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은 좋은데
이쁜 다리들은
털난 딸라들이
다 자셔놔서 없다." (신동엽, 「발」(『현대문학』1966.3)
1960년대 군사독재에 맞선 반외세·민족 자주를 꿈꾼 저항시인 신동엽은 "털난 딸라"들에게 순결을 앗긴 이 땅의 여성에게서 민족의 종속을 보았습니다. 반외세·민족자주를 꿈꾼 시인에게는 민족이란 거대 담론이 지배적 가치였기에 그의 눈에 여성은 종속적인 존재로 비칠 뿐이었습니다. 반독재·반외세 투쟁의 구호가 계속 울려 퍼지던 1980년대까지도 남성들에게 여성은 주체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이"이자 "마누라"인 이 땅의 여성들이 "관광기생"과 "양공주"로 외세와 자본과 국가권력에 유린당하도록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던 시인은 자신의 거세된 남성성을 한탄하곤 했습니다. 아래 공광규 시인의 시에서 가부장적 남성 우월의식의 냄새가 느껴진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해서 제국주의 성기가
누이들의 속살 팍팍 헤집는 신음이
황홀한 창으로 나와 호수에 빠지는 불빛 보며
호변 가로등 밑을
다리 이쁜 여자와 서정시로 껌 씹으며 걸어가다
이 여자(장차 내 마누라가 될 여자)를
당당한 중진국 애국 지식인 양심으로서
외화수입을 위해 옷 벗겨 관광기생으로
나라에 바쳐볼까 하지만
글쎄
그럴 때마다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에서
지역 어느 대학 남자 총학생회장에게 보냈다던
썩은 고구마(어떤 놈은 고추 또는 쏘세지라고도 한다)와 면도칼(어떤 놈은 가위라고도 하고)을 생각하며
섬뜩섬뜩 가운데 다리를 움켜쥔다
누이들의 몸값으로
GNP 계산하는 나라에
세 개의 다리로 서 있는
불쌍한 나여
내 나라의 여자도 못 지키는."
(공광규, 「대학일기 · 4」, 『대학일기』, 실천문학사, 1987)
근대 국민국가에서 여성은 국민이 아니라 비(非)국민이었습니다. 지난 시절 "성공"한 국민국가, 제국(帝國)의 여인들도 군인으로서 남성을 낳고 기르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현모양처일 뿐이었습니다. 반면 식민지 조선의 여성은 자국의 남성 가부장권과 제국군대의 성 착취라는 이중의 수난을 감수해야 할 피침략 민족 구성원 중 가장 약한 존재였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주변부에 머문 한국의 여성들은 "제국주의 성기"들이 들고 온 달러나 엔과 교환되는 성 노리개이자 "위축된 성기"인 자국 남성의 가부장권 앞에 여전히 무릎 꿇고 있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왜 신동엽과 공광규 같은 남성 시인들은 외국인에게 유린당한 외국인 상대 매춘여성들의 존재에 절규하면서도 내국인 상대 매춘 여성의 아픔을 주목하지 못했을까요? 이들의 시를 흔들리는 가부장권, 상처받은 남성성에 대한 자기 연민의 넋두리라고 한다면 지나친 논리 비약일까요?
