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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앞날은?

'2006년 북한은 어디로?' 정치편 <2> 주체사상과 북한의 이데올로기

주체사상은 여전히 북한의 공식 이데올로기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도, 조선노동당 규약에도 주체사상은 지도사상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주체사상은 포섭력과 지배력에서 예전만 못하다. 오히려 지금 시기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서랍 속에 놓여 있는 골동품' 신세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1990년대 북한체제의 위기 상황에서 '정당화와 동원'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주체사상의 이름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주체사상은 보다 공고화된 추상적 내용으로 존재하면서 위기관리를 위한 현실적 정당화 작업은 하위의 담론을 통해 이루어졌다. 즉 붉은기 철학, 강성대국, 신사고 등의 슬로건과 정치담론이 내적 통합기제로서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이같은 주체사상의 약화는 과거 사회적 실천력을 가진 '실천이데올로기'에서 이념적 추상성만을 가진 '순수이데올로기'로 변화되면서 충분히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주체사상, '실천이데올로기'에서 '순수이데올로기'로
▲ '실천이데올로기'로 등장한 주체사상은 최근 급격하게 '순수이데올로기'로 변하고 있다. 사진은 북한의 주체사상탑. ⓒ 연합뉴스

잘 알다시피 주체사상은 1950년대 이후 북한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드러난 제반의 노선과 원칙을 집대성한 일종의 '실천이데올로기'(practical ideology)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종합적 체계화와 철학적 원리를 가진 세계관까지 구비하게 되고, 그 뒤 1980년대에 맑스레닌주의의 대체까지 주장하게 됨으로써 추상화되고 형해화된 '순수 이데올로기'(pure ideology)로 격상되고 말았다. 결국 주체사상의 사회내 이념적 장악력은 현저히 약화되었고, 결국 1990년대 체제위기 상황에서 주체사상은 별다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주체사상이 아닌 정치담론이 북한 사회에서 정당화와 대중동원 작업을 한다는 것은 대중들에 대한 주체사상의 체제규정력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주체사상의 내용과 원리를 잘 알지 못하는 대중이 늘어나는 것이다. 실제로도 최근에 북한에서 주체사상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현저하게 줄었다. 특히 북한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1995년을 기점으로 주체사상의 강조 빈도는 현저히 낮아졌다.

이후 북한의 신년공동사설만 분석해 보더라도 과거 같으면 주체사상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았음직한 자리에 붉은기 사상, 김정일 동지의 사상이 대신 자리 잡고 있다. 사상강국을 설명하면서 등장하는 김정일 동지의 혁명사상 역시 주체사상이 아니라 대개는 '수령 결사옹위 정신'이나 '사회주의를 고수하겠다'는 신념이 강조되고 있다. 그나마 한 번 정도는 등장하던 주체사상이 1999년 신년공동사설부터는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갈수록 주체사상은 '서랍 속에 놓인 골동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선군관련 이론서 중 주체사상 언급은 딱 한 대목뿐

최근 들어 강조되고 있는 선군사상 역시 주체사상의 추상화와 함께 북한에서 주체사상의 약화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군정치를 설명하는 데서도 주체사상은 명목상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 선군정치의 시대적 필요성을 설명하고 선군혁명과 선군정치방식, 기본원칙과 노선 등을 서술하는 곳에서도 이제 주체사상의 연관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잇따라 출간된 선군과 관련된 북한의 이론 설명서에서 주체사상이 언급되는 대목은 딱 한 곳, 선군정치가 주체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대목에서뿐이다. 이제 북에서 선군정치는 김정일 시대, 즉 선군시대의 새로운 정치방식이자 체제원리로 자리잡고 있고 다만 사상적 정당성을 얻기 위한 형식적 절차로서 그 뿌리가 주체사상에 기초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체사상의 사회적 영향력의 증거가 아니라 새로 등장한 선군사상의 사후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체사상을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주체사상이 선군정치의 뿌리로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북한 측 논리를 들여다 봐도 너무나 판에 박힌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2004년에 출간된 김봉호의 <위대한 선군시대>에서 주체사상과 선군정치의 연관성은 세 가지로 언급되는 바, 선군정치가 나라와 민족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가장 철저히 옹호하는 정치방식이고, 혁명을 자기 식으로 해나갈 데 대한 주체사상의 요구를 구현하고 있는 정치방식이며, 사상이 기본이고 사상을 모든 사업에 앞세우는 주체사상의 사상론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결국 주체사상의 원리와 체계로부터 선군정치가 도출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원리로서 선군이 설명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후적 노력으로서 주체사상과의 연관성을 억지로(?) 꿰맞추고 있는 셈이다.
▲ 지난해 2월 2일 평양에서 열린 '선군혁명 총진군 대회'의 주석단의 모습. ⓒ 연합뉴스

주체사상은 새로 등장할 논리들을 정당화하는 '서랍 속 골동품'

이를 본다면 향후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공식적으로 폐기되거나 수정되지는 않은 채 명목상의 공식이데올로기로서 존재할 것이지만, 그 실제적 영향력 대신 새로 등장하는 체제정당화의 다양한 논리들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서랍 속의 골동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같은 전망은 향후 주체사상의 변화와 관련하여 하나의 가능성을 상정하게 한다.

