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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 스쿨'의 박근혜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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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멘붕 스쿨'의 박근혜 후보

[창비주간논평] 사람들을 '멘붕'에 빠지게 한 박근혜 식 화법

어떤 단어가 한 시대의 분위기를 요약하기도 하는데, 지금 그 단어는 '멘붕'인 듯싶다. 지난 몇달 사이 'mental breakdown'이라는 말의 어정쩡한 번역약어에 사람들이 익숙해진 계기는 4·11 총선에서의 야권연대 패배와 뒤이어 벌어진 아수라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통합진보당 사태였다. 하지만 이 말은 곧장 이런저런 정치경험에 적용되고 일상생활의 여러 면을 서술하는 말이 되었다.

시대의 징후에 예민한 <KBS 개그콘서트>는 그런 상황을 반영해 '멘붕 스쿨'이란 코너를 선보였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문제학생을 상담하는 교사에게 이런저런 학생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해 선생님을 당혹감에 빠뜨린다. 불량기 넘치는 소영이, 조기유학 실패자 성원이, 연기자 지망생 영훈이, 여자 꾀는 데 몰두해 있는 납득이, 부르지 않았지만 찾아오는 범생이 승환이가 등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장안의 화제인 '갸루상'(girl의 일본식 발음 '갸루'에서 비롯한 말로, 독특한 스타일의 젊은 여성을 가리킨다)이 등장해 선생님을 멘붕 상태로 몰아넣는다.

의미와 소통의 붕괴, 멘붕 스쿨

이 과정은 꽤 짜임새있는 전개다. 갸루상 이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매우 자기중심적이다. 그들은 소통의 제스처를 취하지만 컨텍스트를 무시하거나 벗어나 독백을 거듭할 뿐이다. 예컨대 소영이는 "그거나 그거나" 똑같다고 우기고, 성원이는 "미국영어는 다르다"고 억지를 쓰며, 납득이는 "납득시켜드리겠다"고 하지만, 납득되지 않는 말만 한다. 이런 소통장애는 점점 도를 더해 영훈은 자신의 의도를 배반하는 액센트에 시달린다. 승환이는 우기지도 않고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갸루상에 이르면 의미와 소통 그리고 정체성 자체가 파괴된다.

소통과 자아정체성의 붕괴를 상징하는 갸루상으로 이르는 과정에 캐릭터 하나를 더 삽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기꺼이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천거할 것이다. 그녀는 최근 들어 점점 더 우리의 의미세계를 파괴하는 일을 해왔으며, 갸루상 앞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영이에게 "헬리콥터균이나 헬리코박터균이 그게 그거"듯이, 박후보가 보기에 5·16쿠데타는 4·19혁명을 계승한 것이며 5·16쿠데타는 4·19혁명을 지키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소영이에게 "베트남 칼국수나 베트남 쌀국수나 그게 그거"듯이 박후보에게 1차 인혁당 사건과 2차 인혁당 사건(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모두 그게 그거다(1차 인혁당 사건 또한 재심중이며 무죄판결이 예상되고 있다는 점도 물론 그녀는 모른다). 5·16 쿠데타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박후보의 말도 불가피한 것과 최선을 뒤섞는 소영이 화법의 일종이다.

우리를 '멘붕'에 이르게 하는 박근혜의 화법

박후보는 때로 납득이처럼 우리를 납득시키려 한다. 새누리당의 지난 19대 총선 당선자 문대성이나 김형태 파문에 대해서는 "사실이 확인되면 거기에 따라 당이 (결정)할 거니까 더 되풀이할 필요가 없는 얘기 같다"고 했으며, 현영희 의원의 공천헌금에 대해서는 "개인비리일 뿐, 당이 돈 받은 거 아니"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납득이 안되자 이들은 하나같이 출당, 사직, 탈당했는데, 그것이 납득이랑 유사한 박근혜식 "컨셉"인 듯하다(이 글 쓰는 중에 또 홍사덕 전 의원도 탈당했다). 하지만 이 컨셉에는 예외가 있다. 동생의 비리 의혹에 대해 박후보는 "본인이 아니라고 말했으니 그걸로 끝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아무도 납득하지 않았지만, 박지만씨는 아직 동생에서 탈당하지도 사직하지도 않았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에 헌화하는 박근혜 후보 ⓒ뉴시스

