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박노자 선생님
저는 학창시절 박 선생님께서 "안 보는 게 나은 백해무익의 눈요기 거리"일 뿐이라고 일축한 "미제" 영화에 빠져들었던 수많은 "할리우드 키드" 중 한 명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저는 미국의 서부영화를 보다 포장마차를 타고 신천지로 향해가는 개척민을 공격하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잔인함에 마음을 졸이다가 기병대의 출동 나팔소리가 울리면 안도의 숨을 내쉬곤 했지요.
좀 더 커서는 할리우드 자본과 기술로 만든 영국영화 007 시리즈에 보이는 최신 병기와 본드 걸의 섹시함에 눈이 멀고 세상을 적과 동지, 둘로 양분하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주술에 사로잡히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냉전 해체 이후에는 인디언의 시각으로 서부개척시대를 그린 "늑대와 춤을 (Dances With Wolves, 1990)"이나 "라스트 모히칸 (The Last Of The Mohicans, 1992)"을 보면서 소수민족 탄압의 미국역사에 대한 성찰에 감동하기도 했고, "어 퓨 굿맨(A few goodman, 1992)'에서도 군대조직의 범죄행위에 맞서 싸우는 하급 법무관의 노력을 보며 미국사회를 썩지 않게 하는 각성된 개인들의 투쟁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자본의 친구이자 노동의 적인가?**
이런 말을 하면 박 선생님께서는 제가 할리우드 영화자본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그 어두운 이면을 읽지 못한다고 비판하시겠지요. 인디언에 대한 억압의 역사를 백인 남성의 눈을 빌려 이야기하는 것은 백인남성우월주의의 표출일 뿐이고, 제임스 본드의 남성적 매력에 빠져 조국과 이데올로기를 배반하는 본드 걸은 여성차별의 숨은 코드이며, 국가조직의 범죄에 맞서 싸우는 영웅의 싸움상대가 항상 부도덕과 부패한 문제 인물이라는 것은 미국의 국가 권력과 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애써 회피하는 보수적 세계관의 투영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저 역시 할리우드 영화가 백인남성우월주의 시각에서 소수민족과 여성을 낮추고 자본과 국가권력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렇다 해도 저는 할리우드 영화를 한번 웃고 즐기는 킬링 타임용 눈요기 내지 구경거리로 "안 보는 게 나은 백해무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영화는 "자본주의의 악몽에서 세상을 깨우는" 도구여야 한다는 박 선생님의 생각과는 달리 욕망을 파는 문화상품이라고 보는 쪽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박 선생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각인된 "모든 예술형식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이다"라는 레닌의 말도 러시아에서 내전이 끝난 이후에 휘몰아친 경제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레닌이 1928년까지 부분적인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신경제정책(NEP, 1921-1928)과 관련이 있다고 하더군요. 사실 관객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선동영화나 계몽영화는 발붙일 수 없기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사회주의 소비에트에서도 역시 영화산업은 이윤창출을 위한 재생산구조를 만들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대중은 계몽되어야 할 우중인가?**
박 선생님은 영화를 노동 해방의 무기나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는 혁명의 도구로 보는 영화운동의 입장을 취하기에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거나 대중 교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오락영화를 무가치 한 것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또한 박 선생님은 나치스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영화관을 따르기 때문에 영화를 부르주아의 헤게모니를 지켜주는 선전도구이자 노동자들의 의식을 마비시켜 문화적 부패와 타락을 조장하는 아편이나 알코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배우들을 "자본에 예속된 꼭두각시"로, 그리고 영화관객인 대중을 "몰개성적 우상을 숭배하는 몰개성적 우민"으로 보시는군요.
허나 저는 상업영화를 비판하고 영화배우나 소비자를 우민시하는 이러한 계몽적 내지 엘리트주의적 영화관은 상대적 오만을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대중은 사회적·정치적·문화적으로 계몽되고 일깨워져야 할 무지한 존재일까요?
