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게 왔구나.'
한나라당이 박성범, 김덕룡 의원을 공천헌금 수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함에 따라, 5ㆍ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끊일 줄 모르던 한나라당 공천 잡음의 뇌관이 드디어 터졌다. 당 안팎의 선거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이 '예고된 악재'라는 데에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유사사례가 또 있을 수 있다는 견해에도 토를 달지 않는 분위기다.
***'예고된 악재'…터지기 전에 터뜨리자 **
지방선거 공천을 둘러싼 한나라당 내 잡음은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당 안팎의 일반적 견해다.
한나라당은 '개혁공천'이란 명분 아래 중앙당이 쥐고 있던 공천권을 16개 시도당에 이양했지만, 정작 공천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과 잣대는 마련하지 못했다. 시도당의 결정이 중앙당에서 여과 없이 확정되는 분위기에서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나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등 공천심사위원들이 공천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자연히 공천이 확정된 지역에서는 '누구 사람이라더라' 혹은 '얼마를 줬다더라'는 식의 소문이 돌기 마련이고, 박 의원이나 김 의원 모두 이 같은 제보를 받은 당 클린감찰단(김재원 위원장)에서 확인해본 결과 소문으로만 넘길 수 없을 정도의 정황 증거가 확보된 경우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말 박 의원의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한 제보를 받고 박근혜 대표에게 보고했으나, 박 대표는 "사실관계에 관한 구체적 증거가 필요하다"며 판단을 유보했다고 한다. 박 의원 의혹을 추가 조사하는 와중에 이달 초 김 의원의 의혹에 관한 제보가 들어와 결과적으로 두 사건이 맞물려 논의됐다.
박 대표는 중진 의원들이 연루된 사건을 다루는 데 신중을 기하길 요구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보니 무작정 시간을 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허태열 사무총장은 13일 "지도부로서도 인간적 고뇌가 적잖았지만 이의 제기자들이 길에서 폭탄선언이라도 해 버리면 당이 다 뒤집어쓰는 형국이 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 아래, 최악은 피해 가자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허 총장은 그러나 검찰이 이미 내사에 착수했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검찰에서는 사전이 전혀 사건을 인지하지 못했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곽성문ㆍ한선교도 '공천 잡음'으로 검찰 수사 **
이미 터진 사건의 여파도 여파지만 박 대표 이하 당 지도부를 긴장케 하는 것은 유사사건의 재발이다.
이미 검찰이 수사에 들어간 두 건이 있다. 대구에서 곽성문 의원이 공천과 관련해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고, 용인에서 한선교 의원이 공천 신청자에게 골프 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당 클린감찰단에서 조사 중인 사건도 5,6건에 달한다. 허 총장은 "조사 중인 사건에는 현역 국회의원이 연루된 경우도 있다"며 "유사한 사례가 발견될 경우 똑같은 원칙 아래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한 당직자는 "전국이 지뢰밭"이라고 혀를 찼다. 공천 잡음이 전국적 현상이다 보니, 빗발치는 투서와 반발 속에 이번 사건처럼 진실로 드러나는 케이스가 없으리라곤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도부의 안이한 현실인식이 문제" **
선거를 50일 앞두고 터진 악재에 침통한 가운데, 소장파 의원들이 이번 사건의 책임을 박 대표의 리더십 문제로 몰아붙이면서 내홍으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수요모임> 소속 한 의원은 "당에 제보가 들어간 지 한 달이 됐다고 하는데 결국 박 대표가 질질 끌다가 선거 코앞까지 온 게 아니냐"며 "'읍참마속'이란 포장으로 덮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의 발표 직후 <수요모임> 의원 몇 명이 모인 자리에서는 "지도부의 안이한 현실인식이 문제"라며 "지도부 총사퇴"까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도부는 생각이 다르다. 허 총장은 "지도부가 중진 의원이 연루된 사건이라 적당히 처리하려고 들려다 들킨 것도 아니고 원칙과 약속대로 잘 처리했는데 지도부 책임론이 왜 끼어드냐"고 발끈 했다.
당의 이미지 실추에 당장 영향을 받는 서울시장 후보들도 입장이 갈렸다. 오세훈 전 의원은 "선거에 좋을 것은 없다"면서 난감한 기색이었다. 당장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는 "'오세훈 선거법'을 만든 오 전 의원이 이번 사건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오 전 의원을 압박했다.
맹형규 전 의원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되겠지만 공천과정에서 벌어진 문제점을 깨끗이 하기 위해 당 스스로 아픈 상처를 도려내는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며 "당이 힘들고 어려울 때 그 틈새를 노려 당을 흔드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도부를 향한 공격에 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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