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로스쿨을 한국에 도입하겠다고 한다. 미국의 변호사들이 국제경쟁력이 강하고, 미국의 변호사들이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는 판단에서, 미국처럼 경쟁력 강하고 전문성 갖춘 법조인들을 양성하는 길은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몇 년에 걸쳐서 수십 명의 저명하신 분들이 위원회 회의와 공청회에 참석하셨는데, 이 주장에 담겨 있는 명백한 허구를 밝혀내지 못하고, 법안 상정 단계까지 올라간 데 대해서 놀라움과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
예전에 영국에서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추장들을 초청한 적이 있었다. 영국 구경을 잘 하고 돌아가는 날, 짐을 싸고 있을 그들을 호텔 방으로 찾아간 초청자는 깜짝 놀랐다. 방문객들이 호텔 욕실에 있는 수도꼭지를 떼느라고 낑낑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이 수도꼭지를 가지고 가면 자기 부족 사람들이 몇 km나 떨어진 곳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런다는 것이었다.
로스쿨을 한국에 도입하면 한국 법조인들의 국제경쟁력과 전문성이 강화될 것이라는 믿음은 수도꼭지만 자기 집 벽에 붙여 놓으면 수도물이 콸콸 흘러나올 것이라고 믿은 아프리카 추장들의 사고 수준에 거의 필적한다.
***변호사들의 국제경쟁력 강화**
변호사의 국제경쟁력이라는 개념이 애매한 것이기는 한데, 로스쿨 도입 주장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국제계약서 작성이나 국제계약에 따른 분쟁해결과 관련된 법률서비스에서 영ㆍ미의 변호사들이 세계 시장을 거의 지배하고 있는 현상을 놓고 그렇게 부른다고 생각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대학원 과정의 로스쿨이 아니라 박사 과정 수료자들로만 법조인을 충원한다고 해도 한국 변호사의 국제경쟁력은 미국이나 영국 변호사들을 앞지르거나 따라 갈 수 없다. 한국변호사들의 머리가 영ㆍ미 변호사들보다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영ㆍ미의 변호사들이 그런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우세한 이유는 그런 계약서가 모두 영국이나 미국법을 준거법으로 하고, 분쟁 발생 시에 영국의 고등법원이나 미국의 뉴욕주 법원을 관할 법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런 계약서가 대한민국법을 준거법으로 하고, 서울고등법원을 관할 법원으로 한다면, 예일ㆍ하버드 출신이나 옥스브리지(옥스포드 + 캠브리지) 출신 변호사라도 대한민국 사법시험 출신을 이길 수 없다. 변호사의 국제경쟁력은 해당 국가의 세계시장 지배력에서 나오는 것이지 변호사들의 개인적 능력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우리보다 힘이 약한 나라와 계약할 때 한글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대한민국 상법을 준거법으로 하고, 서울 고등법원을 관할법원으로 하는 것이 우리나라 법률서비스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는 법률가들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국가와 기업체들의 손에 달려 있다. 한국 법률가들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길은 로스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이나 기업체에게 국제 계약을 작성할 때 한국법을 이용해달라고 홍보하는 것이다.
***변호사의 전문성 제고**
4년제 대학을 나오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발상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대졸 신입사원이 자기가 전공한 분야에서 얼마나 전문성을 발휘하는지. 변호사의 전문성은 변호사로 실무를 하는 과정에서 한 분야의 업무를 반복해서 수행하면서 키워지는 것이다. 전문변호사가 되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변호사 자격을 따고, 큰 로펌에서 한 분야를 맡아서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한다.
로스쿨 도입 주장자들이 모델로 삼는 미국 법률서비스 시장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건축 전문 변호사 중에서 건축학과를 나온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되며 의료사고 전문 변호사 중에서 의과대학을 나온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되는지. 건축과를 제대로 나온 사람이 건축사를 하지 뭐하러 다시 법대를 가겠는가? 의사 자격을 딴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난 번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나온 존 에드워즈는 의료사고 보상 전문변호사였다. 그는 그 방면 전문 변호사로 약 20년동안 일해서 9억 달러의 재산을 모은 사람이다. 그는 의과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그가 의료사고 보상 전문 변호사가 된 것은 첫 케이스를 그 쪽으로 맡아서 운좋게 승소하고, 그 소문이 퍼져서 계속 그 쪽 사건을 맡게 되면서 전문성이 쌓인 것이다.
변호가가 될 사람에게 다른 과목의 학사 학위를 먼저 받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가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을 빼앗는 것이다. 학사 학위를 건축과나 의과, 아니면 상과 과목으로 한정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대학에서 인문학이나 순수사회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법학전문대학원 입학 자격을 주지 않을 것인가?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려고 그런 과목을 공부한 사람들은 어떤 분야의 전문변호사가 될 것인가? 변호사가 되어서 형사 소송을 주로 다룰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이 왜 학부에서 다른 과목을 들으면서 4년을 허비해야 하는가?
