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 중화동 312번지와 묵동 일부를 포함한 15만4000평 일대. 이곳은 2003년 11월 이전까지만 해도 주민 간에 사소한 다툼 외 큰 갈등은 없었다. 그러나 중화뉴타운 지구 지정 이후 주민들이 찬성측과 반대측으로 나뉘어 서로 헐뜯고, 싸우는 나날의 연속이다.
다른 뉴타운지구에서도 주민들이 뉴타운사업에 찬성과 반대로 나뉘는 일은 다반사다. 그런데 중화뉴타운에서 주민들 간의 갈등은 특이하다. 2005년 8월에 중화뉴타운 일부 주민들은 어느 뉴타운지구에서도 볼 수 없는 행정소송을 서울시를 상대로 했다. 행정소송 내용은 중화뉴타운 지구는 적법하지 않으니 지구지정을 취소해달라는 것이었다. 서울시도 중화뉴타운 사업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2005년 11월에 서울시는 중화뉴타운 개발계획을 조건부 승인했는데, 그 조건에 의하면 중화뉴타운 내 주택과 토지소유주에 대한 전수 설문조사를 해 주민찬성 비율이 높을 경우에 한해 사업을 추진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중화뉴타운사업은 어떤 것이며, 추진과정에서 어떤 문제점들이 있었기에, 중화뉴타운 반대측 주민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는가? 서울시는 왜 중화뉴타운 개발계획을 조건부 승인했는가?
***중화뉴타운 사업: 명분이 없다**
중화뉴타운 지역을 가보면, 과연 이 곳이 뉴타운 사업을 해야 할 곳인가 하는 의문이 먼저 들고, 중화동 일대가 뉴타운 사업이 이뤄진다면 서울시에 웬만한 곳은 모두 뉴타운 대상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화뉴타운 지역은 서울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거지역이다. 지하철 7호선 중화역 서편으로 5년 이내에 신축한 중층 건물들이 왕복 4차선 도로 주위로 즐비하게 서 있고, 건물들에는 병원, 음식점, 카센터, 로또 판매점 등 상가들이 입주해 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지어진지 20년 넘은 주택도 있고, 10년 내 신축한 건물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
중화뉴타운 중심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15층 높이의 동구햇살아파트와 14층 높이의 삼익아파트가 보이고, 5층 높이의 제일프라자와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으로 현재 건설 중인 약 20층 규모의 태능시장이 보인다. 이들은 중화뉴타운 사업이 진행되어도 그대로 남겨두는 건물이라고 한다.
〈그림〉 . 중화뉴타운 지역내 신축중인 태능시장
그림 . 중화뉴타운 지역내 주택건물
그림 . 중화뉴타운 지역내 주택건물
중랑구청에서 이처럼 양호한 주거지역을 뉴타운사업하려는 취지는 근본적인 수해방지이다. 2001년 수일간에 걸친 집중호우로 서울시에서 침수지역이 다수 있었다. 중화뉴타운 지역도 이 당시 중랑천이 범람하여 많은 가옥들이 침수피해를 입었으며, 그 이전에도 상습침수지역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중화뉴타운내 그대로 남겨두는 고층건물 외 모든 건물들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이 중화뉴타운 사업의 내용이다.
하지만 중화뉴타운 사업을 추진하기 이전에 중랑구청이 이 지역의 수해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중화뉴타운 지역이 상습침수지역인 것은 인근 중랑천보다 지대가 낮아서 집중호우가 일어나면 시간당 급속히 늘어나는 빗물을 중랑천으로 퍼내어야 하는데, 기존 빗물펌프장의 용량부족, 하수관거 정비 미흡 등으로 빗물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그 원인이다. 2001년 이후 중랑구청은 서울시의 예산지원을 받아 서울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제2중화빗물펌프장을 신설하여 기존의 빗물펌프장으로는 불가능했던 빗물처리 용량 문제를해결하였다. 하수관이 좁아서 비가 많이 오면 하수도에서 가로로 빗물이 역류하는 문제도 이 지역내 다수의 하수관거를 재정비하여 점차 개선되고 있다.
