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나의 '별 볼 일 없는' 평택 투쟁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나의 '별 볼 일 없는' 평택 투쟁기

[황새울에 평화를! 릴레이 기고] 이재웅 '대추리의 손을 잡아주세요'

소박한 활보

내가 평택의 대추리를 알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전철 안에서 심심풀이로 신문을 읽다가, 혹은 인터넷에서 서핑을 하다가 알게 된 것이다. 마치 길 위의 돌처럼 내 눈에 툭툭 채였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당시 나는 그 기사를 아주 눈여겨보지도 않았고, 또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게다가 당시 기사 중에는 그 보다 더 흥미로운, 혹은 나에게 더 가까운 기사거리가 많았다.

나는 대추리 관련 기사를 읽었고, 또 잊었다. 그래도, 늘 그래왔듯이, 내 생활에 무슨 지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후, 내가 대추리를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동료문인들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그 관심이라는 것도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문제의식이라는 것도 아주 미비했는데, 말하자면 주민들에 대한 생존권 혹은 보상 문제나 미국의 의도, 정부의 행정집행에 있어서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나의 평소 안일하고 게으른 인식력 탓도 있겠지만(인식에도 그런 게 있다면), 미군기지 관련 사안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 많이 따라다녀, 이제는 심드렁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지난 80년대, 90년대 그런 사안들을 너무 많이 접해 문제의식이 첨예해지기 보다는 오히려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또 그런 건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의식의 배후에는,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무의식적인 전제도 없지 않을 것이다. 반미니, 노동운동이니, 대학 운동이니, 시민운동이니 하는 무슨무슨 운동만 들어가면 다 낡아 보이는 것이다. 또, 실제로도 그런 행태가 없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요는,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하고, 또 살만해졌고, 또 어쨌거나 사람들의 의식도 변했는데, 이 놈의 무슨무슨 운동만은 맨날 옛 그림자의 끝자락만 잡고 세상을 진보시키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또 다른 이유들도 있다.

하나는, 그것이 여전히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몰라도 내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내 먹고 살기도 바쁘다는 것이다. 내가 하루를 보내면서 겪는 문제와 애로도 신문 위의 사회 문제 만큼이나 복잡하고 짜증나는 것이다. 그런 터에, 이런 저런 사회적인 문제에 참여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나 먹고 살기도 바쁘다.'
이렇게 냉소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아주 가끔 이곳 아니면 저곳에 힘을 보태볼까 싶어도, 마땅한 창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수많은 시민단체가 있다 해도 평소 어디 마땅히 소통하는 단체도 없고, 또 내가 썩 필요한지 어쩐지도 잘 모르겠다. 마음은 좀 생겼는데, 결국 어디로 어떻게 참여할지 몰라 뜻을 접어버리는 것이다. 역시 내 먹고 살기도 바쁜 터에 그 정도는 아주 쉽다.

그러니, 결국 나에게 답은 하나다.

야당에서, 운동권에서, 시민단체에서 어련히 잘 알아서 할라구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별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들 역시 입장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지금 권력을 잡은 여당과 뭐가 다르냐 싶은 것이다. 특히, 8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 좀 했다는 사람들이 요즘은 국회의원도 되고 뭐도 되고 해서, 자기들 민주화 이력을 들먹거리며 자기 입지 굳히기나 하고 있는 양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대추리 비슷한 사건들을 보면, '또, 이런 건가?'라는 생각과 동시에 '또 야당이나 운동권의 먹잇감이 하나 생겼구나.' 싶은 것이다. 그리고 결국, 나는 내가 이런 데 참여해 봐야 또 다른 권력 만들기의 들러리 중 하나로 서게 되는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관심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대추리 기사를 읽을 때, 이런 불만이 없지 않았다고 어떻게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그래, 반미도 해야 하지, 미군기지 이전도 안하거나 축소하면 좋지 뭐, 분명 또 국가가 어느 정도 잘못 했을거야 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런 불만이 없지 않았다고 어떻게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복잡하고 상충되는 감정으로, 결코 무슨 굉장한 반미 투쟁의지를 가졌던 것이 아니라, 대추리에 갔었다고 어떻게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동료문인들이 대추리에 한 번 다녀가라는 말을 듣고, 그저 바람이나 한번 쐬고 오자하고 대추리에 갔을 때, 개인적인 반감이나 의심이 전혀 없었다고 어떻게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정작 대추리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대추리의 마을길을 걸었을 때 내가 본 것과 느낀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궁극적으로 말해, 내 반감과 의심을 아주 천천히 녹여주는 아주 평화롭고 소박한 풍경에 다름 아니었다. 누가 나에게 투쟁의 변을 들려주지 않아도, 무슨 민족이니 자주니, 운동이니 하는 말들을 해주지 않아도, 그저 마을길을 나 혼자 게으르게 돌아다니면서, 이런 마을이 미군 기지로 들어간단 말이지? 하고 홀로 안타깝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나의 대추리에 대한 의식은 이렇게 소박한 지점에서, 나쁘게 말해 별 볼 일 없는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명분

