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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해 서는 일상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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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향해 서는 일상의 집

김정환의 '할 말, 안할 말' 제2부 <11> 건축가 승효상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 나를 꽃 피워 주세요
당신의 몸 깊은 곳 오래도록 유전해온
검고 끈적한 이 핏방울
이 몸으로 인해 더러운 전쟁이 그치지 않아요
탐욕이 탐욕을 불러요 탐욕하는 자의 눈앞에
무용한 꽃이 되게 해주세요
무력한 꽃이 되게 해주세요.
온몸으로 꽃이어서 꽃의 운하여서
힘이 아닌 아름다움을 탐할 수 있었으면
찢겨져 매혈의 치욕을 감당해야 하는
어머니, 당신의 혈관으로 화염이 번져요
차라리 나를 향해 저주의 말을 뱉으세요
포화 속 겁에 질린 어린아이들의 발 앞에
검은 유골단지들을 내려 놓을께요
목을 쳐주세요 흩뿌리는 꽃잎으로
벌거벗은 아이들의 상한 발을 덮을 수 있도록
꽃잎이 마르기 전 온몸의 기름을 짜
어머니, 낭자한 당신의 치욕을 씻길 께요
-김선우, `피어라, 석유!` 전문

파주출판단지는 물론 출판단지지만, 세계 유명 건축가들이 출판사 하나씩을 맡아 자신의 건축 기량을 선보이는, 장차 세계적인 건축단지기도 하고, 승효상은 그 세계적인 출판-건축단지 전체를 설계한 건축가다. `계약금 한 푼 없는` 설계 계약이 단지 이전 화제의, `노장` 한 둘 말고는 승효상 설계를 따랐다, 따르지 않은 건물들은 마치 심술 맞은 노인네가 등 돌리고 엉덩이를 내민 `삐친` 모습이다, 라는 것이 단지 이후 소문의 요체며, 작년엔가 재작년엔가 그가 동숭동에 지은 녹슨 철 비슷한 것으로 건물 외양 전체를 장식한 `쇳대박물관`은, 내부 진열 방식조차 딱 한군데 말고는 일체 `승효상표`인데, 평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성완경조차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건축의 돈 단위는 영화를 또 한 수준 뛰어넘는 거라서 내 `문학` 수준으로 건축비를 따져본다는 일은 부질 없다. 블록버스터 열 편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야 번듯한 건축물 하나를 지을 수 잇으며, 게다가 이 건축물은 관람객이나 시청률에 연연할 필요가 애당초 없다는 말이면 족하다. `건축물`과 `집`의 어감은 크게 다르지만, 사실 요즘도, 건축물은 집이다. 일상의 집. 박물관은 박물 일상의 집이며, 영화관은 영화 일상의 집이고, 집은 인간 일상의 집이다. 관공서는 물론 관공 일상의 집이다. 일상은 의식주. 중국인들이야 `예`를 중시하므로, `의`를 맨 앞에 세웠겟지만, `의`를 넓힌 개념과 `주`는 무엇이 다를까? 신의 권위를 위해 신전을 짓고 정치의 권위를 위해 왕궁을 지었겠지만, 물론이지만, `의`와 `주`를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성 아닐까, 남녀의 성이자, 섹스의 성? 예술의 궁극은 성의극복이라고 나는 생각하며, 건축은, 우리가 건축물을 보면서 한 몫에 `여성적이다` 혹은 `남성적이다`라고 판단 내리는 것이 다른 장르보다 더 어렵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라도, `성의 극복`에 가장 근접한 `예술`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엄청난 돈 단위 때문인지, 아니면 건축이 바로 성을 아름답게 하려는 무의식적인 예술 본능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인지 좀 헷갈리고 갈수록, 두 번 째 원인을 첫 번 째 원인이 보충 혹은 가중해왔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쉽지만, 좀더 `원시적으로 말짱`하게` 생각해보면 `첫 인간`이 동굴로 집을 삼을 때 들였던 경제적 노력이 하루 줏어 혹은 하루 사냥해서 하루 먹기(채집 및 수렵)도 고달펐을 당시 상황에 비추어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는 점 또한 무시될 수 없으므로 결국 두 원인은 합쳐진다. 