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오늘부터 일본 및 아시아문제에 관한 전문웹사이트 〈재팬포커스(japanfocus.org)〉와의 합의 하에 이 웹사이트에 실린 글 중 한반도와 관련이 깊은 기사들을 골라 부정기 게재한다. 첫번째 글은 오스트리아 빈대학 교수이며 북한경제 전문가인 뤼디거 프랑크(Ruediger Frank) 교수의 북한방문기다.
지난 10월 평양을 방문한 프랑크 교수는 현재 북한에서는 바겐세일, 직불카드 사용 등 자본주의적 실험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전하면서, 북한의 경제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랑크 교수는 특히 최근 북한이 식량의 시장거래를 중단시키고 배급시스템을 부활한 것은 공급부족 상태에서의 시장자유화로 심각한 인플레가 유발됐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이것이 경제개혁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영원히 중국과 한국 등 외부사회의 식량지원에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자력에 의한 식량 확보를 위해서는 식량 수입을 위한 외화 획득 외에는 방법이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산업을 시급히 근대화시켜 수출역량을 키워줘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 글의 원 제목은 '대북 지원: 지속적 효과가 있을 것인가, 아니면 자원의 낭비인가?(International Aid for North Korea: Sustainable Effects or a Waste of Resources?)'이며 http://www.japanfocus.org/article.asp?id=468에서 볼 수 있다. 〈역자〉
***'대북 지원: 지속적 효과가 있을 것인가, 아니면 자원의 낭비인가?'**
이제까지 북한에 대한 국제적 지원의 초점은 식량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 가을, 북한 정부가 북한에 있던 국제구호단체 요원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식량의 공공배급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정책전환을 단행하면서 이제 관심은 개발지원 쪽으로 쏠리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즉 국제적 지원이 북한의 상황을 호전시킬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정권의 수명을 연장시킬 뿐인가? 아마도 두 가지 모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한'과 '(김정일)정권'을 쉽사리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지속적 지원을 정당화시킬 정도의 가시적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일까?
지난 수년간 북한에서는 단 하나의 중요한 경제적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겐세일에 직불카드까지 등장**
지난 10월, 나는 축제분위기에 젖어 있는 평양거리를, 안내원 없이, 그리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걸으면서 한 시계상점에서 다음과 같이 써붙인 선전문구를 볼 수 있었다.
"뜻깊은 10월 10일(북한 로동당 창건 60주년 기념일)을 맞으며 우리상점에서는 많은 상품들의 가격을 10% 낮추어 판매합니다. 기간: 2005년 10월 10일 - 10월 31일까지"
〈사진1〉 평양에서의 바겐세일 @재팬포커스
다시 말해 바겐세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북한에서. 이것이야말로 어떤 공식성명보다도 현재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회주의 상점에서는, 종업원의 입장에서 보자면, 판매란 아무런 수입도 얻지 못하면서 시간만 축내는 행위이다. 매출액이 늘어난다고 해서 종업원의 소득이 늘어나거나 직장의 안정성이 증대되지는 않는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상점이나 음식점 등에 가본 사람이라면 점원들이 전혀 성의가 없고, 고객의 요구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계획보다 많이 판다는 것은 오히려 재고부족이라는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또한 가격도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것으로 흥정이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사회주의 국가의 상점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배급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환경에서 가격을 낮추어 구매자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바겐세일을 한다는 것은 가격의 융통성은 물론 판매에도 관심이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고객에게 관심이 있음을, 고객의 요구에 응할 용의가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그 동기는 돈이다. 최소한 가게의 책임자는 매출액 증대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바겐세일이라? 이것이 패러다임 전환의 시작을 알리는 변화의 서막이 될 수 있을까? (북한의) 변화에 대한 온갖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화폐화(monetization)와 시장화(marketization)는 결코 빈 말이 아닌 것 같다.
