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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기러기 아빠 해"…사실상의 '이혼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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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당신, 기러기 아빠 해"…사실상의 '이혼선언'?

[토론회]"조기유학, 타인에게 적극 권유 못하겠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조기유학을 경험한 서울 강남·분당·일산의 학부모 313명을 상대로 '친지나 친구에게 조기유학을 권고하겠냐'고 묻자 "적극 권유하겠다(15.7%)"고 답한 비율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하겠다(83.5%)"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18일 서울YMCA 시민논단위원회와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이 공동주최한 '한 기러기 아빠의 죽음을 계기로 본 조기유학의 명과 암' 행사에서 김홍원 한국교육개발원 학교교육연구본부장은 이같은 설문결과를 발표했다.

<사진 1>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의 학부모들은 '다시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37.8%가 아니라고 답했지만 '조기유학을 다녀오면 장래에 나은 생활을 할 것'이라는 항목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21.2%)보다 '그렇다'(51.2%)가 훨씬 많아 조기유학 효과에 대한 기대를 여전히 접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김 본부장은 "조기유학에 실패한 학부모는 설문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감안해 해석해야 한다"며 "일명 '묻지마 유학' 등 무분별한 조기유학의 피해를 막으려면 국가적 수준에서 정부가 체계적인 정보를 수집해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공교육을 내실화하고 학교유형을 다양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동반가족 생활비를 제외한 순수한 유학·연수비용은 2001년도 10억7000만 달러에서 2004년 24억8000만 달러로 두배 이상 올랐다. 또 우리나라는 2005년도에는 1~8월 동안 22억5000만 달러를 돌파해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41.2%가 증가, 'OECD 국가중 최악의 교육서비스 수지 적자국'으로 기록됐다.

***'기러기 아빠'로 학위 받은 최양숙 연세대 교수**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최양숙(48)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그는 지난 1월 국내 최초로 <비동거 가족경험-기러기 아빠를 중심으로>라는 기러기 아빠를 대상으로 한 논문으로 목회상담학 학위를 받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최 교수는 이 논문에서 기러기 아빠가 된 의사, 변호사, 교수, 대기업임원, 사업가 등 20여 명의 40~50대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을 심층 면접했다.

그는 "사실 사람들이 기러기 아빠 문제를 보통 교육 문제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가족문제이기도 하고, 또 개별가족을 떠난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사진 2>

프레시안 : 다른 이에게 조기 유학을 적극 권유하겠다는 비율이 15%에 불과했다. 이를 어떻게 보나?

최양숙 교수(이하 최) : 정보화 사회에서 인간이 아무리 인지발달한다 해도 인간은 근본적으로 생물학적이고 심리적인 존재다. 같이 먹고, 대화하고, 나누고 스킨쉽하는 과정이 없다면 사람은 잘 발달하지 못한다. 인간의 성장은 매일매일의 일상적 관계맺음을 통해 긴 시간을 두고 이뤄지는 과정 그 자체다. 그런데 자녀에게 무조건 지식 습득의 환경만 마련해주면 저절로 그것도 재빨리 열매를 맺을 거라는 기대는 환상일 뿐이다.

하나의 선택에는 선택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대가가 들어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기러기 가족들은 조기유학을 선택한 경우에도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던 것처럼 성장하길 바란다. 또한 국내에서 잃고 싶지 않은 인맥과 배경을 동시에 자녀들이 누리길 바란다.

***조기 유학의 원인 두 가지**

프레시안 : 그러나 실패 사례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겠다는 답변이 60%에 달했다.

최 : 조기 유학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세계화 시대의 국제적 감각을 가진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외국 사회의 흡인력이다. 다른 한 가지는 우리 사회의 방출 요인이다. 치열한 교육경쟁과 높은 사교육비에도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 교육 여건을 들 수 있다.

프레시안 : 교육부는 얼마전 경제자유구역 학교에서 대부분의 교과를 영어로 가르치는 이른바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런 정책이 방출 요인을 상쇄할 수 있나?

