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북·중 경제관계의 특수성과 일반성**
연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박 9일의 중국 잠행은 북·중 관계의 특수성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시사하였다. 북한이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40개 국가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외교관계의 일반성은 북·중 관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방중 기간 중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을 면담하고, 특급 의전 속에서 언론을 철저히 따돌리며 남쪽 개혁·개방의 주요 도시 등을 둘러봤다. 중국이 김 위원장을 영접하는 방식은 다른 나라의 국가 원수와는 완전히 격이 달랐다. 후진타오(胡錦燾) 주석은 물론 권력 서열 2위 우방궈(吳邦國), 3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별도 회담을 하였다. 그 외 4위 자칭린(賈慶林) 전국 정협 주석에서 9위 뤄간(羅幹)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에 이르기까지 중국 4세대 지도자 모두가 김 위원장 방중 활동에 참여하였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김정일의 방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북한으로부터 철통 보안 일정을 요청받았다. 중국은 북한의 요구를 수락하여 모스크바, 상하이 등 다양한 행선지와 열차, 비행기 및 승용차 등 각종 이동수단을 언론에 흘려 김 위원장의 동선 추적을 철저히 차단하였다. 닝푸구이(寧賦魁) 주한 중국 대사도 김 위원장 방중기간 중 한 세미나에 참석하여 방문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며 비밀 방문을 옹호하였다. 필요하면 적극 행동한다는 중국의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외교 책략이 북한의 난국 타개 의지와 절묘하게 결합한 격이다.
중국은 1996년부터 수교국과의 양자 관계를 5단계로 분류하였다. 5단계는 단순 수교->선린우호->동반자->전통적 우호협력->혈맹 순으로 격이 높아진다. 이 중에서 동반자 관계는 전면적, 합작, 협력 등 세 단계로 구분된다. 마지막으로 동반자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는가에 따라 세분화 된다. 현재 중국 외교부는 대외 관계를 5단계와 동반자 관계를 6단계로 구분함으로써 총 11단계로 분류한다. 북한은 최고 수준인 '혈맹' 관계에서 한·중 수교 이후 1단계 하락하였음에도 2단계 「전통적 우호협력 관계」에 위치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한국은 '92년 수교 이후 단순 수교 관계에서 경제통상 중심의 선린우호 관계를 거쳐 '98년 이후 8단계에 해당하는 「협력 동반자 관계」를 유지 중이다. 9단계에 해당하는 선린우호 관계인 일본 바로 위 단계다. 김 위원장의 금번 방중은 이러한 외교 의전이 철저히 적용된 사례다. 금번 방중은 북·중간 특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향후 경제관계를 진단하는 청진기를 들이대는 것이 바람직하다.
후진타오(胡錦燾) 중국 주석은 2006년 1월 17일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국제 및 지역정세에서 복잡한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중(中)·조(朝) 두 당,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며,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발전에 유리하다. 최근 양국의 공동 노력으로 중·조 관계는 새로운 진전을 이룩하였다. 중·조 선린 우호 협조 관계를 공고하게 발전시키는 것은 중국 당과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또한 선린 우호와 협력을 강화한다는 정신에 따라 여러 분야에 걸쳐 쌍방의 교류와 협조를 가일층 확대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오랜 전통을 지닌 조·중 친선을 강화 발전시키는 것은 두 당, 두 나라 인민의 공동 염원이다. 조·중 친선 관계가 지금과 같은 복잡다단한 정세 속에서도 줄곧 발전하고 있는데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양측은 조·중 친선의 강화는 양국 정상회담의 확실한 목표라는 데 이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후(胡) 주석은 "전반적인 조·중 친선 강화 흐름 속에서 경제 분야 역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경제·무역 분야에서 두 나라의 호혜적인 협조는 새로운 성과를 거뒀다. 우리는 선린 우호와 협력을 강화한다는 정신에 따라 여러 분야에 걸쳐 쌍방의 교류와 협조를 가일층 확대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 공동으로 전통적인 친선관계에 새로운 활력을 주입하고 선린우호 관계를 추진할 것"이라고 다짐함으로써 향후 경제 분야 역시 협력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II. 김정일 경제개혁 현장 시찰과 북·중 경협의 시사점**
금번 방중은 위폐로 인한 금융제재와 북핵 6자회담의 지속을 둘러싸고 미국의 대북 압박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루어짐에 따라 형식적으로는 경제시찰과 경제협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압력에 공동 대응 방안을 긴밀히 논의하는 이른바 '외경내정(外經內政)' 이다. 물론 김 위원장은 북핵 문제 뿐만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는데 주력해야 하는 만큼 김 위원장의 방중은 외형적으로 중국 경제개혁의 실험장을 방문하는 데 주력하였다.
