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선생님,
***한류의 어제**
박 선생님께서 서구에 보이는 한류의 명과 암을 손에 잡히게 알려주는 글을 쓰셨으니 저는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한류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합니다. 문화의 속성은 물과 같습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문화 또한 그 수준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마련입니다. 역사가 생긴 이래 오늘의 한류를 제외하고 우리 문화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적이 없었던 반면 근대 이전 시기에 일본으로부터 문화가 거꾸로 흐른 적도 없었습니다. 고대에 중국에서 발원한 문화라는 이름의 강물은 조선을 거쳐 일본으로 흘러들어 척박한 일본 문화의 토양을 살찌우고 기름지게 해주었지요. 이러한 고대 동아시아 삼국 사이의 문화 흐름을 문화의 동류(東流)라고 하더군요.
이렇듯 근대 이전 우리는 중국에게서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는 수혜자였지만, 이를 소화해 다시 일본에 전해주는 문화 공급자 역할도 행했었습니다. 고대 일본의 아스카(飛鳥) 시대에 한반도에서 건너 간 "도래인(渡來人)"은 화려한 불교문화를 퍼뜨렸지요. 1949년 소실되었지만 사진으로 남아 있는 고구려 담징의 금당벽화 속 부처님은 엷게 미소를 머금은 우리 부처의 모습이 분명하더군요. 국내에서만 생산되는 적송(赤松)으로 만들어진 교토 코류지(廣隆寺)에 모셔진 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금동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쌍둥이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더군요. 굵직한 문화재가 이 정도이니, 고대 일본인의 생활 속에 흘러 들어간 고구려·백제·신라인의 일상문화는 그 세세한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문화의 동류 현상은 "도자기 전쟁"이나 "활자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임진왜란이나 통신사를 환영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담은 에도시대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에서 근세까지 이어진 장기지속의 문화현상이었습니다.
이처럼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흐르던 문화의 동류(東流) 현상이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역류하기 시작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 하나는 18세기 들어와서 서구 열강의 격랑이 동아시아 지역을 덮쳤을 때 일본은 재빠르게 서구의 선진 문물을 따라 배워 근대 국가로 탈바꿈하였지만, 우리는 쇄국양이를 고집하면서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1876년 일본의 포함외교에 굴복해 굳게 닫아걸었던 문호를 열 수밖에 없었고, 이때부터 문화의 강물은 서구에서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역류하는 문화의 서류(西流) 현상이 일기 시작하였지요. 1876년의 개항(開港) 이후 우리는 문화 수용의 통로를 서구 내지 일본으로 전환함으로써 서구 내지 일본 문화를 열렬히 추종·모방하는 서구지향형 내지 그 아류(亞流)로서 일본지향형의 문화권으로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항은 한·일 양국간 문화의 수혜자와 공급자의 위치를 뒤바꾼 문화교류사상 역전현상을 초래한 전환점이며, 1894년의 청일전쟁과 갑오경장은 중국이 아시아지역에서 문화 공급자로서의 위치를 완전히 상실한 기점이 됩니다.
***한류의 오늘**
"한류"란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을 위시하여 대만·홍콩·베트남·태국·일본 등의 주민 사이에서 번지고 있는 가요·드라마·패션·관광·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경향을 이릅니다. 대중문화의 유통이라는 점에서 이는 왕과 귀족이 주인이던 고대나 중세에 있었던 문화의 동류와는 현격하게 다릅니다. 1996년 드라마를 시작으로 중국에서 불기 시작한 한국문화에 대한 열풍은 대만과 홍콩을 비롯한 화교문화권의 동남아시아로 번져갔으며, 2003년에는 "겨울연가(冬のソナタ)"의 남녀주인공 배용준과 최지우를 존칭하는 욘사마와 지우히메 신드롬이 웅변하듯, 일본열도를 한류 열풍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한마디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국적과 문화를 넘어선 한국 대중문화의 유통현상을 이르는 말이 한류입니다. 요즘 신문 보도를 보니 한류는 이미 중동지역에도 흘러들었고 북미주의 아시아계 주민사회에도 흘러들기 시작했다더군요.
사실 해방 이후 1990년대 초까지 한국은 미국·일본·홍콩 등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대중문화의 소비국이었지 수출국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왜 오늘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류의 물결이 넘쳐흐르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대체로 학계에서는 유교문화와 같이 아시아 주민이 가진 공통의 감수성,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 대중문화의 선정성과 폭력성에서의 차별성,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에 팽배한 반일감정 등에서 그 원인을 찾곤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한국문화나 이를 배태한 민족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어깨를 우쭐거리는 반면, 또 다른 이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미국과 일본문화의 모조품 즉 짝퉁으로 "진정한 우리 것"이 아니라 "천박한 B급 문화자본의 파생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고 있던 한국 대중문화의 힘은 분명이 존재하며 쉽게 사그라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좀 논쟁적으로 글쓰기를 해 볼까요? 며칠 전 신문에서 오슬로에서 내년 1월 노르웨이 영화협회(Norweigian Film Institute)의 요청으로 한국영화제가 열린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박 선생님이 "액션과 호로" 전문 영화감독으로 본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 "친절한 금자씨"(2005)·"복수는 나의 것"(2002)·"공동경비구역 JSA"(2000) 등을 비롯해서 "쉬리"(강제규, 1998)·"여자는 남자의 미래다"(홍상수, 2004)·"장화홍련"(김지운, 2003)·"남극일기"(임필성, 2005)·"거미숲"(송일곤, 2004) 등 18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하더군요. 상영작의 면면을 살펴보니 대다수가 미스터리, 스릴러, 액션 등의 장르에 속하는 "시간 죽이기"용 오락 영화가 대부분이더군요.
