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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미국'과 '붙잡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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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미국'과 '붙잡는 한국'?

럼스펠드 "동맹 변화"…윤광웅 "동맹 발전"

기자: 한국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이 일어났다. 또 북한보다 미국이 한반도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도 많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럼스펠드 : (침묵) 대답하기 전에 잠시 생각을 해야겠다. (또 침묵…낮은 목소리로) 미국은 한국이 자유를 얻도록 하기 위해 많은 미국인들의 목숨을 투자했다. 한국 국민이 자유롭도록, 한반도가 평화롭고 안정적이 되도록 자금도 많이 투자했다. 우리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한미동맹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인의 근면으로, 그리고 한미동맹이 제공한 평화와 안전으로 한국은 수십 년간 경제적으로 성장했고, 성공했고, 활기가 넘치게 됐고, 한국인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보아왔다. 세상에서 명확한 게 하나 있다면 분쟁과 불안정은 경제적 번영을 막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국민과 정부는 이 지역에 그러한 기여를 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사진기자들이 눌러대는 셔터 소리만 요란할 뿐 장내는 고요했다. 럼스펠드 장관 뒤에 포진한 미국 국방부 보좌진의 표정에서는 긴장감과 숙연함, 억울함과 단호함 같은 복잡한 심사가 읽혀졌다.

***럼스펠드 "전시작전권 환수, 이미 명확한 일"**

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가 열린 21일 국방부 대회의실.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부장관은 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 15분 동안 한미동맹의 '변화'와 '조정'을 6차례나 얘기했다. 동맹의 '미래지향적 발전'과 '공고화'를 강조하는 윤광웅 국방장관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였다.

이번 회의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 있어서도 럼스펠드 장관은 "특별히 우리가 해결해야 할 혼란은 없다. 이미 명확한 것을 어떻게 더 명확히 하겠냐"고 잘라 말했다. 이 말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양국 국방장관은 회의 후 배포한 공동성명에서도 "지휘관계와 전시작전통제권에 대한 협의를 적절히 가속화(appropriately accelerate)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럼스펠드 장관은 "앞으로 한국의 군사능력이 더 강화될수록 한국은 더 많은 임무를 맡게 될 것이고 실제로 최근 몇 년간 그래왔다"며 "양측이 적절한 시기가 됐다고 결정하면 이양되는 거다"라고 말했다.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는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윤광웅 장관은 작전통제권 환수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은 채 "국제정세와 한반도 안보환경이 급격히 변하는 시기에 열린 오늘 회담에서 한미관계의 공고함을 대내외에 재천명하고 한미동맹의 미래 발전방향에 대해 견해를 같이하게 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미국이 한국의 '자주국방'을 밀어준다?**

여기까지만 보면 '떠나는' 미국과 '붙잡는' 한국이다. 미국은 전시작전권까지 넘겨주며 '자주국방'을 바라는 한국의 숙원을 풀어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럼스펠드 장관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 공약과 핵우산의 지속적 제공 공약을 재확인했다"는 공동성명 7조는 '떠나는 미국과 붙잡는 한국'이라는 해석이 얼마나 표면적인 것에 불과한가를 웅변한다.

여기서 '핵우산 제공'이 "양 장관은 북경 (6자회담) 공동성명이 검증가능한 북한 핵폐기를 촉진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가 조속히 실현될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했다"는 공동성명 5조와 충돌한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가 북핵의 폐기만을 뜻한다면 '충돌'이 아니지만, 미국이 남한에 제공하는 핵우산의 제거까지를 '비핵화'로 보고 있는 북한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충돌이고 모순이다. 한미 양국은 남한 내 핵사찰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건 '남한 영토 내'를 말하는 것이지 핵우산의 제거까지를 뜻하지는 않는다. 북한은 '핵우산이 있는 한 한반도는 비핵지대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제대로 환수되는 건가?**

한국이 드디어 환수하게 될 전시작전통제권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결코 떠나려 하지 않는 미국'이 여실히 드러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은 전시작전권을 한국에 이양하면서 미-일 군대의 지휘체계를 모델로 한 '병렬형 지휘체계'를 만들어 한국군과 미군이 각자를 지휘하되 한미군사위원회 아래 별도의 협의기구를 두어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 문제를 평시에도 협의하게 하려고 하고 있다.

군사주권을 회복하고 자주적인 국방정책 수립의 기틀을 마련해 한국군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군대로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세력은 드물다.

문제는 '병렬형 지휘체계'가 현행 한미연합 지휘체계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일본 자위대의 경우도 형식적으로는 독립적인 지휘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 '포괄적 메카니즘'과 '조정 메커니즘' 등의 장치를 통해 주일미군의 지휘에서 벗어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한미군사위원회 아래 두기로 군사협의 기구가 미-일의 '조정 메커니즘'을 본뜬 것이며 '수직적'인 지휘구조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과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등 시민단체들은 19일 "미일 병렬형 지휘체계는 한미연합 지휘체계 이상으로 대미 종속적인 지휘체계"라며 "새로운 군사협의기구를 두어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 문제를 미국과 평시에 협의하도록 하는 것은 또 다시 한국군에 대한 지휘와 통제를 합법적으로 보장해줌으로써 작전통제권 환수를 무의미하게 만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날 'SCM에 즈음해 윤광웅 장관께 드리는 시민사회단체 공동서한'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미국은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시기를 가급적 늦추면서 우리나라로부터 최대한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도 20일 성명서를 발표해 전시작전권 환수 일정을 구체화해야 한다며 "연합지휘 체계도 주권국가 간의 군사협력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략적 유연성' 개념도 '떠나는 미국'에 배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지속적으로 중요함을 재확인했고 동맹정신에 입각해 이 문제를 계속 협의하기로 약속했다"는 공동성명 9조는 미국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시민단체들은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언급하는 것은 주한미군의 작전 범위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고 태평양사령부가 주한미군을 보다 직접적으로 지휘·통제함으로써 주한미군을 광역작전에 동원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한미동맹을 지역동맹으로 재편, 한미연합 전력을 태평양상의 다른 우발사태에도 동원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려 한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동맹의 재편은 북한 위협에 대한 대처라는 주한미군 주둔의 근본 목적에 명백히 어긋난다"며 "한국이 미군의 전 세계 전장으로의 투사거점이 되고 한국군과 국민이 한반도 안정과 무관한 패권적 군사행동에 관여하도록 강요하거나 심지어 우리 자신의 평화와 안녕을 심각히 위협하는 자가당착적 행위에 동원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유영재 평통사 미군문제팀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은 안 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전략적 유연성'을 재확인한다고 말하는 것은 대통령의 말을 희석시키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시작전권 환수와 '전략적 유연성' 강조의 속내를 뜯어보면 미국이 한국을 과연 떠나려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은 자명해진다. 전시작전권 환수라는 '자주적'인 성취를 깎아내리는 것은 '한국 진보진영의 환원주의'라는 정부 고위당국자의 볼멘소리가 과연 올바른 평가인지는 검증이 조금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럼스펠드 장관은 이날 오후 노무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도 "한미동맹이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앞서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앞서나가는 동맹'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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