黨)의 정치 기제가 사라진 것이다.
당의 상대적 약화, 군·내각의 위상 제고
반면, 그 동안 당 통제의 그늘에 가려 있던 내각과 인민군대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 선군정치의 개시와 더불어 인민군대는 북한 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그 위상이 강화되었다. 혁명적 군인정신이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었고 군인사의 주석단 서열이 상승하였으며 사회통제기구가 인민무력부로 편입되었고 김정일의 인민군 현지지도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리고 내각 총리 박봉주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은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박봉주는 2004년 4월과 2006년 1월, 김정일의 중국방문을 수행했고 평소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다. 특히 김정일은 "모든 경제, 무역 업무는 먼저 내각 총리와 상의한 뒤 내게 올리라"고 말할 정도다. 박봉주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당 소속 경제의 일정부분이 내각 소속의 인민경제로 전환되었다는 후문도 들린다.
이렇듯 김일성 시대의 당국가체제와 달리 김정일 시대에는 당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고 대신 인민군대와 내각의 위상이 제고된 것이다. 이는 1980년대 말 이후 북한이 처한 위기환경과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상호작용한 결과물이다. 북한은 정치적·경제적·사상적 원군이었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잇따른 자연재해와 강행적 발전의 한계, 그리고 권력승계의 균열에 따른 국내외적 위기로 말미암아 더 이상 기존 당국가체제를 유지시킬 수 없었다.
당은 정치사상, 군은 안보, 내각은 경제발전
1990년대 위기상황에서 북한의 국가목표는 체제유지와 경제발전으로서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군을 전면에 내세웠고 행정경제사업에서 당정분리를 시도한 것이다. 즉 김일성 시대의 '일방적 당 우위의 당국가체제'가 김정일 시대에 들어 당이 대내통합과 체제결속 상징화를 위해 정치사상적 진지를, 군이 체제보장을 위해 군사적 진지를, 정이 경제발전을 위해 경제적 진지를 각각 거의 배타적으로 담당하는 이른바 '상대적 당 우위의 당·군·정 역할분담체제'로 변화하였다. 현재는 체제보장이 경제발전보다 더 긴박한 과제이므로 군의 위상이 정의 위상보다 앞서 있다.
그러면 김정일 시대에 구축된 권력구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향후 북한 권력구조의 전망도 현재의 위기수준과 그 대응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가능하다. 김정일 시대가 개막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 동안 북한의 위기상황이 변화되었거나 개선되었는가 하는 점에 있어 긍정적인 답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고난의 행군이 끝나고 실리 추구의 7.1경제관리개선조치가 단행되었지만 경제난에서 벗어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대내통합과 체제결속의 측면에서는 다소 안정적이라 할 수 있다.
안보위기와 경제위기의 상반관계
이처럼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내구력은 상당부분 훼손되었고 전 사회의 군사화를 초래한 '긴장체제'는 거의 극점에 다다른 상황이다. 이는 북한이 처한 안보위기와 경제위기가 기본적으로 상반관계(trade-off)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 상반관계를 '선군의 실리사회주의'로 돌파하려고 했지만 선군과 실리의 근본적 모순으로 선군과 실리가 상호 포박하여 미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권력구조 개편과 정책변화의 요체는 북핵문제에 대한 전향적 태도와 그 반대급부인 경제개혁을 위한 우호적 환경이다. 다소 긍정적 전망이지만 우여곡절 속에서도 북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면, 북한은 개혁·개방을 가속화시키기 위해서도 내각책임제를 강화하여 경제발전을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선군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북한이 선군정치를 선군사상으로 격상시키면서 전사회의 선군사상 일색화를 이루려 하고 있지만 선군정치의 유지조건이 '제국주의 존재 여부'라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고, 긴장체제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그러면 북한은 북핵문제가 해결된 조건에서도 선군정치를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북한은 핵문제 해결로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는다면 '미 제국주의'라는 관점을 계속 견지할 것인가. 지금까지 북한체제 유지와 대내통합의 주요기제가 반제국주의였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하지만 핵문제 해결로 북미관계가 발전할 수 있는 상황에서 미제국주의 노선을 유지할 '새로운' 명분 고안과 그것을 지속했을 때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고려한다면 반미의 편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한 일정한 정책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반제국주의에서 민족주의 강조로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반제국주의 노선을 완전히 폐기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고 반미·반일 등 구체적 대상을 적시한 반제국주의보다는 제국주의에 대한 추상화 수준을 높여 일반적 의미에서 반제국주의 노선을 천명할 가능성이 높다. 대신 제국주의의 대항개념인 민족주의를 남북간 교류협력의 발전수준에 조응해 강화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것의 단초를 2004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북한에 국한하였던 '우리민족 제일주의'를 전한반도 차원으로 확대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핵문제가 해결될 경우 선군정치는 변형된 형태로나마 지속되겠지만 북한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해질 수밖에 없고 인민군대도 북한 사회를 주도하는 '혁명적 군'에서 점차 군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는 '직업적 군'으로 성격전환을 시도할 것이다.
1998년 김정일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형성된 현재의 권력구조는 이미 7~8년간 발전단계를 거쳤고 향후 북핵문제와 경제문제 등의 위기상황 해결과 연동하여 공고화·제도화 단계에 돌입할 것이다. 이 때의 역할분담체제는 여전히 '일방적' 당 우위가 아닌 '상대적' 당 우위의 권력구조일 것이고 선군정치의 압도성이 상당부분 약해지고 내각의 위상이 보다 강화될 것이므로 '당>군>정'이 아닌 '당>정>군'의 형태도 예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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