형식적인 대의명분은 지난 '92년 정월초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벤치마킹하여 북한식 개혁·개방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중국 개방의 실험장인 광저우(廣州)와 최남단 선전(深圳)을 방문하여 개방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경제발전 모델을 참관하는 현장학습용 겨울여행은 실제 정상회담 명분 축적의 성격이 강하였다. 김 위원장의 광폭(廣幅) 행보는 평양에 귀국하면 그가 추가 개방특구 지정 등 마치 중국식 개혁·개방 조치를 즉시 단행할 착각을 갖게 한다. 하여튼 그는 선진농업 시설은 물론 첨단산업 현장 등 다양한 지역을 시찰하였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중국의 6개 도시를 방문했다. 신의주와 접경지대인 단둥(丹東)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간 후 곧장 우한(武漢), 이창(宜昌), 광저우(廣州), 주하이(珠海), 선전(深圳), 베이징(北京)에 이르는 코스를 밟았다.
가장 큰 관심사는 농업분야였다. 김 위원장은 1월 14일 광저우(廣州)시 판위 구에 있는 둥성(東升)농장유한공사를 방문했다. 홍콩 기업인이 건설한 둥성농장은 광둥지역에서 현대식 농법의 선두기업이라고 한다. 녹색 식품과 유기농 채소, 고품질 과일 생산으로 유명하다. 김 위원장은 이 농장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농법 등을 자세히 청취했다고 한다. 북한은 2005년 430여만톤의 대풍을 기록했지만 남한에서 50만톤, 중국에서 15만톤의 식량을 지원받지 않으면 최소 소요량 520만톤에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신년사설에서 경제건설의 주공(主攻)전선을 농업 증산으로 확정할 만큼 식량이 부족함에 따라 김 위원장으로서는 중국의 농업기술에 관심이 많다. 그는 2001년 상하이 방문 때도 쑨차오 현대농장 구역을 방문하였다. 중국이 김 위원장의 귀국 후 김 위원장의 방중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정상간 만남의 장면도 후 주석과 김 위원장이 1월 17일 중국농업과학원을 방문해 연구원으로부터 농작물 신품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사진이었다. 2004년 4월 방중 당시에는 박봉주 내각 총리를 시켜 베이징 근교의 대표적인 농촌 시범지역인 한춘허(韓村河)를 둘러보게 했다. 다만 중국의 농업과 북한의 협동농장 운영 시스템이 다르나 김 위원장이 이러한 생산 체계의 구조적인 차이보다는 곡물 증산을 가능하게 하는 신기술 개발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의 시찰이 내포하는 불가피한 한계일 수밖에 없다.