새로 도입하려고 하는 로스쿨을 통한 법조인 양성제도는 지망자들에게 불필요한 교육을 받으면서 시간을 허비하게 요구하는 제도다. 그 시간은 사실 변호사가 되고 난 뒤에 전문성을 쌓는 데 사용되어야 할 시간이다. 새 제도는 변호사들이 실무를 통해서 전문성을 쌓는 데 사용될 시간을 대학교의 학부과정에서 허비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 도입의 목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제경쟁력이 강한 영국의 변호사들은 학부과정의 로스쿨 출신들이다**
로스쿨 도입 주장자들이 국제경쟁력과 전문성에서 미국과 함께 모델로 삼는 영국 변호사들은 학부 과정의 로스쿨을 마친 사람들이다. 영국의 로스쿨은 학부과정이기 때문이다. 로스쿨이 대학원 과정이라야 법조인들의 국제경쟁력과 전문성이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하는 사람들은 학부과정의 영국 로스쿨을 마친 사람들의 높은 전문성과 국제 경쟁력은 어떻게 설명할까?
***생산비가 높으면 당연히 가격이 비싸진다**
로스쿨을 통해서 변호사를 양성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지금에 비해서 한 사람의 변호사가 탄생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증가한다. 어떤 생산품이든 제조 과정이 오래 걸리고 제조 비용이 많이 들어가면 판매 가격이 높아지게 되어 있다는 것은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뻔하게 안다. 그런데 그 제도를 통해서 배출되는 변호사들이 더 낮은 가격으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정말 한심한 일이다.
***맹목적인 일본 따라하기**
위에서 보았듯이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로스쿨 제도가 도입목적과 맞지 않는, 아니 오히려 반대되는 것이라는 것을 누구든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뻔하고 당연한 것이 지금까지 논의 과정에 참여한 많은 분들에게 왜 보이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의 제도를 도입하고 시행하는 분들의 '일본 바라보기 병'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 하면 우리도 한다. 일본이 자동차를 만들면 우리도 만들고, 일본이 반도체를 만들면 우리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한다. 그래서 경제가 지금까지 성장해 왔지 않느냐? 한국의 사법제도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만들어 놓은 것을 지금까지 이어서 쓰고 있는데, 그 종주국인 일본이 지금 법학전문대학원으로 바꾸고 있으니까 우리도 따라서 바꾸는 것이 맞다." 아무도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그 작업을 추진한 사람들이 실제로 생각하고 있던 논리다. 추진위원들은 미국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아직 법학전문대학원이 초기 단계에 있는 일본을 방문했고,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대학들은 일본의 학자를 데리고 와서 강연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 한 증거다.
일본이 한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의료보험제도도 일본이 하는 대로 조합주의를 하다가 결국은 통합보험으로 바꾸었다. 지금은 아무도 일본식 조합주의가 우리나라에 적합한 모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몇 년 전에 서울의 한 건축현장에 붙어 있던 모 건설회사의 현수막 글귀가 생각난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보다 앞설 수 없다.' 일본이 틀린 길을 갈 때 우리도 그대로 따라가면 그들을 따라잡을 기회는 영영 없다. 일본이 법학대학원을 도입한 것이 잘 한 것인지는 일본 사람들도 아직 모른다. 그들도 아직 초기 단계다. 몇 년 안 가서 실패 아니면 적어도 비용의 낭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도 깨달을 것이다. 그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뭐 하러 따라 하려고 하는가?.
***로스쿨 도입으로 손해 보는 사람과 득을 보는 사람**
미국, 일본이 한다고 하더라도 법과대학을 대학원 과정으로 하면 안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나라들에는 없는 병역의무가 대한민국 남성들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병역의무를 수행하느라 전문성을 쌓을 기간을 미국, 일본의 법조인들보다 2년 손해 보고 있는 한국 법조인들이다. 거기다 쓸데없는 학사 학위를 받느라고 4년을 더 손해보게 하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다. 피해자는 법조인을 지망하는 학생들뿐이 아니다. 고비용 저효율로 생산된 법률서비스를 고가로 이용해야 하는 모든 국민과 기업체도 피해자가 될 것이다. 법학대학원을 설치하는 대학교와 그 학교들을 관장하는 교육부 공무원들은 좋아지겠지만.
* 필자는 1997년부터 뉴질랜드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영국의 사법제도를 그대로 도입했고, 얼마전까지 최종 항소심을 영국에 가서 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법제도개혁위원회 자료를 모두 섭렵했다. 한가지 유감은 필자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진작에 사법제도개혁위원회 단계에서 의견을 개진하지 못한 것이다. 그랬더라면 여기까지 오기 전에 이 황당한 논의를 중단시켜서 국가 예산을 상당히 절약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 국회 논의 과정이 남아 있으므로 더 이상의 낭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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