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래비전을 만들고자 한다면 절대로 빼먹어서는 안 될 두 가지의 화두가 있다. 하나는 "선진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령화"다. 물론 이 두 개의 화두만이 한국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화두는 아니며, 또 두 개가 동일한 수준의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두 개의 화두가 매우 절묘하게 "아동"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엮여 있고, 또 최근 너무나 끔찍한 아동문제가 빈번히 보도되어 선진화와 고령화를 주장하는 정치, 사회세력에 "아동"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했으면 한다. 선진화와 고령화 문제의 해결로 들어가는 문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선진화는 아동 보호와 배려에서부터**
우선 "선진화"에서부터 시작해 본다. "선진화"는 "근대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거대담론 시장에서 가장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담론상품이다. 물론 그 상품의 구체적인 내용이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마치 흥행에 성공할지 아직 모르는 미완성 영화에 유명한 스타가 캐스팅되서 주목을 받는 그런 영화같은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어떤 내용인지 뚜껑을 열어 보아야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진화 담론에 내용을 채우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선진이라는 단어가 뜻하듯이 어디론가 지금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하는데 여간 철학적이고, 사회과학적인 상상력이 뛰어 나지 않는 한 근대화와 민주화를 넘어서는 대단한 상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선진화의 담론은 민주화와 근대화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문제들, 혹은 민주화와 근대화의 과정에서 무심히 넘겨버린 중요한 것들을 어떻게 품어내고 또 어떻게 우리의 맥락에 맞게 좀 더 세련되게 다듬느냐의 고민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롭게 훌륭한 거대담론을 누군가가 만들어 낸다면 대단히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한국을 선진국의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꼭 가지고 가야 할 원칙이 있다면 바로 혼자서 설 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또 그들을 혼자서 설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최대한의 배려를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면에서 아동 혹은 어린이보다 더욱 중요한 보호와 배려의 대상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다른 소외인, 약자들도 보호와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세상에 갓 태어나서 아무 것도 모르고 순진무구한 아동, 그리고 신체적인 발달도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고, 부지런히 일해도 경쟁력을 갖기 힘든 아동이 보호와 배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장래의 어른들인, 그리고 너무나 연약한 아동을 안전하고 훌륭하게 키워내는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 아니겠는가? (뒤에서 주장하겠지만 이 문제는 한국사회의 "고령화"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은 장유유서를 강조하는 유교적인 전통 속에서, 그리고 아동이 일종의 노동력의 수단으로 여겨졌던 농경사회와 전근대적인 사회를 거쳐서 왔다. 이러한 전통과 관념의 관성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아동을 귀중한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보호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습관, 제도, 그리고 제도의 철저한 시행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운 좋게 미국의 한 중소도시에서 오래 살았던 경험이 있는데,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사회의 상당 부분이 문화적, 제도적, 법적으로 아동에 대한 보호와 배려에 할당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필자가 미국에서 처음 교통위반으로 딱지를 뗀 곳이 미국의 초등학교 앞에서 매우 저속으로 운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규정속도(시속 20마일)를 위반했다고 교통순경에게 걸린 곳이고, 아이가 생긴 후에는 아이의 안전과 관련된 다양한 규칙을 발견하고 매우 놀라곤 했다.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는 보호자 없이 어린이를 혼자 집에 둘 수 없고, 아이들이 쓰는 장난감, 문구류, 생활용품의 안전기준, 놀이터 시설의 안전기준, 스쿨버스가 섰을 때 타 차량의 운전규범, 유치원 내부 페인트의 유해물질 사용 여부, 차에서 아이가 카시트에 앉는 위치 등까지도 매우 엄격하게 규칙이 정해져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규칙을 잘 지키는지 당국에서 매우 철저하게 감시, 조사하고 또 동시에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음주운전 단속을 하듯이: 이 면에서 한국은 진정한 선진국이다). 문화적으로도 어린이들을 어른과 동등하게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해 주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고, 또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어른들이 배려를 해 주고 있다. 아동에 대한 학대문제 역시 매우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취급되는 중요한 이슈다. (참고로 힐러리 클린턴도 아동권[children's rights]을 다루는 변호사 출신이다.)