그래서 수해대책이 적절히 이루어진 곳에서 모든 건물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지어야 근본적인 수해대책이 마련된다는 중랑구청의 중화뉴타운 추진의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혹여 근본적인 수해대책 이외에 중화뉴타운 사업을 추진할 다른 명분이 있는가? 지어진 지 20년 넘은 주택건물이 상당수 있고, 단독주택과 다세대건물이 몰려있는 곳에서는 주차난으로 주민들의 아우성이 들리며, 이 지역에는 번번한 공원도 찾아보기 어려운 등 대다수 서울 주거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차난과 공원부족 등의 문제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뉴타운사업과 같은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한가? 이 지역의 짜투리 공간을 주차장으로 만들어 중화동과 묵동의 주차난을 해소할 수 있고, 고층신축건물이 들어설 때 부지내 공원을 만들어서 공원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
***명분 없는 중화뉴타운 사업, 진행과정에서도 탈이 생기다**
이처럼 명분이 없는 중화뉴타운 사업이다 보니, 진행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중화뉴타운은 "서울특별시지역균형발전지원에관한조례"에 정해져 있는 절차 및 지구지정 요건에 하자가 없어서, 서울시는 2003년 11월 18일에 중화뉴타운 지구지정을 고시하였다. 중랑구청에서 서울시에 제출한 지구지정신청서를 보면 "이 지구는 오래된 주택이 많고 주차난이 심각해 재개발이 필요하고, 지자체와 주민들이 합심하여 뉴타운사업을 열심히 추진하려 하며, 수해가 빈번히 일어나는 지역이니 개발이 시급하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중화뉴타운 사업을 다음 그림과 같이 주택재개발구역 2개 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 1개 구역으로 추진하려고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림 . 중화뉴타운 개발계획(2003)
(출처: 중랑구(2003), 강·남북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중랑구 뉴타운사업지구 지정요청서, p.13 재구성)
그런데 중랑구청에서 제출한 지구지정신청서가 하자가 없다고 판단한 서울시가 지구지정을 승인하였는데, 중랑구청의 계획대로는 뉴타운 사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어찌된 노릇인가?
뉴타운 사업이 시행되려면 계획에서 정한 사업방식 별로 근거가 되는 법이 각각 있다. 가령 중화뉴타운 사업의 경우 주택재개발사업과 도시환경정비사업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및 시행령, 시행규칙, 지자체의 조례를 준수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이 조례에서 주택재개발사업 지정요건이 정해져 있는데 중화뉴타운은 이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우선 주택재개발사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10,000제곱미터에 60호 이상의 건축물이 있어야 하지만, 이 지역의 호수밀도는 약 53호/ha에 그친다. 호수밀도 뿐만 아니라, 노후건축물수, 주택접도율비율, 과소필지비율, 상습재해구역이라는 4가지 사항 중에 하나 이상에 해당되어야 주택재개발사업을 할 수 있는데, 중화뉴타운은 이 요건 중에 어디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중화구청에서 중화뉴타운을 추진하는 명분으로 이 지역이 상습침수지역이라는데, 법에서 정한 상습수해재해구역 지정요건을 살펴보자. 주택재개발구역의 상습재해구역 지정기준은 1990년 이후 수해나 재해가 발생한 건물이 50% 이상인 경우가 2번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중화뉴타운 지역은 2001년 최대 침수피해를 입었을 때 침수건물 비율이 약 38%에 그쳤으며, 2001년 이후 침수대책 마련 등으로 향후 50% 이상 건물이 침수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중화뉴타운이 상습재해구역에 해당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표〉 항목호수밀도노후건축물주택접도율과소필지상습재해구역법적기준60호/ha이상2/3 이상30%이하50%이상지역내 건축물 50%이상 2회침수중화뉴타운
현황53.4호/ha36%34.05%7.4%38.3% 1회 침수표 . 주택재개발구역 법적기준 및 중화뉴타운 현황 비교
이처럼 중랑구청에서 마련한 중화뉴타운 계획이 실제로는 시행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실시될 수도 없는 중화뉴타운 계획을 보고 뉴타운지구 지정승인을 해주었다. 거참 이상한 노릇이다. 중화뉴타운 일부주민들이 중화뉴타운 지구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아뿔사, 사업을 시행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 중랑구청은 부랴부랴 중화뉴타운 개발계획을 수정하여 서울시에 2005년 6월에 서울시에 개발계획 승인을 신청하였다. 이 계획에서는 공공이 전면철거 후 아파트 건설을 강제할 수 있는 주택재개발사업구역이 약 17만평, 주민들이 스스로 건축물을 철거하고 건축물을 신축할 수 있는 주택재건축사업구역이 약 100만평, 공공이 각 건축물과 가로를 계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구단위계획구역이 약 15만평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주택재개발구역 지정요건에 부합하여 주택재개발구역을 지정하였는가에 대한 검토, 주민의 의사반영 등이 미흡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결국 서울시는 개발계획 승인을 보류하고 있다가 지난 11월 17일 이를 조건부 승인하였다.