몇 걸음 지나서 나는 커피와 차, '시원한 맥주'와 장기를 둘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있다는 선전문구를 보았다. 흠, 좋은 얘긴데, 여긴 옷가게이지 않은가. 이 가게의 점원들은 음식점으로의 업종 변경이 안 된다면 업종다양화라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음이 분명하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 근처에서는 동북아시아은행이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현금카드(직불카드)'를 알리는 선전포스터를 보았다. 현재 이 카드는 12개 정도의 가게와 음식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일부 상인들은 기꺼이 바겐세일을 하려 한다. 이는 사적인 경제활동, 또는 융통성의 증가를 의미한다. (외국인인) 내가 묵고 있는 호텔 근처가 '아닌' 곳에 있는, 작지만 꽤 잘 꾸며진 가게에서 나는 아주 적절한 가격이 매겨져 있는 '샤넬' 핸드백을 발견했다. 가격은 미 달러화로 매겨져 있었다. 베이징에서도 유로화가 아닌 달러화로 고려항공의 항공권을 구매하게 돼있다.(북한의 공식 외화는 유로화임: 역자) 북한의 한 관리는 내게 김일성대학에 다니는 자신의 딸이 읽을, 영어로 된 경제학 교과서를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일반우편으로 책을 부쳐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변화의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사진2〉 북한 최초의 직불카드 @재팬포커스
이러한 단편적인, 그러나 중요한 변화의 증거들 외에도 다른 변화들이 있다. 북한의 농업생산량은 2년 연속 상당히 큰 폭으로 늘어났다(〈연합뉴스〉 "미 농업부, 북한 곡물생산 10년래 풍작 예상" 2005년 11월 28일). 분석가들은 자연재해가 1995-97년 대기근의 주요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후가 좋았기 때문에 풍작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라고 할 수 없다. 생산량 증대를 위해 시장동기(market incentive)를 활용한 것이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예기치 않은 부작용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ㆍ베트남에 비해 농업부문 비중 작은 것이 개혁에 걸림돌**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처음에는 어느 누구도 전체 경제체제를 단번에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1990년대에 들어서도 중국의 경제학자들은 비(非)국가 부문의 2차적, 또는 보완적 역할에 대해 얘기했다. 중요한 것은 성공적 실험이 또 다른 실험을 촉발한다는 사실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러한 '가다 서다' 식의 단편적 접근들이 점진적 체제변환의 시작이 된 것이다. 물론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외부적 환경도 (북한에 비해) 훨씬 좋았다. 북한에 대해서도 낙관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외부환경이 좋아지면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 역자).
중국ㆍ베트남과 북한의 경제개혁 간에는 거대하고 중대한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국가경제와 사회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이 시작될 당시 베트남 인구에서 농민의 비율은 80%, 중국에서는 70%였던 데 비해 북한에서는 30%에 불과하다. 공급이 부족하고 고립된 시장에서 곡물교역을 자유화하면 가격이 오르게 돼 있다. 이는 곡물 생산자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곡물 소비자에게는 생활비의 상승을 초래한다. 1979년의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대다수가 곡물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렸고 극히 일부가 생활비 상승의 고통을 겪었지만, 이는 국가보조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구조가 다른 북한에서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인구의 대다수가 시장에서의 식량 조달을 위해 자신의 빈약한 자원들을 투입해야 했고, 이 때문에 임금과 함께 식량 가격도 상승했다. 이에 따라, 중국과 베트남 경제개혁 초기의 인플레가 훨씬 미미했던 데 비해, 북한의 인플레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천정부지의 인플레'란 결코 빈 말이 아니다. 현재로서는 자료의 부족으로 북한의 인플레율을 정확하게 계산해낼 방법이 없다. 하지만 임금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가정 하에(그렇지 않다면 아무로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임금 추이를 통해 인플레의 추세를 추정해 볼 수는 있다. 2005년 10월 현재 평양의 한 케이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월 임금을 물었다. 그의 대답은 3만원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외국인에게 진실을 말했을까?
그가 제시한 임금 수준은, 2002년 임금을 월 100원에서 3,000원으로 올렸다는 공식자료와, 이후 그 액수도 제대로 지급되지 못했다는 주장들과 비교해 보면 대단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나는 몇몇 개인 상점들과, 국가 공식가격표를 붙여놓고 있는 국영 백화점 등에 들러서 상품들의 가격을 조사했다. 아주 단순한 형태의 운동화 1만원, 비누 한 장 600원, 벽시계 8,500원 등이었다. 이로 미루어 월급 3만원이라는 노동자의 말은 진실인 듯 했다. 만약 3년간 임금이 10배로 뛰었다면, 이로 미루어 2002년 이후 북한의 연간 인플레율은 대략 215%라는 계산이 나온다.