이 영화제를 공동으로 여는 한국측 인사는 역시나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북유럽의 국가인 노르웨이가 먼저 영화제 개최를 요청해 온 것은 우리 영화의 힘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라고 하면서 국위선양을 외치더군요. 저 역시 지금 유럽에서 일고 있는 한국영화 붐이 서구인들이 "'우리 국위'에 승복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액션과 호로라는 눈요기용 장르를 대표하면서,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신묘한 이질성 즐기기'에 적당하기 때문에 소비할 뿐"이라는 박 선생님의 지적에 동감하는 쪽입니다. 그러나 저는 서구에 보이는 한류는 "'환상의 폭력과 신비의 나라 코리아'를 소비하려는 유럽의 '배부르고 고독한 우중(愚衆)'들과 국내 상업적 예술계의 똑똑한 장사꾼들의 '뭉침'"에서 나온 문화현상일 뿐이라는 박 선생님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비판적인 사회의식으로 무장한 진정한 작가들이 쓴 민중의 서사시", 즉 "무산대중이 세계적으로 뭉치는 역사진보의 정통코스"에 순기능을 발하는 영화나 문학작품만이 "진정한" 문화라고 보지 않으며, 이러한 경향성을 띤 영화나 문학작품을 소비해야만 "우중"을 면할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필연의 역사법칙이 지배하는, 아니 아직도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예컨대 "쥬만지(Jumanji, 1995)"라는 영화 속 장면 하나를 떠올려 볼까요. 쥬만지라는 게임판에 새겨진 지시에 따라 던진 주사위의 숫자에 따라 보도듣도 못한 괴수들이 튀어 나오고 엉겁결에 게임에 끼어든 아이들이 마지막 주사위에 운명을 거는 오락영화였지요. 허나 냉전이 붕괴되고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밀려닥친 이후 주사위 장난은 아이들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겟돈 (Armageddon, 1998)"이나 "딥 임팩트(Deep Impact)" 같이 소행성이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위기상황을 가정해 만든 영화를 보면 신은 요즘 인류의 운명을 판돈으로 걸고 주사위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역사란 필연의 법칙이 관철되는 장이기 보다 우연의 산물이란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 아닐까요? 우연이 지배하는 세상살이에서 우리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것은 신이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처럼 자기희생을 감내하고 인류를 구하는 위대한 인간, 즉 영웅이지요. 우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필연을 의미하는 "무산대중이 세계적으로 뭉치는 역사진보의 정통코스"는 이미 신기루로 판명난 것이 아닌지요? "필연적 진보"인 사회주의혁명을 꿈꾼 식민지 시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에서 이탈한 전향자 백철이 남긴 "다만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상실한 것은 예술이다"는 말은 경향성과 목적성을 띤 문예활동이 갖는 취약점을 잘 말해줍니다.
지식에 붙어 있던 계급장이 떨어진 시대를 사는 대중들은 계몽적 지식의 권위에 무릎 꿇고 순종하는 우중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의 취향에 따라 입맛에 맞는 문화 상품을 취해 소비하는 "현명한" 소비자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주목받은, 즉 많이 소비된 영화는 그 오락성 여부를 떠나 당대의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영화일 개연성이 높습니다. 권위주의 시절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의 인격 파괴를 잘 그려낸 "박하사탕"(이창동, 1999) 같은 사회 비판영화나 "친절한 금자씨"같은 킬링 타임용 오락물이나 한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 문화적 거울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 것이기에 그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영화뿐이 아니라 잘 나가는 대중문화 일반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문화의 적서(嫡庶) 차별에 동의하지 않기에, 시간 죽이기용 오락문화에 탐닉하는 이들을 우중이라고 낮추어 보거나,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문화상품을 만들어 내는 대중문화생산자들을 "장사꾼"으로 비하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류의 내일**
사실 한류는 가요·드라마·영화 같은 대중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지, 우리가 소위 고급문화라고 하는 전통문화의 소산은 아닙니다. 분명 HOT 같은 댄스그룹이나 "엽기적 그녀"(곽재용, 2001)와 같은 영화가 상징하듯 현대 한국의 대중문화는 전통과의 결별에서 얻어진 결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허나 요즘 홍콩에서 공전의 인기를 끈 "대장금"(MBC, 2003~2004) 같은 드라마는 전통의 현재적 재해석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일본 주부들의 심금을 울린 "겨울 연가"(KBS, 2002)는 인류 보편의 순수한 사랑을 문화상품으로 재포장한 데서, 그리고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8)와 "태극기 휘날리며"(2003)와 같은 영화는 냉전과 동족상잔이라는 한국적 특수를 바탕으로 한 우리만의 독창적 이야기를 그린 데서 그 성공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류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지금 한참 진행 중인 문화현상인 것입니다.
