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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마르코스 부사령관, 총 대신 마이크를 잡다

멕시코 저항단체 사파티스타의 오토바이 전국 대장정 3주째

멕시코 원주민 권익옹호를 위한 게릴라 단체인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지도자 마르코스 부사령관. 자신의 호칭을 '델리게잇 제로(Delegate Zero)'로 바꾼 그가 1월 1일 멕시코 오코바이 순례를 시작한 지 3주가 되어간다.

7월 2일 실시되는 멕시코 대통령 선거에 맞춰 '제3의 캠페인'이란 이름으로 6개월간 멕시코 방방곡곡을 누비는 그의 대장정은 무장투쟁을 포기한 사파티스타가 빈곤과 억압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다가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파티스타는 선거에 출마하거나 제도 정치권에 합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대선을 앞둔 멕시코 정국의 커다란 변수가 되고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사진1〉

수십 대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사파티스타의 순례 행사는 단순하다. 시골 마을의 공터나 도심의 광장, 혹은 관청의 앞마당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그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마이크 앞에 서서 자신들의 문제점이나 불만에 대해 연설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마르코스가 직접 혹은 사파티스타 지도부 중 한 사람이 그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정부의 부당한 정책에 저항하는 주민들의 연대를 촉구하는 게 전부다.

그러나 이 단순한 '성토대회'를 통해 주민들은 켜켜이 싸여 왔던 울분을 풀고 자신들과 함께 하는 이들이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주민들은 비싼 전기 요금, 빈민 구호물자의 부족 등 '미시적'인 문제에서의 불만을 터뜨리고 있지만 사파티스타는 그같은 일상의 불만을 통해 멕시코 사회의 근본 모순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따라서 마르코스는 이번 투어를 원주민 보호를 넘어 억압받는 모든 사회계층의 해방을 위한 정치활동으로 여기고 있다.

반세계화 운동 단체인 '글로벌 익스체인지(Global Exchange)' 멕시코 지부에서 일하는 존 기블러가 사파티스타 전국 투어의 실제 모습과 의미를 짚어보는 '제3의 캠페인' 동행기를 진보적 웹사이트 '커먼드림스(commondreams.org)'에 게재했다.

다음은 기블러의 동행기 전문이다. 원문은 http://www.commondreams.org/views06/0118-21.htm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마르코스 "변화는 밑에서부터, 왼쪽에서부터"**

멕시코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지금, 한 남자가 앞장서 나아가고 있다. 도심의 광장에서, 관공서 앞 집회에서 그는 수천 명의 군중들을 만난다. 30대가 넘는 차량 행렬 속에서 백색의 긴 밴(van) 뒷자석에 앉아 하루 8시간가량 이동하면서 3번의 집회를 연다. 수많은 카메라를 들고 마이크를 높이 치켜 든 수십 명의 기자들이 그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는 표를 바라지 않는다. 운동자금도 받지 않고 있다. 사파티스타 반군의 부사령관으로 20년 넘게 치아파스 정글에 살던 마르코스. 그가 바라는 것은 '듣는 것'이다.

치아파스 지역을 마비시키고 수백만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무장투쟁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후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은 제3의 캠페인을 통해 멕시코 정치의 중심부로 다시 뛰어들었다. 제3의 캠페인은 선거권을 박탈당한 원주민들과 노동 계급을 결집해 기존 정당을 버리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마르코스는 기성의 정당들을 향해 "3년마다, 6년마다 그들은 똑같은 거짓말로 우리를 팔아치운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고, 우리에게 유용한 것도 없다"고 비난하고 "변화는 밑에서부터, 그리고 왼쪽(좌파)에서부터 올 것이다"고 선언했다.

1월 1일 EZLN 오토바이에 올라탄 마르코스는 복면을 쓴 수천 명의 사파티스타 반군을 이끌고 라 가루차 마을에서 출발해 산크리스토발 델 라스 카사스에 이르는 행진을 이끌며 제3의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에서 마르코스는 멕시코 전국 31개 주와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6개월간 순례하는 정치적 대모험을 펼친다.

***"전기요금 거부운동은 단지 돈이 없기 때문"**

확성기와 카메라 플래시가 등장하고, 선거 때나 관심을 끌 법한 작은 마을을 끝없이 순례하는 등 제3의 캠페인에는 구식 선거운동의 요소가 많다. 그러나 소통 방법과 메시지는 기존 정치인들과 반대인데, 마르코스는 어딜 가나 길바닥에 걸터앉아 파이프와 담배, 펜과 종이를 꺼내 들고 몇 시간 동안이나 연설을 듣는다.