종래의 교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전 세계적 실현을 인간세상의 역사발전의 최종 단계로 확신했지만, 냉전 종식 이후 신좌파 지식인들은 현세에 낙원을 건설하는 것을 필연의 역사법칙으로 꿈꾸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을 확언하는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무너진 이후에 올 새로운 사회체제가 장밋빛 낙원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지는 않더군요.
사실 저는 영화의 역할을 기존의 체제에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노동 대중들이 현실의 고통에 눈감게 하는 아편이나 종교로 치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영화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봅니다. 특히 많이 소비된 영화는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영화일 개연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던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적과 동지로 선명히 나뉘었지만. 냉전이 무너진 이제 이분법은 진부하지요. "공동경비구역JSA"(2000)을 떠올려 보시지요.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 준별할 수 없지 않나요?
신이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 개개의 인간은 무력한 존재였습니다. 짜라투스트라가 신이 죽었다고 선언한 후 사람들은 백년 후에 일어날 일식과 월식도 알 수 있다고 자만했지요. 허나 오늘 우리의 이성은 바람에 흩날리는 물방울 포말이 어디로 날아갈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하지 않습니까?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인간은 불안합니다. 필연과 우연. 냉전 시대에는 필연의 역사법칙과 인간의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면, 냉전 해체 이후에는 우연의 혼돈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불가지(不可知)의 불확실한 세상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세계사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모르는 카오스의 세상에서 그 누가 누구를 계몽하고 깨우칠 수 있을까요?
"아마겟돈 (Armageddon, 1998)"과 "딥 임팩트(Deep Impact, 1998)"를 보셨는지요? 소행성이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위기상황을 가정해 만든 영화를 보면, 신은 요즘 인류의 운명을 판돈으로 걸고 주사위를 던지더군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이는 신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는 영화 속 주인공이더군요. 허나 그는 영웅이기 이전에 평범한 인간이지요.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 앞에 구명조끼도도 걸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밀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영화만큼 녹녹하지 않습니다. 영화들은 속삭입니다. 살고 싶다면 너 자신이 영웅이 되라고 말이지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영화는 해법을 제시하더군요. 딥 임팩트의 주인공은 여자 친구를 오토바이 꽁무니에 태우고 어마어마한 높이로 엄습하는 해일에 맞서 싸우지요. 영화 속 주인공은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살에 직면한 현실의 우리에게 온몸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나를 따라 응전하라고. 토인비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도전의 거센 물살에 당당히 맞서 싸워 이긴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이겠지요.
오늘날 신만 인류의 운명을 걸고 주사위 장난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쥬만지(Jumanji, 1995)"라는 영화 속 장면 하나를 떠올려 보시지요. 게임판에 새겨진 지시에 따라 던진 주사위의 숫자에 따라 듣도 보도 못한 괴수들이 튀어 나오고 엉겁결에 게임에 끼어든 아이들은 주사위에 운명을 걸더군요. 그들처럼 우리도 주사위 던지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 눈앞에 넘실거리는 해일은 민족이나 민중이라는 이름의 제방으로 막기에는 너무도 거센 것 같습니다. 무너지는 제방의 구멍을 손바닥으로 막아 마을을 구한 네덜란드 소년의 신화적 이야기,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라는 구시대 대중 동원의 수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더 이상 설득력이 없습니다. 민족과 민중이란 방파제 너머 넘실거리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맞서 응전해야 할 오늘의 우리는 더 이상 국가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에 동원되는 우매한 존재가 아닙니다. 어제의 대중은 이제 민족이나 민중의 거대담론을 이용한 동원의 정치의 주술에서 놓여나 제국의 그물망에 맞서 개인의 양심을 지키며 남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를 꿈꾸는 각성된 주체로 우뚝 서는 개체로 진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이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한국영화를 살아남게 만들었나?**
박 선생님께서는 "실미도(2003)"와 "오몽녀(1937)"를 예로 들어 한국영화가 군사주의의 미학과 남성우월을 찬양하는 마초주의에 찌들어 "더 나은 사회로 우리를 인도하는 역할"을 포기한 "대중적 상업영화의 반동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저 또한 박 선생님이 지적하는 이러한 부정적 측면을 감싸거나 눈을 감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박 선생님이 지적하는 군사주의와 마초주의는 한국영화만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제작된 세계 모든 지역의 상업영화에 공통되는 일반속성이지 않습니까?