'멘붕 스쿨'의 영훈이는 연기하려는 바로 그 순간에 연기에 실패한다. 의도의 과잉이 의도의 배반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박후보는 영훈이의 거울상과 같다. 그녀는 자신의 발언을 잘 연기하지만 그것을 관할하는 초자아가 지쳐 졸고 있을 때마다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다.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2004.4.9)에 출연한 박후보는 곤란한 질문이 계속되자 "저하고 싸우자는 거냐"며 진행자 손교수를 쏘아붙였다. 이런 예들은 여럿이지만 역시 백미는 지난해 가을 안철수 원장의 지지율이 박근혜 후보를 넘어섰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기자 질문에 "병 걸리셨어요"라고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한 것이다.

박후보는 박정희의 딸일 뿐 아니라 유신 시절 여성구국봉사대를 적극적으로 조직하던 활동적인 퍼스트 레이디였고 사립대학과 거대 장학재단의 운영자였으며, 오랫동안 보수 정당과 정권의 비중 큰 정치가였다. 그런 그녀가 5·16 쿠데타와 10월 유신의 피해자들에게,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국외자인 척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는 승환이가 상담실에 나타나듯이 그렇게 느닷없이 그런 분들의 유가족을 찾아간다. 그리고 놀란 유족들은 상담실의 선생님(송중근分)처럼 깜짝 놀라 묻는다. "사과하러 왔니" 그러면 박후보는 승환이처럼 말한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녀는 사과를 말해야 할 자리에 위로를 말하고 화해가 요청되는 곳에 통합, 그것도 대통합을 읊조린다.

끔찍한 유머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위로하는 자의 위치란 어떤 것인가? 우리는 통상 가해자로부터 위로받지 않는다. 가해자의 딸로부터도…… 우리가 위로를 구하는 자는 상처에 공감하지만 삶의 은혜로움 덕에 그 상처받은 자보다는 덜 상처받아 아직 사랑을 나눌 마음의 여력을 가진 제3자이다. 우리는 그런 자로부터 얻은 위로를 자양분으로 스스로를 일으켜세워 가해자를 용서하는 고양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박후보가 말하는 '위로'는 최악의, 끔직한 유머인 셈이다.

박근혜 후보와 우리의 소영이 혹은 승환이 혹은 영훈이나 납득이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들은 연기하고 그래서 우리를 웃게 한다는 것, 의미의 파괴된 양상을 재현함으로써 의미를 구제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하지만, 박후보는 소영이, 승환이, 납득이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는 것, 바로 소영이와 승환이가 웃음을 통해 비판하려는 그 의미와 소통 파괴의 출처라는 점이다.

이렇게 계속되는 의미와 소통 와해의 귀결로 등장하는 것이 갸루상이다. 한때 우리 사회는 자신에게 국토를 맡겨달라는 통치자를 선택했다. 그는 국토와 자연을 자기 호주머니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러고는 모래톱과 습지를 품고 구비구비 흘러가던 강을 초록색 썩은 호수로 만들어 되돌려주었다. 그렇게 자연붕괴가 벌어진 뒤 곧장 또 한사람이 등장해 이한구와 김종인, 줄푸세와 경제민주화를 100% 뒤섞은 대한민국을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많은 문제를 역사에 맡기자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갖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역사를 움켜쥐고 일그러뜨릴 권력일 뿐이다.

상담실 선생님이 되어 박근혜에게 물어보자. "김종인이냐?" "아니무니다." "그럼 이한구야?" "아니무니다." "그럼 도대체 누구야?" "박정희이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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