아마, 내가 5월 4일 대추리에서 전경과 대치했을 때에도, 대추초등학교 옆에서 운동장으로 진입해 들어오려는 전경과 대치했을 때에도, 내 입장은 그토록 소박한, 나쁘게 말해 별 볼 일 없는 입장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어느 쪽이 옳은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쪽이 알 수 없으니 종국에는 소박한 입장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시 대추 초등학교의 운동장 귀퉁이에 서 있던 내 머리 속에서는 두 가지 입장의 생각이 병존했었다.

하나는, 이런 생각이었다.

국가로서도 어쩔 수 없겠지. 힘없는 나라의 설움이겠지. 노무현 대통령도 일본의 국가원수만 되도 이리 하겠냐, 국방부의 윤광웅 장관도 어쩔 수 없겠지. 그래, 분명히 그럴 것이다. 정당성도 없지 않겠지. 어쨌든 미군 있어야 안보가 유지된대잖아. 그러니, 저쪽에서 보면, 자기들 입장 안 헤아려 주는 나 같은 놈이 병신 같고 짜증나겠지.

사실이 그랬다.

그래서, 새벽잠 설치고 와서 내 앞에 서 있는 전경들도 좀 불쌍했다. 나도 군대에 다녀왔으니, 그 친구들이 막사에 들어가 어떤 불만을 토로할 줄 대충은 짐작이 갔다. 아마 모르긴 해도 '좆뺑이 깠다'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랬다.

여기 대추리 주민들과 정부가 대화는 충분히 했었나? 혹 무슨 70년대처럼 국익을 위한 것이니 너희들이 대의를 위해 여기서 나가라,라는 식의 일방통행은 아니었나. 80%가 이미 나갔으니 20%는 군소리 말고 떠나라는 식은 아니었나. 주민들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 주민들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그저 돈 중심의 획일화된 보상은 아니었나. 터전을 두 번이나 뺏긴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줄 어떠한 절차도 없었던 것은 아닌가? 아무리 미군이 중요하다 해도, 국민을 상대하는 데 너무 신중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공병대이긴 하지만 군 병력 투입은 형식상으로라도 자제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건 달리 말해, 궁극적으로 국방부의 입지 세우기 외에 더 뭐란 말인가? 모의원이 말하길 미 병력이 감소한다는데 하다못해, 축소 이전은 안 되는가? 이번 평택 기지 이전과 함께 몇 배의 땅을 돌려받는다는데, 그래서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데 혹여 그 땅들이 평택 기지 이전의 명분이나 여론몰이와 바꿔치기 해도 무방한, 군 전략적으로 별 쓸모없는 땅이 아닐까? 이번 평택 기지 이전 문제에는 우리의 안보 문제도 문제지만 동북아에 대한 미국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는데 이것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까?

결국, 나는 어느 쪽에도 동조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나마 신념 비슷한 게 있다면, 딱 하나 이거였다.

미국이 한국의 평화로운 마을을 미군 기지로 만들 때에는, 특히나 동북아 정세에 관여하는 목적이 깃든 미군 기지를 세울 때에는 이만한 저항이 있다는 걸 좀 알아줬으면 했던 거다. 미국을 옹호하는 세력도 있지만, 저항하는 세력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거다. 내 소박한 입장에서 보자면, 미국이 대한민국 땅에 대한민국의 안보 외에 다른 목적이 깃든 미군 기지를 세우는데 어떻게 조금의 저항도 없어야 한단 말인가? 하고 묻고 싶었던 것이다.

모르긴 해도, 우리 조상들도 그랬을 것이다.

조금 더 오버하면, 나 같은 놈이 이렇게 해주면 다음 대통령이 미국과 미군 기지로 협상할 때, 봐라 우리나라 국민 중에는 저렇게 저항 세력이 있어서 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나도 어쩔 수 없다. 이번에는 미국 너희들이 양보해라라고 핑계라도 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도 해봤다. 그래야 뭐 SOFA가 평등해지는 시기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 서 있었다.

