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검문을 두 번이나 더 당해야 했다. 길목 곳곳에서 전경들이 버티고 서서 차를 세운다. 그나마 여자들은 들어가기가 수월하다고 한다. 남자거나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갈라치면, '의심 가는 사람'에게는 모두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라고 한단다. 대추리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싸움이다. 불법과 인권침해는 이제 대추리·도두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5월 22일, 다시 황새울에 섰다. 4월 29일 '평화예술마을 대축제' 이후 거의 한 달만이다. 풍물패가 신명나게 예술축제를 돋우고 돼지머리 올려 '올해도 농사짓자'는 평화의 소원을 빌던 고사장 담 벽엔 '大秋里, 平和 마을'이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바로 앞, 푸릇푸릇 자라던 텃밭의 마늘은 땅 속으로 제 몸을 탱글탱글 여물게 하느라 잎 끝이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초행이었다면 마을에 꽤 널찍한 부지가 있네, 하고 지나쳤을 운동장. 학교 건물은 폐허더미로 그 자리 그대로 쌓여 있다. 지난 5월 4일 물대포를 쏘며 토끼몰이 식으로 몰아붙이는 국방부의 힘에 밀려 학교 건물로 쫓겨들었던 시위대들, 깨지고 찢기고 피를 흘리던 그날의 불상사처럼 학교에 세워졌던 조각상들 역시 손발이 절단되고 파괴된 채 한구석에 기우뚱 제 몸을 지탱하고 있다.
故 구본주 작가의 조각상 <갑오농민전쟁>이 '미군기지 확장 결사반대'라는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두 팔을 불끈 뻗어보지만, 부서진 건물 잔해 위에 우뚝 서서 평화의 깃발이 펄럭이지만…, 한순간 목울대가 울컥 아파온다. 울어야 하나. 여기서 잠시 주저앉아 땅을 쳐야 하나. 주민 한 사람이 지나가다 서성이는 나를 지켜본다. 마지막 예술 축제의 기억이 순서 없이 떠올랐다. 일인극 소설낭독 시낭송 만신굿 촛불 등 주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어깨 겯고 예술제의 밤을 보내던 곳이다. 창문 곁에 바투 서서 끝까지 우리들을 지켜보던 <대추리 사람들>의 초상화가 있던 곳이다.
바람이 분다. 회색 바람이 사정없이 불어댄다.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맨 땅을 휩쓸고 머리칼을 헤집는다. 폐허더미 위에 꽂힌 '평화'의 깃대가 휘청 흔들린다. 깃발도 회색 바람에 세차게 펄럭인다. 펄럭이는 '평화'의 깃발을 한참을 올려다보는데, 한순간 저 깃발이 평화를 짓밟고 올라선 성조기로 보였다. 왜일까. 완력으로 몰아치는 무지막지한 회색 바람 탓일까. 슬픈 일이었다.
평화예술동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곳에는 더 큰 바람이 분다. 무겁고 둔중한 바람이다. "평화의 노래를 울려라." 웅웅 거센 바람이 여섯 개의 기타 줄을 사납게 튕겨대고 있다. 여기는 평화의 동산이라고, 외세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곳이라고, 우리 손으로 힘들게 일궈낸 비옥한 농토라고, 우우웅 기타 줄이 항거하고 있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주민들이 써 놓은 현수막에는 그들의 절규가 끓어오르고 있다. 색색의 깃발이, 각각의 표어들이 바람 속에서 시위하고 있다. 황새울 저 너른 들을 향해 소리쳐 일어서며 단말마처럼 달려 나가고 있다.
저 한 세기 전, 동학의 농민들이 죽창에 혁명의 깃발을 세우고 와와 일어서는 함성의 소리인 듯하고, 끊이지 않는 외세의 침입에 항거하며 분연히 일어선 민초들의 분노의 외침 소리인 듯도 하다. 이 바람이 불고 불어 더욱 세차게 불어, 드디어는 성난 돌개바람이 되어 서해 바다를 지나 태평양 바다를 휘돌아 걸핏하면 무기를 휘두르는 저 아메리카 백악관 앞에 몽땅 부려놓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지기도 한다. 왜 저렇게 많은 깃발이 한꺼번에 일어서서 성을 내는 것인가, 나라의 통치자가 제 나라 백성과 제 나라 땅을 지켜주지 못한 꾸짖음인가.
