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클레스는 기원전 461년부터 429년 죽을 때까지 아테네 민주파의 영수로서 아테네를 이끈 실질적인 통치자였다. 그는 열 명으로 이뤄진 장군단의 일원이었고, 이 직책은 임기 1년의 선출직으로 무한정 재선될 수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장군단 내에서 소수파였으므로, 제 뜻을 관철하기 위해 민회를 활용했다. 장군단 회의에 부쳤다가 부결된 안건을 민회에 올리고, 뛰어난 언변을 통해 민중에게 지지를 호소했던 것이다.
우드로 윌슨은 프린스턴 대학 정치학 교수 출신으로, 총장과 주지사를 거친 다음 1913년부터 1921년까지 미국 대통령으로 지냈다. 그는 민주당원이었던 동시에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당파와 상관없이 진행된 이른바 '진보 운동'의 지도자였다. 독점 규제와 국제연맹 설립을 비롯한 그의 이상주의적 대내외 정책은 워싱턴의 기득권이라는 벽에 번번이 부딪쳤다.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안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그는 인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전략을 택했다. 라디오라는 신기술을 이용한 대중 연설을 통해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억누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페리클레스와 윌슨은 선동가나 포퓰리스트라기보다는 민주적인 개혁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와 윌슨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은 그들을 선동가로 매도했다. 반대파에게 페리클레스는 데마고그(demagogue), 윌슨은 포퓰리스트(populist)라 불렸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구호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정치인 가운데는 찾아보기 어렵고, 논객이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으로 소수에 그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뜻을 함축하는 말과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많다. 일부 문제만 불거져도 지방 선거 무용론, 국회 무용론을 입에 담는 사람들이 그렇다. 사회적 쟁점에 관한 논란이 자신의 이해력을 초과하여 진행하면 금세 짜증을 내며 왕조 시대나 독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내심 민주주의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담긴 역사적이고 규범적인 의미에 정면으로 대들지는 못한다. 대신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폭행하는 집단적인 광기를 보인다. 포퓰리즘은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인민)'에서 나온 단어로, 그리스어 '데모스(demos=인민)'에서 나온 단어인 민주주의와 어의 상으로는 다를 바가 별로 없다. 둘 다 소수 기득권층보다 다수 서민층의 형편과 의사를 중시한다. 또 다수의 집단 지성보다는 감정적 선동과 정략적 조작을 통해 빚어진 말초적 군중 심리에 의존할 경우 중우 정치로 빠질 공산이 있다.
김종필과 연대를 통해 집권했던 김대중에 비해, 2002년 노무현의 당선 과정은 훨씬 민주적이었다. 일부 기득권과 연대하지 않고도 민주 세력이 독자적인 과반수를 형성한 것이다. 탄핵소추에 대한 반발에 힘입어, 2004년 4월 혁명 이후 최초로 민주 세력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자 기득권 세력의 공포는 더욱 깊어졌다.
그들 기득권 세력은 대중에게 비교적 생소한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끌어들여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고, 이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어설픈 지식인들이 포퓰리즘에 대한 공격에 동조했고, 상당수 민주 세력마저 어리석게도 이를 방치해 노무현식 포퓰리즘은 위험하다는 현대판 신화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러한 신화는 그 자체가 선동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물론 포퓰리즘 전략은 페리클레스와 윌슨처럼 기득권과 대항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이 인민을 속이기 위해 사용할 때도 많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와 3세 그리고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은 정권 유지를 위해 대중을 조작하고 선동한 전문가였다. 일본의 군국주의 정권, 북한의 김일성, 한국의 박정희와 전두환도 그랬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전쟁을 일으킨 조지 W. 부시도 대표적인 선동가에 해당한다.
마치 자기가 집권하면 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사기를 친 이명박, 뉴타운 개발로 서울 집값이 치솟을 것처럼 허풍을 떤 오세훈,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양념을 얹어 포장해 준 보수 언론들이 모두 선동과 조작에 앞장선 인물들이다. 그리고 박근혜는 "맞춤형 복지", "경제 민주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따위에 더해 "국민 대통합"이라는 내용 없는 구호들로 선거판을 어떻게든 선동과 조작으로 타락시키기 위해 애쓴다.
▲ 오른쪽부터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박 후보에게 '경제민주화' 공약을 제안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의 모습 ⓒ뉴시스 |
이 곁에서 보수 관료들과 재벌들은 여전히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를 포퓰리즘으로 매도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포퓰리즘은 박근혜를 겨냥하지 않는다. 오히려 박근혜만은 포퓰리즘이라는 낙인에서 교묘하게 면제를 받는다.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노무현과 주변 인물들을 지목하는 낙인으로 정착돼버렸기 때문이다.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는 박근혜조차 표절할 정도로 이미 하나의 시대정신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기득권 세력은 이 시대정신을 가로막거나 최소한 지연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 이들은 포퓰리즘을 들먹이면서 민주 개혁 진영의 신뢰도에 상처를 입힌다. 통합진보당은 '진보'라는 단어 하나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고, 민주통합당은 '친노' 대 '비노' 프레임에 갇혀 포퓰리즘과 같은 프레임에는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이 틈에 진짜 선동가 박근혜가 독버섯처럼 기생한다.
노무현 정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던 지식인들이 지금 벌어지는 포퓰리즘적 행태에는 왜 침묵할까? 이제는 그 말을 써도 누가 별로 알아주지 않기 때문일까? 이명박과 박근혜의 정치 행보가 선동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일까? 대중을 조작해 민주주의를 중우 정치로 타락시키는 보수 언론의 몹쓸 버릇이 지금은 고쳐졌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식인이라고 해봤자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차피 극소수고, 대다수는 돈과 권력과 지위에 영혼을 팔아 연명하는 벌레와 다르지 않기 때문일까?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고 이유도 다를 것이다. 좌우지간, 나에게 포퓰리즘의 추억은 하나의 나쁜 추억이다. 이 나라에 지성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떨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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