그리고, 성의 아름다움이 경제의 아름다움을 추동한 만큼, 경제의 아름다움이 성의 아름다움을 또한 추동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건축의 문명으로 흔히 명명되는 미노스(크레타)문명의 대표적인 상징물은 크노소스 미로궁이고,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의 미로궁 신화는 분명 성의 기괴-난해함이 건축으로 극복되는 `신화`며,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는 페넬로페의 수의 `짜기-풀기`는, 미로를 뚫고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다시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던 테세우스의 실뭉치, 아리아드네가 주었던 그 실뭉치가, 이제는, 성의 기괴-난해함을 `죽음=일상`의 `가장=사랑`으로 전화-승화하는 `이야기`다, 라고 내가 말하자 승효상은, 평소 괄괄하고 자기 의견 분명하고, 이견을 못 숨기는 솔직한 성격 그대로, `그건 첨 듣는 소리.`, `건축은 미술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다,. 더 큰 어떤 것이다.`라고 즉각 `쫑코`를 날렸지만, 다시 어쨌거나, 그가, 그 또한 `건축하기가 글쓰기와 다를 바 없다`, `건축가가 원하는 어떤 삶의 모습 어떤 개념을 설정하고 그것을 건축 어휘로 풀어놓은 것이 건축 설계므로, 어떤 주제를 로직하게, 단어로 풀어내는 문학하고 다를 바가 없다``, 심지어 `건축을 잘 하면 글을 잘 써야 되는 게 맞고, 글을 잘쓰는 사람이 건축 기술만 알면 당연히 건축을 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하므로, 문학도 `순수예술` 중 하나로 치고 싶은 나로서는, 사소한(?) 의견 차이를 그냥 놔둔 채, 정말 `이야기`를, 흥미롭게, 계속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근데, 이거, 유홍준 편 못지 않게, 내가 이야기를 듣는 쪽으로만 흐르지 않을까? 하긴, 그게 더 재미있을지도. …우선, 맞을 매부터 먼저 맞고 지나가자. 그의 소위 `아킬레스건`은 `스승 박수근`이다. 그를 약하게 만드는 건이 아니라, 그를 쉽게 흥분시키는 건. 그는 동숭동 `샘터`, 비원 옆 `공간`, 그리고 안기부 건물을 비롯한 각종 정부청사의 설계자인 박수근의 제자고, 그것을 스스로 이상하게 여긴 적이 한 번도 없고, 그 숱한 `운동판 술자리`에서조차 그 점을 의아해하는 사람들을, 그의 막역 선배 임옥상까지 포함해서, 그냥 넘어가준 적이 한번도 없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김동리와 이문구의 관계와 비슷하지만, 좀더 열혈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건물(문예진흥원, 아니 문화예술위원회 부속 미술관)도 김수근 선생이 지은 것이다. 원래 이 자리 세 필지를 갖고 계셨는데 서울대학교 이사 때 주택공사가 일반 분양을 했지만(평당 13만원) 잘 안 팔리고, 문예진흥원에서 미술회관을 짓는다는 얘기가 들리자 세 필지를 원가에 넘기는 대신 설계를 맡았다. 원래 주택가로 바뀔 뻔 했던 동네가 이 건물로 인해 최초로 문화지역화하는 거다. 지금도 건축이 부동산과 연관된 업종으로 취급받는 마당에 당시로서는 매우 힘들었던 문화지역화였고, 선생은 거기서 더 나아가 예술잡지가 거의 없던 판에 <공간>이라는 종합예술지를 창간했고, 빚 30억을 남겼다. 나는 선생 문하 수하로 15년을 지냈기 때문에 건축은 건축대로 어떤 문화적 독자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먹고 살기 바쁘고 집 짓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호사스런 일로 비칠 때부터 알게 되었고, 내 건축 인생에 그것을 무엇보다 중요한 배움이었다. 일본 유학을 하고 귀국한 직후 지은 부여박물관이 왜색시비 및 전통논쟁을 일으켰는데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건축계에서 전통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진행된 가장 중요한 논쟁이었고, 그 후 논쟁이 없어져버렸다. 67년인가 68년의 일이다. 그 후 일본 김승호 선생과 교류하면서 한국적인 미에 대한 안목이 커졌고, <공간>은 현대적으로 번안한 한국 건축의 정수라는 얘기를 세계적으로 듣고 있다. 56세에 돌아가셨는데, 세계 건축가들이 대부분 80, 90을 훌쩍 넘기는 것을 보면 요절도 이런 요절이 없다… 맞네. 딱히, 내가 존경하는 승효상의 스승님이라서가 아니라, 박수근은 건축사의 어두운 얼룩이 아니라, 마치 만화가 고우영처럼, 문화운동사의 숨겨진 비화였고, 세속화 운동이었네…이;어지는 승효상의 건축관은, 문학을 순수예술로 편입시키려는 나의 노력과 정반대로, 문학과 더불어 건축을 어떻든 좀 빼내려고 하는데, 나는 어언 그게 제일 흥미롭고, 그게 승효상 건축 사상의 요체를 밝혀줄 것도 같다.

