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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을 향한 변화의 메시지"

김정일, 중국방문 마쳐…북한 안팎에 개혁의지 천명

7박8일 간 중국을 극비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8일 평양으로 돌아갔다. 이번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철통같은 보안 속에 이뤄져 방문지와 수행원, 접촉인사 등 모든 것이 가려졌고, 이에 따라 각종 추측보도와 혼선을 빚었다. 이번 방중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무엇을 노렸고, 어떤 성과를 얻었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이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북한 내부에 변화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행보라고 입을 모았다.

급속한 경제개혁 조치와 위조화폐 문제에 대한 해법 조율 등 단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보다는 중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 내 강경파에 북한식 경제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김 위원장 자신의 의지를 천명하기 위한 방문이었다는 것이다.

〈사진 1〉

***중국에서 미국을 향해 말하다**

우선 방문지는 중국이지만 정작 메시지를 보내는 대상은 미국이라는 분석이 있다. 위폐유통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뛰어넘어 9.19 공동성명의 이행은 물론 북미관계 정상화까지 모든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 의향이 있다는 것을 미국에 보여줬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변화모델로 선호하고 있다는 중국식 경제 개혁과 개방이 그 매개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경제의 개혁·개방을 과감하게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북미관계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풀어가려는 의도인 것 같다"며 "6자회담 등과 관련해서 북미관계가 경색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교수는 특히 "북한의 국가 이미지라든가 대외적 인식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우리는 개혁·개방 쪽으로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져 중국과 한국이 이를 근거로 미국을 설득할 여지가 넓어지도록 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도 "미국이 조금만 입장을 바꾸면 6자회담에도 나가고 경제개혁도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자 한 게 진짜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개혁·개방의 과정과 6자회담에서 나오는 갖가지 문제들에서 중국을 끌어들이면 중국의 역할이 부각될 것"이라며 "이를 부담으로 여긴 미국이 어떤 반응을 하도록 하는 전략이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개혁 성과 인정하며 지원 요청**

김 위원장이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거쳐 남부의 광둥성 광저우와 선전 등 이른바 '남순강화' 지역을 돌면서 첨단 산업단지와 기업, 심지어 대학가까지 시찰한 것은 북한의 개혁·개방 모델을 중국에서 찾겠다는 메시지를 중국에 강하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그동안 이룩한 개혁·개방의 성과를 북한이 받아들이겠으니 그에 대한 후원을 확실히 해달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통해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전체에서 중국의 입지를 높여주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16일 저녁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두 정상은 후 주석의 지난해 방북 때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큰 틀의 양국 간 경제협력 방안에 따라 그동안 다양한 채널의 협의와 접촉을 통해 마련한 경제협력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재확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자리에서 후 주석은 북한에 상당한 규모의 경제원조를 제공하기로 하고 당정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중국 기업의 대북한 투자 확대를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에 석탄 등 북한의 지하자원과 해양자원의 개발 협력과 중국기업 투자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을 수도 있다.

피터 벡 국제위기감시기구 한국사무소장은 "후 주석이 지난해 평양에서 북한에 20억 달러 정도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걸 확실히 하고 경제협력을 가속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성욱 교수는 "북한 스스로의 힘으로 개혁을 한다기보다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후 주석과 중국 지도부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순성 교수도 "북한 체제가 나름대로 정비됐다는 것을 중국에 보여주면서 지원을 유도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위폐문제 해법 제시 가능성…김계관-힐 회동 주목돼**

물론 북핵 6자회담과 위폐 문제에 있어 미국 편을 들지 말아달라는 사전 정지작업을 중국에게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미국은 '모종의 증거'를 제시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데, 중국이 이에 동의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우군'이 없어져 북한이 모든 오명을 뒤집어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증거가 맞지만 국가 차원에서 한 것은 아니다'는 메시지를 중국에게 전달하고 이를 근거로 미국을 설득하라고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이번 방문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전병호 당비서 겸 국방위원이 베이징에 체류하면서 중국 외교 당국자들과 위폐문제 등에 대해 조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평양으로 돌아간 직후인 18일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베이징에서 전격 회동하는 것은 북한과 중국이 미국을 상대할 준비가 완료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한사코 거부하던 북한과의 양자 접촉은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주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김 위원장의 타협안을 중국이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 교수는 "위폐문제, 6자회담에서 북한의 입지가 좁아지는 문제, 중국이 위폐와 관련해서 미국과 가까워지는 경향 등 북한이 닥친 '엄중한 현실'에서 북한이 중국에 뭔가를 주지 않았겠냐"고 반문했다.

박 교수는 "미국이 타협안을 받아들일지는 부정적"이라면서도 모종의 타협안을 내놨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2〉

***북한내 '개혁 걸림돌' 제거**

끝으로 혁명 원로들과 군부 인사 등 북한의 보수층 인사들이 이번 방문의 수행원에 대거 포함됐다는 것은 북한 내부를 설득해야겠다는 김 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즉 보수층 인사들로 하여금 중국식 개방의 현장을 '집단학습'하도록 함으로써 북한식 개혁정책을 가로막으려는 그들의 반대의견을 잠재우고 경제특구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하면서 개방의 속도를 높이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최근 6자회담이나 위폐문제 등 안보 현안이 부각되면서 일부 강경 보수파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개혁·개방의 목소리를 효율적으로 과시해 이들을 설득하고자 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피터 벡 소장은 "김정일은 2001년 방중 때 군부 인사를 대거 대동했고 2004년에는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와 함께 중국을 방문하는 등 누구와 함께 갔느냐가 중요하다"며 이번 방문에서 보수층 인사들을 데려간 것은 북한 내부의 강경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떤 조치 이어질까…우리는 미국-중국 사이에 선택의 기로에 설 수도**

김 위원장이 '상하이가 천지개벽했다'는 말을 남겼던 2001년 방문 이후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처를 단행했던 전례로 보아 이번 방문 후에도 개혁·개방을 꾀하는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서동만 교수는 "시장경제로의 개혁은 속성상 한번 시작했다가 방치하면 오히려 치명적일 수 있다"며 "현재 북한의 경제사정이 과감히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있다고 봐야 한다"며 후속조치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과 후 주석의 합의에 따라 중국의 기업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경제특구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구 활성화는 북한 내부 경제에 변화의 충격을 최소화면서도 정부의 수입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인데, 중국의 지원 하에 신의주 접경지역 등 기존의 경제 특구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특구를 추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방문으로 중국의 위상이 제고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북미 간 줄다리기의 틈바구니에서 전략적인 판단을 할 때가 올 수 있다는 충고를 빼놓지 않고 있다.

박순성 교수는 "동북아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전략이 시험대에 올라 있는 상황을 북한이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다"며 "미국 주도의 질서에 끌려가 강화된 한미동맹으로 갈 건지, 균형을 잡을 건지를 선택해야 하는 중대 기로에 있다"고 말했다.

'북중 우호 과시'를 이번 방문의 목적이라고 말하는 이정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의 길이 갈라지면 한국에게 선택의 순간이 올 수도 있다"며 그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외교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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