군사독재의 긴 터널을 넘어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여성들도 더 이상 남성들의 "인형"으로 머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매매춘을 가부장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이자 남성들이 저지르는 비윤리적 범죄행위로 규정한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으로 2004년 유사 성행위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매매춘을 불법으로 규정해 금지하는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었지요. 여성 여권 운동가들에게 "성매매" 여성은 외세와 그에 야합한 부당한 국가권력과 외국과 자국 남성 모두에게 착취당하고 짓밟힌 희생자로서 구출되어야 할 대상이었으며, "성매매"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산물로 법으로 막을 수 있는 범죄로 보았습니다. 아래 20여 개의 "성매매" 근절운동 단체들의 연합체로 1986년에 세워진 "한소리회"가 만든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시행규칙 제정에 대한 의견서"의 서두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올해는 일제에 의해 공창제가 시행된 지 꼭 1백 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백 년 동안 우리는 가난을 이유로, 순결한 대다수 여성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외화를 벌어들여야 한다는 이유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화할 수 있고 따라서 여성의 몸도 사고팔 수 있는 것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가난에 찌들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들을 이 사회의 가장 끝으로 내몰았고 그들의 몸을 이용하고 착취해 먹고사는 수많은 불필요한 사람들과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잔인하고 착취적인 성매매는 즐거움을 위한 또 하나의 서비스업으로, 일정 부분 사회에 순기능을 하는 필요악으로 인식되었고 성매매 피해여성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이 사회의 모든 더러움을 받아내는 자발적 희생양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이 가난과 차별에 의한 구조적 희생양이며 이들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성매매를 방관하는 것은 사회를 바로 이끌어야 할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매매 근절과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재활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착취적이며 인권침해적인 성산업의 고리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며 피해여성들이 그 고리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옥죄고 있는 포주와 소개업자 등에 대한 엄정하고 준엄한 처벌과,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사회 적응 훈련과 아울러 이들이 스스로 벗어나기 힘든 차별과 빈곤의 고리를 끊어주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끊임없이 악의적인 필요를 만들어내 성매매를 방조하고 조장하는 이 사회의 구조와 의식에 대한 변화와 구조적 범죄에 편승해 다른 사람의 처절한 빈곤과 차별을 짓밟고 스스로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성구매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교정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 10월 25일 서울시 미아리 자립지지공동체 소속 여성단체 회원 등 여권운동가들과 춘천시 근화동 인근 성매매 집결지인 속칭 '난초촌'의 성매매 여성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다는 신문 보도와 올해 6월 만들어진 "전국 성노동자 연대(전성노련)"과 9월에 평택지역 매춘 여성들이 따로 만든 "민주 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의 작은 외침에 귀를 막기 어렵더군요.
이들은 자신들은 강제적인 인신매매에 의해 착취되는 "성노예"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성산업에 종사하는 "성노동자"이자 시민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을 "성노동자"로 규정하는 이들 매춘 여성들은 심지어 여권운동가들을 자신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적대세력으로 보더군요. "전국성노동자 연대" 결성시에 내 놓은 "출범 선언문"을 보시지요.
"한반도에서 역사가 시작된 이래 다양한 이름의 성노동자들이 무수히 존재했지만, 오늘 한국의 성매매 특별법 경우처럼 성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사례는 결코 없었다. 더욱이 성매매 금지주의라는 반인권적인 정책이 이른바 참여정부라는 노무현 정권에 와서 강력히 시행되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 이 모든 기만적인 정책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가. 그 주인공들은 바로 한국의 여성계 권력자들이다. (…) 이제 여성계 권력자들은 성매매 특별법을 통해 우리 성노동자들을 모두 '성매매 피해여성'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이는 말도 안되는 무지한 얘기다. 성매매 피해여성이라는 개념은 성(性)과 관련한 인신매매를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스스로 일하는 성노동자다. 누가 우리를 인신매매 했다는 말인가. 국제사회에서도 '인신매매'와 '성노동'은 엄격하게 구분하건만 한국에서는 배웠다는 사회지도층들이 그 정도 분별력도 없단 말인가. (…)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현행 성매매 특별법 아래서는 불법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우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단속과 오명과 낙인으로 생존권을 잃고 극도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성노동자들은 엄연히 인간이다. 그리고 노동자고 비정규직이다. 더 이상 이 억압의 굴레에 승복할 수 없다. 우리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자는 우리를 옥죄는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향해 돌을 던지기 바란다. 우리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성노동을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이 판단해서 적절한 시점이 되면 탈 성노동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따라서 이는 여성계 권력이 법을 매개로 위계에 의해 강요되어질 사안이 아닌 것이다."
