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열풍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의 열기는 중남미를 훌쩍 뛰어넘어 중동의 이슬람권 국가들까지 접수할 태세다.
이란과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차베스의 오일달러는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이슬람 국가들을 중심으로 중동의 신세대들 사이에서는 차베스형 지도자를 기대하는 경향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알자지라〉의 국제 담당 언론인은 〈텔레수르〉와의 인터뷰에서 "시청자들로부터 중동국가 중에서도 남미 전체를 아우르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e- 메일이 쇄도한다"고 밝혀 중동의 이슬람권에서도 차베스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라틴국가들, 특히 극빈층을 중심으로 한 차베스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반미 성향이 강한 남미에서 그가 주도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과 반제국주의, 반부시 성향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중남미 전역에 일명 '차베스주의(Chavistas)붐' 이 강하게 일고 있어 차베스의 인기가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차베스의 오일달러를 이용한 군비증강과 남미국가를 향한 영향력 강화 등 인기몰이는 또 다른 차베스식 제국주의를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의 외채를 일시에 청산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두고도 국제통화기금과 미국의 영향력에서는 벗어났지만 오일달러를 앞세운 차베스를 불러들인 꼴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늑대는 쫓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인 격'이라는 말이다.
남미 현지에서도 이런 차베스를 놓고 진정한 민중혁명가 또는 볼리바르 장군의 혁명후계자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가 하면 '카스트로의 똘마니', '장기집권을 꿈꾸는 대중선동가', '독재자'라는 악평이 나오기도 한다.
세계 유일의 강대국 미국을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퍼부으며 미주대륙 빈민자들과 토착원주민들의 보호자임을 자처하는 차베스는 과연 누구일까.
***'차베스의 통치이념은 시작과 끝이 볼리바리안 혁명'**
'볼리바리안 혁명'으로 대표되며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우고 라파엘 차베스 프리아스(HUGO RAFAEL CHAVEZ FRIAS)라는 긴 이름을 가진 차베스는 1954년 7월 28일생으로 베네수엘라의 바리나스 주 사바네따 라는 조그만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군사쿠데타에 실패하고도 보란 듯이 재기해 정권을 잡은 풍운아적 기질을 가진 지도자이며 한국 경희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1999년)를 받았고, 중국 베이징대학에서도 명예 경제학 박사 학위(2001년)를 받았을 만큼 아시아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
필자가 차베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가 지난1998년 12월 6일 56.24%의 지지를 받으며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난 다음해부터였다. 엘리트 군 출신인 그가 아르헨티나의 체 게바라의 뒤를 이을, 중남미 극빈층 해방과 반제국주의를 부르짖는 혁명가임을 자처하면서 처음부터 튀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후 지난 2003년 4월, 아르헨티나 공식방문 때 까사로사다(대통령궁) 기자간담회장에서 처음으로 차베스를 직접 대해 본 필자는 수행한 그의 공보관들과 비서관들의 입을 통해 지도자로서 차베스의 면모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됐다. 그리고 중남미 현지기자단의 차베스에 대한 평가와 아르헨티나 학계의 증언들을 종합, 중남미 민중들이 왜 그에게 열광을 하는가와 대륙을 뛰어넘어 아시아, 중동까지 미치는 그의 인기의 원천은 무엇인가를 비교적 소상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군인 출신 차베스의 정치입문 슬로건은 빈곤과 문맹의 퇴치였다. 특별히 개발도상국들의 빈곤이야말로 인류적인 문제임을 주장하고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의 빈곤부터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차베스는 중남미의 빈곤은 물질적인 빈곤보다는 교육, 문화 등 정신적인 빈곤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메리카 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를 발표하고 중남미를 통합해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빈곤과 문맹퇴치에 최우선적으로 지원할 것을 천명했다. 그는 또 인간은 누구나 존귀한 인격을 지녔으며 신분의 고하를 떠나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면서 돈이 없어 의사의 진찰도 받아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빈민촌 지역의 환자들을 위한 무료의료제도를 정착시켰다. 이를 위해 차베스는 쿠바의 의사 4만 여명을 초빙해 베네수엘라 전역의 빈민지역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게 하기도 했다.
