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잘못된 교육이념과 교육정책으로 근대화에 뒤쳐져왔다. 작금에 이르기까지도 우리 나름의 교육이념이나 정책을 창출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식민지 교육방식과 미국식 교육방식이 섞인 채 산업화 및 지식사회로의 이행에 맞춰 갈팡질팡, 좌충우돌하며 여론 맞추기에 급급할 따름이었다.
더욱이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시대 상황은 우리를 극심한 경쟁교육 체제로 밀어 넣었다. 유아교육은 영어 열풍, 선행 학습, 조기유학으로 이어졌고, 초·중등교육은 제도권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 열풍, 자격증 취득, 해외연수 교육으로 학생을 내몰았다.
대학 졸업 후나 취업 후에도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엿보며 다시 고시나 공무원, 교원 등 취직시험이나 전문대학원을 가기 위해 공부를 다시 하게 되는 악순환을 낳았다. 그리하여 40대 초반까지 교육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는 교육 고비용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육 고비용 구조 사회를 이루게 된 내부적 원인으로는 먼저, 승자독식적 사회체제를 들 수 있다. 자본가, 경영자, 전문직 등 최상위 2%의 고액연봉을 인정하는 가운데 임금의 초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그 결과 미국식 승자독존의 세상이 되었다.
강자가 상생이라 말하고 독존식 행태를 보여도 약자도 의식 속엔 여전히 같은 생각으로 차있으니,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경계 짓기, 차별, 기득권의 사회는 창의적, 수평적, 비판적, 수월적 사고를 잠식하고 출신적, 회귀적, 수직적, 복속적, 기회주의적 소통을 양산한다. 미국이 우리와 다른 것은 승자독식 사회지만 수월성을 인정하고 다들 승자의 논리에 복속하나, 우리는 똑같이 승자독식 사회지만 불공정한 경쟁과 파벌의식으로 승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학벌주의를 들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학벌주의 사회이다. 아니, 학벌제일주의 사회이다. 이에 따라 교육도 학벌을 우선으로 일류대 진학 교육에 몰두해 중등교육을 왜곡시켜 국영수 1등주의만을 목표로 한다.
학벌중심 사회는 고학력 고스펙 사회로 이어졌다. 누구나 다 대학을 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2008년 고등학교 졸업자의 84%가 대학에 진학했고 전문계고 졸업자의 70% 이상이 대학에 들어간다. 2009년의 경우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 이상 고등교육 이수율은 25-34세 청년층의 경우 각각 25%, 38%로 총 63%에 달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이수율 37%보다 무려 26% 포인트가 높다.
▲ 과열경쟁에 지친 대학생들의 퍼포먼스 |
이런 통계 수치는 우리가 대단히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사회 속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엄청난 교육비로 말미암아 중하위층은 교육시장에서 상대적 박탈감은 물론, 불공정한 교육시장의 루저로 전락했다. 또한 교육비 증가에 따른 상대적 가처분 소득의 감소는 내수 시장의 위축과 노후 복지 문제를 잉태시켰다.
이런 사회를 만든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교육 관련 주체들의 행태를 보자. 정권을 장악하고 교육정책을 바꾸면 3-4년 안에 쉽게 교육문제는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국가 지도자, 좌우파로 나눠져 이념적 정책 싸움만 하는 선출직 교육관료, 근시안적 교육정책으로 일관하는 교육 공무원이 문제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제 자식만 잘 되면 된다고 믿으며 자식 교육에 목매고 있는 학부모, 입시와 암기교육, 단순 지식평가에 매몰된 교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훌쩍 컸으나 자신의 재능이 뭔지도 모르고 유행 따라 가는 학생도 문제이다. 사실 이 모두가 다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이제 책임을 어느 한 쪽에 떠넘기지 말고 좌, 우파 이데올로기나 정치인의 공약에 휘둘리지 말며 천천히 단계별로 교육문제에 행정력 및 모든 교육 주체들의 역량을 200% 정도 투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들 한국사회의 문제점이라고 부르짖는 양극화, 소득 3만 불 실현, 남남갈등, 남북통일 등 여러 현안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중등 교육에서 일정 부분 영재 교육을 인정하면서 무언가 전인, 협동, 통합, 포용, 다문화, 다원적 사회로 가는 실마리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인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우리 중등 교육의 현장을 돌아보자.
중등교육은 과외공부, 학원보내기, 영어열풍, 영재교육, 선행학습, 반복적 문제풀이, 수능 ·내신·실기·논술의 입시지옥으로 말미암아 사교육 시장은 크게 팽창된 반면 공교육은 붕괴했다.
2000년 이후 수시제도와 여러 전형방식 등 다양한 대입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런 개선이 공교육과 연결되지 못했다. 국영수가 아닌 다른 재능을 발견한 학생들도 선행학습을 받는 학생들과 같이 사교육 시장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 정원의 증가가 청년실업과 해외 유학생의 급등의 원인이 된 것처럼, 중등 교육의 다양화, 자율화를 목표로 했던 외고, 과학고 등 특목고의 신설은 오히려 특목고를 향한 입시교육 과열, 직접 해외유학 열풍으로 나타났다. 또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도입했던 수준별 교육은 선행학습과 조기교육으로 사교육 시장을 증폭시켰다. 결과는 참담한 것이 되었다.
