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저보고 넌 한국사람 같다, 정착 잘 했다 그래요. 그럼 전 묻고 싶죠. 뭐가 한국 사람 같은 거고 뭐가 정착을 잘 한 건지. 전 북에서 태어나 지금도 북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중국에서도 살았고 한국에 와서 한국 문화를 내 것으로 만든 것일 뿐인데, 내 정체성은 여행하는 것처럼 계속 변하고 있는데…. 남이냐 북이냐를 떠나서 '나는 나'인데 말이예요."
남한 땅에서 '탈북'이란 딱지 아닌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입을 열었다.
***북한을 떠나온 청소년들, '말하기 시작하다'**
그동안 자신이 겪은 방황과 깨달음을 담담하게 말하는 이들의 눈빛엔 성숙함이 물씬 풍겼다. 이 매력적인 젊은이들과 교류해 온 남한 청소년들 또한 그 동안의 어려움과 뿌듯함에 대해 털어놓았다. '북한 인권' 문제만 나오면 논란으로 시끄러울 줄만 알았지 정작 이 땅의 '탈북민들의 인권'엔 무심했던 남한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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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남북문화통합교육원과 셋넷학교가 서울 하자센터에서 19일 오후 '남과 북, 그 막힘과 트임'이라는 주제로 영상발표회 및 평화 심포지엄을 열었다. 셋넷 학교는 북한 출신 청소년들의 남한 사회 적응과 현실정책을 돕기 위해 설립된 대안학교다.
'셋넷학교 영상팀'의 기나긴 여정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두만강을 건너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한에 들어온 자신의 탈북 과정을 역으로 밟아나가는 과정을 통해 탈북민들이 겪어야 했던 악조건과 심리적 공포, 힘겨운 남한 생활을 그림) 상영이 끝나자 '남과 북의 막힘과 트임'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혹시라도 북한이탈 주민과 말할 기회 있으면 절대 흥분 마세요"**
현재 민들레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이창선(25) 씨가 한국에 와서 경험한 '막힘'은 우선 지식과 습관, 언어의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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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한 술자리에서 6.25가 남침이라고 주장하는 남한 사람과 싸운 것도 통과의례였는지 모른다.
"6.25가 북침이라고 알고 있던 저는 그날 바로 집에 와서 제 주장을 지지해줄 근거를 나름대로 열심히 찾았어요. 별로 없더군요. 다음 날 그분에게 바로 사과했지만 제 마음은 기뻤습니다.
세상을 한 쪽으로만 보지 않고 다각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 때문에요. 여러분도 북한이탈주민과 혹시라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면 절대 흥분하지 마세요. 그저 자기 것을 지키려는 본능이니 차근차근 일깨워 주세요. 북한은 남한보다 사회 자체가 닫혀 있고 자신이 배운 것의 정확성을 검증해볼 기회가 없거든요."
다른 습관과 언어도 종종 이씨를 곤경에 빠뜨렸다. 음식에 대한 절약과 양보에 몸에 배어 있는 이씨가 회사 회식에서 삼겹살을 입에 대지 않자, 고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오해받았던 일, 프리킥, 드로잉 등 축구용어를 하나도 못 알아들어 당황했던 경험, '일 없습니다(남한의 '괜찮습니다'에 해당)'라는 말로 무수히 산 오해 등.
그러나 이런 차이들로 인한 곤란과 막힘을 틔워준 것은 역시 '진실된 관계'였다.
***'밥 빌어먹어본 적 있냐' 등 수치심을 일으키는 질문…'상처된다'**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저를 신기해하죠. 북한과 제가 살아 온 과거에 대해 물어봐요. 그런데 만나서 친해진 다음이 아니고 만나자 마자 물어봅니다. 대답하다보면 초면엔 말하기 거북한 얘기들도 있고 상대가 신뢰하지 않으면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인간적인 관계를 생략한 채 그냥 궁금증만 해결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짜로 배고픔을 느꼈느냐, 혹은 밥을 빌어먹어 보았느냐 식의 수치심을 일으키는 말을 그냥 내뱉습니다. 상대를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차마 하기 어려운 말을요. 이는 사실 우리에게 또 하나의 상처가 됩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은 친구입니다. 더구나 어려운 환경을 거쳐 온 우리는 낙천적이고 활발한 사람도 우울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이 곳에서 외롭게 살다보면 사람에게 먼저 말 붙이기 어려워하고 만남을 힘들어하죠. 심하면 우울증, 알콜중독, 대인기피증으로 번지기도 하구요.
닫혀 있는 이들의 가슴을 여러분이 먼저 가서 따뜻한 마음으로 열어주셔야 합니다. 시간이 경과하면 효과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아도 속으로 엄청 관계를 갈구하거든요. 북에서 온 사람도 성향이 아주 다양하니 개개인의 특성을 잘 파악해서 다가간다면 더 좋은 성과가 있을 거예요."