건축은 미술, 예술은 물론 아니고, 파인아트 그거 아니고(회화와 조각, 그리고 건축을 합쳐 미술이라 하지 않나요? 물었더니 그는 `아니다. 안 들어간다.`고, 건축가께서 안 들어간다 하니 안 들어가는 게 맞겠죠, 했더니 그는 `안 들어가고 싶습니다`다), 종합예술이란 말도 좀 그렇고. …건축이란 애당초 생긴 어떤 직업 혹은 학문이다. 건축의 영어 architecture의 그리스어원은 arch (`크다`)+tect(`기술` 혹은 `학문`).. 성경의 조물주가 `architect`다.(하긴 그렇다. 영국 낭만주의 대가 시인의 환상적인 일러스트레이션에서는 조물주가 콤파스를 들고 세상을 디자인한다. 건축은 정말 세상 `창조=디자인`이다) `건축`이란 말은 명치 시대 일본인들이 만든 것으로 주로 `올리고 세운다`는, 물리적인 노동을 뜻하는 말이지만, 일본인들도 그 전에는 `조가`, 즉 `집을 만든다`는, 훨씬 창조적인 노동의 단어를 썼다. 우리 조상들은 더 멋있다. `영조`. `가꾸어서 만든다`. 뭔가를 경영하는, 경영한다는, 밥과 옷과 집을 `짓는` 분위기가 담겨 있는 것. 예술이 삶의 여유를 과시하는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건축은 예술 이전 우리의 삶 필요 때문에 지은 것이므로, 종합예술과도 좀 다르다는 거다.

그래서 성의 극복인가, 아닐까? 하지만 승효상의 건축론은, 예술가들의 자존심을 훌쩍 넘어서면서, 인문학으로 나아간다. 건축에서 기술의 역할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집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중력에 저항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그런 기술의 8,90%는 이미 고딕시대 기둥과 포트리스가 다 해결이 된 상태다. 예술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라면 그렇다면 건축은 뭐냐?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조직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인문학에 속한다. 1층 방과 2층 방과 3층 방이 다르고, 원형방과 긴 방의 모임 형태가 다르다…그러니까 공간의(예술 혹은 기술이 아니라) 인문학이다. 인문학에 예술이 관계하는 바로 그 만큼만 건축에 예술이 연관된다, 뭐 그런 뜻이다. 이건, 예술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 의욕을 부채질하는 것 같은데?... 어쨌거나, 오늘날 건축은 건축대학으로 따로 독립하는 게 대세며 WTO 규정에 의해 2007년부터 우리나라도 외국 영향에 따라 학부를 독립시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다. 조각은 가르치지 않는다. 봉건시대 이후 조각은 건축에서 떨어져 나갔다. 제국이 식민지 혹은 점령지를 약탈하여 만든 장군 화랑, 갤러리에 전시를 하고 갤러리란 말이 생기고 그게 미술관이 되면서 건축이 조각과 분리되는 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를 배우는 것이 건축이라는 학문의 기본 내용이고 인테리어 또한 건축가가 `지으`므로 건축가가 조각과 회화에 대한 지식을 가질 필요는 있지만, 건축대학교에 회화와 조각 학부를, 따로 둘 필요는 없다. 미술대학과 별개로 건축대학이 있어야 한다…이렇게 씩씩하게, 혹은 과격하게(?) 그가 `보고 든는 즐거움`보다는 `사는 의미의 즐거움`을 위한 건축 이야기를 하는 배경에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의 체험이 있다. 그는 고등학교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 했는데, 옆집 화가 한 명이 노상 술 취해서 방탕하고 이혼당하고 지저분한 꼴로 다니고 그러는 거라 자식의 장래에 질겁한 부모님이 그가 붓만 잡으면 말렸고, 누님이 낸 중재안으로, `그림도 되고 돈도 되는` 건축과를 들어가게 됐던 것. 그의 그림 실력은 건축과 동료 몇을 농반 진반으로 `학과 포기`케 했을 정도지만, 정작 건축을 하면서 그는 그림 잘 그렸다고 칭찬 받고 더 잘 그리려 했던 경험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 `예쁜 그림`과 `잘된 설계`를 착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의 이런 깨달음과 인문학 지향은 과연 문학적으로도 명문인 승효상 공간론을 낳는다.