둘째, 경제개혁의 실험장 선전과 광저우, 주하이 방문이다. 후 주석은 지난해 10월 평양 방문시 김 위원장에게 선전 등을 방문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후 주석은 지난 10월 평양 연설에서 "중국 공산당의 영도 밑에 중국 인민은 맑스-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 등소평이론 등 세 가지 대표 중요사상을 지침으로 독립자주와 개혁 개방을 견지하고 시대와 더불어 전진하며 사회주의 제도를 끊임없이 완성하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위업을 부단히 탐구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중국의 모습에서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사회생산력과 종합적 국력, 인민생활 수준을 계속 높였다."고 언급하였다. 중국은 김 위원장에게 대표적인 천지개벽의 무대인 선전의 현지 시찰을 제안하였다. 김 위원장이 주변의 이론적인 설명보다는 직접 현지를 볼 경우 개혁과 개방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최첨단 자본주의 도시 홍콩과 맞붙은 선전의 주민, 그 중에서 젊은 세대의 변화된 생활상을 직접 보는 것은 김 위원장에게 호기심과 불안의 양면을 느끼게 하였을 것이다. 또한 광저우에서는 방중 사상 처음으로 새로 조성한 대학촌을 방문하였다. 물론 김일성 종합대학 동문인 광둥성 장더장(張德江) 서기와의 인연으로 중산(中山)대학 분교를 방문했다는 지적도 있으나 과거 베이징을 3차례 방문했으나 대학을 방문한 전례가 없어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이 평양에 돌아와서 대학교육에 관심을 집중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선전과 광저우 방문은 1월 17일 후진타오 주석이 마련한 환영연회에서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특구발전상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중국의 발전상이 중국 공산당의 올바른 정책의 결과"라고 언급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관심사는 첨단산업 분야였다. 김 위원장은 1월 14일 선전 난산(南山)구 과기원(科技園, 과학기술단지) 본부와 첨단산업 업체를 방문했다. 첨단업체의 공장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소수의 기술직원만 출입이 가능한 밀폐공간에 들어가 핵심 시설을 참관했다. 특히 전자동 생산 설비에 흥미를 보이며 일부 설비의 구체적인 작동 원리를 묻기도 했다. 이 회사는 과거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방문했던 곳이다. 김 위원장은 2000년 방중 당시 베이징에서 개인용 컴퓨터(PC) 생산업체인 롄샹(聯相)을 방문하여 해박한 컴퓨터 지식을 과시한 적이 있다. 단번도약을 꿈꾸며 정보통신(IT) 발전 전략을 추진하는 김 위원장 입장에서 첨단기술 업체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다. 다만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첨단 설비를 개발할 여건과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는 중국으로부터 전자동 완제품을 수입하여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데 주력함에 따라 IT 발전은 전력 및 하드웨어의 부족으로 경제발전의 주력 산업이 되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방문한 농업과 첨단산업과 특구 개발 분야는 북·중 경제협력이 강화될 소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해야 될 부분이다.
***III. 북·중 경제관계의 실상과 평가**
후(胡) 주석은 지난해 10월 평양 방문시 "우리는 중조 친선 협조관계를 보다 더 깊이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중조 쌍방은 고위급 내왕을 가일층 밀접히 하고, 의견 교환을 강화하며 교류 분야를 확대시키고, 협력 내용을 풍부하게 하며 무역과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공동의 발전을 촉진하며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협력하며 공동이익을 수호해야 하는데 합의를 보았다"고 연설했다. 양국 경제협력의 강화를 선언한 것이다.
이후 북·중간의 경제협력은 기존의 소비재, 서비스업 및 광물자원에 이어 해저유전 공동개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북·중간 경제협력은 무산 광산의 철광석 등 지하자원에 이어 유전 공동개발로 확대되면서 에너지 분야가 완성되었다. 노두철 북한 내각 총리와 쩡펜이옌(曾培炎) 중국 국무원 경제담당 부총리는 2005년 12월 24일 베이징에서 「중·조(中朝) 정부 간 석유 해상 공동개발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특히 석유는 생전에 김일성이 "우리나라에 원유만 터지면 통일은 물론 큰 부자가 된다"고 기대감을 표시했을 정도로 주목한 자원이다. 실제로 북한은 80년대 초와 중반 강원도 통천 앞바다와 서해에서 원유 시추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그간 북한은 캐나다 소코社(98년), 독일 피닉스 원유회사(2001년) 등 서방의 회사들에게 조광권을 부여하고 자금 지원을 받아 유전 시추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그 후에도 미국과 영국계 회사들이 참여를 타진했으나 북한이 국제 원유 메이저들의 엄격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본격적인 유전개발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북·중 양국은 지난해 10월말 후진타오 주석의 평양 방문시 20억 달러 경협 추진의 후속 조치로서 정부 차원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계약 조건은 서방회사들보다 유리한 조항들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성 경협과 무상지원성의 투자가 혼합된 복합계약일 것이다.