박 선생님께서는 성매매 여성들을 "성노예"로 보고, 이들이 자본주의 체제와 남성 중심사회의 구조적 산물이자 희생자로 보는 점에서, 성매매 문제를 보는 시각이 "성매매 방지법"을 시행한 페미니스트들과 비슷한 입장이신 것 같습니다. 허나 저는 선각한 이의 의무로 깨닫지 못한 우중을 계몽하려는 책임을 스스로 떠맡은 페미니스트들의 담론이 깨우쳐 주어야 할 대상을 낮추어 보는 근대 계몽주의자의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그들은 여권의 신화화를 통해 여권운동가 자신을 계몽의 주체로, 매춘 여성을 그 대상으로 나누는 잘못을 범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들의 오류를 지적하는 여성민우회 국제위원인 이성숙 선생님의 다음과 같은 열린 생각에 공감합니다(『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책세상, 2002).
"페미니스트 매매춘 정치 이론가들의 가장 큰 오류는 당사자인 매춘 여성들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페미니스트들은 섹스 노동자들을 가리켜 여성의 육체를 시장에 내다파는 성노예라고 주장하는 반면, 매춘 여성들은 매춘을 성적 서비스 또는 성적인 친밀성을 판매하는 성노동이라고 주장한다. 매춘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매매춘 사회와 문화에서 벗어나 있는 제3의 집단인 페미니스트 학자나 이론가들이 남성 주류문화나 기득권에서 정해놓은 개념과 논의들을 답습하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주의를 극복하려 하면서 남성 주류문화의 담론을 그대로 답습해 매춘여성을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교화대상으로 낮추어 보고 있다는 점에서 매춘 여성들을 선도하겠다고 나선 페미니스트들이 지난 시절 현모양처를 강요하던 남성 우월주의자들이나, 약자인 여성을 외세에 의해 순결을 뺐긴 무기력한 존재로 타자화함으로써 주눅 든 남성성의 열등감을 드러낸 권위주의 시절 남성 시인들과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한 저는 페미니스트들이 매매춘의 두 당사자 중 여성의 몸을 돈을 주고 산 남성들만을 범법자로 규정하는 것을 비판해 "매춘 여성을 제외한 남성들을 범법자로 규정하는 역차별은 남녀 평등사회를 요구하는 페미니즘을 여성 지상주의로 오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이성숙 선생님의 지적에 생각을 같이 합니다.
"여성가족부"라는 정부부서의 영어 이름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더군요. 그러나 "양성평등과 가족부"로 번역되는 부서명이 훨씬 더 제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우리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지상주의자라는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세계 기준의 보편성을 보이는 영문명에 준하는 양성평등부로 부서명을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양성평등의 사회를 지향하는 이성숙 선생님의 다음과 같은 제안을 마음을 열고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 중심의 사유체계를 재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듯이, 또한 그러한 능력과 의무를 지니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은 매매춘에 대한 우리의 가치와 태도를 바꿀 수 있는 담론을 창출해야 한다. 적어도 매매춘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므로 추방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논의 틀에서 벗어나 광범위하고 유연한 페미니스트 매매춘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
건전한 매매춘 형성에 필요한 페미니스트 이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매춘 여성들이 성병 감염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남성 고객의 성기를 검사할 수 있는 권리, 남성 고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남성 고객의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의 강조, 매춘 여성은 성노동자라는 개념 인식,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다양성 강조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페미니스트 매매춘 이론은 남녀 불평등을 창출하고 견고하게 만든 서구와 남성 중심의 사유체계에 대한 거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 현재 우리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매매춘 그 자체가 아니라, 매매춘을 바라보는 우리의 적대적인 태도이다. 건전한 매매춘을 형성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적대적인 태도가 아니라 현상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매춘 여성에게 가해지는 여러 가지 폭행과 인권 유린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며,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매춘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이 완전히 다른 범죄 행위가 될 것이다."