건축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비우는 것이다. 이 비움의 공간은 사람들이 채우는 것이다. 마당은 신분을 초월한 공동체 공간이었고, 예전의 길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마을 사람들의 토론장이었고 아낙네들의 빨래터였다. 우리는 통행의 기능만 하는 요즘의 길에게 귀소본능을 빼앗기고 있다.

그렇다. 길이란 사실 마음대로 가면서 나선다는 것인데, 개발 통행로란 길 속으로 길을 제한하므로, 우리가 인간존재로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느끼는 어떤 경험 총체를 제한한다. 승효상이, 모처럼 말이 통해 기분 좋은지, 덧붙인다. 서양인들은 도시를 만들면서 길부터 만드니까 항상 직선으로 만들고 폭이 똑같다. 똑 같은 폭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통행 공간일 뿐이므로, 다시 머묾을 위한 공간 즉 광장을 만들고, 그렇게 길과 광장이 기능화하고 집을 길에다 직선으로 따따따 붙인다. 우리 방식은 달랐다. 집부터 만들고 다시 그 옆에 집이 붙고 그 사이 중간 영역이 길로 된다. 이 길이 곧장일 리 없고 더군다나 우리는 산지가 많으니까 꾸불꾸불 골목길이 될 밖에 없다. 이 꾸불길에는 모험과 두려움, 낭만도 있고, 사실 길이라는 게 도시의 전부고, 광장 그런 것은 필요가 없다. 길이 광장이고 놀이터고 통행로고 마당이고 공회당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길을 우리가 갖고 있는데, 낭만도 속삭임도 두려움도 근심도 없고, 미래도 없는 서양 길을 우리가 죽죽 긋고 있으니…이건 회귀론 아닐까? 그러나, 장말 아름다운 것은 공간이다, 라고 그가 한 톤을 높이면서 펴는, 한 단계 높아진 공간론은, 놀라운 공즉시색색즉시공의 현대건축론이다.

우리가 함께 모여있는 이 공간을 보자.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천장, 벽, 바닥이 보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공간을 느낄 뿐 보는 것이 아니다. 건축을 전달한다는 것은 천장, 벽, 바닥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공간을 전달하는 것이고, 아무 장식이 없어도 공간이 아름답기 때문에 감동받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건축`을 모르는 사람도 공간의 아름다움에는 감동을 받는다. 그런데 그 사람도 건축을 이야기하라면 다시 벽, 천장, 바닥을 이야기한다. 비유하자면 `분신자살 전태일`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만드는 책 카피의 공간, 이것을 건축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역시, `훌륭한 건축가므로 당연히 대단한 문화운동가` 등식을 여실히 증명하지만, 그 얘기는 `김운경편`에서 했고, 어쨌거나 승효상의 `도시가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건축사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오늘날 설계(는 계획이다)에 그대로 반영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의 설계는 `역사 진행` 속을 파고 들고 그 진행을 마무리하려는 쪽이다. 이를테면 서울은, 같은 동양의 북경 혹은 동경 등 계획도시와 또 달리, 계획이 된 것이면서도 길을 임금이 다니는 쪽만 대충 냈을 뿐 나머지는 슬쩍 구역만 내놓고 다 민간에게 맡기고, 무악대사가 이미 다 산을 보고 정했으므로 도시 아이덴티티를 위해 따로 인공구조물을 세울 필요가 없다. …하긴, `한양 터`를 놓고 조선 초 벌어졌던 풍수지리 논쟁은 건물 프로젝트 논쟁이 아니라 인간의 삶터에 대한 동양적, 아니 한국적 세계관을 논한 정치투쟁이었다. 그리고, 자연은 인간의 계급을 허문다. 오늘 우리가 만드는 도시가 그때보다 더욱 계급적이다. 고속도로에서 골목길에 이르는 길의 계급 질서가 완연하다. 땅도 용도별 그레이드를 두고 있으며, 전체 도시를 도심과 부도심으로 나누는 것 등등, 자본주의 도시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야합, 1주일 동안에 도시계획한 수 십 만 명 주민의 도시. 