***"남한 사람들, 친절하지만 왠지 쉽게 다가갈 수 없었어요"**
현재 한국외대 중국어과 1학년에 재학중인 최금희(23) 씨는 15살이 되던 97년 탈북해 가족들과 함께 2001년부터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인천 공항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전혀 다른 세상을 봐야 했던 그는 한동안 '두통'을 달고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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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비슷한 얼굴이지만 피부도 하얗고 옷차림도 나에 비해 좋아 뵈는 남한 사람들은 친절했지만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죠. TV에서 보이는 초라한 북한과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한 우리에 대한 시선 앞에 '탈북'이라는 수식어는 절대 쉽게 꺼낼 수 없었습니다."
최씨는 학원에도 등록했지만 곧 그만뒀다. 지하철에서도 자신의 말투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로 인해 신경은 늘 바짝 곤두섰고, 교회에도 가봤지만 편하지 않았다. 한번은 음식점의 구인 광고를 보고 들어갔더니 "연변서 왔냐"고 묻길래 순간 당황하여 "강원도에서 왔다"고 했지만 신분증을 본 음식점 주인이 싸늘하게 "사람을 이미 구했다"라고 말할 땐 '여기 와서도 중국에 있을 때처럼 나를 속여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는 것.
"처음엔 한국 친구들이 '넌 많이 다르구나' 혹은 '어디에서 왔니' 이런 말에도 굉장히 상처 받았어요. 거기에 대답을 잘 못하는 자신에도 또 한번 화나고….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죠. '다르다'라는 사실 때문에 제 자신이 굉장히 초라하고 주눅 들었죠."
다름이 차별로 이어지고 사회적 소수자에게 잔인한 한국 사회에서 감수성 예민한 최씨는 점점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한국 사람을 싫어하고 스스로부터 마음을 꼭꼭 닫아걸다보니 따뜻하게 손 내밀어주는 이도 없었다. 혹시 있어도 거부했다.
***"한국사람들은 나를 몰랐고, 나도 한국을 몰랐어요"**
"정말 힘들었죠. 내 자신이 누구인지도, 무얼 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어디를 가도, 뭘 살 때도 항상 말투를 조심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을 멀리 해야 했던 시간의 연속이었죠. 한국 사람들은 나를 몰랐고, 나도 한국을 몰랐어요. 누구도 알려주지도 깨우쳐 주지도 않았어요. 오직 나 스스로 해야 했던 길이었지만 나를 받아들이기엔 세상은 불공평했고, 내가 이 세상을 받아들이기엔 약해 있었죠."
그러던 중 최씨는 한번 더 용기를 내 구직을 시도했다. 이번엔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만은 않기로 했다. 구인장이 붙은 편의점에 들어가 "나는 북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일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주인은 조금 놀라면서도 당장 일하라고 했다. 뛸듯이 기뻤다. 내가 솔직하게 대하는 게 통한 것 같았다. 그 때가 시작이었다.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 거기다 2003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를 알게 되면서 최씨는 급속히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지, 남북으로 만나는 일이 아니었던 거죠"**
"어쩌면 놀라는 한국 사람들의 반응이 당연한 것인지도 몰라요. 서로 다른 걸 인정하면 될 뿐인데 시작하기도 전에 겁 먹었던 제가 우스워졌어요. 한국 사람들과 점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셋넷학교에서 스스로 배우고 싶은 걸 찾아 배우면서 저는 진정한 나 자신을 알게 됐죠. 나는 누구와도 다르지 않다는 걸, 달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한 거죠."
최씨는 처음엔 대한학교에 가는 것이 마땅찮았다고 한다.
"북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사실이 싫었거든요. 나도 북에서 왔지만 그들은 왠지 변화하지 않고 어두워 보였어요. 그런데 오해더라구요. 서로 내면에 쌓인 오해를 풀었고, 그 과정에서 저는 많이 자라 있었어요. 상대방을 이해하는 자세와 누구의 이야기도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죠.
사람의 마음을 읽는 방법도 배우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로 닫고 있던 마음의 문을 열었어요. 이제 친구 사귀기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니예요. 그들의 추억과 나의 추억이 다를지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해주기 시작했어요."
그는 처음에 "무작정 한국 사람 같아지려고 했다"고 했다.
***"북한 사람? 한국 사람? 이방인? 나는 그냥 나예요"**
"그러나 그것이 서로에게 벽을 만드는 것이더라구요. 남과 북이라는 사실을 버렸을 때, 그리고 너와 내가 됐을 때 비로소 막힘이 없는 거예요. 누구와 비교하고 자신의 환경을 탓하기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자신을 인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거죠. 저는… 저 자신은 이미 통일했어요."
그는 청중석에서 누군가가 "당신의 정체성은 현재 어디에 있냐? 남이냐? 북이냐? 아니면 제3의 무엇이냐"라고 묻자 또박 또박 "내 정체성은 그냥 나다"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저보고 한국 사람 같다고 정착 잘했다고 하는데 전 되묻고 싶죠. 뭐가 한국 사람 같은 거고 뭐가 정착을 잘 한 건지. 전 북에서 태어나 지금도 북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중국에서도 살았고 한국에 와서 한국 문화를 내 것으로 만든 것일 뿐이예요. 지금도 계속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있죠. 여행을 하듯이. 내가 북한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아니면 이방인인지 확실히 말할 순 없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바로 나는 나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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