〈그림〉 . 중화뉴타운 개발계획(2005)
(출처: 중랑구 (2005), 중화뉴타운 개발기본계획 승인신청서, pp.150 재구성)
서울시가 중화뉴타운을 승인하는 데 단서조항으로 단 조건들을 들여다보자. 주요골자로는 주택재개발사업구역이 법적 지정요건에 맞는지 확인할 것, 찬성측과 반대측 주민들이 각각 1회 설명회 및 상호 토론회를 한 후 이 지역 전체 주민의사를 전문설문기관을 통해 조사한 결과 찬성비율이 높을 때 사업을 추진할 것 등이다.
이들 사항은 서울시가 중화뉴타운지구를 지정하기 이전에 사전에 검토되어야 되는 사항들이지 않은가? 주택재개발사업을 할 수 있는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뉴타운사업에 동참하려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어찌 뉴타운지구지정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서울시는 지구지정 당시 이들 사항을 검토하지 않은 채 지구지정을 하였고, 개발계획 승인 단계에서 이들을 조건부로 내세우면서까지 중화뉴타운 개발계획을 승인하였다. 서울시가 무리하게 중화뉴타운 추진을 지원하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명분 없는 중화뉴타운 사업 중단하라**
이제 중화뉴타운 사업의 추진 여부는 주민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찬성측은 뉴타운사업으로 아파트 한 채를 얻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람들이 다수이고, 반대측은 신축건물을 가지고 있는 주택소유주이거나, 노후대책으로 이 지역에서 월세나 전세 등을 놓고 있는 노인가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중화뉴타운 주민들은 어떤 선택을 보여줄 것인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런데 중화뉴타운 주민들 다수가 뉴타운 사업에 찬성하였다 하여 중화뉴타운 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앞서 보았듯이 중랑구청에서 중화뉴타운을 추진하려는 것은 명분이 서지 않는 행위이다. 그러다보니 서울시는 멀쩡한 곳을 재개발하겠다는 중랑구청의 중화뉴타운 개발계획을 조건부로 승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명분이 없는 뉴타운사업을 추진하려는 중랑구청은 주민들의 의사로 그 명분을 찾으려고 한다. 누가 보기에도 무리가 많고 잘못된 사업이라면 시행주체인 구청이 스스로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할 텐데, 중랑구청은 뉴타운사업으로 서로 반목하고 상처 입은 주민들에게 사업추진의 여부를 물어서 명분을 구하려고 한다. 이는 너무나 부당한 처사이다. 그렇게 해서 다수의 주민들이 중화뉴타운 사업에 찬성한다 하더라도 애초 명분없는 개발사업을 추진한 중랑구청의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제발 멀쩡한 곳을 개발하겠다고 공공이 나서지 말아 달라. 수해도 방지하였고, 기반시설여건도 점점 개선되며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고, 주민들이 스스로 건축물을 신축하는 곳을 공공이 왜 나서서 개발하려 하는가? 공공이 말도 안 되는 개발사업을 중단하지는 못할망정, 주민들 간에 반목만 키우려 하는가? 중화뉴타운은 주민들의 의사를 통해 명분을 얻기 이전에, 그 자체가 공공이 추진할 명분이 없는 사업이다. 그래서 중화뉴타운 사업은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필자 이메일: aqua0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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