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된 입시경쟁,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학교폭력, 공교육을 대체하다시피 팽창해버린 사교육…등. 가르침과 배움은 사라지고 오로지 '등수 매기기'에만 골몰하는 교실 풍경은 이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식상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다들 이런 식상한 이야기를 하곤 하지요. 누구나 알고 있는 현실 진단을 기계적으로 읊조리는 정책 당국자, 학자들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뻔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풍경, 그 맞은 편에는 학교폭력, 입시 부담, 혹은 어른들이 짐작하지 못하는 그밖의 어떤 이유로 자살을 고민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떠나고 싶을 만치 심각한 문제 앞에서, 어른들은 왜 '뻔한 이야기'만 반복하는 걸까요. 어쩌면 이런 간극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절망스런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지금 진짜 필요한 미덕은 '솔직함'일 수 있겠다고 봅니다. 짧은 자기 경험으로 섣부르게 단정짓기보다 교육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주 하찮은 수준이라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시작하는 태도 말입니다. 또 근대적인 학교 모델이 이젠 어떤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혔다는 점, 그리고 그 한계와 모순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한계가 있다는 점 역시 솔직히 인정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에 주목한 건 그래서입니다. 지난 1999년 창간된 이 잡지의 시선은 '학교 너머'를 향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바뀌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만큼 우리는 학교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만들자"라는 <민들레>의 목소리가 교육에 관한 '뻔한 이야기'들에 갇혀 드러나지 않았던 '학교의 빈 곳'을 살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편집자>
뭐, 그냥 조재라고 불러
안녕, 얘들아? 우선 내 소개를 할게. 형아 이름은 조재고, 모두가 이걸 원래 이름처럼 부르지만 물론 이게 본명은 아냐. 또 조재 형아는 86년생 스물일곱 살이고, 군대도 개고생 하면서 육군 22개월 제대로 갔다 왔고, 대학도 돈 처발라서 4년제 나왔고, 뭐 불알도 두 쪽 이상 없이 제대로 달렸는데, 아무튼 지금은 집에서 대기업 연구소 다니는 누나 눈치 보면서 6개월째 그냥 처 놀고 있다. 사실 뭐 너희처럼 앞길 창창한 어린 친구들에게 이런 누추한 삶을 사는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원고료를 좀 준다 그러기에 별생각 없이 이 기회를 덥석 물고 만 거야.
눈치가 우사인 볼트만큼 빠른 친구들은 벌써 짐작했겠지만, 이 조재 형아도 10년 전 중딩일 때 너희처럼 '아, 멍청한 학교 조낸 가기 싫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 근데 때마침 TV를 보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에 간디학교가 나오는 거야. 그래서 중학교 끝나갈 때쯤 엄마 아빠한테 "나 고등학교는 대안학교 갈래" 하고 말했지. 그러자 엄마 아빠가 되물었어. "뭐? 대안학교?"
근데 생각보다 우리 집 엄청 쿨하더라. 난 엄마 아빠가 당연히 반대할 줄 알았는데 네가 가고 싶으면 그냥 가라는 거야. 그래서 금산간디학교 1기로 입학했고, 그렇게 한 일 년 반 정도 다니다가 엄마가 "너 이제 더는 그 학교 다닐 돈 없다" 해서 "아, 진짜?" 하고 그만 다니게 됐지.
10년 후 너희에게 닥칠 일
뭐 너희들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겠지만, 일반적인 삶을 거부한 너희들의 선택에 어떤 사연이 있었든 간에 지금의 너희들 중에는 분명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는 친구들이 생겨나게 될 거야. 앞으로 10년 동안 너희에게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겠지. 여자라면 대학을 갔다는 전제하에 나보다 한 2~3년 정도 이른 나이에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거고, 남자라면 지금 딱 내 시기 정도에 초중고와 군대 그리고 대학까지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든 퀘스트들을 마치고 이제는 자신의 노동을 일정한 가격에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겠지.
10년 후 너희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 있어? 내가 방금 다른 놈들은 어떻게 사나 하고 폭풍 페이스북질을 해봤는데, 내 고등학교 동기들 중에 4대 보험 보장되는 제대로 된 직장에서 월수입 200만 원 이상 찍으면서 살고 있는 애들은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네. 어떤 놈은 여전히 알바 뛰면서 밴드하고 있고, 결혼하고 농사짓는 놈도 있고, 뭐 집에 돈 좀 있는 친구들은 외국으로 유학 가서 아직 학교 다니는 거 같고, 나머지 고등학교만 졸업한 친구들은 저임금 비정규직이나 알바 같은 거 대충 하고 있는 거 같고, 나 같은 백수들도 몇 있고, 오메, 가장 최악인 친구는 몇 달 전에 군대 들어간 놈인 것 같구나.
어때? 돈보다 중요한 가치고 진정한 교육이고 나발이고, 한국 사회에서 월수입 100만 원 초반을 버는 20대 후반의 삶이 과연 어떨지는 다들 상상이 가지?
그렇지만 내가 하려는 말은 "인생, 실전이다. 너님들도 지금부터 노량진 다니면서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들이나 하세요" 같은 말도 아니고, "짜식들, 아프니까 청춘이다! 우리 모두 다 같이 힘을 내보자!" 같은 똥 같지도 않은 말도 아니야. 그보단 너희들의 훌륭한 롤모델이 될 수도 있었던 이른바 대안교육 1세대들은 어째서 다들 요 모양 요 꼴로 살고 있으며, 심지어 아직 성장판도 안 닫힌 너희들마저 왜 이딴 거지 같은 미래를 그릴 수밖에 없게 되었느냐는 거지.
