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보고 없이 미국과 주고받은 전략적 유연성 외교각서가 대통령의 지침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라는 위성락 주미공사의 22일자 〈프레시안〉 기고문에 대해 평화운동 단체인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가 반론문을 보내와 게재한다.
〈프레시안〉은 22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청와대 문건의 추가 폭로와 위성락 주미공사의 기고문으로 재점화된 전략적 유연성 논란에 대해 관련 당국자 및 학자,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기대한다. 〈편집자〉
***그럼, 노무현 대통령이 이중플레이를 했다는 말인가**
전략적 유연성 파문의 핵심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인 위성락 주미공사(2004년 1월까지 북미국장)가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19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 이어, 22일에는 〈프레시안〉에 기고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위 공사의 주장은 한마디로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 공사의 이러한 해명은 몇 가지 점에서 사실과 거리가 멀다. 먼저 위 공사는 문서 유출이 자신을 포함해 특정 개인이 매도되는 결과를 낳고, 또 문서 유출 자체가 그러한 의도를 가진 "공세의 성격"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 역시 주관적인 판단이다.
문제의 핵심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부실 협상'의 여부다. 이미 많은 지적이 있었던 것처럼, '부실 협상'의 정황 및 증거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협상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당사자들이 문책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승진한 경우가 다반사인데, 많은 국민들은 이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다.
***외교각서 교환은 미국이 요구한 것**
위성락 공사의 주장에 따르면, 외교각서 구상이 마치 한국측에서 마련된 것처럼 되어 있다. 그는 〈프레시안〉 기고문에서 2003년 7월 통일외교안보 장관회의에서 나온 대통령 지침과 2003년 9월에 열린 NSC 상임위 논의를 기초로 "우리의 우려사항이 분명히 적시되고, 우리가 가부 승인권을 갖는 사전협의 통제장치를 만들고자" 외교부 실무선이 제기한 것이 각서 구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즉, 한국의 입장을 미국에 관철시키는 데에 유용한 방법이 외교각서라는 판단 때문에 이를 실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각서 형태의 문서 교환을 요구한 당사자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기 때문이다. 제4차 FOTA에서 한국측 수석대표인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은 "문서교환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으나, 미국측 대표단은 "문서화 하겠다"며 "한미간 합의문안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비공개 문서로 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4차 FOTA가 열린 시점은 2003년 9월 초였고, 외교부가 외교각서 초안을 미국에 건낸 시점은 제5차 FOTA를 전후한 10월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위 공사의 해명이 설득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북미국이 마치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외교각서를 고안해낸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협상을 지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
위 공사는 또한 대통령의 지침을 따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위 공사는 2003년 7월 통일외교안보 장관회의에서 나온 대통령 지침과 2003년 9월에 열린 NSC 상임위 논의를 예로 들면서 협상 과정에서 이러한 지침을 충실히 따랐고, 외교각서 초안도 이를 반영했다고 한다.
필자가 두 회의의 구체적인 논의 내용을 알 수 없고, '외교각서 바꿔치기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핵심적인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의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노무현 대통령이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이를 원칙적으로 수용하되, ①한미상호방위조약상 미국의 대 한국 방위공약 틀 내에서 운용 ②우리가 연관되지 않은 제3국과의 분쟁에 개입되는 것은 불가 ③사전 협의 필수라는 조건을 달도록 지시했다면, 왜 나중에 '다른 얘기'를 했느냐다.
이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2005년 3월 노 대통령의 공사 발언을 논란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만,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노 대통령의 부정적인 발언은 2004년 11월에 이미 나왔다. 11월 13일 LA 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전략적 필요에 의해 주둔군 수를 줄이고 늘리는 문제를 미국이 융통성 있게 운용할 수 있게 한국이 협력해야 하지만, 내가 말한 융통성은 동아시아에 있어서 주한미군 역할의 유연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전략적 유연성을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만약, 위성락 공사 등 외교안보팀의 주장대로 대통령의 지침을 따랐다면, 노 대통령이 나중에 위와 같은 발언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이 국내용과 미국용을 구분해 이중 플레이를 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외교안보팀과 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인지.
어쨌든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원칙적이고 단호한 입장을 밝히자,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침묵으로 일관하던 NSC는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동북아 밖에서는 인정하되, 동북아 내에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노 대통령의 발언과 NSC의 협상 전략에 미국은 상당한 불만을 품었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합의에 이르러놓고 딴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노 대통령이 2005년 3월 공사에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또 한차례의 부정적 발언을 하자, 미국은 "한국을 도저히 못 믿겠다"는 격앙된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미국 "제4차 FOTA에서 대부분 합의"**
또 한가지 핵심적인 문제는 미국의 인식이다. 이와 관련해 위 공사는 "노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미국이 반발한 게 아니다"라며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자꾸 공개적으로 논란이 되면서 한국 측이 이것에 반대하는 듯한 인상을 주니까 그렇게 얘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공사 발언 2개월 후인 2005년 5월 초 필자가 만난 미국 국방부의 협상 대표단의 진술은 다르다. 이들은 "한국은 말을 바꿨다"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대부분 합의해놓고 대통령이 말을 바꾸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은 "한국이 동맹을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미국 국방부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해준 시점으로 제4차 FOTA 회의를 제시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협상팀 수석대표였던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은 한국은 주한미군의 지역역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유사시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유출입하는 문제는 연합사령관의 권한사항이라고 말했다. 이미 제4차 FOTA 때 전략적 유연성을 전폭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반영하듯 이 회의 때 미국측은 양측의 의도가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고마움까지 표명했다.
모든 의혹과 의문을 뒤로 하더라도, 전략적 유연성 협상 당사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결과적으로 외교각서 초안을 통해 제시했다는 3가지 협상 목표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협상 당사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앞서 자성부터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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