우리는 이런 도시가 강제하는 규율에 적응하면서 우리 삶도 계급화한다…승효상은 결코 자연주의 건축가가 아니다. 승효상 숙소이자 건축사무실 `이로재`, 그리고 `쇳대박물`관은, 내가 자세히 느껴 보았는데, 계단이 몹시 가파르고 걷다 보면 아찔할 때가 있다. 그건 왜?... 가파른데다 난간이 없어 그럴 텐데, 그 상태가 자아내는 긴장감 때문에 오히려 사고가 전혀 없다. 장충동에 내가 `지은` `장충동 웰컴시티 사옥` 또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로비 계단에 난간이 없고 맨 처음에는 사람들이 굉장히 걱정했다. 난간 없어 사고 나면 건축가가 엄청난 배상을 해야 하고, 그래서 `난간 없는 계단`은 허가를 늦추는 빌미가 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 건축물에서도 사고가 전혀 나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그것이 나의 건축 전부는 물론 아니다…사무실에는 긴장감 있는 삶에 어울리는 `공간`이 필요하고, 더 어울리고, 더 편안하다는 얘기겠다. 그의 건축론이 `역사`를 깔기 시작한다. 예컨대, 어떤 건물 형태를 만들기 위해 이미지를 상상하고 먼저 그걸 갖다 놓고 그 안에 공간을 집어넣는 방식은 옛날, 고딕이니 르네상스니 바로크니 그런 양식이 있을 때 방식이고 모더니즘 이후 건축은 인간의 언떤 본성, 근원에 대해 질문하기 때문에 삶 공간에 대한 집착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건축은 개인이 돈을 내서 짓더라도 그것을 사용할 뿐 건축은 공공적인 것, 즉 시민과 사회의 소유물이다. 나한테 찾아오는 건축주들이 `이건 당신 집이 아닙니다.`라고 하면 화를 내고 돌아가기도 했지만 요즘은 알고 찾아 오므로 그런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공공`의 첫 번 째 가치는 윤리다. 어떤 건축물은 옆 집보다 작아야 하고 사람들한테 길을 내줘야 하고 앞 뒤 길을 이어줘야 하고 비가 오면 비를 피할 수 잇게 해주어야 하고, 좀 검소해야 하고, 한마디로 `빈자의 미학`을 구현해야 한다.. 산동네 공간, 외적 공간과 내적 살림 공간을 모두 배워야 한다. 내가 비움 자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 삶의 룰이 그 공간을 조성해가도록 하자는 거다. 이를테면 장충동 웰컴시티 건축은 박스 네 개로 나누어 설계, 가운데 빈 공간 세 걔를 생기게 하고 나는 이것을 `아반보이드`라 이름 붙혔지만, 이것이 생김으로써 뒷 마을에 보이드를 만들어 빛도 주고 바람도 주며 앞 도시 풍경도 선사하는 식으로, 뒷 마을 사람들이 전보다 더 명징하게 도시 풍경을 액자로 누리게 되므로 매우 좋아했다고 들었다. 나는 내 건축이 그런 관계 맺기로 존재하기를 바라지 영원히 남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교외 건축물은 가능하면 건축물로 보이지 않게끔 부단히 노력한다. 경사진 논두렁, 밭, 이런 것들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처럼 보인다. 그렇게 건축 또한 시간과 더불어 자연화, 자연 속으로 풍화하기를 나는 바란다. 요즘 내가 북경에서 하는 건축 일이 많은데, 흡사 우리나라 70년대를 연상시키는 북경 건축 재개발의 광기, 이를테면 우리나라 인사동이나 북촌한옥마을, 그리고 뒷골목들을 깨끗이 갈아 엎는 분위기 속에서도 그런 작업을 좀 해보자는 게 내 생각이다…그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정말, 건축은 (문학)이야기라는 듯이. 건축과 이야기 사이 술이 이어지면 승효상처럼 자기 고집이 세고 열혈인 사람이 드문데도, 그게 너무도 당연해보이고 자연스럽고 예술적이라, 나는 아주 부드러운 모종의 `여성`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주 예술적으로 둘러싸여가는 느낌을 갖는다. 과연 그는 `아키+텍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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