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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도 어쩔 수 없는 정치인?

[해외시각] 소수 민족 문제 침묵하는 아웅산 수치, 흔들리는 도덕적 권위

지난 4월, 버마(미얀마)의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4년 동안 구속과 가택 구금을 번갈아가며 독재의 탄압에 맞선 수치의 제도권 정치 진입으로 버마에는 '민주화의 봄'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그런데 최근 민주화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수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수치가 자국의 소수민족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8일 로힝야족 남성 세 명이 27살 된 불교도 여성을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불교도들은 로힝야족 거주지를 공격해 지금까지 80명이 숨졌고 9만여 명의 로힝야족 난민이 발생했다. 로힝야족은 이슬람교를 믿는데다가 소수민족이다. 이 때문에 민족 대학살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로힝야족은 수치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수치는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왜 그럴까?

▲ 아웅산 수치 ⓒ 뉴시스
버마 등 남아시아 전문가이자 프리랜서 언론인인 프랜시스 웨이드는 지난 30일(현지시간) <알자지라>에 쓴 칼럼에서 수치가 제도권 정치에 진입했기 때문에 재야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예전처럼 활동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수치가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불교도가 아닌, 소수민족의 입장을 대변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낙선할 수도 있기 때문. 버마의 정치지형에서 민족 문제는 아무리 수치라도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웨이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가 지난 24년간 버마 민주화운동을 통해 지향했던 가치를 놓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가 추구했던 보편적 인권과 평등의 가치는 소수민족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웨이드는 만약 수치가 이러한 가치들을 무시한 채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그는 버마의 민주화 영웅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재야 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탈바꿈한 수치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다음 달 미국 방문을 앞둔 아웅산 수치는 로힝야족 탄압 문제를 제기한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만날 예정이다. 수치의 미국 방문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편집자> (☞원문보기)


아웅산 수치의 도덕적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

데렉 미첼 버마 주재 미국대사가 버마 독재정권을 개혁하는 데 새로운 장애가 있음을 암시했다. 양국 관계가 완화되면서 (약 24년 만에) 버마 주대 대사로 임명된 그는 지난 6월에 발생한 버마 내 종교 갈등이 버마 개혁 노력을 어둡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첼 대사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버마 민주주의 건설을 위한 도전과제가 기존에 우려했던 사회 구조, 정부, 군대와 같은 요소들에 비해 훨씬 광범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버마 라카인지역의 불교도들로부터 집중적인 학대를 받고 있는 로힝야족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버마에서 (자신이 수행하는) 외교 문제가 보다 복잡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사회에는 오랜 시간 동안 깊게 뿌리내린 편협함이 있다. 매우 실망스러운 점이다. 이것이 그들과 우리 사이에 상당한 차이를 만든다"고 말했다.

로힝야족에 대한 수치의 침묵

문제의 '그들'은 수십 년간 버마의 평등을 위해 싸워오면서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던 민주화 투사들이다. 그러나 지난 석 달 동안 그들은 국적이 없는 로힝야족을 비난하면서 명성을 깎아 먹기 시작했다. 버마 서부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인 로힝야족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며 수난을 겪어 왔고, 로힝야족 문제는 기나긴 버마의 민주화 과정에서 항상 지엽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이 '그들'에는 곧 미국을 방문해 세계시민상을 받고 워싱턴의 관료들과 정치 회담을 계획하고 있는 아웅산 수치 또한 포함되어야 한다. 버마 정부로부터 국적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문제 해결을 위한 수치의 태도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갔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로힝야족의 고난과 수치의 민주주의 비전은 별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수치는 로힝야족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심한 비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수치는 지금까지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회피해왔다. 그의 침묵은 꼭 그가 이 문제에 냉담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침묵은 곧 그가 정치인이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써 그는 다른 정치인이 그렇게 됐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도전받을 수 있는 주요 정치인이 됐는데, 그에게 남아있는 신성한 분위기는 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 공간에서는 반드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지난주 버마 활동가들은 국가 정치기관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는 새 미디어법을 비난했다. 그런데 이 정치기관에는 이제 수치도 포함된다. 언론 자유를 위해 싸웠다가, (이제는) 수치를 비판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민주화 활동가들은 이 모순을 인식해야 한다.

수치의 침묵 뒤에는 무엇이 있나? 지난 6월 종교분쟁에 대한 입장을 밝힐 때, 그는 시민권을 규정한 법이 분명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부를 향해 "모든 소수 민족"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발언이었다. 버마의 각 세력들은 로힝야족을 "모든 소수 민족"에 포함되는 하나의 소수민족구성원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이로써 수치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자극하는 것을 조용히 피해 갔다.