자! 그러면 매매춘 문제에 대한 박 선생님의 생각과 제 생각이 다른 지점 몇몇을 짚어 봅시다. 박 선생님은 조선시대의 기생은 "단순한 성적인 대상물이 아니라 자존심과 사회적 발언권이 있는 문화의 전수자"로서 "사대부에 버금가는 문화의 주체"였던 반면 일본식 공창 제도가 도입된 일제하 기생은 "돈벌이 기계"이자 "자본 확대의 재생산 도구"에 지나지 않는 비천한 존재로 전락했기 때문에 이러한 매매춘의 변천이 "전통과의 두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파악합니다. 따라서 박 선생님은 오늘 한국의 매매춘은 일본의 공창제도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보며, 그 유산인 오늘의 매매춘은 근대국가 특히 자본주의 국가들이 태생적으로 갖게 되는 병폐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통시대의 기생이 사대부에 필적하는 고급문화의 주체였다는 데 생각을 달리합니다. 몇몇 기생들이 남성 양반들의 지배구조를 조롱하는 시조를 남겼다 해도 그녀들은 사회적 천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당시 기생들은 사대부의 "말귀를 알아듣는 꽃"이라는 의미인 해어화(解語花)로, "누구라도 꺾을 수 있는 길가의 버들과 담장 밑의 꽃"이란 뜻인 노류장화(路柳墻花)로 불린 것이지요.
일례로 성종 임금 때 명기 소춘풍(笑春風)은 임금을 모신 연회석상에서 문반을 치켜올린 시조로 무관의 노여움을 사고 다시 이를 풀어주기 위한 시조로 문관의 핀잔을 듣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아 곤혹스런 자신의 처지를 춘추전국 시대 강국 제(齊)와 초(楚) 사이에 끼어 있던 약소국 등(滕)나라의 입장에 비겨 "두어라 누군들 섬기면 임금이 아니겠는가 제나라도 섬기고 초나라도 섬기리라"고 노래하는 기지로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의 몰락과 함께 양반은 제3인칭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이 양반이… 저 양반이…"하며 시비를 다툴 만큼 양반의 권위가 실추된 일제시대에 "개쌍놈의 아들이라도 황금만 가졌으면 일류 명기를 하루 밤에 다 데리고 놀 수 있게 된 기생의 민중화" 시대가 열렸고, 이러한 세태는 근대주의자들의 눈에 기생은 "노예매매제의 유물"이자 "가정의 파괴자"요 "국민 원력의 소모자"로 철폐되어야 할 "규탄의 대상물"로 비쳐졌지요( 한청산, 「기생철폐론」, 『동광』1931. 12).
박 교수님 말씀대로 기생들은 "보수적인 권위주의적 근대화"에 소리 없이 짓밟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희생자이며. 근대의 매매춘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병폐로 볼 수 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개시와 함께 시작된 매매춘은 전통시대는 물론 근대 자본주의 국가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를 갖고 있던 나라에서도 성행하였기에, 매매춘의 존재를 경제적 측면에서만 해석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 박 선생님은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하층 여성들이 주로 매매춘에 나서며,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설사 그녀들이 "탈성매매에 성공"한다 해도 최하층 신분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시는군요. 그런데 저는 신자유주의가 진행될수록 "부유하고 안정된 극소수의 고급 화이트 칼러 남성들"이 "돈을 받고 남의 성기를 밟아 주어야 하는 하층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이 심화될 것이라고 본 박 선생님의 진단에 다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가난한 빈곤층 여성들은 모두 매춘부가 되는 것이 아니듯, 박 선생님도 지적한 것처럼 요즘 유행하는 "페티쉬 클럽" "대딸방"의 종업원이 대학생이라면 그녀들을 하층민이라고 볼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실증적인 자료에 의하면 부르주아라 할 수 있는 화이트 칼라 남성들은 교육받은 중간계층 출신의 고급 콜걸을 찾고 오히려 노동 계급의 남성들이 하층민 출신 매춘여성의 성적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사실 집창촌을 벗어나 인터넷을 매개로 확산되는 신종 성매매 산업의 주역들은 교육받은 중산층 출신 여성들이 대다수인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또한 호스트바와 남창의 존재도 매매춘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이라고 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에 반하는 사회현상이지요. 