최 : 조기유학 수요의 흡수는 일부에 그칠 것이다. 어차피 조기유학의 명분은 영어 습득이지만, 외국의 자유롭고 다양한 교육 환경도 있고, '타이틀'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기 유학은 본인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더구나 상류층의 경우는 가족 별거 상태를 보충할 경제적·사회적 자원이 있지만 그렇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유행에 휩쓸린 경우엔 부모도, 자식도 고통받을 수 있다.

***한국의 가족은 '반사회적'이다?**

프레시안 : 학부모들이 조기 유학의 득과 실을 철저히 따져보지 않고 결정한다는 건가?

최 : 조기 유학 보내는 학부모들은 보통 나라 탓, 제도 탓만 하지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냐는 문제 등 사회나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은 거의 없다. 오로지 내 자녀만 좋은 대학 보내고 성공하면 좋다는 거다. 대부분 조기 유학을 결정하는 경우, 자녀의 의사보다는 부모의 의욕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 내 아이가 싫다면 안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녀를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자기의 대리물로 과도하게 집착한다.

이는 가족 밖에서는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적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욕망이 다양하지 못하고 개인의 독특한 가치와 차이,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에도 기인한다. 조기 유학을 마치 교육에 있어서 명품인 양 소비하는데, 이 과정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게 아니라 '남들 하는데 안하면 불안하다' 식으로 굉장히 타율적이라는 것이다.

더 나은 결과와 조건에는 굉장한 강박성을 보이지만, 정작 조기 유학 결정에 있어 필수적인 철저한 분석과 고찰 과정은 대충 처리하거나 생략하는 게 보통이다. 이는 조기 유학의 관심이 대개 기득권층으로서의 지위 유지에 있지, 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나 탈근대의 다양성을 갈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유학파가 득세해 온 한국사회에서 '보장받고 싶다'는 마음일 터이지만 오히려 조기유학으로 인한 자녀의 부족한 한국어 구사능력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외국 사회야말로 지속적인 노력 없이는 곧 도태되는, 즉 보장이 안되는 사회임을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조기 교육이 사교육과 중복돼 낭비 요인도 크다.

***"당신, 기러기 아빠 하라" 사실상 아내의 '이혼선언'?**

프레시안 : 조기 유학의 효과와는 별도로 최근 기러기 아빠가 죽은 지 5일만에 발견되는 등 '가족 별거'가 또다른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최 : 열심히 돈벌어 해외로 송금하는 아버지는 인내와 희생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자녀교육을 부인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관여 안하려는 무책임성도 엿보인다. '돈만 보내주면 교육은 엄마가 알아서 하겠지'하는 것이다. 부인의 경우도 외형상 '자녀 수발'을 명분으로 한 모성의 희생이지만, 한편으로 편한 외국 생활에의 욕구도 있다.

물론 낯선 외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것에 대한 심적 부담도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가사, 자녀교육, 고부갈등의 합법적인 탈출구이자 안식년 욕구의 충족 기회로 볼 수 있다. '남편 뒷바라지 안해도 되고 내 시간도 생기고 식구도 단출해서 편하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요즘 '애들 데리고 조기유학 가겠다는 부인 요구는 사실상의 이혼선언'이라는 우스개도 있는데?

최 : 사례별로 다르다. 처음엔 정말 자식 수발 때문에 갔다가 결과적으로 그런 결과를 낳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이 참에 간다'고 나설 수도 있다. 교육 문제뿐 아니라 가족 문제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부 갈등을 조기 유학으로 은폐하거나 도피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형식상의 가족 해체는 피하면서 틀만 유지하는 것이다. '어차피 사이 안 좋은데 차라리 가끔씩 보니깐 사이가 더 좋아지더라'라는 경우도 있었다.

엄마들은 어차피 한국에 있으나 외국에 있으나 남편은 매일 밤늦게 들어오고 자신은 자녀들과만 밀착돼 생활하는 '아버지 부재 가정'의 상태는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러기 아빠의 경우, 대화와 스킨쉽 부족으로 몸과 관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피폐해진다.

자녀들 또한 이런 부모의 희생에 대해 무조건 감사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외국 생활에 즐거워할 수도 있지만 부모님이 자신으로 인해 별거하는 상황에 미안하고, 또 부모의 과중한 기대에 부담만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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