기본적으로 만약 수치가 높은 도덕적 지위를 가지고 로힝야족에 대한 시민권 취득 건의를 밀어붙였다면 그는 다가오는 2015년 선거에서 큰 표를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버마 서부 라카인주에서 무슬림 소수민족과 마지못해 함께 거주하고 있는 라카인 사람들의 분노를 살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많은 버마 사람들을 분노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버마의 많은 사람들은 버마 주변부 해안선 일부에 격리되어 있는 로힝야족을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그들은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 이민자이며, 심지어는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한다.

버마 승려들과 라카인족 신도들이 무슬림에게 희생당한 여성과 폭동 과정에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로힝야족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수치에게는 군부 강경파 측에서 나오는 지지를 잃어버릴 위험도 있다. 이들은 다른 정책들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방해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로힝야족의 시민권 획득을 반대한다. 또 (로힝야족들의 국적 획득이) 가능해지기엔 이들의 소수 민족에 대한 적개심이 너무 강하다.

그 결과 수치가 "더 큰 공동의 이익"을 요구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즉, 그가 좀 더 진보적인 정책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2015년까지 시간을 벌어주자는 얘기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수단이 결과를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사실 그는 지난 6월 (1991년에 받았던)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좀 더 폭이 넓어진 자신의 철학을 보여줬다. 이 연설에서 수치는 버마 북부 지방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수만 명의 카친 난민들에 대해 "난민들의 요구에 응해주는 비용이 (그들에 대해) 무관심하게 돌아서는 비용보다 더 많은가? 우리가 눈먼 자들이 아니라면 그들의 고통에 관심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로힝야족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얻는 정치적인 이익들이 로힝야족의 미래의 요구들에 들어가는 정치적 비용보다 더 큰 것인가?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 말하기를 망설인 그의 모습은 (이러한 질문의 답에) 단서를 제공한다.

로힝야족에 대한 테인 셰인 대통령의 입장은?

이전 군부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테인 셰인 버마 대통령은 수치와 대조적으로 인종이 다양한 국경 지역에서 '다른 이들'이 느끼는 죄책감을 씻어주려는 시도에 관여했다. 지난 27일 <AFP>가 보도한 의회 보고서에서 그는 "정당들, 일부 승려 등이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 증오를 키우고 있다"며 "그들은 심지어 국내외 라카인 공동체에 접근해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도록 로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확실히 로힝야족에 대한 테인 셰인의 방침은 모범적인 사례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7월 그는 유엔(UN)에서 로비활동을 벌였다. 라카인에 거주하고 있는 80만 명의 로힝야족 재정착 비용을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가 로힝야족을 대거 추방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샀다. 일각에서는 테인 셰인 대통령이 국제적 환심을 사려는 동시에 소수 민족에 대해 냉담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는 증오에만 초점을 맞추고 불교도들의 단결만을 줄기차게 강조하는 버마의 어떤 정치인들보다도. 그리고 증오와 원한을 부추기는 승려들보다도 (문제 해결에) 진일보한 보고서이다.

(테인 셰인 식의 접근법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테인 셰인과 비슷한 시도를 한 사람들은 버마 민주화 진영의 공격을 받았고, 외국인의 경우에는 "신 식민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었으며 (버마 내부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놀랄 것도 없이 라카인 지역 정당 당수인 아셰 마웅 박사는 로힝야족이 '무단침입자'라며 버마가 '이스라엘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했고, 이 당은 (테인 셰인의) 보고서에 반발할 것이다.

테인 셰인은 이미 대통령이고, 2015년 이후에 연임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수치와 같은 방식의 정치적 게임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또한 (자국의) 불안정성이 국제 비즈니스 무대에서 떠오르는 요충지로서의 버마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래서 현재 분쟁 상황에 신경 쓰고 있음을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알고 있다.

테인 셰인과 수치의 대조적인 입장은 수치가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이후 변화를 겪었고, 국회의원으로서 수치가 현재 제약을 받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미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수치가 이제는 정치인으로서 "이상과 욕망 사이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수치의 전기 작가인 피터 포햄은 지난주 연설에서 "당신이 반대의 황야(wilderness of dissent)를 거닐고 있을 때만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21년 만에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는 아웅산 수치 ⓒ AP=연합뉴스

황무지가 이제 수치의 뒤편으로 물러난 지금,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그리고 아마 3년 뒤의 대통령으로서 그에게 제기될 여러 요구에 답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쿠데타 정부의 농간과 학대에 놀아난 버마 국민이 수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신격화된 정치인이 불가침의 힘으로 버마와 국민들의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수치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풍토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다음 달 수치의 미국 방문은 클린턴과 같은 이들이 그에게 로힝야족 문제 해결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그가 지난 24년간 꾸준히 지지해왔던 가치들로 회귀해 이상과 욕망의 중간지대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기회다. 만약 수치가 자신이 지켜온 가치들을 다시 찾지 못한다면 버마에서 민주화 영웅과 악당을 구분 짓는 선은 더 흐릿하고 불확실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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