자, 이 '어째서'라는 말에 주목해봐. 이 '어째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이건 단순히 의지박약한 나와 내 친구들 각자 개인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시스템 그 자체에 내재한 문제가 될 수도 있어. 난 '대안학교 출신'이라는 우리의 어플 그 자체가 후진 게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이 세계의 운영체계 그 자체에 엄청난 오류가 있다는 데에 내 왼쪽 엄지발톱과 이 글의 원고료 전부를 건다.
지리산 쎄쎄쎄의 딜레마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라는 과정은 단지 무언가를 가르치고 습득하는 행위 그 자체만을 의미하는 게 절대로 아니야.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거쳐 마침내 대학에 이르는 이 일련의 과정들은 국가가 한 사람의 국민을 만드는 과정일뿐더러 분명 하나의 인간이 앞으로 평생을 살며 거머쥐게 될 돈의 총 액수와 엄청난 관련이 있지. 현재의 행복을 뒤로 미루며 '아, 3년만 참자, 내 꿈은 서울대, 내 꿈은 서울대' 하면서 미친 듯이 공부하고 있는 너님의 친구들이 다 정신 나간 애들이 아닌 거야. 게네들은 분명 자기 몸뚱이가 상품이라는 걸 철저하게 인식하고 그 가치를 높이는 게 이 사회에서 승자가 되는 길이라는 걸 깨닫고 있는 애들이지.
ⓒ민들레 |
물론 이러한 친구들이 참여하고 있는 우리나라 공식 교육의 과정에는 엉덩이 저림이나 졸림 같은 너희 몸의 괴로움들이나 죽고 싶을 만큼 몰려오는 중간고사의 압박감 같은 정신적인 고통들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지. 왜냐고? 염병할, 왜긴? 너흰 그냥 인간이 아니라 돈으로 사고 팔릴 수 있는 노동상품의 하나일 뿐이니까. 한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상품으로서 얼마나 더 비싼 가격에 팔릴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될 뿐이야. 인간이라는 노동상품을 만들어내는 학교라는 거대한 공장 안에서 너희들의 신체나 정신적인 고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너희들은 그저 '돈'이라는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만 작동하면 그만인 하나의 '물건'에 불과할 뿐이니까. 너님들의 정신이나 몸이 고장 나면 딴 거 쓰면 되지, 뭐.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공식 공장을 거부한 나와 너희 같은 친구들이 대안학교를 선택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마치 이 물건들이 사고 팔리는 거대한 노동시장 그 자체를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거지. 형아와 형아 친구들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서 시작돼. 나는 내 나름대로 인간답게 한 번 살아보겠다고 그 거지 같은 공장을 뛰쳐나와 지리산 가서 쎄쎄쎄 하면서 재밌게 놀았는데, 결국에는 나라는 인간도 이 나이쯤 되니까 내 이마에 새겨진 숫자를 돈과 바꿔야지만 살아갈 수 있다는 거야.
도대체 이건 뭐지? 나라는 어플은 어떻게 해야 자본주의라는 이 거대한 노동시장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시골 들어가서 농사라도 지으면 좀 인간다워지면서 이 거대한 시스템을 드디어 벗어나는 건가? 염병, 그딴 건 없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한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일은 절대로 일개상품 따위가 막을 수 없는 일이야.
이 형아,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거니?
얘들아, 내가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일은 절대로 피할 수가 없다고 말했잖아. 근데 심지어 나나 너희는 인간이라는 노동상품의 가장 공식적인 제작 과정을 거부해버림으로써 이틀 지난 삼각김밥처럼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허벌나게 하락해버린 거야. 어쨌든 나도 내 몸뚱이를 상품으로 팔아서 먹고살아야 되는 일은 피할 수가 없는데, 이건 뭐 어렸을 때 쎄쎄쎄 좀 하다 보니까 다른 애들보다 가격이 너무 떨어지다 못해 아예 팔리지를 않네?
과연 여기서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나라는 인간을 상품으로 철저하게 인정하고 이제라도 토익이랑 자격증 같은 거 공부해서 내 몸뚱이 가격을 좀 올려야 하나? 이건 내가 자문자답하려는 게 아니고 너희한테 진짜 물어보는 거야. 이 형아, 진짜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거니?
얘들아, 미안하지만 형아가 암담한 앞날을 얘기하다 보니까 멘붕이 와서 더는 못 쓰겠다. 혹시나 너희들 주변에 인간 중심의 구글 같은 노동환경을 제공해주시는 사장님들 계시면, '아는 형아 중에 가성비는 좀 많이 딸리지만 마음만은 착한 형아 있다'고 소개 좀 해주라. 그리고 주변에 혹시 남자 학벌이나 재산 같은 거 안 보고 오직 얼굴만 본다 하는 이십 대의 아름다운 사촌 언니나 누나 있으면 카카오톡 아이디 좀 알려주고.
안녕, 얘들아. 그럼 조재 형아는 이제 <마스터셰프코리아> 보러 갈게.
* 위의 글은 <민들레>82호에 실렸던 조재 씨의 글입니다. (☞<민들레> 바로가기)
조재 금산간디학교 1기였으나 경제난으로 중퇴,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지금은 19세기 후반 조선의 근대화를 다룬 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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