중국자본의 대북 진출은 지난 2004년 봄을 기점으로 본격화되었다.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宝) 총리는 2004년 4월 2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경제·무역 협력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중국 정부는 중국기업이 북한측과 다양한 형태의 호혜협력을 행할 것을 적극 장려한다'고 표명했다. 중국기업의 대북 진출을 장려한 것은 신의주 특구의 양빈장관이 구속되고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이 지연되는 등 북·중간 이상설이 확산되는 당시 상황에서 극히 이례적인 발언이었다. 중국 정부의 보증문서가 나옴에 따라 민관 차원에서 대북 진출이 본격화되었다. 중국은 우선 2004년 2월 '베이징자오화유렌문화교류공사(北京朝華友聯文化交流公司)'를 설립하여 정부 차원에서 대북 진출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북한간 민간상업 촉진 및 투자업무 자문회사인 이 회사는 북한이 유일하게 자문 권한을 인정한 중국의 민·관영기업이다. 그러나 형식은 민간기업이지만 실질적으로 중국정부를 대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중국기업들의 대북투자는 중앙정부와의 교감하에서 진행된다.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김영민(金永民) 부위원장은 2005년 2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투자사업설명회에서 2004년 말 현재 북한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300개사이며, 그중 40%인 120개가 중국기업이라고 밝혔다. 또한 자오화유렌공사의 티엔하뤼이(田海瑞) 기획부 경리에 따르면 2005년 6월말 현재 동 공사를 통해서 북한과 협상을 진행 중인 사업수가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중국의 대북진출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구한말 서구 열강이 조선을 침략할 때 경쟁적으로 얻어낸 지하자원 및 목재 채굴권이다. 둘째, 에너지, 항만 및 물류 등 사회간접자본의 투자 및 조차권이다. 셋째, 의류, 신발, 식품 및 가전제품 등 소비재 상품의 직접 수출이다.
우선 가장 활발한 분야가 지하자원 채굴이다. 빠른 성장으로 각종 원자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인 중국경제는 북한의 지하자원 획득에 깊숙이 손을 뻗치고 있다. 특히 2000년부터 중국의 동북부 개발계획이 구체화되면서 건설 경기 활성화에 따라 각종 건설 원자재를 확보하는데 비상이 걸림에 따라 성(省) 차원에서 북한 지하자원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2005년 10월 지린(吉林)성의 퉁화(通化)철강그룹, 옌벤텐츠(延邊天池)철강그룹, 중강(中鋼)그룹 등 3개 기업은 가동율이 미흡하나 총 매장량 30억t, 가채 매장량 13억t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무산광산 개발에 최소 70억위안(약 9,000억원)을 투자해 50년간 개발권을 따내는 계약을 북측과 체결했다고 홍콩 대공보(大公報) (11월 2일자)가 보도했다.
***IV. 김정일 방중후 북·중 경제협력의 전망**
중국 세관통계에 의하면 2004년 중국의 대북수출 품목 1위는 53만톤의 원유를 포함한 광물성 연료다. 2위는 냉동육류다. 육류는 2003년에는 전년대비 6배, 2004년에는 전년대비 2배가 증가했다. 3위 품목인 컬러 TV는 2002년 7만대, 2003년에는 17만 5,000대, 2004년에는 21만대로 증가했다. 비디오는 2002년 0.2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2003년 41만 달러, 2004년에는 216만 달러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전년대비 2004년 급신장세를 보인 소비재는 커피와 차(4.7배), 유제품 및 베이커리(3.7배), 음료 및 알코올(2.9배), 도자기제품(2.2배), 악기(9.4%), 가구 및 침구(73%) 등으로 비교적 북한에서는 고급소비재로 분류되는 품목이다.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일반 식당의 증가와 일부 부유층이 공식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통계다. 고급 육류를 섭취하고 중국산 차와 술을 마시고 컬러TV와 비디오로 외국 유명드라마를 보며, 악기를 즐기는 고위층과 비즈니스 계층의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표1> 중국의 대북한 수출품목
http://www.kifs.org/new/Dbview.html?sec_sort=4&no=1816