따라서 저는 한국 영화의 부정적 측면을 성찰하기보다는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맞붙어서 수많은 관객을 불러 모은 힘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로 찾을 수 있겠지요. 역량 있는 감독·시나리오 작가·배우의 등장, 자본 확대에 따른 제작 여건 호전, 사회의 다원화와 민주화에 따른 표현의 자유 증대, 관객의 호응, 외국영화제 수상, 그리고 장르의 다양화 등을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우리보다 긴 역사와 충분한 자본, 시장, 인력을 갖고 있는 일본 영화의 침체에 비추어볼 때 충분한 답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한국영화가 갖고 있는 저력을 역사적 전통과 관련지어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의문에 답해볼까 합니다.
보편과 특수. 사실 민족을 단위로 한 국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외세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받고 이데올로기에 의해 분단된 질곡의 역사를 살아 온 데에서 비롯된, 한국 영화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특수속성은 무엇일까요? 남성성을 강조하는 전쟁영화를 비교해 봅시다.
"패트리어트(The Patriot, 2000)"와 "태극기를 휘날리며(TaeGukGi: Brotherhood Of War, 2003)"의 주인공들은 모두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가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 전쟁영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 "패트리어트"의 주인공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는 길은 미국이라는 국민국가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외세와 싸우는 길밖에 없음을 깨닫고 독립전쟁에 몸을 바치는 반면,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장동건은 이데올로기와 동족간의 내전이 덧없음을 온몸으로 외치며 지킬 것은 가족밖에 없다고 절규하지요. 성조기를 자랑스럽게 휘날리는 "패트리어트"와 달리 반면 장동건에게 태극기와 인공기는 그 어느 것도 가족보다 중요하지 않더군요. 나아가 혈족 동생 구하기에 나선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특수성은 여덟 명의 병사가 목숨을 걸고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에 나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에 흐르는 미국적 가치와도 충돌합니다. 허나 이러한 한국의 특수성은 아시아 사람들의 마음에는 공통적으로 흐르는 보편적 가치이기에 미국영화에 대한 한국영화의 특수성이야말로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와 맞붙어 살아남아 소위 한류라는 물결을 일굴 수 있었던 저력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영화는 아편인가, 욕망을 파는 문화 상품인가?**
박 선생님의 지적처럼, 영화를 정치적 헤게모니 장악의 도구로 이용하고 검열의 칼날을 번쩍이던 일제시대 영화정책은, 권위주의 시대 그것의 선행 모델이자 한국 영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부정적 전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유래한 것 중 신파극은, 전래의 한(恨)의 정서와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관객의 기호에 맞는 새로운 변형을 새롭게 만들어냄으로써, 한국 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80년이란 짧지 않은 영화사에서 명멸한 수많은 영화들 중에 "눈물을 자아내게 하거나" 권선징악형 결말 같은 신파 영화의 기본에 충실하여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를 영화화한 "장한몽"(1926)과 민족영화 "아리랑"(1926)을 비롯해 멜로물의 전형인 "미워도 다시 한번"(1968) 등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1920년대 신파조 영화가 3·1운동 실패 후의 좌절감을 잘 어루만져 관객을 사로잡았듯, 해방 후 신파조 영화들은 외세침략과 동족상잔으로 점철된 근·현대사의 비극을 감싸주거나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갈등 요인들을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인터넷이란 현대적인 통신문화에 전통적 신파 정서를 잘 접목시킨 "접속"(1997)의 성공 이후, 멜로영화는 화려하게 부활해 다시 한번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신파 영화의 전통을 오늘에 잘 되살린 것이 그 상업적 성공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일본에 일고 있는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한류도 사실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 보면 일본에서 유래된 신파 멜로의 한국적 재해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란 욕망을 만들어 파는 문화상품 아닙니까?