기왕의 한국의 선진화 담론은 이러한 매우 중요한 부분, 즉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문화와 제도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유교적인 전통이 강해서인지, 아니면 큰 정치를 하는 사람은 큰 문제만을 다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인지, 아동과 같은 "작은" 문제가 선진화 담론 속에 등장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아동문제의 실체를 보면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브랜드를 갖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엽기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듯이 지난 2월에는 초등학교 여학생을 같은 동네에 사는 신발가게 아저씨가 성폭행하려다가 살해한 사건이 있었고, 또 휴가기간 중 현역군인이 상습적으로 초등학생을 성폭행 한 일이 보도되었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작년 만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행 건수가 700건을 넘어섰다고 하며 또 범죄의 성격상 미신고 성폭행 사건이 매우 많을 것이므로 현재 아동에 대한 성폭행 건수는 엽기적인 것만을 주로 보도하는 신문기사의 건수를 훨씬 넘어서는 충격적인 숫자일 것이다. (일반적인 아동학대를 더하면 그 숫자는 더욱 충격적일 것이다)
또 3월 초에는 11살 초등학생이 등교시 학교 정문 앞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스쿨존에서 일어난 사고이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사고인데, 이와 함께 보도된 한국의 어린이 보행자 사망률 역시 충격적인 통계다. 2003년 국내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만 14세 이하 아동 394명 중 269명이 보행 중 사고를 당했고, 사고의 80% 이상이 학교나 집 부근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OECD국가 중 어린이 보행자 사망률이 1위라는 불명예까지 가지고 있다. 필자도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차도와 보도의 구별이 없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또 데리고 다닐 때 항상 불안하기만 했었는데, 개발이익과 아이의 안전을 맞바꾸려는 매우 후진적인 행태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이와 함께 가끔 뉴스에 보도되었던 수련회에서의 어린이 집단화재 사망사건, 같이 따라갔었던 교사들의 무책임한 행동, 어린이집의 처참한 급식 사건 등 아이들을 안심하고 밖에 내 보낼 수 없는 불안함이 계속 증폭되기만 한다. 학교에서는 또 어떻게 아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지도 걱정이 되고, 또 어린이 놀이공원에서는 안전기준(몸무게, 신장)에 맞지 않는 놀이시설에 어린이들을 무작정 태우려는 부모나 이를 허락하는 안내원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마트에서 유모차에 탄 아이를 그대로 에스컬레이터에 태우는 것을 보고 긴장하게 된다.
우리의 연약하고 순진한 아이들이 집 밖에서 안전하게 걸어 다니고 뛰어 놀고 있는지, 배려와 보호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안심할 수 없는 사회가 어찌 선진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아동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선진화 담론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아동의 문제는 선진화의 담론이 되기에는 너무나 "작은" 문제인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만약 어느 국가가 진정한 선진국인지를 판단하려면 어린이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인덱스를 만들어서 상위의 점수를 받는 국가에서부터 순서를 정하면 선진국의 순위가 정확하게 일치하여 나올 것으로 믿는다.
***아동의 문제는 고령화의 문제와도 직결**
이러한 아동의 문제는 또한 현실적으로 곧 닥쳐올 "고령화"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고령화의 담론 역시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담론 중의 하나인데,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새로 태어나는 인구가 감소하면서 젊은 인구에 비해 고령인구가 전체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 이것이 사회,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인구가 7%를 넘어서면 고령화사회로 정의되고, 14%를 넘어서면 고령사회로 정의되는데, 한국은 이미 2000년 이후 고령화사회로 진입했고 2019년에는 생산능력이 있는 청ㆍ장년층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15세에서 64세까지의 생산연령인구의 노동력 공급이 계속 감소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들이 고령인구를 위해 이전에 비해 상당한 경제 및 사회적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경제성장 및 복지비용의 지출에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고령화에 대한 많은 대책 중 가장 근본적인 대책으로 주로 제기되는 것이 출산장려다. 왜냐하면 인구의 감소가 고령화의 원인이고 인구감소의 원인은 출산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출산을 늘리는 정책이 근본적인 정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출산장려금을 지급한다거나 하는 정책들이 나오곤 하는데, 문제는 일정 액수의 돈을 지급해도 사회가 출산을 하고 싶지 않은 사회라면 출산이 장려될 수 없다. 즉 아동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 있는지, 부부가 모두 직장을 가졌을 때 안심하고 아이를 탁아시설에 맡길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과 문화가 갖추어져 있는지, 양육의 부담을 개개의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가 같이 질 수 있는지 등, 선진화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출산이 장려되기 어렵다.
또한 고령화의 시대에는 아동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귀중한 국가적 자산이다. 물론 고령화 사회가 아니더라도 아동들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생명이며 너무나도 고귀하고 보호되어야 할 생명이다. 그런데 OECD에서 보행자 아동 사망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한국이 지금 정말 선진화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령화 사회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출산장려 정책과 더불어 아동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선진 시스템의 구축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은 선진화와 고령화의 문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선진화ㆍ고령화 대책, 생활주변에서 시작하자**
한국의 선진화 담론을 너무 거시적으로만 가지고 가지 말자. 한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인구, 즉 아동을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보호하고 존중하는 나라 이외에 어떤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으며, 또 그 이외에 어떤 방향이 한국이 지향해야 할 선진화의 방향이 될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한국 국민 모두가 아동을 향한 그러한 아름답고 따뜻한 정서와 문화를 갖기 위해 새롭게 태어난다면 한국 국민은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선진 국민이 될 것이다. 또 지금이라도 정부와 시민사회가 아동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면 정치, 경제, 사회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자연히 선진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으로 확산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러한 노력이 결국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길로도 연결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지적했다.
이제 우리도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 갈 아동들을 위해 진지하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투자해야 할 때다. 이러한 투자가 개별적인 가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아동보호와 배려도 사교육과 마찬가지로 자연히 양극화될 것이고, 이는 사회적, 경제적, 국가적으로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다.
그러하기에 이제는 이 아동의 문제가 선진화ㆍ고령화의 담론으로 들어와야 한다. 아동에 대한 보호와 배려도 아무리 못해도 음주운전 단속의 수준과 우선순위로 철저하게 국가가 법을 제정하고 엄격히 집행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국가를 물려 줄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갖고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외교 면에서도 이러한 노력이 한국의 진정한 소프트 파워로 연결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