한편 신의주 역시 중국 단둥의 하청생산 기지화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라이터, 셔츠 등 중국 업체들이 요구한 임가공이 신의주의 저렴한 임금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단둥-신의주 벨트는 북·중 국경지대에 가설된 9개의 통로 가운데 가장 물자교류가 많고 비즈니스의 종류도 다양하다. 단둥 주민들은 돈이 되면 무슨 업종이든 가리지 않는 신의주 지역을 보고 '돈산주의'라고 놀랜다. 돈이면 무엇이든 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이 벨트를 통해 북한 산업 분야를 야금야금 잠식해가고 있다. 평양시내 정보통신 전문상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컴퓨터와 관련 용품은 대부분 중국산(made in China)이다. 중국의 렌상(聯相)그룹은 북한의 정보통신(IT)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일부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공장에서 조립된 미국산 델(Dell) 컴퓨터도 판매되지만 686 펜티움 컴퓨터가 1,500달러선에 팔리는 중국산이 가격 면에서 저렴하여 압도적이다. 평양 시민의 주된 수송수단인 자전거도 중국이 투자한 평양자건거합영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향후 중국의 대북 진출 분야는 여행사, 호텔 및 무역업 등 서비스 분야를 중심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 2005년 1월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조선반도투자사업설명회에 나온 첸용창(陳永昌) 성(省) 행정간부학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조만간 보험, 증권 및 은행부분의 투자가 가시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와 같은 중국자본의 북한 진출 러시는 한·중·일 3국간의 대북한 무역 비율을 비교하면 확연해진다. 중국의 무역비율은 2004년 현재 13억 8,500만 달러에 36.6%로 한국의 6억 9,700만 달러에 18.4%, 일본의 2억 5,200만 달러에 6.7%를 각각 두 배 및 여섯 배 차이로 따돌렸다. 북·중과 북·일간의 비중은 2000년 당시 중국이 4억 8,800만 달러, 일본이 4억 6,400만 달러의 비슷한 규모에 비해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표2> 한ㆍ중ㆍ일 3국의 대북한 무역 비율
http://www.kifs.org/new/Dbview.html?sec_sort=4&no=1816
그러면 중국 자본은 왜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가난한 북한에 진출하는 것일까? 평양은 가까운 시일 안에 수익을 남기는 시장이 될 것인가? 북한은 중국자본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는가라는 경제적 고려사항 이외에 정치적 요인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부딪친다. 중국자본의 평양 투자는 북·중간에 몇 가지 측면에서 이해가 합치된다. 우선 북한은 북핵 위기에 따른 미·일의 경제봉쇄로 중국 자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강화하는 바람에 돈줄이던 무기 수출과 마약밀매가 막히고 있다. 2004년 4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여 경제교류협력을 합의한 이후 2004년 북한의 대중(對中)교역 규모는 13.8억 달러로 전년보다 무려 34%가 증가하였다. 북한의 전체 무역액 중에서 대중 무역 규모는 60%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05년 3월 베이징을 방문한 박봉주 내각총리와 「대북(對北) 투자촉진 및 보호협정」을 체결하였다. 연초부터 북한은 중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하여 협정체결을 강력히 요청하였다. 지난 10월 28일 후진타오 주석 방북시에는 북한과 중국간에 '경제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이 조인되었다.
주목할 부분은 중국의 평양시장 선점전략이다. "중국인은 (한국전쟁에 이어) 다시 압록강을 건넌다. 이번엔 상인으로서" "조선(북한)에서 금 캐기 그 전망은" 등 지난해 하반기 발행된 중국 시사지 요망동방주간(膫望東邦週刊)의 헤드라인은 최근 중국의 대북 자본진출 러시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2005년 1월 15일 중국 하얼빈시에서 열린 '조선반도 투자합작설명회'에서는 "중국의 어제가 북한의 오늘이고, 중국의 오늘이 북한의 내일이다" 라며 지금이 대북 투자 적기임이 강조되었다. 지난해 1만여명의 중국 기업인이 투자를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했고, 평양의 상주 비즈니스 인원만도 3천여명에 이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2004년 하반기 중국기업 대상 대북투자 설명회만도 10여 차례에 이른다.
