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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화제의 신간] 국제분쟁 전문가 김재명의 <戰線리포트>

전쟁과 평화가 진정 구체적이고 첨예한 문제가 되고 있는 곳이 한반도라지만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해 한반도, 특히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만큼 둔감한 이들도 드물다. 전후세대, 특히 전쟁이 중단된 뒤 한참 뒤에 태어난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 때문인지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으로 배우는 학생들조차도 '국제정치학은 한마디로 뭘 공부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한다. 한 국제정치학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전쟁과 평화의 연구'라는데, 학생들은 '현실주의'니 '자유주의'니 하는 국제정치 이론의 이름들만 중얼거리다 만다. 전쟁과 평화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낯설다.

***이라크 취재 제한을 모조리 수용한 한국 언론**

전쟁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을 그나마 '좀 다루는' 직업일 수 있는 국제담당 언론인들도 마찬가지다. 전후세대로 태어난 한국의 언론인들 중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경험해본 기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얼마 전까지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들이 우리의 현실과는 별반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로이터〉나 〈AP〉같은 해외 통신사들이 제공하는 기사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 정도로도 '국제기자' 노릇을 거뜬히 해냈다고 여겼다.

그러나 3천 명이 넘는 우리의 군대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서 무언가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접근조차 못하고 있는 게 한국 언론의 현실이고 보면, 이제는 우리 언론도 독자들에게 전쟁과 평화의 구체적인 질감을 느끼게 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종군취재조차 허용치 않는 군 당국의 언론에 대한 적대적 태도 같은 외적인 요인도 있지만, '국익'을 명분으로 그같은 통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언론의 잘못도 크다.

〈사진 1: 분쟁지역〉

이런 현실 속에서 그래도 분쟁이 일어나는 세계 곳곳을 끈덕지게 누비며 그 참혹한 현실과 진실을 전하려는 한국의 언론인들이 몇 있고, 그런 꿈을 꾸고 있는 언론인들도 또 몇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직접 만났던 아라파트·야신에게 弔辭**

그런 '몇 언론인' 중에 김재명이 있다. 사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프레시안〉이나 〈월간중앙〉 〈신동아〉같은 매체를 비교적 꼼꼼히 찾아 읽는 사람들이라면 '분쟁지역 전문기자 김재명'은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그가 〈프레시안〉에 보내온 글만 검색해 보자. 2003년 초 '뉴욕통신'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그의 연재는 이라크 전쟁 발발 전후를 둘러싼 미국 내의 수많은 이론적, 현실적 논의과 움직임을 일별한 후 2004년 중반에 '중동 현지 르포'를 통해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생생한 현장 모습과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2005년 초에 다시 '쿠바 리포트'를 쓰기 시작한 김재명은 체 게바라의 투쟁 현장과 관타나모 기지를 보여주고 돌아와 이제는 '월드 포커스'란 코너를 통해 분쟁의 현장과 국제정치 이론을 접목한 글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특히 〈프레시안〉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의 지도자인 압둘 아지즈 란티시나 이제는 고인이 된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같은 이들과의 인터뷰를 소개했는데, 이는 우리 언론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살아있는 역사의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인연으로 그는 아라파트 수반과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이 사망했을 때 조사(弔辭)를 써서 '서방의 눈'으로 세계를 보던 우리의 시야를 교정해주는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김재명이 최근 펴낸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도서출판 지형)를 보면 남미, 중동 외에 그가 돌아다닌 분쟁의 현장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진 2: 책표지〉

'유럽의 킬링 필드' 보스니아, '발칸의 마지막 화약고' 코소보, '60년 해묵은 분쟁의 땅' 카슈미르, '내전과 공습, 공포정치의 살육 현장' 캄보디아, '도끼로 손목을 치는 잔혹의 땅' 시에라리온, '제국과 냉전 논리의 이중 희생자' 동티모르 등 굵직굵직하고 참혹한 국제분쟁의 현장에 김재명은 언제나 있었다.

물론 그냥 '돌아다니며' '이토록 참혹했다'만을 전하지는 않았다. 갈등의 역사적 과정과 양상을 고찰하고, 싸우고 있는 진영의 최고 지도자를 만났으며, 목숨까지 바치는 이들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며 한줄한줄 써나갔다.

분쟁지역만을 취재하는 또 한 명의 한국 언론인인 김영미 피디는 "한마디로 대단하다"는 말로 현장에서 본 김재명을 평가했다. 김 피디도 겁 없고 과감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지만, 현지 통역관이나 제대로 된 취재장비도 없이 그 험한 현장을 누비는 김재명을 보고는 혀를 내두룰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피의 다이이몬드'의 주인공 포데이 산코와의 만남**

그런 김재명의 면모가 드러난 사례는 여럿이지만 그 중 하나를 이 책에서 꼽아보자면 '도끼로 손목을 치는 잔혹의 땅' 시에라리온에서 '도끼로 손목을 치라'고 명령했던 시에라리온 혁명연합전선(RUF)의 지도자 포데이 산코와의 만남이다.

마약을 즐기는 RUF 대변인에게 접근해 그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며칠을 접근한 끝에 대화에 성공하고 결국 산코를 만나는 과정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한번쯤은 민간인의 손목을 도끼로 잘랐음직한 소년병들과 호위병들로 둘러싸인 채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재명은 RUF의 무장해제 거부 문제, 가혹행위 문제 등 그 자리에서 손목이 잘릴 수도 있는 '자극적인' 질문을 하며 산코와의 대화를 이끌었다.

이렇게 길고 험난한 취재와 이론적 연구를 집대성한 이 책에서 김재명은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분쟁 현장의 참혹함과 인간의 무기력함에 대해 좌절했을 그는 '영구평화는 무덤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칸트의 비관론을 받아들이고 만다. 칸트와 김재명의 현실론적 비관론을 우리는 과연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생한 사진들과 함께 소개되는 분쟁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김재명은 말한다. "영구평화가 무덤속에서나 가능하다면 차라리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아득한 절망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못 가진 자, 약자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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