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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쫓겨나는 사람이 또 쫓겨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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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쫓겨나는 사람이 또 쫓겨나더라"

[신간]평택 촌로들의 피맺힌 육성 담은 <들이 운다>

국방부는 지난 24일 "중앙토지수용위원회가 평택의 '미군기지 이전 잔여부지'의 수용을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라 12월 말부터 강제수용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힌 가운데, 평택 팽성 주민들의 '피울음'을 담은 책이 출간됐다.

<들이 운다>(리움 펴냄)는 2003년 11월 결성된 뒤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라크 파병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활동을 펼쳐 온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이 엮었다.

***"쫓겨나는 사람이 또 쫓겨나더라"**

이들이 2005년 3월부터 10월에 걸쳐 담아낸 팽성읍 대추리, 도두2리 주민 스물여덟 명의 육성은 하나같이 절절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전쟁 후 폐허가 된 땅에 온몸을 내던져 옥토로 가꿔놓으니, 그 신산한 세월을 겨우 이겨내고 나니, 또다시 맨몸으로 내동댕이쳐져야 한다니…. 이들의 불안과 공포, 분노와 비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쫓겨나는 사람이 또 쫓겨나더라. 농토가 수몰되어 대도시 주변에 왔더니 재개발한다고 또 쫓아내더라. 원대추리에서 쫓겨나 대추리 새 마을을 이루고 살 만한데 또 쫓겨나게 됐다. 아직도 60년대 이후 군사독재 정권인가. 이런 식의 토지수용은 용납할 수 없다. 차라리 죽이고 뺏어가라."

이같은 평택 주민의 외침은 한국의 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자들이 어떻게 끊임없이 유랑민이 돼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김용한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대위 대표는 책 서두에서 "한 환경운동가가 확장 예정지에 국제법상 보호 의무가 있는 습지나, 청둥오리 같은 천연기념물이 있다면 반대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평택 대추리, 도두리의 주름진 촌로들도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보호받아야 할' 천연기념인이다"라는 말로 책을 펴내는 심경을 전했다.

***"보상 받으먼 다 거지가 될 사람들이라고"**

"보상? 지질하게 나온댜는 그거 가지고는 돌아 댕기다 이삼 년 안에 절딴 나. 그까짓 거 가지고 뭐 혀. 여기 비행장 들어간다고 하는 바람에 땅금, 집금만 다 쳐오르고. 예전에 나 일본놈들이 활주로 만든다고 쬤겨 들어갔잖여. 근데 이제 미군이…."(팽성읍 대추리의 조선례, 88세)

"우리가 뭐 먹고 사냐니깐 그러드라고. 직장 잡아준다고. 직장, 직장 해서 아닐 말로 우리가 당신네 집에 가서 설거지를 헌다 그래도 젊은 사람 두지 우릴 안 둬. 안 그려? 늙으니께, 추접스러니께 안 줘. 우리는 어디 가도 장사도 못 하고 해먹을 것도 없고 그저 오로지 여기다 노면 두더지마냥 땅만 파서 먹고 살 테니께, 여기다 그냥 나둬, 놔두라고. 내가 그랬어. 당신네들 현명하게 살으라고 그랬어. 사람 인생 산다는 거 한 시간 후에 죽을지 십년 살지 반년 살지 한치 앞을 모르고 사는디, 당신네들이 우리 농민들 모가지 짤라서, 지장물 검사해서 더 높은 계급으로 살랑가는 몰라도 현명하게 살으라고. 당신네, 사람 한번 죽어지면 그만이더라고…."(팽성읍 도두2리 원정옥, 61세)

"보상 받으먼 다 거지가 될 사람들이라고. 쉬운 얘기로다가 땅에 기본적으로 몇천만 원씩 근저당 잡혀먹고 농협같은 데서 돈 빼서 쓴 건데 땅값 받으먼 빚 갚어야 돼. 그리고 난 내가 논농사 마지막 세대라 생각해. 농토도 고층건물에 공장에 주택에 다 잠식되고 있잖아. 그런 생각 하면 쓸쓸해. 당당하게 대를 이어 농사지으려고 했는데…."(대추리 신종원, 43세)

***개인의 간절함을 '국가'의 이름으로 무력화하는 데 익숙한 사회**

저 들판에 내 삶이 온전히 있으니 그냥 여기에서 살다 가고 싶다는 평택 촌로들. 이들의 공권력과의 격정적인 대립은 어쩌면 무모할지도 모른다. 이들에겐 자신이 평생 일군 삶의 터전이 아무리 소중할지라도 우리는 국가 또는 공익이라는 명분 하에 개인의 간절함을 무력화하는 데에 익숙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묻는다.

비록 작지만, 이들의 이야기와 절박한 소망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면 훗날 나와 당신의 삶의 터전과 일상의 행복이 위협받을 때, 그래서 그것을 지키려고 할 때 어떤 타인이 귀를 기울여 줄까.

이 격정적인 구술집은 공적 선택의 합리성과 효용성, 그 눈부신 성공담만을 주목하는 우리에게 힘없는 소수가 그 이면에서 겪어야 하는 현실적 고민과 실존적 고뇌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땅을 지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미군기지 피해는 과연 기지주변인들만의 문제일까.

들판을 들판으로 남길 수 없음에 지금 '들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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