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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도입' 시도는 자기 발등 찍은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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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로스쿨 도입' 시도는 자기 발등 찍은 격

[기고] 이제라도 백지화하는 편이 낫다

로스쿨 도입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표시와 간곡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교육위원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뭔가? 로스쿨 학생 정원을 둘러싼 이해대립이 해소될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도입되는 법안은 로스쿨 정원에 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교육부와 대한변호사회 사이에서는 1200명 선으로 묵시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행 사법고시 합격자는 연간 1000명이다. 원래 로스쿨 도입법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대한변호사회는 해마다 배출되는 변호사의 정원이 크게 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찬성으로 돌아섰고, 그 결과 로스쿨이 원래의 준칙주의에서 인가주의로 바뀌었다. 준칙주의란 법률도서관 등의 시설과 교수 등 인원만 일정 기준 이상 확보하면 어느 대학교든지 로스쿨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인가주의는 교육부 등이 참여한 심의위원회에서 시설과 인원을 갖춘 대학교 중에서 인가를 하겠다는 것이다.

로스쿨 정원을 1200명으로 하고 인가에 의해 설립을 하게 할 경우 지금 대학의 사활을 걸고 막대한 돈을 들여 로스쿨 유치를 위해 투자를 하고 있는 대학들 중 상당수가 엄청난 곤란에 빠진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지금 사법고시 합격생들의 대부분이 8개 대학교에서 배출된다. 그 학교들에 100명 정원의 로스쿨을 인가하고 나면 남는 것은 4개 대학교뿐이다. 로스쿨 도입에서 지역발전을 고려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방침이니, 남은 4 개교를 지방대학교에 배정한다고 하면 각 광역시와 도 별로 하나씩 차례가 돌아가기도 어렵다.

지금 로스쿨 도입을 위해서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있는 대학교들은 위의 8개 대학교나 지방마다 유력한 1개씩의 대학교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범주에 들지 못하는 대학교들이 더 많은 투자를 하고 로스쿨 유치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 대학교들은 1200명 정원의 인가주의에 동의할 수가 없다. 로스쿨 도입을 심의하고 있는 곳은 국회의 교육위원회다. 이곳에는 대학교수 출신의 의원들이 여ㆍ야에 포진하고 있고, 이들을 통해 로스쿨 도입에서 탈락하게 생긴 대학교들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우리나라 로스쿨 도입은 일본을 모델로 하고 있다. 미국 것을 베낀 일본 것을 가져다가 써먹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이나 관료들의 정책수법이다. 일본은 준칙주의에 의해서 몇 십 개 대학교에 로스쿨을 인가해 주었다. 그러나 변호사를 1년에 1만 명 가까운 숫자로 뽑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의 형식적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로스쿨 졸업생 대상의 변호사 자격시험이 다시 어려워졌고, 로스쿨 도입과 함께 사라질 줄 알았던 고시학원은 여전히 성수기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 당국자들의 로스쿨 도입 사유 중의 하나가 고시학원에서 청춘을 허송하는 고시낭인을 없애겠다는 것이었다. 일본처럼 되면 로스쿨 졸업 고시낭인들이 양산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제한된 정원의 인가주의를 고집할 수밖에 없다. 인가주의가 도입되면 교육부가 거의 대학교의 생사여탈권을 쥐게된다. 교육부 공무원들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로스쿨 도입안은 어느 법과대학 학장님이 인정하듯이 애초에 법과대학 교수들에 의해서 주장되었다. 김대중 정부 때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산하 법학교육제도연구위원회가 그 통로였다. 그렇게 로스쿨 도입을 주장했던 장본인인 법과대학들이 이제 와서는 이 법의 통과를 반대하고 있다. 기존에 사법고시 합격자를 내지 못해서 인기가 없던 대학교들이 로스쿨만 유치하면 해마다 100명씩의 변호사를 배출하는 명문대로 탈바꿈할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 그 로스쿨을 유치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어느 대학교 법대 학장님은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로스쿨에서 탈락하면 명망이 있던 100년 전통의 대학도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여 결국 교수들의 일자리가 없어짐은 물론 막대한 재정을 헛되이 투입한 해당 대학본부까지 무너져 내려 대학사회는 제2의 IMF 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 가지고 있던 법과대학까지 소용없는 껍데기가 되게 생겼다. 금도끼를 내 것이라고 대답했다가 가지고 있던 자기 도끼마저 잃어버린 욕심장이 나뭇군 이야기가 생각난다.

로스쿨 도입법안이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는데도 교육부에서는 로스쿨 입학 시험 문제지 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미국의 로스쿨 입학시험 문제집을 LSAT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그를 본따서 로스쿨 입학 전형 시험 문제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학교때의 전공과목 성적만을 가지고 입학을 사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전국에 1,200 명밖에 뽑지 않는 로스쿨을 지원하는 대학생들은 로스쿨 입학시험 준비를 별도로 해야 한다. 역시 고시학원이 살판 나게 하는 일이다. 개인의 적성을 고려하는 시험문제를 내겠다고 주장을 하지만 쪽집게 과외가 통하지 않는 시험이 어디 있나? 학교 교육을 정상화한다고 내신성적 위주로 대학입학을 전형하면 내신과외를 해야 하듯이, 멀쩡한 대학생들이 이제는 로스쿨 입학 과외를 해야 하게 생겼다.

로스쿨이 도입된다고 하루 아침에 법조인을 지망하는 학생들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다. 그 많은 지망자들에게 모두 변호사 자격을 줄 수는 없으니까 선별하는 과정을 한번은 거쳐야 한다. 로스쿨 입학 시험이든, 변호사자격시험이든. 로스쿨 도입 주장자들은 그 제도를 도입하기만 하면 그런 선발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줌으로써 그 제도의 도입을 합리화했다.

그러나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환상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가 없다. 예전에 여러 차례 설명했듯이 로스쿨이 한국의 변호사 양성제도로서 지금의 사법시험과 연수원제도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것은 아무런 근거없는 희망사항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로스쿨 도입 주장자들이 그리는 장미빛 그림들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상정까지 온 것은 로스쿨 인가권이라는 막강한 칼을 손에 넣게 될 교육부 공무원들과 로스쿨 유치를 통해 재정적 이익과 명성을 얻으려고 했던 대학교들이 강력하게 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대학들이 그 풍성한 식탁에서 배제되게 생겼다. 자기 덫에 자기가 걸린 것이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 부작용, 지금의 사법시험제도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더 큰 피해를 가져올 부작용을 피하는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로스쿨 도입안을 백지화하는 것이다. 지금 백지화하면 학생들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다. 새로운 제도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니 오히려 좋다.

로스쿨 유치를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한 대학교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그 대학교들이 겪는 손해는 로스쿨제도가 시행되고 유치에서 탈락했을 때의 손해에 비하면 약소하다. 그리고 이미 강화한 시설과 인원은 기존의 법과대학 교육을 내실화하는 데 사용하면 된다. 기대하던 횡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로스쿨 유치에 탈락해서 쪽박 차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최소한 가지고 있던 쇠도끼라도 도로 찾아가는 것이 빈손으로 산을 내려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대한변호사회와 전국법대학장회의 공동명의로 로스쿨 도입 법안 백지화 의견을 내야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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