즉 주체사상이 고도로 추상화되어 이름뿐인 형해화된 사상이 됨으로써 향후 개혁개방이 본격화되고 북한식의 체제변화가 실제로 진행되는 경우에도 주체사상은 당시 북한의 개혁개방을 정당화해주는 새로운 정치담론에 일정한 사상적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새로 등장하는 이데올로기와 분리 병행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결국은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쇠잔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의 추상화와 새로운 개혁개방의 이데올로기의 병행 가능성이 그것이다.

중국의 경우 맑스레닌주의와 모택동사상을 고도로 추상화시키고 이를 개혁개방을 위한 실천적 지침들, 즉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나 '중국특색적 사회주의' 등과 분리하고 있는 것은 지금 중국식 사회주의의 방향성을 고려해 볼 때 지배이데올로기의 추상화를 통해 본래 맑스레닌주의의 방향과 배치되는 중국식 발전전략의 정당성을 확보해내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한다면 북한에서도 주체사상의 추상화와 이에 기반한 주체사상의 변화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즉 주체사상이라는 북한의 순수이데올로기는 고도로 추상화시켜 명목적으로 고수한 채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담론들로 대중에 대한 정당화 작업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이를 통해 주체사상의 규정성과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결국은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분리 병행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 새롭게 등장하는 이데올로기는 적어도 북한의 개혁개방을 정당화하고 북한식의 변화를 추동해내는 내용일 것이다.

'친개혁·친실리적'인 새 실천이데올로기 등장 가능성 높아
▲ 북한의 개혁개방의 진전은 주체사상과는 다른 친개혁적이고 친실리적인 새로운 담론은 만들어낼 것이다. ⓒ EPA

주체사상이 결국 변화하게 될 것으로 보는 이유는 비록 더디지만 북한에서 일정하게 진행되고 있는 집단주의의 약화 추세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의 시행과 그 이후 실리를 강조하는 돈벌이의 확산, 그리고 시장을 인정하고 장사를 공식화하는 최근의 경제개혁 분위기는 북한 주민들의 가치관에서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충돌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이 실리 개념을 아무리 집단주의에서 찾으려 하더라도 평균주의의 불식과 집단주의는 상호 양립되기 어렵다. 집단주의는 구두선에 머물고 결국 실용주의(pragmatism) 담론이 실리 사회주의를 뒷받침해 줄 것이고 북한은 이것을 이미 실행에 옮기고 있다. 결과적으로 집단주의는 현재 북한의 경제적 변화와 함께 인민들의 의식으로부터 약화되어 가고 있고, 결국은 향후 개혁개방의 진전과 더불어 과거 주체사상과는 다른 친개혁적이고 친실리적인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어 나올 것이다.

이같은 전망은 1950년대 실천이데올로기로 등장한 주체사상이 결국 애초의 순수이데올로기였던 맑스레닌주의를 대체해 버린 것처럼, 향후 언젠가 순수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은 고도로 추상화되고 오히려 개혁개방에 용이한 새로운 체제정당화 담론이 주체사상으로부터 분리되어 또 다른 실천이데올로기로 등장할 가능성을 기대케 한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에서 공식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다.
※ 용어해설

△ 붉은기 사상

붉은기 사상이 처음 거론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쓴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1994. 11. 1 노동신문 개재)에서였다. 김 위원장은 이 글을 통해 "이것은 결국 나의 사상이 붉다는 것을 선포한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 뒤 1995년 8월 28일 <노동신문>은 '붉은기를 높이 들자'라는 정론을 통해 붉은기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글은 "붉은 기 철학은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혁명전기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붉은기 사상에서의 '붉은 기'란 1920~30년대 김일성 수령이 주도한 항일빨치산 시기에 불렸다는 '적기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항일 빨치산의 투쟁정신'을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붉은기 사상'이란 항일투쟁 시기 강조됐던 '자력갱생·간고분투 정신', '수령 결사옹위 정신', '혁명적 낙관주의 정신'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 선군정치

선군정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힌 정치사상으로 1994년 김일성 수령 사후의 난관을 군대를 앞세워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 수령과 달리 군부대 현지지도에 심혈을 기울임으로써 북한 사회 전반에 군인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 기획 연재 '2006년 북한은 어디로?'는 <프레시안>과 <북한연구학회>의 공동기획으로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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