중국 자본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압록강을 건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이후 기업의 독립채산제가 확립되고 비즈니스 관행이 정착되기 시작한 평양의 기업활동 여건 개선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세금인하 등으로 투자환경이 대폭 개선되고 저렴한 생산비용은 중국 기업인들에게 10년 안에 훌륭한 시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하였다. 푸젠(福建)성 대외경제무역청 대표로 베이징에 근무하는 왕웨이리(王位力) 주임은 "북한의 현재가 중국의 70년대 말 80년대 초와 비슷하며 지금 조선에 진입하는 것이 시장을 점령함에 있어 가장 좋은 시기"라고 언급하였다. 미개척 시장의 봇물이 터짐에 따라 경공업과 사회간접자본 투자수요가 급증할 것이며 단기보다는 장기적인 미래시장 선점의 논리는 명확해진다. 특히 중국 기업인들은 북한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품가격이 중국에 비해 높고 상대적으로 근로자의 임금은 낮아 노동집약적 산업의 발전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중국에서 5위안 하는 티셔츠가 북한에서는 40위안에 팔린다고 한다. 반대로 중국인들의 평균 임금이 100불을 넘어 서고 있는데 평양의 임금은 100위안 수준인 20-25달러 선에서 결정된다.
세 번째 관심 부분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의 경제 버전(version)이다. 중국으로서는 김정일 이후(Post-Kim)까지도 한반도 북반부에 대북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외교목표를 지켜야 한다. 중국의 입김이 정치적 차원을 떠나 경제영역에까지 확대될 경우 역사에 이어 경제 분야의 동북공정은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동북 3성의 중화경제권이 한반도로 확대되는 것이다. 중국은 백두산 관리권을 강화함으로써 옛 간도지역에 대한 영토 분쟁의 싹을 미리 제거하려는 의도를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 '92년 한중 수교이후 수많은 한국인들이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으며 '만주땅은 양보 못한다'라는 구호에 놀란 중국은 치밀한 고구려사의 당(唐) 역사 편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여 만주지역의 고구려 유물에는 한국인의 접근이 봉쇄되었다.
역사적으로 수천년 중국 역사에서 단일 왕조의 평균 수명이 150년이 채 안된다는 사실은 통합과 분열의 기록으로 점철된 중국 역사의 서문에 기록되었다.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50개 국가 중에서 분열의 싹을 피울 수 있는 지역이 타이완과 만주지역 이다. 조선족의 민족주의가 만주지역에서 발흥하는 것을 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경제적 통합이다. 중국 위정자들은 역사와 경제 분야에서 중화사상으로 북한에 억지력을 행사한다면 한국민의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특히 간도 지역의 조선족은 한민족의 민족주의 움직임과 관련하여 요주의 대상이다.
북한 경제 회복의 수장인 박봉주 내각총리의 2005년 3월 중국 방문은 북·중 경제 협력이 북핵 문제 해결과 함께 당국간 최우선 관심과제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특히 후 주석은 2005년 10월 방북에서 향후 북·중관계 발전의 4원칙을 천명했다. △고위층의 상호방문 전통 지속, △협력적 내용이 담긴 교류 영역 확대, △경제무역 협력을 통한 공동발전 모색, △적극적인 협력을 통한 공동이익 추구 등이다. 이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 분야가 경제적 측면에 치중한 제안이라는 것이 베이징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일본 교도통신은 중국이 후진타오 주석의 방문을 계기로 북한에 약 20억 달러의 장기원조 제공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물론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북한이 어려울 때 우리의 능력이 닿는 선에서 도울 수 있다는 답변으로 20억 달러 지원설을 완곡하게 부인했지만 북한의 요청이 반영된 보도일 것이다. 이는 북·중간의 관계가 경제혈맹(血盟)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북한은 제품을 생산하여 내수시장을 구축하기 전에 중국제품의 소비지로 전략함으로써 경제종속은 불가피하다. 자체적인 자본축적을 통한 생산증가->소비증가->투자증가->자본축적의 경제의 선순환 발전구조를 형성하지 못하고 소비재의 수입대체->생산 중단-> 자본축적 실패-> 재투자 중단 등의 악순환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북한 경제의 중국경제 종속은 불가피할 것이다.