다시 귀 세워 들어보니 바람 소리는 이 땅의 선령들이 목 놓아 소리쳐 우는 소리인 듯도 하고, 마을 터 지킴이들이 우우우 음산한 울음으로 달려드는 소리인 듯도 했다. 한참을 바람을 맞고 서 있자니 문득 이 자리가 두려워진다. 무섭고 두려워서 두 귀를 막아버린다. 다행히 지난 마지막 평화예술제 날에 심은 기념식수 두 그루가 푸른 잎을 틔우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어린 묘목에서 잠깐이나마 희망과 위안을 찾는다
들로 나가 본다. 소만을 하루 넘긴 너른 들판은 모내기는커녕 아직도 풀 한 포기 없는 푸석한 땅으로 잠을 자고 있다. 찰랑찰랑 물 채워져야 할 논배미에는 황새 대신 전경들이 까마귀 떼처럼 여기저기 서서 빈 들판을 지키고 있다. 전경차를 일렬로 세워놓고 벼 한 포기 심겨 있지 않은 빈들을 지키는 전경들도 매우 심심해 보인다. 빈들에 우두커니 서서 아무 것도 없는, 허깨비 같은 '그 무엇인가'를 지키고 있는 그들이 내 자식 같아 마냥 안쓰럽다.
논바닥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파헤쳐져 있다. 구덩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것은 웬만한 개천을 능가하고 있었고, 토사를 쌓아놓은 양쪽은 거대한 둑이자 완강한 진지 같다. 도두리 마을로 나 있던 길도 끊어져 거기에 길이 있었는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경비초소와 철조망이, 마치 남과 북을 가르는 분단의 벽처럼 삼엄하게 쳐져 있다. 아니, 그보다 더 참혹하다. 처절한 전쟁을 벌이다 하루 잠깐 쉬는 듯한 형국이다. 그 옆으로 보이는 캠프 험프리의 물탱크와 레이돔은 참 평화로워 보인다. 그곳에 서서 철망 너머로 황새울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을 미군들도 보이는 듯하다.
포클레인이 영농단 앞 황새울 논바닥을 뒤엎은 날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최병수 작가의 설치작품 <미사일 솟대>가 안타까움을 더한다. 전시에도 예술품은 함부로 훼손할 수 없다는데, 국방부는 그 행방을 묻는 작가에게 '그게 언제부터 거기 있었느냐'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한다. 무너진 대추분교의 초상화와 벽시에 이어 예술품 파괴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따르고 존경하는 것은 무력과 권력밖에 없는 저들의 눈에 그것이 예술품으로 보일 리가 없을 터.
더러는 떠나고, 더러는 남아 있는 스산한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들사람들 집으로 들어선다. 염치불구하고 식객이 되어 공기 밥을 깨끗이 비우고 커피까지 한 잔 탄다. 커피를 마시며 '절대로 내 손으로 들판을 염하고 싶지 않다'는 시구절의 대추리·도두리 만인보의 한 주인공 홍민의 씨를 만나 마을 얘기를 듣는다.
주민들은 밤이면 방안에 틀어박혀 시대를 토로하며 독한 술로 울분을 달래고, 낮이면 평화동산에 우두커니 앉아 벼 한 포기 심지 못하는 비쩍 말라가는 논바닥을 한숨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이란다. 그날 받았다는, 6월 30일까지 떠나지 않으면 불법거주로 간주한다는, 직인도 이름도 없는 국방부에서 보냈다는 '희한한' 공문을 읽으며 무자비한 공권력에 다시 한번 소름이 돋는다.
무겁고 육중해 보이는 헬리콥터 한 대가 낮게 하늘을 선회한다. 마을의 동태라도 살피는 듯 느리게 날고 있다. 국방부의 공병이 투하된 지난 5월 4일, 철조망 뭉치를 하나씩 달고 한꺼번에 출현한 10여 대의 헬리콥터가 꼭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며 류외향 시인이 그날의 상황을 담담히 떠올려 주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대추리를 떠나는 길, 기어코 잿빛 바람이 비를 흩뿌린다. 열어 놓은 차창으로 비바람이 차갑게 날아든다. 언제쯤 공권력의 간섭 없이, 저 무력의 충돌 없이 평화의 깃발이 펄럭일 것인가. 언제쯤 두 손 모아 파랑새를 돌보고 있는 소녀의 염원이 이루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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