차베스가 쿠바의 카스트로에게 석유 등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은 쿠바로부터 의약품을 비롯한 의료지원과 교사를 포함한 교육제도의 장점들을 제한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전국민의 70% 이상이 이 무료의료 혜택을 받고 있으며 광범위한 의무교육제도를 함께 실시하고 있다. 일부 고립된 밀림의 토착원주민들과 사립의료보험을 이용하고 있는 부유층을 제외한다면 전국민이 무료의료혜택과 의무교육제도의 혜택을 골고루 받고 있는 셈이다.
***'지식은 자신을 지켜줄 힘'…독서를 권하는 교육전도사'**
또한 차베스는 이 제도를 중남미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해 10년 장기계획으로 200억 달러를 기꺼이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2005년 11월 4일 아르헨티나 제3차 미주사회단체 지도자회담). 이런 점들이 차베스로 하여금 80%에 육박하는 국민적 지지를 얻게 하는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뿌리깊은 토호세력들과 엘리트그룹으로 형성된 철옹성 같은 정치권, 이들과 결탁한 다국적기업들의 횡포로 노예생활이나 별반 차이가 없이 빈곤하게 살아가는 중남미의 서민들과 토착원주민들의 보호자임을 자처하는 그의 기본적인 통치철학은 감수성이 예민하던 유년시절 시몬 볼리바르 장군의 전기를 읽으면서 형성됐다.
볼리바르 장군은 1800년대 초부터 당시 정치권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노예해방과 서민들에 대한 토지무상 분배정책을 폈으며 노예들과 흑인들도 배워야 한다며 교육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볼리바르는 이 제도를 중남미 전역에 확대시키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통합을 꿈꾸어 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볼리바르 혁명사상에 깊은 감동을 받은 차베스는 현재의 베네수엘라와 아메리카 대륙에도 볼리바르 장군 같은 지도자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으며 자신이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혁명가로서의 각오를 어린 시절부터 다졌다는 얘기다. 따라서 차베스의 기본 통치철학은 '볼리바리안 혁명'의 이상을 이어받아 빈곤과 문맹을 퇴치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그는 중남미 토착원주민들과 농민들이 배우지 못해 노예들 같은 생활을 하면서 뿌리깊은 지역 토호세력들과 정치세력에 죽도록 착취와 이용만 당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배움과 지식이야말로 이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켜주는 유일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차베스의 경제관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중남미 민중들이라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제국주의와 국제금융기관들 주도로 중남미경제를 말살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중남미 국가들이 미국의 영향과 IMF체제를 졸업하도록 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부패한 전 정권들이 담합한 외국기업 주도의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베네수엘라 현지형 경제모델을 창안을 위해 차베스는 현재 국회와 농민단체, 학생대표, 원주민리더들을 중심으로 한 신사회주의 경제모델과 사회보장시스템 연구팀을 발족시켜 운영 중이다.
중국식 개방경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차베스는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시장체제로 변화하고 있는 데 반해 자신은 신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정부 주도로 가난한 사람과 부자 모두가 균형 있게 함께 성장하는 경제방식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차베스식 신사회주의 꿈꾸는 혁명가'**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대륙자유무역지대협정(FTAA)에 대한 반대의 선봉장 격인 그는 서방선진국들에 대한 중남미의 전면적인 시장 개방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외치고 있다. 준비 없는 자유무역보다는 먼저 같은 문화와 경제가 서로 비슷한 중남미국가들끼리 통합을 추진해 어느 정도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룬 다음 선진국들에게 시장을 개방하자는 게 그가 주장하는 경제논리다.