마지막 대목은 중국의 국제정치적 고려다.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전개되고 있는 지정학적 변천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이해와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방 확대와 미국의 세력이 아프카니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완충지대까지 확산되었다. 미·일동맹의 확대로 타이완 해협도 위협받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중국위험론'이 이론에서 현실로 확산됨에 따라 미군의 아시아 재배치가 이루어졌다. 9.11 테러 이후 반테러 전선은 중동과 북한 등 중국 주변부에 집중되었다. 중국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는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에게 요충지가 되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핵 해결과정에서 중국에 경제제재 동참을 요구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은 북한의 '전략적 병풍(屛風)'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 정권의 안정이 동북아 정세의 균형에도 매우 중요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수행을 통한 화평굴기(和平屈起) 정책에도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북한을 경제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 매우 시급한 과제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또한 베이징을 주기적으로 괴롭히는 탈북자 망명도 경제적 안정이 달성되면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한다. 후진타오 주석은 지난 10월 평양 방문기간 중 26년간 연평균 9.4%의 경제성장을 상세하게 설명하여 우회적으로 중국식 개혁·개방모델의 수용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훈수하였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결국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의 길이 오늘날 초보적 수준의 부유한 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첩경이지만 수용 여부는 평양이 결정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후 주석은 그보다는 김정일 총비서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조선노동당의 굳건한 영도와 일심단결된 조선 인민의 힘이 조선의 미래에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현재 베이징 국제관계학 박사지도교수이며 외교학 주임교수인 예쯔청(토自成)은 북중관계를 이해하는 데 주목해야 할 지침을 내놓고 있다. 그는 2005년 5월 출간된 저서 '중국의 세계전략'에서 한반도는 중국외교에서 하나의 함정이며 중국이 임진왜란, 청일전쟁 및 한국전쟁에서 얻은 교훈은 '이 진흙탕에 다시 빠져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중국은 한반도의 현존질서를 보존하며, 북한정국의 안정을 지지하고 보호하며, 한국과도 정치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적극 발전시키고 한반도의 비핵화 입장을 지지한다는 정책이다. 또한 일부 대국의 전쟁 혹은 대북경제 제재 압력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두개의 한국(Two Korea)' 정책이며 현상유지(Status quo)를 깨는 어떤 움직임도 단호히 배격한다는 입장이다. 이 정책은 동북공정의 역사와 경제버전이라는 양축을 통해서 추진되고 있는 것은 불문가지다.
***V. 결론**
김 위원장의 2006년 정초 방중이 완료됨에 따라 이제는 남순강화에 대한 학습효과, 즉 덩사오핑의 남순강화와 유사한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드는 귀환강화(歸還講話)가 나올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중국으로부터 경제개혁 추진에 필요한 재원을 요구하였을 것이다. 지난 10월 정상회담 이후 유포된 20억 달러 지원설의 구체화다. 시간이 없는 북한은 중국의 신속한 투자를 경제회복의 종자돈(seed money)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반면, 중국은 북한을 단기간에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면서 북한 경제에 대한 구조적 장악을 모색하는 동상이몽을 꿈꿀 것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 이후 중국자본은 대북 진출의 속도를 높일 것이다. 중국은 대북 경제지원 대가로 자신들이 추진했던 경제특구 방식의 개혁·개방을 권유할 것이다. 북한도 양빈 구속으로 종결된 신의주특구보다는 남측 지역에 경제특구를 지정하여 중국 자본과 기술을 접목시키고자 할 것이다. 최근 보도되고 있는 평안북도 철산군 대계도 지역이 유력한 경제특구로 부각될 것이다. 대계도 지역은 신의주와 정주 사이에 위치하여 신의주와 같이 중국인들을 겨냥한 유흥특구로 개발될 가능성이 적고 순수 중국의 임가공 산업 및 제조업 기지로 육성될 가능성이 크다. 북ㆍ중 양측은 최근 대계도의 명칭을 '장군항 독립경제구'로 확정하였다고 한다. 장군항은 경의선과 접하고 항구로 연결되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며 면적도 신의주 예정 면적의 1.5배인 200㎢에 달한다. 중국이 북한의 저임금을 이용할 목적으로 대계도를 '북한판 선전특구'로 개발할지, 혹은 중국 자본의 북한 진출 전진기지로 활용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김 위원장 방중 후에 대규모 북·중 경제협력에서 경제특구가 포함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향후 북한의 대외경제교류와 합작은 한국의 투자가 중심이 되는 개성공업단지, 러시아와 중국 투자를 노린 나진ㆍ선봉 경제특별구 및 중국 투자를 겨냥한 '장군항 독립경제구'의 삼각 형태를 보일 것이다.