지난해 교과부 예산 48조 원 가운데 유아교육 및 초·중등학교 의무교육에 35조5000만 원이 든다. 여기에 고등학교 등록금 액수 2조 원, 국내 초·중등 사교육비 32조 원, 초·중고교 1만8000명의 유학비용을 합치면, 약 70조 원이 된다. 대략 공교육비가 약 40조 원, 사교육비가 약 30조 원이 된다.
그럼에도 중고생 가운데 정규수업을 받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60%나 되며, 초·중고생 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54% (OECD 평균은 84.8%)에 불과하다. 또 초·중고생의 자살자 수는 2009년에 202명으로 날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전문계고 졸업생도 취업하기가 매우 어려워 그 70%가 대학입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거의 모든 고교생이 대학 입시에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명확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로 공, 사교육비를 줄여 실질 가처분 소득의 증가를 가져오고 이를 통해 내수 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노후 복지에 충당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로 중등교육에서 입시교육을 철폐하고, 전인적, 통합적, 협동적 교육내용으로 중등교육을 확장하며, 기술·정보통신 교육을 강화하여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 쉽게 취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로 중등교육에는 도시와 농공수산 등 지역적 특성과 지역 경제에 알 맞는 실기교육을 중요한 교육내용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넷째로 고졸 취업자들과 야간 전문대, 4년제 대학교 교육을 연계시킬 수 있는 고등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학에 갈 유인을 줄이고 입시과열도 해소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첫째로 GDP 대비 과다한 공교육비 비율(7.6%)을 OECD 평균(5.9%) 수준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민간부담률(2.8%)도 1% 수준(평균 0.9%)으로 줄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공교육비가 이렇게 많이 나가는 것은 주로 인건비 때문이다. 교사들에 대한 보수 수준이 선진국 가운데서도 상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비나 주거비 등 생계비용을 줄여주는 대신 보수수준을 어느 정도 낮출 필요가 있다. 또 그래야 더 많은 교사들을 뽑을 수 있다.
공교육비에 버금가는 사교육비도 매년 20% 포인트 정도씩 줄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교육세를 증액하여 민간부담률을 감소시키고, 지역 경제 사정과 전인·통합·협동을 중심으로 하는 새 교육내용에 맞춰 중등 교원을, 특히 전문계고 교원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 사교육의 팽창은 학원들을 문전성시로 만들었다. 대치동의 학원거리. |
점차 대학 진학률을 50% 이하로 낮추어야 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전문계고 학생 (현재의 비율은 25%) 들이 전원 취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또 4년제 대졸자 초임을 고졸자 초임의 110-120% 정도로 낮추고 고졸 취업 후 4년이면 대등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임금 구조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지역별로도 고졸 취업 영역을 지정하여야 한다. 이렇게 되면 특별히 많은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갈 필요가 없어진다.
둘째로, 중등교육에서 문제풀이식 입시교육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또한 보다 높은 수준의 과목들을 개설하여 이수능력이 있는 학생들에게만 배우게 하여, 이를 대학 입시에 반영시키는 제도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수월성을 제고시키는 방편이 될 것이다.
전문계고나 일반계고나 마찬가지로 전인, 통합, 협동 교육을 위해 교원을 대폭 확충하고, 특히 음악, 예술, 오락, 취미, 기술, 체육, 요리, 정보통신 등 경험적이고 실용적이고 실무적인 실기 위주의 교육을 통해 개인의 특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개편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자리를 잃게 되는 학원 선생님들에게는 공교육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초·중등교육을 명실상부한 제도권 공교육으로 통합시켜야 한다.
공교육은 시험 위주가 아니라 관찰 평가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중등교육에서의 학력고사, 일제고사 등 과중한 시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의 1회적인 수능시험을 보다 개선할 필요가 있다. 시험 방식이나 회수조차 크게 손을 보아 수능시험을 통해 학생의 능력을 충분히 판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대학입시 제도는 졸업 당시 수능점수의 년도별 가중치와 개인의 사회적 경험을 중시하는 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가능하면 재수생, 삼수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음으로써 쓸데없는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할 것이다.
셋째로, 시도군 지자체는 농공수산 등 지역적 특성과 지역 경제에 맞는 중등 교육내용과 이와 연계된 야간 전문대, 4년제 대학교의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역에서 공부해서 그곳에서 취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용시장에서 지역 연고주의를 인정하고, 타 지역 학생과 교육비 등에 차이를 두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경기도를 중심으로 혁신학교에 대한 좋은 소문이 나고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경쟁과 성적 위주의 수업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창의성 교육, 자기주도형 학습을 중시하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소통 환경을 조성하고,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체험활동이 강조되는 교육을 한다. 이에 따라 학생, 학부모, 교사의 만족도가 증가하고 기초학력 미달자의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서 MB정부 이후 출범한 자사고는 존폐위기에 처해있다. 일반계 고교와 다를 바 없는 입시교육 콘텐츠에 등록금이 2-3배 비싸 지원율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재 교육을 담당하는 특목고는 입시교육이 아닌 그 설립목적에 맞게 개편하여 인구비율에 맞춰 지자체에 균형적으로 안배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초·중등 교육은 지역적 토대 위에 인성과 개성을 개발하는, 평가와 입시가 아닌, 배움 중심의 교육으로 나아가면서, 고졸과 대졸 간 임금 격차를 줄이고 고졸 취업영역을 지정해 전문계고 비율을 50% 정도로 높이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과열된 입시경쟁의 폐해를 줄이고 무너진 공교육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교육 고비용 구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 민족미래연구소에서는 한국혁명넷을 개설하고 '한국혁명'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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