우리가 힘이 없어도, 아무리 현실적인 국제정세를 인정해도 그저 예, 예하고 엎드려서 길을 터줘야 한단 말인가? 정부가 공식적인 기관이라 못하면 나 같은 놈이라도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닌가? 나도 군대에 갔다 왔고, 예비군 훈련 잘 마쳤고, 세금도 잘 내고, 이런 저런 지키라는 법규 잘 지켜온 놈이니 그 정도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 요는, 내가 무슨 대단한 투쟁의지를 가지고 거기에 죽봉을 들고 서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무슨 정치적 신념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예전부터 대단한 투사도 아니었고, 반미 투쟁에 평생을 받치고, 모든 생활을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희생정신이 강한 놈도 아니다. 나는 대추리를 떠나면 또 다시 생활 전선으로 돌아가 내 먹고 살 길을 찾기에 바쁜 놈이다. 하지만, 그 날은 그랬던 것이다. 마음에 뭔가 와 닿으니, 소박한 명분이 있으니, 죽봉을 들고 서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싸웠다. 그리고 소위 말해 깨졌다.

좀 웃기는 말이지만, 나는 그날 그곳에 서 있을 때, 내가 대추초교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들판에 시커멓게 서 있는 전경들을 보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막말로다 이거 '좆나 맞겠구나. 어디 뼈나 안 부러졌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만 했다. 내 옆에 있던 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그날 나는 담배를 피우면서 그에게 물었다.

"못 이기겠지요?"

그러자, 그가 대답대신 씁쓸히 웃었다. 당연히 못 이기지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디 있냐는 그런 웃음이었다. 모르긴 해도, 그 사람도 방패로 꽤 찍혔을 것이다.

이게 나의 별 볼일 없는 투쟁기라면 투쟁기다.

혼란스러운 봄날

지금도 나는 내 명분을 꺾지 않고 있다. 아마 대추리의 싸움이 끝나도 나는 이 명분만은 지킬 것이다. 이념이니, 정치니, 반미니 하는 것은 차후 문제이다.

이 싸움에 대해 모 언론에서는 공권력 침해라고도 하고, 불법이라고도 한다. 공권력을 얕잡아 보는 것이니 이번에 엄단해야 한다고도 한다. 심지어는 폭도라고도 하고, 전문 시위꾼들이라고도 한다. 어디에선가는 주민들을 볼모로 해서 정치세력화를 꾀하는 짓이라고도 한다.

정말이지 나 같은 놈은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말들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해석이야 다양하겠지만, 그분들이 대추리의 거리를 한 번이나 걸어봤는지, 대추리 주민들과 대화 한 번 나눠봤는지, 그리고 그 격렬한 시위를 눈앞에 두고 담배를 태우며 그 시위 참가자들이 어떤 신분으로, 어떤 생각으로 참여했는지 대화를 나눠보기나 했는지 그것을 좀 묻고 싶다.

때로는 바깥에서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현장에는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장에 안 가 봐도 오랜 경륜을 통해 다 안다,라고 말한다면, 주민들이 이미 선동되고 세뇌되었으며, 또 정치세력화라는 것이 한 개인이 모르게 위쪽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면 나로서도 할 말이 없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야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또, 어쩌면 정말 그런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냥 부풀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현장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거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나도 대추리의 마을에 들어서기 전까지, 그리고 주민들이 주는 물과 김밥을 먹고 그들의 푸념을 듣기 전까지, 한 할머니가 자기들이 어떻게 이 마을을 일으켜 세웠는지 이야기를 하며 우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 딸려가는 시위대를 다시 데려오겠다며 그 늙으신 몸으로 전경들에게 항의를 하고 몸싸움을 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 전경 저지에 밀린 시위대들이 도망갈 때, 먼저 대문을 열어주고 빨리! 빨리! 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 그런 반감과 의심을 가져더랬다. 그래서, 대추리 옆의 안정리, 본정리 주민들과도 대화를 나눴었다. 혹자는 평택 기지 이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했고, 혹자는 안 된다, 대추리 주민들이 잘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 어느 쪽도 대추리 주민들은 아니었다.