버려진 극장터에서, 초가지붕 밑에서 교사와 농민, 학생, 실업자들은 마이크 앞으로 다가와 복면을 쓴 반란군들을 향해 연설한다. 국영 언론들과 정부의 스파이들은 그 장면을 촬영하고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을 받아 적는다. 많은 이들은 정부의 무관심과 부패를 비난하고 민중들이 단결해 권리를 요구하자고 촉구한다. 어떤 이들은 특정 사안을 이야기하는데, 수 년간 실업 수당을 기다리는 실업자들, 잘못된 제방 공사로 강의 범람을 걱정하는 강변 마을 사람들, 정부가 폐쇄하려고 하는 시골 대학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학생들이 있다.

연설이 끝나면 마르코스가 나와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입후보자들과 소속 정당들의 공약을 거부하는 조직을 만들고, 정치권의 부패와 착취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을 조직한다.

〈사진 2〉

제3의 캠페인이 사파티스타의 발원지이자 고향인 치아파스주를 도는 동안 가장 많이 거론된 불만은 작은 시골마을에 터무니없이 비싼 전기요금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치아파스주의 수력발전소에서는 멕시코에서 소비되는 전력의 대부분을 생산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멕시코에서 가장 비싼 전기요금을 낸다.

조아킨 아마로라는 강변 마을에 사는 산티아고 로페즈 트리니다드는 비싼 전기요금에 항의하는 저항운동을 벌인 200여 주민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5달러 하던 전기 요금이 갑자기 50달러로 올랐다"며 2년 넘게 전기요금을 내지 않고 있다.

트리니다드는 50년을 어민으로 살아 왔다. 뜨거운 태양 아래 그와 동료들은 하루 4파운드의 새우를 잡고, 장이 좋은 날이면 각자 3달러씩 번다. 그의 집에 있는 전기제품이라고는 냉장고와 3개의 전구가 전부다. 고액의 전기요금에 저항해 요금 납부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트리니다드처럼 단지 요금을 낼 돈이 없기 때문이다.

조아킨 아마로 마을에서 마르코스는 트리니다드와 100여 명의 다른 주민들에게 사파티스타가 어떻게 전기요금 고지서를 대하는지 선보였다. 마르코스는 종이 한 장을 꺼내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땅에 내팽개친 후 군홧발로 묻었다.

마르코스는 "이것이 우리가 전기요금 고지서를 '꺼버리는' 방법이다"며 '끄다' '돈을 내다'라는 스페인어로 말장난을 했다.

***"제3의 캠페인은 금방 끝나지 않는다"**

카메라가 터지고 박수가 끝난 후 마르코스는 그들에게 정치인들의 공약을 무시하고 다른 마을에 있는 사람들과 연대해 저항하라고 선동했다.

마르코스가 연설하는 동안 확성기에서는 시 당국에서 온 구호 물품을 가져가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주민들은 지난 몇 개월간 구호품이 한번도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것이 기존의 정치 캠페인과 제3의 캠페인이 만나는 첫번째 장면이다. 주민들에게 그들의 문제와 걱정거리를 성토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군 지도자가 저항과 연대를 촉구하는 연설을 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는 게 제3의 캠페인이라면 쌀과 식용유, 비누, 화장지를 나줘주는 것은 기존의 정치 캠페인의 모습이다.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이며 멕시코 의회 의원이었던 길베르토 로페즈 이 리바는 제3의 캠페인을 몇 차례 방문한 뒤 "그것이 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의 정치 현실을 이해하는 데에는 2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며 "그 둘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게 명백하다"고 말했다.

마르코스는 사무실을 열고 정당을 만드는 기존 방식의 정치 캠페인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 왔다.

"우리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거나 의회 같은 최악의 것들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산 크리스토발의 첫번째 도착지에서 마르코스는 이렇게 말했다.

제3의 캠페인이 추구하는 이상은 정당을 초월하고, 총 대신 마이크를 쓰는 사회혁명이 촉발되는 것이다. 그를 위해 EZLN은 민중들이 발언하고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열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다.

모든 것을 '무(無)'에서 시작한다는 제3의 캠페인을 상징하기 위해 스스로를 "델리게잇 제로(Delegate Zero)"라고 부르는 마르코스는 캠페인이 시작됐던 지난 1일 산 크리스토발 광장을 메운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2가지를 분명히 했다. "캠페인이 금방 끝나지는 않을 것"이고 "캠페인에서 누구나 자신의 공간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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