미국과 남미국가들 간에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곡물교역은 이익을 얻기 위한 영업차원이 아닌 민생고 해결차원에서 해결돼야 한다는 것도 차베스의 주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베네수엘라 토지개혁을 단행, 우선적으로 정부소유 국유지와 토지등기부 등본이 없어 힘있는 부호들과 정치인들이 강점한 불법적인 개인소유 농지 150만 헥타르를 농민들에게 무상 분배하여 끼니를 걱정하는 농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소수에게 몰린 부를 다수인 농민들에게도 실어주자는 복안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는 약 120만 농민들이 새롭게 자기 땅을 소유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 7년째인 차베스 정권을 향해 "넘치는 오일달러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의 고질적인 빈곤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난 7년 동안 베네수엘라의 교육부분과 보건위생 등 국민복지분야는 놀라운 변화를 보이고 있다"면서 빈곤퇴치야말로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시간의 문제지만 극빈자수와 실업률도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그의 측근들은 설명했다.
이들은 이어 "볼리바르 장군 역시 평소 빈민구제정책은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추진을 해야 하며 서두르거나 조급함이 개입이 되어 실적위주가 된다면 대사를 그르칠 수 있다"고 가르쳤다면서 극빈자들에게 '고기를 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그물을 주라'고 한 옛말처럼 이는 시간과 인내를 가지고 해결할 문제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때로는 좌충우돌 돈키호테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차베스를 만나본 남미 언론인들과 학계인사들은 깊이를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문학과 철학, 정치와 경제 등 다방면에 통달한 그의 지식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는 특별히 라틴문학에 조예가 깊으며 대중을 휘어잡는 달변과 카리스마는 엄청난 양의 독서에서 나온다고 그의 측근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교육입국을 부르짖고 있는 차베스가 카라카스나 아마존 밀림지역의 원주민학교 준공식 등에 참석할 때마다 "너희들도 나처럼 베네수엘라의 지도자로 성장을 하려면 평소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할 정도로 차베스의 독서에 대한 열정은 정평이 나있다.
***'그는 독재자인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의 통치모델이자 형과 같은 존재이며 동시에 아버지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차베스는 카스트로 역시 시몬 볼리바르 장군의 혁명을 통치기본으로 삼고 있어 결국 중남미 좌파정부들의 통치이념은 모두 시몬 볼리바르로 귀결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장기집권을 노리는 독재자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가에 대해 그의 측근들은 7년의 임기 가운데 단 한 명의 언론인도 구속되거나 우익 재벌언론들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언론탄압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보수우익 논객들과 야당들의 비난을 조용히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끔씩은 이들의 비평에 강도 높은 반박을 하기도 하지만 재벌언론들과 보수우익들로부터 차베스가 오히려 탄압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차베스의 언론관은 언론 자유를 기본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고 독립적인 편집권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언론들은 친정부적인 보도보다는 오히려 반정부적이며 반차베스적인 보도가 주류를 이룬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대중선동가라는 평가가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다.
"베네수엘라 내의 보수언론들과 서방언론들에 대한 차베스의 피해의식은 〈텔레수르〉라는 남미판 〈알자지라〉를 태동시켰으며 'Alo Presidente'(차베스가 매주 주말마다 행하는 국민들과의 열린 대화 TV프로)를 출범시켰다"고 설명한 차베스의 한 공보비서관은 "거의 매일 보수우익세력 주도의 강력한 '반차베스 시위'가 곳곳에서 정부의 아무런 방해나 진압 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눈 여겨 볼 부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자신을 향해 독재자라는 평가가 있다는 현지기자들의 질문에 차베스는 "국민편에 서서 잘하려고 열심히 노력은 하고 있다"면서 "물론 정책수행 과정에서 실수도 있지만 최소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있다"는 말로 자신은 독재자가 아니라는 해명을 대신했다. 이어 "나는 평범한 베네수엘라 시민이자 군인인 동시에 대통령직을 맡고 있을 뿐이다. 나는 매일 이 세가지 직분을 동시에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차베스다운 설명을 곁들였다.
남미 현지의 대다수 언론인들이나 학자, 정치인들은 "차베스가 현재까지는 민중을 위한 진정한 혁명가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가 장기집권에 들어가 권력에 맛을 들여 독재자로 변하게 될지,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아직까지는 '볼리바리안 혁명'의 정도를 걷고 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와 같은 평가는 서방세계가 아닌 남미인들의 시각이다. 그에 대한 서구인들의 판단은 또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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