대추리를 떠난 사람은 이유가 있어 떠났을 것이다. 반대로, 대추리를 떠나지 않은 사람은 이유가 있어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이야말로 이념전쟁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니, 그 분들은 결국 2006년에 한 작은 마을에서 70살 먹은 분이 '이제 시대가 변했으니' 나도 이대로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라고 하는 말을, 1980년대식의 반미 투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 분들은 이번에 연행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주민들이 아니라 외부 시위대였다고 하면서, 이 싸움을 주민들과 정부의 싸움이 아니라 주민들을 볼모로 한 외부 시위대와 정부의 싸움으로 비화시키시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따져보면, 외부시위대의 숫자가 훨씬 많으니 연행되는 숫자가 많은 것도 당연한 결과이며, 또 나이 드신 주민 분들보다 젊은 측들이 훨씬 강경하게 저항하니 그것 역시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과연 외부 시위대와 정부의 싸움인가? 숫자만 따지면 본질적인 것은 놓치고 만다. 왜 외부 시위대가 대추리 안에 들어와 있는가부터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곡해 시키지 말고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렇다면 역으로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 그럼 대추리 주민들이 외부에 도와달라고, 정부와 상대해 싸우고 싶은데 우리는 힘이 없으니 도와달라고 할 때, 아무도 그 손을 잡아주지 않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4700만 인구 중에 다만 몇 천 명이라도 그 손을 잡아줘야 하는가? 어떤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인가? 그것은 반미니, 좌파 운동이니 하기 이전에 본능처럼 잠재된 인간에 대한 양심과 연민의 문제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연행된 숫자 중에 외부 시위대가 많으니 주민들과는 상관없는 문제이며, 무조건적인 반미, 좌파 운동 세력이 주민들을 핑계 삼아 싸우고 있다는 식으로 논조를 몰아간다면, 그래서 결국 아무도 주민들을 도와줘서는 안 된다는 식의 결과에 이를 수밖에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그분들께서 우려하는 파쇼가 아닐는지.

하긴, 그분들께서는 이번에 대추리 사건이 발단이 된 것이 일방적인 통보 형식의 행정집행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충분한 대화와 타협 속에서 이뤄진 것인지도 따져 묻고 있지 않다. 또한, 이번 미군기지 이전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를 위한 것인지, 미국을 위한 것인지도 따져 묻지 않는다. 우리가 평택 기지 이전으로 반환받는 땅이 양만 많고 미국 측에는 별 쓸모없는 그래서, 우리에게 이제는 내줘도 좋은, 더 나아가 평택 기지 이전의 여론몰이나 명분으로 좋은 단순한 사탕발림인지 어쩐지도 따져 묻지 않는다. 우리의 선조들이 외세에 대해 어떤 자세를 견지했는지는 더더욱 따져 묻지 않는다. 따져 묻는 건, 왜 혈맹인 미국이, 6.25때 우리를 도와준 미국이 다시 우리를 돕기 위해 미군 기지를 이전하겠다는데, 그리고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얻어 그것을 집행하겠다는데 왜 대추리 주민들과 그들을 돕는 외부 시위대가 난리냐는 것이다. 사익에 앞서 대한민국의 이익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정말이지, 대추리 할아버지도 지금이 2006년인 것을 아는데 그 분들은 70년대식 사고방식에 묻혀 지내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아니면, 자기들의 이익에 훼손되는 것이 있는 것일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따져 물을 건 좀 따져 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미국보다 힘이 없으니 결국 싸움에서 패한다 해도 따져 물을 건 물으면서 패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 국가 예산 손실 운운하면서, 평택 기지 이전비용으로 들어가는 8조니 10조니 하는 돈에 비하면 그야말로 껌 값인 돈을 운운하면서, 대추리 주민들이 평생 바쳐 일궈놓은 논밭과 마을을 돈 줄 테니 내놓으라 하면 그것이야말로 야만 국가의 행태가 아니겠는가?

나는 정말이지 모르겠다. 윗분들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도 모르겠고, 어떤 것이 정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지금껏 원칙적인 국정운영을 하나도 못해 오다가 왜 엉뚱한 것에서 대화는 안하고 원칙 지키겠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답답한 심정을, 김지태 대추리 마을 이장님은 윗분들께 보내는 서신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우리 주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것은 미군 재배치의 목적과 정당성을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지 보상을 더해 달라고 한 것이 아닌데도 아직도 보상과 이념 문제라니 도대체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이 아직도 제정신인지 아니면 4700만 국민을 상대로 계속 사기극을 벌이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