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낯 뜨거운 이야기부터 먼저 고백을 해야겠다.
얼마 전에 이우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놈이 학교에서 몰래 술을 마시다 선생님에게 걸렸다. 아들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 일로 선생님들에게 조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1주일여가 지난 뒤 아들은 징계를 받았다. 나흘 동안 학교에서 선정해 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아침저녁으로 선생님과 매일 매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징계의 내용이었다.
***술 마시고… 싸우고… 욕설하고… "모든 문제 다 있어"**
아이가 이우학교를 다닌 1년 반 동안 이런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규모가 크지 않은 학교이다 보니 징계까지 가는 정도의 일이 생기면 학교의 구성원들 모두가 알게 된다.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이 친구에게 맞아 병원에 입원하는 사고가 있었다. 개교 이후 처음 발생한 폭력사태여서 학교가 떠들썩했다. 때리고 맞는 행위 자체가 우발적으로 생긴 일이었지만 '폭력은 절대 불가'라는 학교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했기 때문에 긴급 교사회의가 소집되고, 학생들도 비상총회를 열기까지 했다.
결국 때린 아이에게는 '노작'이라는 벌이 내려졌다. 그 때는 퇴원한 아들 녀석과 몇몇 친구들이 함께 노작활동에 참여하겠다고 자원하여, 혼자서가 아니라 여럿이서 밭의 돌도 고르고, 풀도 뽑는, 1주일 동안의 노동의 시간이 있었다. 싸우면서 친해진다더니 지금은 때린 녀석과 맞은 녀석 둘이는 바둑을 두러 기원에도 같이 다니고, 밤늦은 시간까지 어울려서 농구를 하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또 한 번은 학년이 서로 다른 두 명의 학생이 장난 반 싸움 반으로 투닥거리다 학교의 유리창이 깨지는 사태가 있었다. 이때도 해당 학년의 학년 총회가 소집되었다. 그 외에도 잊어버릴 만하면 생기는 문제는 학교 홈페이지의 익명 게시판에서 누군가에게 욕설을 퍼붓는다거나 아니면 어느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매도하는 일이 벌어진다거나 하는 일이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니 피해자는 어디에 가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사이버 언어폭력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피해자의 인권문제를 둘러싸고 익명게시판을 폐쇄할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수없이 많은 논의와 논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실패 없이는 교육도 없다"**
이우학교는 특별한 공간이 아니다. 여느 학교에서나 생기는 문제들이 이우학교에서도 일어난다. 아마 다른 대안학교들도 이런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말이 있다. '실패가 없으면 교육도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이우학교의 어느 선생님에게 배운 것이다. 그 분은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교육이 왜 필요하겠는가? 문제야말로 교육을 교육답게 만드는 것이므로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계신다.
나는 그 분의 의견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교육의 핵심이 소통의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한다면 교육을 촉발시키는 문제라는 것이 어찌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는가? 어른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아도 아이와의 관계에서 상호교육이라는 극적인 전환점이 몇 번 있었는데, 모두 예외 없이 아이와 나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였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였다. 아이가 무엇인가를 잘못한 후 그 잘못을 축소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여 내가 심하게 때린 일이 있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견딜 수 없는 배신감에 아이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버릇을 고친다는 이유로 아이를 때린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후에 아이에게 용서를 구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용서를 구하는 간절한 마음이 아이의 상처 입은 마음을 열게 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 일 이후 나는 통제되지 않는 격렬한 감정이 오히려 서로에게 성장의 기회를 가로 막고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와 어른 모두 문제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무엇인가 문제가 생기면 진짜 살아 있는 교육과 학습의 기회가 찾아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문제상황…학생 교사 부모 모두에게 '도전'**
이우학교의 아이들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이들에게 문제를 일으킬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보충학습, 자율학습의 부담이 거의 없는데다가, 사교육에 쫓기지 않다 보니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시간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주어진다. 학교라는 근대교육기관은 아동들의 시간과 삶을 학교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나마 개인에게 주어지는 방과 후의 시간조차 입시경쟁에 빼앗겨 버리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조직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기회를 갖게 된 이우의 아이들은 많은 혼란과 방황, 좌절을 체험하게 된다.
규제가 적고 시간이 많으면 당연히 예상치 못한 실험들이 이뤄지게 된다. 자기 계발을 하거나, 건전한(?) 취미활동을 하는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PC방에서 죽치는 아이, 도시의 쇼핑타운 주위를 서성거리는 아이, 연애하는 아이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학교와 학원과 집을 오가며 성적 압박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이 아이들은 만나고 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하여 청소년기의 방황을 유보하고 있는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 속에서 이 아이들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배움과 성장이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 생겨난 것이다. 부모와 교사들에게는 아이들이 내면적인 힘과 좋은 습관을 키움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문제가 주어진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삶', 늘 노력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과제**
그런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런 상황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환상적인 장밋빛 관계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이 너무 빨리 노출되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과중한 업무를 안고 있는 선생님들로서는, 힘들어 하고 쉽게 지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방법을 찾는 일에 서로의 가슴과 머리를 한 데 모으는 공동체적인 논의와 실천이다. 그런데 '더불어 사는 삶'을 모토로 제시하고 있는 학교라고 하여 '더불어 사는 삶'이 온전히 실현되는 이상적인 배움터는 아니다. 늘 문제가 생기고, 문제를 해결하느라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바쁘고 힘들다. 그래서 문제의 발견이 곧 학습이고, 문제를 통해 소통하고 성장한다는 과제가 뒤로 밀릴 가능성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 같다.
다시 처음의 부끄러운 고백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최근에 일어난 아들의 일로부터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마치 따가운 가을볕에 밤이 익고, 벼가 익듯이 나름대로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아들의 마음의 키가 훌쩍 커졌기 때문이다.
사실은 몇몇 친구들과 술을 마시게 된 경위에 대해 아이들은 입을 맞추었고, 조사과정에서 교사들에게 바로 진실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아들이 더 어렸을 때도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기 위해 교사와의 만남 이전에 시나리오를 꾸미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방어를 위한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그 이후 그들은 자신들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부모와 교사들을 기만함으로써 두려움과 망설임과 죄의식이라는 고통을 겪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아이가 자신을 극복하고 그 고통에서 빠져나와 부모와 교사에게 마음을 열기를 기다리면서 다시금 문제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함께 키우는 자양분임을 되뇌어야만 했다.
***"대안학교는 마술지팡이가 아니다"**
대안학교는 교육의 온갖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는 마술지팡이가 아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학생에게나 교사에게나 학부모에게나 모든 것이 늘 문제일 수밖에 없는 골치 아픈 일들이 거듭 튀어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주어진 답은 없지만 그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은 바로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 숨어 있었던 희망을 캐내는 길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 합류하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 속에서 대안학교가 갖는 독특함 또는 강점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우리 모두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찾아내려는 노력과 열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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