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별들의 고향"(1974)을 몰래 보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여배우의 상반신 노출에 가슴이 달떴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1920년대 후반 서양영화를 상영하던 극장 풍경을 그린 글을 보니, "노부인, 여염집 부녀, 기생 그리고 여학생들로 매일 만원"이었던 부인석의 절반 이상이 "성에 갓 눈뜬 여학생"들로 채워졌고, 그녀들도 "키스 하는 장면, 그 순간에는 반드시 질식할 듯한 외마디 소리"를 터뜨리곤 했다는군요(「극장만담」,『별건곤』, 1927). 그녀들 역시 영화의 마술에 놀아난 우중(愚衆)들이라기보다 억눌린 욕망과 몸의 자유를 스크린을 통해서나마 발산하려 한, 나름대로 주체적이고 "현명한" 영화 소비자였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가 시대와 사회 변화에 따라 대중의 욕구를 채워주는 욕망의 상품화에 성공한 것에서도 또 하나의 요인을 찾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영화인들이 나운규의 "아리랑"이 남긴 전통을 이어 치열한 역사의식과 작가정신, 그리고 비판정신과 사명감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 영화 성공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분단과 이데올로기 갈등 같은 민족의 고통을 직시한 "쉬리"(1999)와 "공동경비구역"(2000), 노동자와 광주의 아픔에 귀 기울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과 "꽃잎"(1996), 한 개인의 삶이 국가폭력 앞에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그린 "박하사탕(1999)", 그리고 우리의 소리와 그림에 담긴 예술혼을 영상으로 옮긴 "서편제"(1993)와 "취화선"(2002) 같은 작품들이 있기에, 한국영화가 "우민화나 헤게모니 장악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박 선생님의 우려를 조금을 덜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깨어 있는 영화인들이 우리 곁에 있기에 한국영화는 자본주의적 상품화에 따른 타락의 유혹과 할리우드 영화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우리 문화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살찌워 나갈 자생력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끝으로 식민지 시대 서구영화의 문화 전파력은 "학교의 수신(修身) 과정보다도, 목사의 설교보다도, 또한 어버이의 회초리보다도 감화되기에 빠른 것"이었다고 합니다(「모던 뽀이의 산보」, 『조선일보』 1928. 2.7)." 이를 서구의 문화 침략 내지 문화적 헤게모니 장악의 수단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이와 같은 적극적이고도 개방적인 자세가 서구문화의 빠른 수용과 소화의 기반이자, 장기적으로는 미국영화 직배시대에 한국영화의 생존을 가져다주고 한류라는 문화흐름을 일구어 낸 토대였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봄이 다가오는 수원의 연구실에서
***참고 서적**
김수남. 「작가 연구: 나운규의 민족 영화 재고」. 『한국 영화 학회 회보』7, 1990.
김소영. 『근대성의 유령들』.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0.
김진송.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현실문화연구, 1999.
김학수. 『스크린 밖의 한국영화사』. 인물과 사상사, 2002.
신명직. 『모던보이 경성을 거닐다』. 현실문화연구. 2003.
유민영, 「연극·영화」. 『한국사』51, 국사편찬위원회, 2001.
유지나. 『멜로 드라마란 무엇인가: "자유부인"에서 "접속"까지』. 민음사, 1999.
유현목. 『한국영화발달사』. 책누리, 1997.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센터 프리즘 엮음, 『영화운동의 역사--구경거리에서 해방의 무기로』, 서울출판미디어, 2002
한국예술연구소 편, 『이영일의 한국영화사 강의록』. 소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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