제 귀에는 매매춘에 대한 박 선생님의 비평은 매매춘 자체 보다 어쩌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예나 지금이나 하층민 출신 매춘 여성을 계몽 대상으로 낮추어 보는 것에 반대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매춘 여성들이 성노동자이자 시민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하듯, 한 세기 전 이 땅의 매춘 여성들도 남성 지배사회와 식민지라는 이중의 질곡 아래에서도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낸 근대 국가 건설을 염원한 국민의 한 사람이자 남녀 동권 운동의 선구였으며, 나아가 대중문화 건설의 새로운 주체로 거듭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이 국민의 일원이 되려 했음은 국망을 몇 달 앞둔 1910년 5월 대구 기생들이 국가 발전을 위해 "학업 발흥과 군사 양성" 둘 중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려 했다는 『대한매일신보』(1910. 5. 31)의 보도에서, 그리고 거족적인 민족운동인 3·1운동에 수원·해주·진주·통영 등지의 기생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한 역사적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1930년대 카페의 여급으로 진화한 기생의 후예들은 조선청년들의 가슴 속에 독립 사상을 불질러 준 "불령선인(不逞鮮人 : 독립운동을 하는 불온한 조선인)"이자 "불령스타"로 경찰의 감시대상이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그녀들은 "마음을 파는 신사들보다 살을 파는 기생생활이 못하지 않다"는 자기 정체성을 갖고 "여성의 인간성을 제약하여 남성들의 완구, 씨(받이)통을 만드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반항의 기치를 높이 든 주체적 인간들이었습니다(화중선, 「기생생활도 신성하다면 신성합니다」, 『시사평론』, 1923. 3).
이러한 각성은 몇몇 기생들에 그친 것이 아니라 는 점은 "우리도 눈을 떴습니다. 우리도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사회적으로 평등적으로 살아보겠다는 부르짖음! 그의 첫 소리가 『장한(長恨)』이란 우리의 기관잡지로 인하야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고 한 기생 김채봉의 「첫소리」(『장한』1, 1928, 1.)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매춘여성이 성산업에 종사하는 성노동자이자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길 꿈꾸듯, 민족과 국가가 최우선 가치이던 한 세기 전 시절 이 땅의 매춘 여성들도 민족과 국가의 동등한 일원이길 꿈꾸었던 것이지요.
어찌 보면, "일본 제국의 온갖 판도와 아시아의 문명도시 어느 곳이든 다 있는 댄스홀"을 서울에도 허용할 것을 촉구한(「경성에 댄스홀을 허하라」,『삼천리』, 1937. 1) 기생 오은희·최옥진·박금도는 그들과 연명으로 글을 쓴 끽다점 "비너스"의 마담 복혜숙, 바 "멕시코"의 여급 김은희, 그리고 영화배우 오도실과 최선화와 함께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어 나간 당당한 주체였다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시적으로 볼 때, 일제하 기생들의 움직임도 대중사회의 새로운 문화주체로 거듭 나려 한 신여성들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이러한 여성들의 주체적 문화창조 노력이 모두 모여 오늘의 대중문화라는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매춘 여성을 성노예로 보아 이들을 구제하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이나 자신을 성노동자로 규정하며 인권과 생존권 찾기에 나선 매춘 여성이나 앞으로 남녀 양성 동권 사회가 도래하길 꿈꾸는 데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소망하는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힘 있는 쪽에서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같이해 매춘 여성들의 작고 낮지만 강한 외침을 듣고자 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인류 역사가 열린 이래 가장 오래된 직업인 매매춘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나은 사회적 처방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도움이 된 책**
이경민,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사진아카이브연구소, 2005.
이성숙,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책세상, 2002.
후지메 유키 저, 김경자 · 윤경원 역, 『성의 역사학--근대국가는 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삼인, 2004.
전성노련 카폐 http://cafe.daum.net/uavenus
민성노련 카폐 http://cafe.daum.net/gksdudus
성매매 피해여성 자활지원을 위한 다시함께 센타 홈페이지 http://www.das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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