어쨌거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문화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점하는 수위가 높다는 점과, 그 이면에 한국이 근대 이후 겪었던 특수한 역사 경험이 깔려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는 없습니다. 아마 오늘의 한류 뒤에는 1876년 개항 이후 우리가 수용한 일본문화, 그리고 1945년 이후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온 미국문화를 꼭꼭 씹어 소화해 자기화하고, 이를 소비함으로써 재생산이 가능하도록 해준 한국 시민사회의 문화적 저력과 역동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썩지 않는 자기 정화 능력이 있습니다. 한류라는 강물이 썩지 않고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한류란 문화 콘텐츠입니다. 한류가 일과성(一過性)의 해프닝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나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깊은 물처럼 지속적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마 그 첫걸음은 문화의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이 가능하도록 해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화가 서로 넘나들며 상대의 문화토양을 적셔 주게 하는데 있을 것입니다. 즉 근대 이전의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중국문화나 근대 이후 일본을 통해 파고든 서구문화나 모두 일방적 전파의 오만함을 보였다면 앞으로의 동아시아의 문화적 관계망은 서로 주고받는 상생의 문화 주고받기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한류와 같은 문화현상의 지속을 위한 그 다음 징검다리는 아마 상대에게 유의미한 타자로 거듭나기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한반도로부터 일본으로 문화가 동류(東流)하던 옛날의 영광이나 오늘날 일부 대중문화에 치우친 한류만을 자랑하고, 오늘날 세계인들 앞에 '유의미한 타자'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다면, 결코 우리는 지구마을의 거주자들과 당당히 연대하고 협력하는 새 시대를 열지 못할 것입니다.
***여담 하나**
박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것 하나와 그렇지 못한 것 하나를 말함으로써 글을 맺고자 합니다. 박 선생님은 "국가보안법이나 학교에서의 두발제한, 군대에서의 구타와 욕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야만적인 인간사냥" 등 남한사회의 특수한 후진성에 대해 성찰을 촉구할 때 세계 "보편"의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반면 남한의 쌍생아인 북한 사회에 대해서는 감싸 안기식의 특수한 잣대를 쓰시더군요. 저 역시 북한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고 북한인민의 해방을 위해 전쟁이라는 극약 처방을 써야 한다는 근본주의적 극우세력의 북한관에 동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독재자에 대한 비판이 어찌해서 북한인민에 대한 공격이 되는지를 이해할 수 없으며, 북한사회의 인민들을 조선시대 왕에게 충성한 백성과 동일시하는 우민관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역사발전에서 인민의 역할을 중시하는 역사적 유물론과는 달리 수령의 역할만을 결정적인 것으로 보고 수령의 영도 하에서만 노동계급의 혁명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는 북한의 김일성 유일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논리인 "수령론"은 북한식 사회주의의 특수성을 자명하게 드러내는 사회주의 보편의 입장에서도 비판받아 마땅한 논리가 아닐는지요? 남북한 사회를 성찰할 때 키 작은 놈은 다리를 잡아 빼 늘이고 키 큰 놈은 다리를 자른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처럼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보편과 특수의 잣대를 따로따로 적용한다면 이는 균형을 잃은, 학문의 영역에서 쓰기에는 부적절한 척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한국의 인문학이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우리만의 특수를 강조하고 재생산해내는 학문 풍토에서 벗어나 세계 기준의 보편적 담론에 기여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 시각을 길러야 한다는 박 선생님의 고언(苦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우물 안을 벗어나 민족적 특수를 목청껏 외치는 우리만의 색안경을 벗고 글로벌한 시각과 차원에서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해 해결을 모색하는 인문학자들이 샘처럼 솟아나올 날을 고대하며 미흡한 글을 마칩니다.
〈도움이 된 글〉
김현미, 「'한류' 담론 속의 욕망과 현실」, 『당대비평』19(2002)
백원담, 『동아시아 문화선택 한류』(팬타그램, 2005)
이동연, 「한류 문화자본의 형성과 문화민족주의」, 『문화과학』42(2005)
조한혜정, 「동서양 정체성의 해체와 재구성: 글로벌 지각변동의 징후로 읽는 '한류열풍'」, 『한국문화인류학』35-1(2002)
<필자 사정으로 연재를 1월 한달간 쉽니다. 다음 회는 2월에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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