***인플레가 개혁 발목 잡아 - 2002년 이후 매년 215% 물가상승**
만약 이러한 추정이 진실에 근접한 것이라면, 이는 정치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로 그 때문에 북한 정부는 지난 10월 인플레의 주요 근원인 식량을 시장에서 끌어냄으로써 인플레에 대한 제동을 시도한 것이다. 이같은 조치가 효과를 나타낼 것인가?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은 끝난 것인가? 개혁의 회피가 평양 내 체제엘리트들의 가장 확실한 생존전략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러한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다. 만일 북한을 둘러싼 전 세계가 움직인다면 -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 위험한 항로는 잠잠해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상유지가 북한 집권층의 목표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능동적으로 활동해야만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개혁만이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정일은 이를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이라고 말했다.
자, 그렇다면 국제사회로 눈을 돌려보자. 지난 2년간의 풍작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농업생산량이 여전히 부족하다면, 북한은 중국과 남한으로부터의 식량지원에 계속 '의존'할 것인가? 이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혁명적인 발상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당분간 중국과 남한의 식량지원에 의존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만일 역사가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면 북한은 결코 그러한 대안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사람들은 과거의 주요한 위기 때 그들이 지켜왔던 원칙을 다시 한번 반복할 생각인 것 같다. 한국전쟁 시기에서 1953-54년에 이르기까지 김일성은 북한의 '사회주의 형제국'들에게 주로 식량, 의류 등 일상적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의 요구 사항은 재건 지원에서부터 기계류, 기술, 심지어 턴키 베이스의 공장 건설 등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같은 원조를 개발지원이라고 부른다. 물론 오늘날의 상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1950년대와는 다르다. 그러나 유사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까? 주체사상의 정신에 딱 들어맞게, 북한사람들은 지금 데이비드 리카르도가 말했음직한(비교우위의 법칙을 말함: 역자), 또는 나를 포함하여 평양의 경제세미나에 모인 유럽의 전문가들이 지난 수년간 말해온 것을 실천에 옮기려 하고 있다. 즉 산업생산을 늘리고, 이를 수출, 그 수입금으로 식량을 수입해 국내 부족분을 메우는 방법으로 자력에 의한 식량조달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1990년 이전까지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들을 상대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교역을 할 수 있었다. 즉 이들 나라들은 북한 상품의 질이 아무리 낮다 해도 전략적 이유 때문에 사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북한이 수출을 하려 해도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국가는 거의 전부가 자본주의 국가들이다. 남북경제협력에 지극한 열성을 보이는 남한의 파트너들도 모두가 민간기업이며, 만일 이들이 북한의 쓸모없는 물건을 수입하거나 또는 터무니없이 비싸게 사들였다간 이들은 망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북한의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논리적 귀결은 (북한의) 근대화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안정적 에너지공급을 확보하며, 자본을 끌어들이고,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ㆍ인간적 자원을 개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북한 정부가 관리들에게 경제교육을 강화하고, 북한에 대한 해외직접투자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한(〈한국일보〉 11얼 30일자) 배경이다. 일본과의 관계정상화가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북일 관계정상화에 따른 (일본 측의) 재정지원은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그 실현까지의 길은 아직 너무도 멀다.
개혁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평양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전략에 일부 수정을 가하고 있을 뿐이다. 로마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북한 지도부의 입장에서 보자면 개혁에 따르는 위험부담은 아직 너무도 크다. (북한에 대한) 국제적 지원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중요하고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될 것이다. 비록 지원의 내용이 변하고 그 영향을 언제나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국제지원은 분명히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것이다. 북한에 지원될 수백만 달러의 돈은 동북아지역의 안보와 북한 주민의 생활수준 향상의 대가로는 상당히 싼 것이다.
〈번역: 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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