중국 자본의 급격한 북한 진출과 관련,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우선 중국이 낙후된 동북 3성을 개발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단순히 북한과 협력한다는 순수 경제적 관점의 주장이다. 1인당 평균소득이 1500달러 수준인 동북 3성을 개발하는 데 있어 북한이 오히려 이 지역의 부족한 자원 공급기지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견해다. 에너지 블랙홀인 중국 경제에 북한의 지하자원이 중국 자본과 결합되어 개발되는 것이다. 특히 신의주와 단둥은 이미 단일 경제권으로 북한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한 위탁 임가공을 통해 양측이 경제적 상생 전략을 적절하게 추진하고 있다.
다른 관점은 북한의 동북 4성(省)화 주장이다. 중국 자본의 대북진출이 정부의 보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논거 중의 하나이다. 2004년 4월 2월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양국간 경제·무역 협력 강화에 합의한 이후 경협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이 북한측과 다양한 호혜협력을 행할 것을 적극 장려한다"는 총리의 천명 이후 정부 산하에 베이징차오화유롄(北京朝華友聯)문화교류공사를 설립하여 망설이는 중국기업들의 대북 진출을 독려했다. 그 뒤 호텔, 서비스업을 거쳐 대안친선유리공장 등 중공업과 지하자원 등 전 분야에 걸쳐 대북 진출이 전개되었다. 중국은 지난 10월 옌벤의 조선족 자치주가 보유하던 백두산에 대한 관리권을 지린성으로 이관했다. 같은 시기 중국의 훈춘기업들은 나진항 개발자금을 투자하는 대신 3·4부두의 50년 사용권을 조차(租借)했다. 금년 양국의 무역규모는 전년대비 30% 이상 증가한 2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이 중국 자본에 의존하는 한 경제적 대중(對中) 종속은 불가피하다. 북한이 북한성(省)이 되는 동북 4성으로 전락하면 동북공정의 경제버전이 완성된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후자의 관점은 중국 자본의 대북진출이 경제적 목적에서만 진행된다는 전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 자본의 급격한 평양 진출이 경제적 상호협력만을 의도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속도와 폭이 신속하고 넓다. 평양시장에 대한 선점을 통해 소비처와 투자처를 점령하는 경제논리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동북 3성의 단일 경제권에 북한을 포함시키는 것이 북한의 경제적 붕괴를 방지하는 중국의 '두개의 한국(Two Korea)' 정책과 가장 부합한다는 분석이 타당할 것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북핵 압박을 피하여 중국 자본에 의존해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중국은 많지 않은 자본 투자로 한반도 북반부에 대한 영향력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고자 한다. 단기적으로 달러 위폐 등에 대한 미국의 대북제재도 북·중 관계가 경제혈맹으로 확대되는 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중장기적으로는 유효하게 체결된 각종 북·중간 조차 및 개발 계약은 한반도의 통일정부도 승계가 불가피할 것이다. 해저 유전공동 개발은 유전지역의 공동 순찰함대 구성을 통해 서해안에서 양국간 군사협력을 강화할 것이다. 양국의 경제혈맹이 단순히 경제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후 주석이 방중 기간 중 김 위원장에게 정치안정을 권유했다는 보도로 인해 양국간 이견설이 대두되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중국 신화통신간 발표 내용이 일부 상이함으로써 중국의 최국빈 대우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이견은 존재한다는 추론이다. 북·중 양국 지도자들은 총론에서 일치하였으나 각론에서 은연중 이견이 노출됐다는 지적은 당연하다. 정치안정은 경제안정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며 경제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개혁·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국의 경험이나 북한이 이를 전적으로 벤치마킹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북한은 항상 종심(縱深)이 짧다며 중국식 개혁·개방 수용에 소극적이었다. 양국간 경제협력은 북한의 전면적인 개혁·개방보다는 서해안 특구에 중국 자본이 급속히 진출하는 형태와 내륙에서 중국 기업들이 지하자원 채굴권을 확보하는 데에 초점이 모아질 것이다. 양측의 경제협력에 대한 상이한 속내가 현실에서 어떻게 조정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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