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과 물개, 갈매기들의 낙원인 남극 근해의 말비나스 섬, 한국에는 포클랜드로 더 잘 알려진 이 섬의 영유권을 놓고 영국과 아르헨티나 정부가 해묵은 논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82년 포클랜드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유럽과 아르헨티나에서 동시에 개봉되어 이 섬의 영유권 문제와 참전용사들의 보상문제가 다시금 사회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Iluminados por el fuego(포탄의 섬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영화는 18세의 나이에 의무 징집되어 포클랜드전쟁에 참전한 아르헨티나의 현직기자 에두가르도 에스떼반이 지난 93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에스떼반 기자는 최근 이 영화의 시사회장에서 "나는 지금도 영국군들이 쏘아대는 포탄의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동료병사들의 시체가 공중으로 떠오르고 추위와 굶주림,그리고 죽음보다 더한 공포에 시달리며 절규하는 전우들의 모습을 보는 악몽을 꾸고 있다"며 " 애국심이라는 허울로 포장된 명분 없는 전쟁에서 군부독재자들에게 이용당한 아르헨티나 젊은이들의 비극과 전쟁의 참혹함을 사실대로 고발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전쟁 초기부터 우리는 영국 해군 잠수함의 해상봉쇄로 보급품을 받지 못해 영국군과의 전투보다는 추위와 굶주림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극심한 공포를 견디지 못한 많은 수의 동료병사들이 적이 아닌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보아 왔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단순한 군부 지도자들의 상황판단 실수로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전쟁에 애꿎은 젊은이들만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 에스떼반 기자는 "수많은 말비나스 전쟁 참전용사들이 종전 후 지금까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질환을 앓는 등 전쟁후유증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 영화가 유럽과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호평을 받자 아르헨티노(아르헨 국민들)들은 다시금 "말비나스는 우리땅"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말비나스 섬 영유권문제를 이슈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말비나스 섬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아르헨티나 사람들이'말비나스'라 부르는 아르헨 최남단 남극해에 위치한 이 섬에 대해 알아본다.
아르헨티나 남부 마젤란 해협과 드레이크 해로를 끼고 있는 이 섬은 지난 16세기 초 마젤란 남극 탐험대에 의해 발견된 후 1774년부터 미국 포경선들의 기지로 쓰인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도 이 섬 주변에는 당시의 고래기름 채취공장의 잔해와 용도 폐기된 포경선들이 버려져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어 이 섬이 고래잡이와 기름채취를 위한 기착지로 주인 없는 섬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 후 스페인 총독부로부터 독립한 아르헨 정부는 1820년 이 섬의 영유권을 선언하고 민간인들을 이주시켰으나, 비교적 채취가 쉬운 펭귄 기름의 가치에 주목한 영국 해군도 1833년부터 주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때부터 영국 해군의 보호 아래 영국 어선들은 포경선을 통한 고래잡이보다는 뒤뚱거리면서 섬 전역에 서식하는 펭귄떼를 대량으로 잡아 비교적 쉽게 다량의 기름을 채취해간 것이다.
더욱이 이 섬 주위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황금어장으로 알려지고 석유와 가스 등 천연광물이 대량으로 발견되면서부터 영국은 이 섬을 '포클랜드군도'라 명명하고 총독까지 파견하여 군사 기지화시켰다.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마한 이 외딴 섬에는 3000명이 채 안 되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부자들이다. 최근의 자료에 따르면 연간 1인당 주민소득이 5만 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이 섬의 주 소득원은 각국의 원양어선들이 지불하는 입어료와 석유와 가스개발을 위해 지불하는 로열티 등 거의가 불로소득이다.
한국 역시 지난 85년부터 이 섬 근해에 오징어잡이 선단을 파견, 원양오징어의 전부가 이곳 산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정도다. 따라서 한국이 이곳 섬 정부에 지불하는 입어료만도 매년 수백만 달러에 달할 정도라고 알려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국이나 아르헨 정부가 이 섬의 영유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은 불문가지다. 서로가 차지하려고 침을 흘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뻬론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아르헨 군부는 정통성 확보를 위해 황금알을 낳은 거위 격인 말비나스 주권 확보라는 명분을 앞세워 지난 82년 전격적으로 말비나스 공격작전을 감행한다. 그러나 핵잠수함 퀀커러를 앞세운 막강한 영국의 해군력에 남극해를 봉쇄당한 아르헨티나 점령군은 2개월여를 버티다 백기를 들고 항복하여 군부정권의 몰락을 불러왔다.
82년 민선대통령이 된 라울 알폰신에 이어 정권을 잡은 까를로스 메넴은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남극 근해어장의 공동관리와 말비나스 석유공동개발권을 따내 브리티쉬 가스와 YPF 아르헨 국영석유회사가 석유와 가스를 함께 뽑아내고 있다. 결국 이 섬의 영유권은 영국이 가졌지만 양국정부가 이 섬에서 얻어지는 이익은 사이 좋게 반분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 섬이 분명히 아르헨티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1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영국의 소유라는 데 자존심이 상해 국제사회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코앞의 영토도 챙기지 못한다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서다.
영국은 이 섬 주민의 80% 이상이 영국 국적인 점을 들어 이 섬은 영국 땅이라고 주장한다. 2900여 명의 섬주민들 가운데 세계 각국의 선박회사 직원들과 석유회사직원, 소수의 과학자들과 군인가족을 제외하면 모두가 영국인들이 사는 영국 땅인 셈이다. 섬주민들 가운데는 한국국적을 가진 2명의 남자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채를 띤다.
섬주민들은 '펭귄뉴스'라는 영자 신문도 발행하여 자신들이 영국 국민임을 내세우며 세계각국에 자신들의 소식을 알리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펭귄뉴스'의 인터넷판도 운영을 하고 있다. ( http://www.penguin-news.com/ 참조)
현재 아르헨티나 현지언론들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 영화 '포탄의 섬광'이 말비나스 전쟁의 참전용사들의 처우개선과 보상 등을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되는 것은 물론 영국을 향해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 땅'이라는 주장을 라틴권을 시작으로 유럽 등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압력수단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우리 땅' 주장에 맞선 영국의 버티기가 미국 등의 서방강대국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 아르헨티나판 독도 논쟁은 쉽게 결론이 날 것 같지가 않아 보이는 게 현실이다.
전체댓글 0